만능이라고 불니는 제네릭약품사업의 프로스트 박사. 그는 의사이자 투자자이며 발명가이기도 하다. 제네릭약품의 세계화를 이끈 그는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한다. 오늘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대부분의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야자나무가 갖는 위상은 뉴욕시의 비둘기에 비견될 수 있겠다. 어딜 가도 야자나무가 있지만 이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필립 프로스트 박사(Dr. Phillip Frost·80)는 예외다. 자신의 흰색 7시리즈 BMW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 동안, 마이애미의 두번째 부자로 이곳에서 50년을 살아온 프로스트 박사는 포장도로의 틈새로 삐져나온 잡초처럼 자라는 12종이 넘는 야자나무에 대해 기자에게 끊임없이 설명을 해줬다.
“저기 야자나무에 달린 과일이 보입니까? 노란색이지요. 그러면 종려나무인 겁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그리고 저기 앞에 있는 것은 대추야자입니다. 이건 비로야자인데, 코끼리 귀 모양같은 부채꼴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저건 꽃을 피우고 있는 사발팔마토입니다. 예쁘지 않나요?” 찌는 듯한 무더위의 날씨에 과시적 소비가 특징인, 모든 이들이 창문을 연 채 에어컨과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튼 채 운전하는 도시 플로리다에서, 식물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과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욕심을 지닌 프로스트 박사는 비정상의 범주에 속한다. 프로스트 박사는 사업가이자 투자자이, 학자, 발명가 그리고 열렬한 예술과 과학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80대에 접어든 겸손한 성품의 프로스트 박사와 함께 있어본 사람들은 많은 야자나무 종류처럼, 언뜻 평범해 보이는 디테일에 세세하게 관심을 쏟는 것이야말로 바로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박사의 묘한 능력의 원동력이라 입 모아 말할 것이다.
프로스트 박사는 면허를 소지한 피부과 의사이자 활력이 넘치는 사업가로 옵코헬스(Opko Health)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중견 제약·의료진단기업 옵코헬스는 만성신장질환과 전립선암진단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전도유망한 치료법을 보유하고 있다. 옵코헬스가 2016년 매출 12억 달러를 기록했고 5000만 달러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프로스트 박사는 키파마수티컬스, 아이백스 그리고 테바파마수티컬스와 같은 제약산업의 선구자들을 포함해 자신이 이제껏 노력을 기울였던 그 어떤 업체보다도 옵코헬스가 의료계에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옵코헬스의 주식이 지난 18개월 동안 39%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를 다소 자기중심적인 주장이라기보다는 현대의 제네릭제약사업을 창조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의 입에서 나온 대담한 선언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 제약업계 CEO이자 노련한 가치투자자
“우리는 각각의 매출이 10억 달러 이상, 어떤 경우에는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대여섯 개의 제품을 거느린 기업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비뇨기과, 신장내과, 유전학, 바이오레퍼런스 그리고 노화·대사증후군 등 옵코헬스의 핵심시장 다섯 가지를 서로 겹치는 원 모양으로 나타낸 자료를 가리키며 프로스트 박사가 말한다. “우리가 화이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성장호르몬의 경우, 35억 달러 규모의 시장입니다.”
제약업계에 몸담은 동료들의 대부분과 달리 프로스트 박사는 노련한 가치투자자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이러한 마인드는 분자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협상을 타결하고 싶어하는 성향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돼 있다. 프로스트 박사의 사무실 책상에는 각종 홍보자료와 제안서가 놓여 있다. 이중 평판스크린에서는 블룸버그 채널이 박사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주식종목 수십 개를 깜빡이는 녹색과 빨간색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스트 박사는 보건의료산업에서 스스로를 어디에 포지셔닝해야 할지에 대해 정말 대단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베테랑 헤지펀드매니저로 1990년대부터 프로스트 박사의 기업에 지분을 소유해온, 오라클파트너스의 래리 파인버그가 하는 말이다. “박사는 옵코헬스를 지주회사로 보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산업의 버크셔헤서웨이격인 셈이지요.”
한편 옵코헬스와 여타 기업체를 통해 프로스트 박사는 보건의료계에서 멀리 떨어져나왔다. 담배제조사 리게트 및 상업용부동산중개업체 더글라스엘리맨을 산하에 거느린 벡터그룹부터 시작해 고급증류주를 생산하는 캐슬브랜즈·투자기업 라덴버그탈만에 이르기까지 수십개의 상장·비상장기업에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스트 박사는 수많은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기업에도 투자했다. 예를 들어 데이터융합업체, 드론정찰서비스제공업체, 그리고 대학시절 룸메이트로 스탠포드의과대학의 저명한 심장전문의인 사이먼 스털저가 창업한 바이오테크기업 바이오카디아 등이 있다. 바이오카디아는 심장발작으로 손상을 입은 심장을 다시 젊게 만드는데 줄기세포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 순자산 50억 달러 보유자로 사회공헌 활동 활발
80세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프로스트 박사는 순자산 50억 달러의 고지를 넘어서고 있으나, 자산을 일구는 것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이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프로스트 부부는 자녀가 없지만, 프로스트 박사와 아내 패트리샤는 직접 관여하는 사회공헌활동과, 수억 달러의 자금을 바탕으로 마이애미를 해변, 골프장, 핫한 남미-카리브해 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에서 예술과 진지한 과학의 메카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미션을 수행 중이다.
가난한 소년이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 프로스트 박사의 인생 여정에는 많은 뜻밖의 행운이 작용했다. 대공황이 한창이었던 1936년 프로스트 박사는 사우스필라델피아 출신으로 신발가게를 운영했던 가족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특출한 학생이었던 프로스트 박사는 입학조건이 까다로운 필라델피아의 센트럴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입학해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2학년을 파리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구내식당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이때 뉴욕시의 ‘앨버트아인슈타인’이라는 신생 의과대학에서 장학금을 제공하며, 모교인 센트럴고등학교의 졸업생이면 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프로스트 박사는 지원했고 전액장학금을 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앨버트아인슈타인은 곧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으로 손꼽히며 명성을 쌓게 되었다.
프로스트 박사가 전공으로 피부과를 택한 것도 우연의 요소가 작용했다. 대학교 시절 프로스트 박사는 팔꿈치에 보기 흉한 사마귀가 생겼는데, 그때 마침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칸타리스라고도 알려진 칸타리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교수가 있어 이 교수를 찾아가 사마귀를 없앨 연고가 있는지 문의했다. 이때 사마귀를 치료해준 교수는 훗날 프로스트에게 펜실베이니아대학 피부과의 대학원생 레지던트직을 제안했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미 국립보건원의 공중보건국에서 소령으로 2년 동안 복무한 후, 프로스트 박사는 1966년 마이애미대학의 피부과 교수로 채용됐다.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끝없는 호기심을 채울 수 없었기에, 박사는 밤이면 피부생검을 위한 일회용 기구를 발명하는 일에 몰두했다(이 기구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1969년이 발명품을 마일스래버러토리스에 판매하기 위한 협상을 하던 중 프로스트 박사는 언변이 뛰어난 젋은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마이클 자하리스(Michael Jaharis)였다.
▒ 제네릭약품 사업에 뛰어들어 억만장자 등극
프로스트 박사와 자하리스의 우정은 자하리스가 로펌을 그만두고 박사가 사들인 초음파를 이용한 새로운 치아세정기 사업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사업파트너의 관계로 발전했다. 프로스트 박사가 개업한 피부과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이중에는 배우 재키 글리슨도 포함되었다. 한번은 자신이 박사의 어머니와 같은 병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글리슨이 어머니의 병실을 장미꽃으로 가득 채운 일도 있었다. 1972년 프로스트 박사는 마이애미 마운트시나이메디컬센터의 피부과 과장직에 올랐다.
그해 또다른 우연의 만남이 있었다.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이애미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프로스트 박사는 키파마수티컬스의 고위임원이 된 옛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당시 키파마는 감기치료제를 주력으로 하는 제약업체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때쯤, 우리는 약간의 현금과 발명품을 갖고 제가 하던 작은 사업을 상장기업인 키파마와 합병하자는 데 동의했습니다.” 키파마는 프로스트 박사와 자하리스가 상당한 부를 구축하는 문을 열어줬다. 주력상품이던 천식약의 제형을 원래 기침억제제와 섞었던 형태에서 천식만을 치료하는 서방제로 바꾼 테오듀는 미 전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천식약이 되었다. 후속제품으로 키파마가 내놓은 심장질환치료제인, 최초의 니트로 글리세린서방형 패치 니트로듀 역시 큰 히트를 쳤다. 결국 1986년 셰링-플라우가 8억3600만 달러에 키파마를 인수했다. 그 당시 자하리스와 프로스트 박사는 포브스 400대 부자 순위에 올라있었다. 50세였던 프로스트 박사는 순자산이 최소 1억5000만 달러(오늘날 달러가치로는 3억3000만 달러)였으며 셰링-플라우의 최대 개인주주였다.
그러나 은퇴하고 배당금을 받는 대신, 프로스트 박사는 아이백스(Ivax)를 창업해 당시 초창기였던 제네릭약품 사업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1990년대 초반 마진이 낮은 제네릭약품 사업이 품질에 대한 논란으로 언론의 포화를 맞고 있을 때, 프로스트 박사는 선견지명을 갖고 제네릭약품기업을 인수했으며 국제무대로 사업을 확장했다. 다시 한 번 프로스트 박사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인맥을 활용했다. 한 예로 1994년 박사는 체코공화국 최대의 제약기업으로 손꼽히는 글라니아(Galena)를 인수했다. 마이애미와 토론토에 이르는 자신의 광범위한 인맥을 활용해 당시 체코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과 막판회동을 성사시켰던 것. “저는 대통령에게 ‘보십시오, 우리와 계약을 체결한다면 우리는 1200명의 직원 중 적어도 900명의 일자리를 보전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하벨 대통령의 관심이 최고가에 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아닌 일자리를 지키는 것임을 눈치빠르게 알아챈 프로스트 박사의 말이다. 아이백스가 고작 5000만 달러의 가격에 성사시킨 이 매수계약에는 최고위치의 부동산, 구소련공화국 모두에 퍼져있는 자회사들 그리고 은행금고의 2000만 달러가 포함되었다.
“박사님은 아이백스를 국내제약기업에서 글로벌 제네릭-제약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파인버그의 말이다. “미국 시장의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제네릭과 전매약품 모두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높은 가치를 지닌 자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05년, 이스라엘의 테바파마수티컬스가 아이백스를 76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프로스트 박사는 처음으로 억만장자의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박사가 세운 제국의 중앙지휘본부는 마이애미 시내 비스케인 불러바드 4400에 위치한 본인 소유의 유리와 철재로 만들어져 일렁이는 빛을 내뿜는 15층 건물이다. 15층 임원실의 벽에는 박사가 보유한 주식상황을 추적하는 자막뉴스기기 아래 아름다운 액자장식이 된 사진들이 걸려있다. 1980년대 중반 마이애미의 베이프론트파크 도서관이 철거될 당시 프로스트 박사가 구해낸 원화에서 고른 사진들로, 세계2차대전 무렵 아르데코 마이애미비치의 사진들이다. 프로스트 박사의 사무실 바로 밖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아트리움’이 있는데, 이곳에서 박사는 매일 고위임원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이중에는 아이백스의 공동창업자로 먼저 세상을 떠난 찰스 샤오의 아내이자 MBA학위를 소지한 뛰어난 화학자 제인샤오 박사도 포함된다. 제인 박사는 옵코헬스의 부회장으로, 순자산 3억2000만 달러를 기록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여성부자 순위에서 46위에 올랐다. 프로스트 박사가 자주 점심을 함께 하는 또다른 지인으로 M&A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박사가 키파마를 매각하고 아이백스를 시작한 이후인 1986년 박사의 사업에 합류한 스티븐 루빈이 있다. 루빈은 프로스트 박사의 기업 상당수에 이사회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박사가 추진하는 계약을 담당한다.
“박사님은 직접 얼굴을 보고 일을 처리하는 성격입니다.” 루빈의 말이다. “박사님은 전화로 회의를 하지 않지요. 그러니까 ‘당신에게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더군요. 금요일 이곳에서 저와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들에 대해 직감에 따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전략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 전화통화보다 직접 면담하고 결정하는 스타일
프로스트 박사 아래서 일하는 최고경영자 중 은행가 출신으로 호황기였던 80년대 살로몬브라더스에서 일하다 현재 이곳 건물 12층에서 지역중개업체 라덴버그탈만을 운영하고 있는 리처드 램펜이 있다.
2001년 닷컴거품이 붕괴한 이후, 프로스트 박사는 그 당시 리스크가 높은 소형주의 주식공개과 전화영업중개 사업으로 주로 알려져 있었던, 장장 120년 역사의 투자은행인 라덴버그탈만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때부터 박사가 투입한 자금으로 최근 라덴버그탈만은 인상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매출은 3000만 달러에서 11억 달러로 신장했으며, 계속된 지역중개업체의 인수로 라덴버그탈만은 오늘날 4000명의 금융자문가를 두고 1300억원의 고객자산을 운용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박사님 덕분에 우리는 더 높은 체급의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램펜의 말이다.
최근 프로스트 박사와 직원의 점심 식사에 자주 자리를 함께 하는 임원 중 한 명으로 찰스 비숍 박사가 있다. 비숍박사가 총괄하고 있는 비타민D 촉진제 레이알디는 옵코헬스가 120억 달러에 이르는 만성신장질환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신규승인을 받은 제품이다. 옵코헬스는 2013년 비숍 박사의 스타트업기업을 인수했다. 프로스트 박사는 토론토의 제약기업 임원과 가벼운 점심식사를 하던 중 이 전도유망한 약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시간 후 비숍 박사는 프로스트 박사가 보낸 음성메일을 받았다.
“저는 즉시 전화했습니다.” 비숍 박사가 회상하며 말한다. “박사님은 그다운 특유의 방식으로 ‘3시간안에 마이애미로 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에 비숍 박사는 프로스트 박사에게 며칠 시간을 달라고 설득했다. “저희는 프로스트 박사님 앞에서 할 완전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습니다…제가 슬라이드를 갖고 와서 4번째 슬라이드까지 발표했을 때 프로스트 박사님이 ‘슬라이드 발표는 이제 됐습니다.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 볼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이같은 조급함은 프로스트 박사의 협상전략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프로스트 박사는 나름대로 조사를 했고 신장질환이 향후 옵코헬스에게 큰 사업기회가 될 것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미국 내 2500만 인구가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 중 900만명 가량이 3기나 4기에 해당한다.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 내의 매출액만 5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이는 레이알디는 하루 1회 서방형 캡슐 복용으로 비타민D 결핍을 치료할 수 있는, 미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제품이다.
옵코헬스가 바이오-레퍼런스의 네트워크와 마케팅을 활용해 내놓을 전도유망한 진단제품으로 새로 출시될 4K스코어 혈액검사가 있다. 이 제품은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가 얼마나 높은지 측정해 남성의 전립선암 위험을 정확하게 진단한다. “만약 PSA 수치가 높게 나올 경우, 이제까지는 생검을 하곤 했으나 이는 감염과 출혈의 위험이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절차입니다. 또한 생검 결과 중 아마 60%는 음성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프로스트 박사의 말이다. 프로스트 박사는 미국에서 연간 3000만 건의 PSA 검사가 실시되며, 결과 중 25%의 사례에서 PSA 수치 상승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옵코헬스의 4K스코어 혈액검사는 1900달러의 비용이 든다.
23세의 데이비드 깁스 밀러는 프로스트 부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노부부는 깁스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밀러가 유명사립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는 가족이 거액의 빚을 져야했던 상황이었기에 밀러는 장학금을 받고 플로리다주립대학에 진학해 의예과 과목에 집중해 종교학을 전공했다. 뛰어난 학생이었던 밀러는 2015년 최우등으로 플로리다주립대학을 졸업했다. 4학년 때는 플로리다주에서 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학부컨퍼런스를 조직하고 주최했다. 졸업 후 밀러는 프로스트 박사가 만든 로즈장학제도와 유사한 프로그램인 프로스트스칼러즈의 지원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플로리다와 이스라엘에서 공립대학교 학생 10명과 4명을 각각 선발해 옥스포드대학에서 STEM 분야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옥스포드대학에서 밀러는 역학과 공중보건에 관심을 갖고 의료인류학을 공부했으며, 이 과정에서 박사논문을 완성했다.
“(프로스트 박사의) 장학금은 제가 훨씬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밀러는 현재 미국립 보건원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일하며 곧 명문의과대학에 지원할 계획이다.
밀러는 결국 플로리다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프로스트 부부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플로리다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모두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전직 교사로 현재 플로리다의 주립대학교시스템 운영위원으로 활동중인 패트리샤의 말이다.
“우리는 마이애미를 과학기술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마이애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프로스트 박사는 최근 자신과 아내가 마이애미대학에 1억 달러를 기부한 것이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둔 것임을 강조하며 말한다. “우리는 그 첫걸음이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가장 위의 대학, 필요하다면 대학원생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화학과 분자생물학부터 시작해 최고의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것입니다.”
▒ 마이애미를 과학기술 도시로 만드는 데 투자
프로스트 박사의 말에 따르면, 기부한 1억 달러 중 일부는 화학 및 관련분야의 기관을 만드는 데 들어갈 것이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교수들이 올 겁니다,” 프로스트 박사의 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스타트업이 생기는 데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로스트 부부는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시작한 사회공헌캠페인 ‘기빙 플레지’의 회원이지만, 소위 말하는 “돈만 기부하는 사회공헌”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사실 부부는 매사를 직접 처리하는 성향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파화가, 프랑스의 인상파화가, 그리고 플랑드르의 화가 장-밥티스트 드 사이브(Jean-Baptist de Saive)와 같은 과거의 대가가 그린 작품을 포함하는 세계최고 수준의 미술품 컬렉션을 수집할 때도 컨설턴트의 도움을 빌리는 것을 거절했다. 부부는 마이애미대학의 음악대학과 플로리다국제대학의 미술관에 기부했으며, 패트리샤는 관장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규모 리모델링 작업을 맡기 위한 건축가를 선임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새로운 과학관을 짓는 데 가능한 한 최대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이애미에 25만 평방피트 규모의 패트리샤 & 필립 프로스트 과학관을 짓기 위해 부부가 4500만 달러를 쾌척한 것을 두고 패트리샤가 말한다. 천체투영관과 여러층에 걸친 거대한 규모의 수족관을 갖춘 과학관은 상당히 지체된 끝에 올해 3월 문을 연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마이애미의 스타아일랜드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석회암을 재료로 지은 베네치아 양식의 웅장한 팔라초에 자리한 우아한 아침식사용 방에서, 패트리샤가 마메이, 용과, 파파야, 용안 등 직접 재배한 열대과일을 접대한다. 모두 프로스트 박사가 직접 가꾸는 150종 이상의 야자나무가 자라는, 광활한 정원과 온실에서 갓 수확한 것들이다. “여기 미세기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과학관은 기초과학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프로스트 박사의 말이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경험을 해보길 바랍니다. 과학관에 들어서는 순간 경이로워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과학관을 둘러보면서, 과학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