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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상회담 앞두고 주한미군 미래에 주목하는 이유는?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용인한다는 양해론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는 포기론 등 극단적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 할지라도, 동북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안전판으로서의 주한미군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택 미군기지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평택 미군 기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미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우리가 북한에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훈 국정원장이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 한마디에 국내 안보 전문가들의 시선이 온통 집중됐을 법하다. 급변하는 안보 정세의 가장 민감한 주제의 하나인 주한미군의 거취에 관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단서가 달리기는 했지만 비핵화 의지도 밝혔다. 북한 입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의 현존하는 방식이 바로 주한미군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다뤄나갈지에 궁금증이 증폭된 시점에서 서 원장의 발언이 나온 것이다.

 

서 원장은 나아가 “한미동맹이 있으면 한미 연합훈련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그런 입장에서 북한과 대화하려는 것”이라는 내부 방침을 설명했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가 어떤 식으로 풀려도 한미동맹과 미군의 한국 주둔에 변화를 주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3월 12일 국내 한 방송에 출연해 “이미 북은 주한미군 존재를 용인하고 있고,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철수 없는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이다. 그는 “북한이 친미국가가 될 수 있다”면서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주한미군 존재를 용인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서 원장과 가까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북·미 관계,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줄곧 미국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가 만든 협상 테이블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미 간 일체감에 기반해 북·미 대화라는 최근의 성과를 도출했다는 자평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리그릇 다루듯 하라”며 남북 관계의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지만 여권 내 기류는 안보 정국을 주도한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하다.

 

이처럼 여권 관계자들은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북한 비핵화 등의 과정에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일은 없으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정책 수립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전문가도 “캠프에서 안보 이슈를 총괄하던 안보상황단에서 주한미군 주둔은 상수(常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대선 캠프의 기류를 전했다. 이 전문가는 “주한미군은 더 이상 언급할 사안이 아닐 정도로 당연지사로 여겨졌다”면서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마당에 그 문제를 고심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와 함께 “북한도 주한미군이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주한미군은 차라리 중국의 문제”라고 시선을 돌렸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은 대(對)중국 봉쇄 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보수 진영이 의심하듯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에 대해 ‘딴마음’을 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한 미군 화력 격멸훈련

 

▎지난해 4월 실시된 통합 화력 격멸훈련에서 주한미군 M1전차가 화력을 뿜어내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 주한미군은 ‘상수’로 받아들여

 

주한미군의 미래를 보는 여권 인사들의 관점은 보수 진영이 갖는 근본적인 불안과는 확연히 궤를 달리한다. 북한은 공식 매체를 통해 늘 체제 위협 요소로 주한미군을 지목했다. 북한 비핵화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제시해 왔기에 이 문제가 언젠가는 수면 위로 부상하리라는 게 국내 보수 진영과 학계 상당수의 전망이다. 예컨대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을 한국에서 물러나게 한 뒤 남한 내 혼란기를 틈타 남침한다는 것과 같은 가설이 보수 진영을 짓누른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미군을 남한에서 내보내야 안심하겠다는 게 북한의 오랜 전략적 기조”라며 “이에 대한 해답이나 방향성 없이 남북대화에 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고 경고했다.

 

여권은 왜 북한 비핵화, 나아가 북·미 수교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걸까? 심지어 비핵화로 핵을 버린 북한이 주한미군을 용인한다고 보는 근거는 뭘까?

 

이는 한 가지 명확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출발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저서[김대중 자서전]에서 김 위원장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제가 대통령께 비밀 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 문제입니다.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고 [김대중 자서전]은 전한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대중 자서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그런데 왜 언론 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습니까”라고 되묻는다. 김 위원장의 대답은 이랬다. “그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김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고 [김대중 자서전]은 전한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견해를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 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변 강국들이 패권싸움을 하면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주게 되지만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 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 세력 균형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데 두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한 셈이다. 그래서 북한이 북·미 수교 후 내지는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수긍한다는 이른바 ‘양해론’의 뿌리를 형성한다.


 

용산미군기지에서 열린 행사

 

▎용산 미군 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미군과 카투사 병사. / 사진:주한미군

 

주한미군 철수가 과연 중국에 이로울까

 

심지어 주한미군은 앞서 김정일 위원장이 언급했듯이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는 견해도 있다. 과거 진보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 핵심에서 일한 전직 고위 관료는 사석에서 “국군의 전쟁 수행능력 제고의 최대 걸림돌은 미국”이라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이 났을 때 남한 정부가 북한에 본때를 보이려고 제한적 타격과 군사작전을 실행에 옮길 단계로까지 위기가 고조됐다. 그런데 이를 미국이 만류해 성사되지 못했다. 그 이전의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사건(1968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년) 때에도 국군은 물리적 응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주한미군이 가로막는 통에 주저앉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미국은 국군이 전투를 할 수 없는, 화석화된 군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군사적 충돌의 완충제 역할을 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지위에 변화가 있을 경우 동북아 관련 국가들은 군비 경쟁에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이점을 감안해서라도 주한미군의 이동은 불가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씨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국정원장 재직 시절(1998~1999년) 한국 주둔 미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종찬 전 원장은 “지금 상황에서 그 구상이 맞는지는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전제에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있을 이유가 있는가? 당시 국정원 연구에 따르면 남한은 자체 재래식 전력과 경제력만으로도 북한을 압도할 수 있었다. 남한 안보적 관점에서는 주한미군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동북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안전판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에 주목하면 그랬다. 주한미군이 빠지면 일본의 재무장은 시간문제였다. 일본의 핵무장은 식은 죽 먹기다. 이런 식으로 군비 증강이 경쟁적으로 촉발되다 보면 언젠가는 무력 충돌과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이 전 원장은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와 봉쇄의 고리로 보는 시각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은 헌법 개정과 함께 재무장을 가속화한다”면서 “군사대국 일본의 부상은 대(對)중국 봉쇄 네트워크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중국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주한미군을 자국에 대한 봉쇄의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동북아의 긴장 완화 및 현상 유지 수단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도 이런 논리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북한과 중국에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 전 원장은 강조했다.

 

이 전 원장처럼 진보 정부는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 문제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주한미군을 빼내 가려는 미국의 시도를 무마하고 그 시기를 늦추는 데 골몰했다는 흔적도 있다.

 

“참여정부는 안보를 가장 잘한 정부였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북한과 단 한 번도 군사적 충돌이 없었고, 북한에 의해 희생된 국민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북핵 문제로 인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안보상의 문제가 야기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평양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북한 진정성의 가늠자, 주한미군 문제

 

박선원 전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2012년 1월 펴낸 저서 [하드파워를 키워라]에 실린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추천사 내용이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은 2002년 초부터 주한미군 감축 협상을 김대중 정부의 국방부에 계속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의 국방 당국자들은 시간 끌기 작전으로 대응했다. 당시 국방부는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임기말에 무슨 주한미군 감축이냐”는 식으로 버텼다는 것이다. 결국 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1월 말 미국은 국방차관을 한국에 보내 “한미동맹 조정에 대해 협상을 개시하자”고 압력을 넣기에 이르렀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당일 한국을 찾은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차관보는 당시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만나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협상을 시작하자”고 통보해 와 축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박 전 비서관은 퇴임 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몸담을 당시 주한미군 재조정 작업에 참여한 라처드 롤리스 전 차관보를 만났다.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들었다고 자신의 저서에 밝혔다. “2001년 9·11사태 이후 2002년부터 미국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미군을 재배치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군의 일부는 언제든지 필요한 곳에 곧바로 동원해서 테러 분자든지. 아니면 미 국민이 어딘가에 갇힌다든지 하는 긴급상황에 특수작전을 통해서 신속하게 미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지상군으로 박혀 있는 미군들을 독일이나 일본이나 한국에서 좀 줄여야 했다.” 박 전 비서관은 한·미 간 주한미군 감축 논의 과정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결국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우리 대통령의 어떤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의 언론이나 한미 관계를 전공한 중견 학자들과 미국은 마치 그런 것처럼 몰아가며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계속 조여왔다. 미국은 전략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에 정서적이고 정치적인 측면까지 덧씌워서 주한미군 감축협상을 밀어붙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피할 수 없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과 함께 “주한미군 감축이든 뭐든 반드시 협상으로 한다. 감축하겠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니 들어보고 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박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이미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탁하고 사정해서 추가비용을 들이느니 반드시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라고 저서에 남겼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 내지 북·미 수교 협상에 반드시 연계한다고 볼 이유가 없다. 설령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요구를 해와도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입장으로 읽혀진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는 게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의 견해다. 신 교수는 “과거 북한은 주한미군을 철수해야지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면서 “만약 그 주장을 접고 주한미군을 수용한다면 북·미 간 대화는 상당한 진전을 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만약,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라는 조건을 단다면? “북한이 그런 주장을 편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불발에 그칠 수도 있다”고 신 교수는 전망했다. “한국 정부도 그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도 그런 취지에서 미군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전개되리라 본다.” 한마디로 주한미군 문제는 금기어에 해당하고, 그 기조 위에서 진행되는 비핵화 논의라야 의미를 갖는다는 전제다.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

 

▎지난해 4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


김정일 위원장의 “주한미군 인정” 발언 읽는 법

 

하지만 주한미군 문제가 비핵화 내지 북·미 수교 협상의 ‘뜨거운 감자’로 논란의 진원지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국내외에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한 직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이 (비핵화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거나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추가적인 조치를 요구할까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 내에 자리 잡은 ‘북한=주한미군 철수 요구’라는 도식이 견고함을 반영한다.

 

국내에서도 언행일치가 안 되는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기류가 보수 진영을 감싼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4월, 5월 (남북) 협상과정에서 김정은과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되는 협상은 말아야 한다”고 쐐기를 박고자 했다. 정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북핵 폐기는 폐기이고, 한반도와 동북아 세력균형은 또 다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남북한,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이해와도 맞닿은 주한미군 문제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남 교수는 “북한 핵이 약화되면 주한미군이 있을 이유도 없다”면서 “당장 북핵이 사라진 마당에 미군이 왜 주둔하느냐는 불만이 중국에서 제기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남한에 주둔하는 미군이 베이징을 표적으로 한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의 압박과 맞물리면 한미동맹도 영향을 받거나 위축될 수 있다.” 남 교수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주한미군 인정’ 발언도 함의를 잘 새겨야 한다고 권고한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양해론적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지 못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뜻도 있다고 해야 한다.”

 

최근 남북 간 특사 교환 과정에서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내건 이유는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남 교수는 풀이한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말대로 주한미군을 양해할지도 의문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아버지의 발언을 알기에 김 위원장이 절대 주한미군 문제를 먼저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구사할 카드로 남겨둘 수도 있다. 비핵화가 상당한 진전을 보고, 평양에 대사관이 개설되는 마당에 누구를 쏘려고 남한에 미군기지를 두느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도 북한의 공식 매체 어디에도 주한미군 양해론이 보도되지 않는 현실을 명백한 증거로 간주한다. 그는 “어떤 말이든 그 대화가 나오게 된 맥락과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어쩌다 한마디 툭 내놓은 발언만으로 북한 전략의 기조가 바뀌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했다. “북한의 공식 입장은 변한 게 없는데 얘기 한마디 듣고 판단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건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접근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강조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도 “김정일 위원장의 얘기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며 북한의 공식 레토릭에 무게를 뒀다. “왜냐면 그 뒤로도 주한미군 철수 입장은 그대로다. 2016년 7월 북한 정부 대변인 발표를 보면 조선반도 비핵화를 선대의 유훈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비핵화의 조건을 제시했다. 거기에도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돼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요소들로 인해 향후 남북 협상에 리스크가 많이 도사린다는 게 신 교수의 분석이다.


 

미국이 한국 버린다는 ‘포기론’의 뿌리

 


북한 내부의 흐름을 잘 아는 이들 중에도 미군의 장기 한국 주둔이 어려울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90년대 이래 50여 차례 방북한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에게 주한미군 문제는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사안으로 분류된다. 박 교수는 “북한이 언급한 한반도 비핵화가 종국엔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결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주한미군 주둔 양해 발언과 관련해 박 교수는 “주한미군 주둔의 목적에 대한 정의를 달리하면 그렇다는 뜻”이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중국의 시진핑이나 러시아의 푸틴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받아들이겠나”라고 반문했다.

 

남북한, 중국의 의향 못지않게 실제 병력을 운용하는 미국의 태도 또한 변수로 꼽힌다. 앞서 보았듯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은 주한미군 역할과 규모의 조정을 집요하게 추진해왔다. 심지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주한미군 철수론도 개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 비핵화 대가로 주한미군을 제한하는 ‘미·중의 빅딜’ 구상을 밝혔다. 그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浮上)을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새 질서 구축에 협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미·중 간 대타협을 언급했던 것이다. 북핵 문제의 경우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맞교환한다는 게 그의 논지다.

 

문재인 대선 캠프 외교안보팀에서 활동한 김기정 연세대 교수(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는 2011년 [지식의 지평] 10호에 실은 논문에서 한 세기를 건너뛴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조망했다. ‘한미 관계 130년, 연미책(聯美策) 부침(浮沈)의 역사’란 논문에서 김 교수는 양국 관계에서 오랫동안 타성으로 남은 심리적 의존성, 제도적 비대칭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130년 동안 한국인들에게 버팀목, 후원자, 혈맹 등의 이미지와 그럴수록 한국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남겼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포기해야 할 이유보다 관계를 확대·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더 많다. 그런데도 ‘포기의 공포’는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포기의 공포를 우리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금도 한국사회에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 및 비핵화가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일종의 ‘포기론’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최근 안식년에 들어간 김 교수는 이런 사회적 기류와 관련해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내 가는 등 한국을 포기하리라는 공포는 한국이 미국에 가진 심리적 의존성의 산물일 뿐 객관적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주한미군의 미래와 관련해 이처럼 한국사회에서는 ‘양해론’과 ‘포기론’ 같은 극단적 해석이 나돈다.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입장 표명이 단지 전술적 변화인지 아니면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인지는 앞으로 본격화할 협상 과정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