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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전주 한옥마을, 유서깊은 전주비비밥집 뭐가 다르지?

전라도 전주는 우리나라 대표 전통도시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한옥들을 잘 보존한 한옥마을 뿐 아니라 전라도 특유의 맛깔나는 음식들로 유명하다. 음식문화 수도를 자처하는 전주에는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등 전라도를 대표하는 전통음식들이 있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이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거리에는 오히려 길거리 음식이 넘쳐난다. 오랜 전통을 지닌 유서깊은 맛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한민국 어디에나 가도 있는 패스트 푸드로 채워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주시는 ‘음식문화의 수도 전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식도시’를 내세우며 외국 언론에 전주의 정갈한 음식을 관광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실제 전주 음식의 맛은 어떨까? 지난 4월 1일과 8일, 두 차례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한옥마을을 찾았다.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슬로푸드 마을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먹거리 투어’ ‘주전부리 투어’의 명소인 패스트푸드 마을이 됐다. / 사진:나권일
 

 

전주는 맛깔스런 음식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영국의 유력매체인 [더 가디언(The Guardian)]이 ‘음식문화의 수도 전주’라며 전주를 한국에서 음식으로 대적할 곳이 없는 미식여행지라고 소개했다. 가디언 지는 “전주는 비빔밥의 본고장이다. 서양에서 소울 푸드 가운데 하나가 아이스크림이라면, 한국의 소울 푸드는 밥을 비벼먹는 것이다. 전주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콩나물국밥은 숙취해소의 만병통치약이다”라고 보도했다.

 

전주시에 따르면, 최근 전주를 방문한 러시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관계자는 “전주음식이야 말로 한국을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에 고무된 전주시의 고위 관계자는 “CNN과 더 가디언에 이어 러시아 미디어사가 한국 대표 음식도시 소개를 위해 취재한 것은 전주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식도시로 널리 알려졌음을 의미한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에는 전주 현지의 음식이 명성에 비해 별다른 특색도 없고 값이 비싸 실망했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다. 전주는 과연 명실상부한 음식문화의 수도일까? 전주의 대표 관광지이자 먹거리타운인 한옥마을을 현장에 가서 직접 맛을 보고 경험해 보기로 했다.

 

4월 1일, 버스를 타고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나들이 철인 4~5월이면 한옥마을은 한복을 빌려 입고 몰려다니는 청춘 남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최근에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각광받으면서 평일이나 휴일을 가리지 않고 거리 곳곳이 시장통처럼 북적거린다.

 

전주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옥마을을 방문했다. 메인 스트리트인 태조로를 따라 ‘경기전’ 에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한옥마을 먹거리 지도를 챙긴 뒤 전라북도가 발행한 도정홍보지 [얼쑤전북]를 펴들었다. 색색의 갖은 나물을 올린, 조화로운 색깔의 비빔밥을 먹고 있는 글과 사진에 눈길이 갔다. 전주에 왔으니 우선 대표음식인 전주비빔밥을 맛보기로 했다.

 


 

영국의 유력매체 [더 가디언]에 소개된 한옥마을과 전주비빔밥

 

▎영국의 유력매체 [더 가디언]에 소개된 한옥마을과 전주비빔밥. / 사진:전주시청

 

육회비빔밥 한 그릇에 1만3000원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유명 비빔밥집을 찾았다. 지상파 방송에도 소개된 한옥집 형태의 대형 식당 앞엔 벌써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메뉴판에 소개된 전주비빔밥은 1만원, 육회비빔밥은 1만2000원이었다. 구미가 당겼지만 길게 늘어선 줄이 여간해선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집을 찾기로 했다. ‘경기전’ 돌담길을 따라가다 또 다른 대형 식당이 눈에 띄었다. 1970년부터 운영해온 전통식당이라는 점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식당에 들어가 전주육회비빔밥을 주문하자 육회와 버섯, 당근, 호박, 김이 올려진 비빔밥이 놋그릇에 담겨 나왔다. 육회도 접시에 별도로 내놓았다. 육회비빔밥 1인분에 1만3000원. 젓가락으로 비벼서 한 수저 가득 비빔밥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있었지만 ‘전주음식은 이런 맛이구나’ 하는, 인상에 남을 만한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못 했다. 대형식당이라 그런지 주방 내부를 CCTV로 공개하는 등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외국 언론에 나온 것처럼 ‘소울 푸드’라고 느낄 만한 특별한 매력을 찾기는 어려웠다. 맛에 비해 비싸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한옥마을 건너편 공원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앉아 계셨다. 싸고 맛있는 비빔밥집이 있는지 물었더니 D식당을 소개했다. 한옥마을을 마주보고 있는 팔달로 도로변에 있었다. 한우고기전문점 간판을 단 그 식당의 전주비빔밥과 육회비빔밥은 1인분에 8000원이었다. 한옥마을에서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지역인데, 앞서 식당과 값이 5000원이나 차이가 났다. D식당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니 8000원짜리 비빔밥집이 또 있었다. 하지만 전주시의 관광 안내자료나 전단지에는 값싸고 맛있는 전주비빔밥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앞서 비빔밥집을 알려준 토박이 몇 분을 다시 찾았다. 그분들은 “지금 전주비빔밥은 옛날 맛은 아니다”고 했다. “전주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올 때나 유명식당으로 비빔밥 사먹으러 가지 식당에서 잘 사먹지 않는다”고 했다. 전주비빔밥은 집집마다 식재료도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전통적인 전주비빔밥은 밥에 뜸을 들일 때 콩나물을 넣어 익힌 후 여러 가지 나물류와 황포묵, 쇠고기 육회, 달걀노른자, 찹쌀고추장, 참기름 등을 넣어 비벼먹는 음식으로 소개돼 있다. 음식 전문가들 중에는 맹물이 아니라 사골을 우린 물로 밥을 짓는 게 전주비빔밥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했다. 비빔밥은 풍성한 밑반찬이 필요하지도 않단다. 비빔밥에 이미 간이 다 돼 있는데, 나온 반찬 많이 먹어봐야 나트륨만 더 섭취하게 되고 배만 더 나올 뿐이라고 했다. 전주비빔밥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다.

 

한옥마을 안에는 전주시에서 운영하는 한옥마을 지원과가 있다. 한옥마을 식당의 비빔값 값이 왜 비싼지에 대해 물었다. 답변을 요약하면 이랬다. “첫째, 비싼 만큼 그래도 반찬 한 가지라도 뭔가 달라도 다른 것이 있다. 둘째, 전국 어디를 가나 관광지는 비싸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셋째, 우리도 비싸다는 말을 자주 듣긴 하지만 우리가 비빔밥에 대해 공시가격을 정해 강제할 수도 없으니 이해해 달라.” 한마디로 전주시가 비싼 비빔밥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다른 음식들은 어떠할까? 한옥마을 홍보 자료에는 “전주 음식은 김치, 장류를 발효시켜 정교한 질감과 맛의 세계로 인도하는 ‘슬로푸드’ 요리법으로 유명하다. 비빔밥, 전주초코파이 등 한국적인 특색이 살아있는 간식거리를 비롯해, 떡갈비, 모주, 전주비빔밥 등 전주의 유명한 음식을 모두 한옥마을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전주한옥마을은 슬로푸드마을이라기 보다는 젊은이들의 ‘먹거리 투어’ ‘주전부리 투어’의 명소인 패스트푸드 마을이다.

 

한옥마을을 다녀온 이들이 올린 SNS에는 한옥마을 일대의 베스트음식으로 전주백반이나 비빔밥, 콩나물국밥보다 수제 초코파이, 전동호떡, 교동떡갈비, 수제만두집 다우랑, 길거리야, 교동고로케, 베테랑분식, 조점례피순대 등을 꼽는 내용들이 많았다. 어떤 게 전주만의 특색있는 음식일까? 전주시 관계자는 “수제 초코파이, 콩나물국밥, 비빔밥은 전주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두집이나 고로케, 꼬치집은 전주만의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유사품이다”고 말했다.

 

한옥마을 일대 상가를 직접 둘러보기로 했다. 문꼬치(문어꼬치), 수제만두, 바게트버거, 화덕호떡, 치즈구이, 완자꼬치, 비빔밥와플, 비빔밥빙수, 꽈배기, 인절미아이스볼, 지팡이아이스크림 등 이름도 가지가지였다. 전국 어느 도시에서건 자주 볼 수 있는, 원산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닭꼬치를 파는 가게도 많았다. 닭꼬치 1개에 4000원이나 했다.

 

길거리 음식에 취하다 보면 전주의 고유한 멋과 맛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문화시설을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차분하게 전주의 음식문화를 느낄 만한 여유를 찾기도 어렵다. 젊은 커플들이 꼬치나 아이스크림, 호떡을 손에 들고 한옥마을 메인 도로인 태조로를 수시로 무리지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은 고즈넉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집들이 즐비하다. 한옥과 한옥이 만들어내는 조붓한 골목길을 느긋이 걸을 수 있다”는 홍보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음식 역시 전통음식과 슬로푸드 천국이 아니라 길거리음식과 간식거리 천국인 듯 보였다. 전주 토박이들도 한옥마을의 이런 모습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와 만난 전주의 한 언론인은 “전주시는 2012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식창의도시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그런데 닭꼬치가 과연 음식 창의인가? 재료가 중국산인지 브라질산인지 국적도 알 수 없는 닭꼬치가 어떻게 전주 음식인가?”라며 꼬집었다.

 

전주 전통음식과 아무 상관없는 길거리음식과 꼬치집들이 왜 이렇게 우후죽순 생겨났을까? 이에 대해 전주시 한옥마을 지원과는 “5년 전에도 꼬치집과의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일제 단속과 정비를 했지만 이미 영업허가를 취득한 업소들을 폐쇄시키는 것은 행정적으로 어려워 정기적으로 단속과 계도활동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였지만 그만큼 만연한 길거리음식에 실망하고 돌아갈 방문객들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슬로푸드보다 패스트푸드가 ‘점령’

 


한옥마을 메인 도로를 벗어나면 조금 한적한 골목들이 이어진다. 잠시 아픈 다리도 쉬어갈 겸 마실 나온 한 주민과 얘기를 나누었다. 라디오로 트로트 노래를 듣고 있던 60대 중반의 노인은 “여기 식당은 어중이떠중이여. 잘 알아 보고 가야 해”라고 말했다. “외지인들이 한옥마을 땅값을 올려놓아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고 했다. 가장 번화한 태조로의 목 좋은 곳은 땅값이 평당 3000만원을 호가한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음식 값을 올리고, 그러다 손님 방문이 줄어 매출이 떨어지면 음식의 질과 서비스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듯했다.

 

기자가 점심을 먹었던 전통 비빔밥집의 음식 맛을 거론하자 사정을 잘 안다는 듯이 “그 식당은 1년 전에 주인이 세를 주고 서울로 떠났다. 한달 월세만 2000만원이라고 들었다. 비싼 월세 내려면 음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가까운 유서 깊은 전주비빔밥집이 왜 특징 없는 비빔밥집이 돼버렸지 의문이 풀렸다. 그는 먹을 만한 전주비빔밥집으로 유서 깊은 가족회관, 한일관 등을 알려주었다. 모두 한옥마을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들이었다. 한그릇에 1만2000원으로 비싸긴 하지만 먹어 보면 맛있고 이름값을 하는 유명식당이라고 했다.

 

한옥마을에 입주한 상점과 식당 운영자들 중에는 외지인들이 많고 실제 전주 토박이는 30%도 채 되지 않는다. 특히 메인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의 상가나 식당들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속만 끓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직접 상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상인 A 씨는 “한옥마을도 장사가 되는 데는 되고 안 되는 데는 안 되는 등 편차가 심하다”고 했다. B 씨는 “임대료가 세서 남는 게 없다. 식당에서 음식값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전주시에서 값을 못 올리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차인보다 땅과 점포를 소유한 사람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피해는 소비자인 관광객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가 임차인 중에는 소수이지만 대박이 난 점포도 있다. D 식당이 대표적이다. 만두, 물만두, 군만두 등 5000원대의 각종 만두 종류와 6000원짜리 미니볶음밥을 파는 작은 식당인데, 늘 사람들이 줄을 선다. 원래는 도로 모퉁이 점포에 세 들어 온 작은 식당이었는데, 장사가 잘돼서 세입자가 한옥마을 인근에 건물도 신축하는 등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전주의 또 다른 대표음식인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해 한옥마을 건너편 전주남부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의 원조 격인 현대옥 본점이 남부시장에서 아직도 장사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에 기자가 자주 찾았던 그 집은 주인아주머니가 도마에 대파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를 탕탕 썰어 콩나물국밥에 넣어 육수에 토렴해 말아주는 새벽식당으로 유명했다. 좁은 식탁에 앉아 국밥을 먹다 보면 잘게 다진 대파의 파편들이 옷에 튀기도 했다. 잘게 썬 고추에다 대파 다진 매운 냄새가 코에 훅 끼치면 자신도 모르게 재채기가 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원하고 깊은 그 국물 맛은 속풀이 해장국으로는 일품이었다. 물어 물어서 현대옥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하는 전통을 이어오느라 문을 닫은 뒤였다.

 

전주 콩나물국밥집 현대옥 본점


▎전주 콩나물국밥집 현대옥 본점.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바뀌었지만 젊은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추억의 남부시장 콩나물국밥도 맛에도 ‘아쉬움’

 

꿩대신 닭이라고 남부시장 상인이 추천한 인근의 K콩나물국밥집을 찾았다. 삼번집, 현대옥, 왱이집 등이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의 원조다. 남부시장식은 멸치, 다시마, 무, 대파, 양파를 끓여 육수를 만들어내는데, 뚝배기에 밥과 삶은 콩나물을 넣은 뒤 미리 끓여놓은 육수를 붓고 여러 번 토렴해서 말아내 손님상에 낸다. 뚝배기의 콩나물국밥과 함께 별도로 밥그릇에 계란을 넣어 준다. 구운 김을 잘게 부셔 넣고 휘휘 저어 국밥보다 달걀부터 먹는 게 순서다. 기자가 주문한 콩나물국밥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잘게 썰어놓은 풋고추와, 김, 결대로 찢은 장조림, 계란 등 남부시장식 기본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전주콩나물국밥 특유의 시원하고 깊은 맛은 아니었다. 값은 7000원이었다. 맛에 비해 비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1주일 뒤인 4월 8일, 다시 한옥마을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남부시장 현대옥 본점부터 찾았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한 사람이 경우 지나갈 만한 좁고 낡은 골목에 한 줄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주로 젊은 남녀와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전주 현지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현대옥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보였다. 자세히 보니 구 현대옥 점포의 왼쪽 옆을 터서 양쪽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네 명의 주방 아주머니들이 오래되고 좁은 식당 안에서 뚝배기에 육수를 붓거나 대파를 잘게 다지며 척척 분업화를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좌석 회전율도 빨랐다.

 

벽면을 보니 1979년부터 현대옥을 지키던 옛날 주인은 없고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런 글이 있었다.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에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이라는 새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내고 ‘콩나물국밥으로는 최고’라는 명성을 일구신 1세대 현대옥의 양옥련 여사께서는 맛의 비법과 추억을 남기시고 2008년 12월 은퇴하셨습니다. 저희 2세대 현대옥은 호텔출신 조리전문가를 영입하여 현대옥의 맛비법을 아주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전수받았습니다. 좋은 재료, 정확한 레시피, 그리고 맛을 개선하여 현대옥 전성기 때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기자가 맛본 현대옥의 콩나물국밥 맛은 전성기 때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주방에서 컨베어벨트처럼 척척 돌아가며 내오는 국밥에는 옛날처럼 정성으로 말아주던 그 시절의 옛 맛이 없었다. 전주의 몇몇 미식가들 중에는 남부시장식 전주콩나물국밥이 전국으로 퍼져 국민음식이 되면서 맛이 획일화됐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기자처럼 10년, 20년 전에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을 즐겨 먹었다는 K씨는 “그때와는 맛이 다르다. 값도 비싸졌다”고 말했다. 재료비와 육수 내는 비용 등을 감안해 그가 생각하는 전주콩나물국밥의 적정 가격은 5000원이었다. 남부시장 현대옥 본점은 현재 6000원을 받지만 한옥마을 등 전주와 전국 각지의 프랜차이즈 현대옥은 7000원을 받는다.

 

전주 토박이들 중에는 남부시장 대신 담백한 맛을 찾아 삼백집 콩나물국밥을 즐겨 찾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삼백집은 전주 시내에 있다. 뚝배기에 육수를 부어 펄펄 끓인 뒤 손님 상에 내기 직전에 국밥 안에 달걀을 얻어주는데, 달걀을 그대로 두고 먹으면 담백한 국물 맛도 맛볼 수 있고 달걀을 휘휘 저으면 걸쭉한 맛이 난다고 했다. 전주를 대표하는 콩나물국밥도 이처럼 사전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행정 당국의 음식정보나 자료만 믿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속풀이에 좋다. / 사진:나권일


 

시는 한옥마을 음식문화부터 정비해야

 

한옥마을을 떠나오는 길에 전주에 사는 한 언론인과 해후했다. 전주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전주비빔밥이 뭐 따로 있나. 시장에서 몇 가지 나물을 사서 순창고추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 몇 방울 넣고 쓱쓱 비벼먹으면 그게 비빔밥”이라고 했다. 근래 자주 먹는 전주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대뜸 “물갈비를 먹어봤느냐?”고 했다. 그가 말하는 물갈비는 돼지갈비 전골로 유명한 ‘남로갈비’라고 했다. 전주 남노송동의 음식솜씨 좋은 할머니가 개발한 요리인데, 돼지갈비를 구워먹는 게 아니라 전골 요리로 끓여먹는 것이다. 1인분에 8000원 하던 게 최근에 1만원으로 올랐지만 그래도 가성비가 좋아 전주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유명 물갈비집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니 전주 토박이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젊은 커플과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전주에서는 이처럼 현지 토박이의 안내를 받거나 발품을 팔아 먹거리 정보를 얻어야 전주의 별미 요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음식문화의 수도’라는 홍보자료만 믿고 방문했다가는 적잖이 실망할 수 있다.

 

전주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방문인구가 33%나 된다. 주로 30~50대들이 청소년기의 자녀들과 많이 찾는다. 하지만 이들 중 재방문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전주시가 이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면 한옥마을의 전성기가 지금처럼 유지되기는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음식문화수도’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내실 있는 음식정책과 음식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길거리음식의 메카, 전통음식이 아닌 간식거리 천국으로 변해 버린 한옥마을의 음식문화부터 제대로 정비하고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한옥마을 음식에 실망해 전주의 중요한 음식자원들을 맛볼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면 전주의 중대한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