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코노미스트

국내 바이오·제약 업체 주가가 떨어진 이유

금융감독원이 재무제표 감리를 통해 바이오·제약 업체가 R&D 비용을 적절하게 회계 처리했는지 집중 점검했다. 금감원이 바이오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감리한 결과 분식회계 의혹이 일면서 주가가 급격히 떨어졌다. R&D 비용을 무형자산화해 실적으로 처리하는 경우, 투자자들을 현혹시킬 여지가 있으므로 금감원에서는 지나친 과열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무형자산화 비중이 높다 하더라도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은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바이오 제약 기업의 R&D 비용 자산화 현황 표

 

성장성을 높이 평가받으며 기세 좋게 오르던 국내 바이오·제약 업체의 주가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건 지난 4월 13일부터다. 금융감독원이 전날 ‘2018 회계감리업무 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190개 기업을 대상으로 재무제표 감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직후다. 회계감리는 기업의 재무제표와 그에 대한 회계법인의 외부감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금융당국이 검사하는 업무다.

 

금감원은 앞서 올 초부터 대략적으로 예고했듯 특히 바이오·제약 업종에서 10여 곳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 비용을 적절하게 회계 처리했는지 집중 점검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감리 대상 기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 업종 전반의 ‘회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되면서 주가에도 반영이 됐다.

 

5월 1일,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금감원이 바이오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대상으로 감리를 진행한 결과 분식회계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당국의 예고대로 바이오·제약 업계에 날카로운 칼끝을 겨냥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직전까지 반신반의하던 투자심리도 이를 계기로 급격히 얼어붙었다.

 

4월 초 한때 60만원 고지에 올랐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현재 40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3월 한때 40만원에 근접했던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 주가는 5월 25일인 지금은 27만원대다. 4월 11일 장중 57만원대를 찍었던 제약 업계 대장주 한미약품도 현재 주가가 49만원대다. 다른 바이오·제약 기업 주가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R&D비용을 자산화하지 않은 바이오 제약 기업

 


“지나친 자산화, 실적 부풀리기로 투자자 현혹”

 

그간 바이오·제약 업계는 R&D 비용을 판매관리비로 보는 대신 개발비로 ‘무형자산화’하고 자의적으로 실적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향은 과거보다 심화돼 2014년 8578억원이었던 코스닥 상장 바이오·제약사의 R&D 비용 자산화 규모가 2016년엔 1조2147억원에 달했다. 무형자산은 설비·건물·현금과 같은 유형의 자산처럼 물리적 실체가 없더라도 식별이 가능한 자산이다.

 

저작권이나 특허권 등이 대표적이다. 회계 관점에서 기업은 이처럼 미래에 경제적 이익이 유입될 수 있고, 취득을 위해 필요한 원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다. 다만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선 식별과 통제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인식의 기준으로 추가 제시하고 있다. 다른 자산과 분리해서 거래할 수 있거나 계약상 또는 법적 권리로부터 발생해야 하며, 미래 경제적 이익을 기업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일부 바이오·제약 기업이 R&D 비용을 지나치게 많이 무형자산으로 회계 처리하고 있는 데 문제를 제기한다. 기업 가치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져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고, 잘못된 투자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들이 임상 시험에 들어가기도 전에 R&D 비용을 자산화, 실적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적잖은데 그 R&D가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결국은 비용(손실)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순익 감소로 이어져 투자자 피해 가능성이 커진다. 예컨대 한미약품은 과거 7~8년 누적 R&D 비용을 자산으로 인식했지만, 2016년 다국적 제약사와의 기술 수출 계약 해지 이후 R&D 비용으로 책정했던 455억원을 손실 처리하면서 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이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금감원으로선 바이오·제약주 투자에 대한 최근의 과열 현상에 일종의 경고장을 던진 셈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가총액 1조원 이상 바이오·제약 기업의 R&D 비용 무형자산 처리 비중은 평균 27.7%였다. 2016년 기준 전체 상장사 152곳의 55%인 83곳이 R&D 비용을 자산화했다. 안정적인 ‘캐시 카우(성장성이 작더라도 확실히 수익을 내는 사업)’가 있는 제약 기업보다는 성장성에 기대야 하는, 역사가 짧은 바이오 기업들의 자산화가 특히 많았다.

 

코미팜(97%)·오스코텍(90%)·바이로메드(88%)·랩지노믹스(82%) 같은 바이오 기업은 지난해 R&D 비용의 자산 처리 비중이 80% 이상이었다. 셀트리온(74%)·씨젠(73%)·차바이오텍(71%) 역시 같은 기간 70% 이상의 R&D 비용을 자산 처리했다. 만약 이들 기업 중 일부가 감리 후(자산화 비중이 작은 기업보다 감리 대상에 선정됐을 확률이 높음) 금감원이 구축한 회계 기준을 따른다면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관련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최소 10년 후를 내다보고 투자한다는 업종 특성상 당장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복제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R&D 비용의 자산화는 성장을 위한 개발에 그만큼 적극적이란 증거”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R&D 비용의 자산화는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해 기업 입장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업종 특성상 R&D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경제적 이익을 미리 가늠해보는 노력이 중요하며, 무형자산화로 실적이 좋게 인식되면 투자가 몰리면서 그 자금이 다시 R&D 비용으로 투입되고 개발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이들은 또 당장에 많은 이익을 못 내는 중소 규모 기업일수록 R&D 비용부터 줄이고, 이에 업계 전반의 성장성이 떨어지는 악순환만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금감원은 이런 측면을 이해한다면서도 엄격한 감리 진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사들의 경우 신약 등 개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대부분 정부 판매 승인 시점 이후의 지출만 자산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만 이와 다른 기존을 적용할 순 없으며, 자산화 비중이 크다면 왜 그렇게 회계 처리했는지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서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체방크 등 일부 외국계 투자 보고서는 최근의 국내 바이오·제약주 급등세가 해외에서와는 달리 왜곡돼 제공되는 재무 정보로 심화됐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유나이티드제약·한독·휴온스 등 자산화 비중 0%

 

한편 투자자 입장에선 감리 대상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큰 종목에 우선 눈길이 간다. 불확실성이 크지 않아서다. R&D 비용 전체를 판관비 처리하면서 자산화 비중이 지난해 0%였던 휴온스·영진약품·에스티팜·동국제약·한독·광동제약·신풍제약·유나이티드제약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기간 자산화 비중이 10% 이하였던 코오롱생명과학·한올바이오파마·녹십자셀·JW중외제약·셀트리온제약 등도 감리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조금 더 다각도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R&D 자산화 비중이 큰 상장사엔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펀더멘털이 우수한 종목 주가는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어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달미 SK증권 연구원은 “무형자산화 비중이 큰 기업에 꼭 문제가 있다고 볼 순 없다. 문제는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이라며 “바이오시밀러나 보톡스처럼 일반 신약보다 개발 성공 가능성이 큰 분야에 집중하는 기업들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 이창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