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에 있는 BMW그룹 본사 전경. BMW그룹의 직원은 13만여 명에 이른다. / 사진:BMW 제공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는? BMW 5시리즈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전년 대비 23% 많은 5만9624대를 판매하며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한국 시장에서 BMW 5시리즈 판매량은 약 2만4000대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특히 BMW 520모델은 가장 많이 팔려 2년 연속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BMW그룹도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BMW, MINI, 롤스로이스, BMW 모토라드 등 총 4개 브랜드를 구축한 BMW그룹의 지난해 판매량은 자동차 246만3500대, 바이크 16만4000대로 역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986억700만 유로(약 120조원)에 달했다.
성장을 거듭하면서 직원 수만 13만여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발돋움한 BMW그룹은 현재 14개국에 30개 생산 네트워크를 운영 중이고, 140개국에 영업망이 뻗쳐 있다.
5월 중순 김효준 BMW 코리아 회장은 BMW그룹에는 특별한 경영 원칙이 있다고 했다. 이 원칙은 BMW 성공의 원동력으로 기술력과 꾸준한 성장, 아낌없는 투자와 인재 육성 등 네 가지다.
김 회장은 이 원칙의 신봉자에 가깝다. 덕분에 그는 BMW 제품을 17년간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게 됐다. 그는 본사 신임을 얻어 외국인이자 현지인으로는 최초이자 최연소로 해외 법인장에 발탁됐고, 2013년엔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본사 수석부사장에 올랐다. 올해 주한 독일 상공회의소 한국 회장을 맡아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 회장을 만나 BMW그룹의 네 가지 원칙을 들어봤다.
기술력(Tech)- 세계 최고, 최초 수식어만 수백 개
“ 저는 하랄드 크루거 BMW그룹 회장의 지속적인 기술 우선 원칙을 존중합니다.”
본사의 기술우선 정책에 대해 운을 뗀 김효준 회장은 “현재 자동차 산업은 전례 없는 기술 변화와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개발의 명확한 전략(NUMBER ONE]NEX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MW그룹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 덕이다. 지난해 BMW 뉴 5시리즈는 명성을 다시 한번 다졌다. 영국의 자동차 전문 매거진 ‘왓카’, ‘오토카’에서 ‘올해의 자동차’, 독일 ‘아우토 자이퉁’이 뽑은 ‘월드베스트카’에서 최고 평가를 받았고, SUV 전문지 ‘아우토 빌트 알라드’가 꼽은 ‘올해의 4륜구동 자동차’상 등을 수상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Auto Bild)’와 ‘슈바케(Schwacke)’가 공동 주관한 ‘2017 잔존가치 챔피언(2017 Value Champion)’ 프리미엄 카 부문 1위로 선정돼 장기적인 품질 유지성까지 인정받았다.
BMW i8는 ‘베스트 하이브리드 카 부문 ‘그린 모빌리티 트로피’를 수상해 친환경 브랜드임을 증명했다. 세계적인 미디어와 권위있는 기관으로부터 상품성, 디자인, 기술력, 지속 가능성 등 분야에서 수십 개 상을 휩쓴 건 BMW가 왜 독일 기술력의 DNA로 대표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BMW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모두 응집한 모델로 꼽히는 BMW 7시리즈도 좋은 예로 꼽았다. 이미 1977년 출시한 첫 모델부터 경쟁 모델을 압도했던 이 제품은 세계 최초 전자식 속도계와 속도 감지형 파워스티어링, 전자식 조절 아웃사이드 미러 등을 적용했다. 현재 BMW 모델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원형의 트윈 헤드램프, 키드니 그릴, 전면으로 솟아오른 후드 등 전면부 디자인은 이때 만들어졌다.
축적된 기술 노하우는 미래 자동차 개발에도 적용됐다. 수소전기차 모델의 경우 현재 최소 연 14만 대 판매를 목표로 전 세계에서 10개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다. 2019년엔 영국 옥스퍼드 공장에서 MINI, 2025년 BMW i4를 포함한 전기자동차 25종을 출시한다. 특히 순수전기차 i4는 한 번 충전으로 700㎞를 주행할 것으로 예상돼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고 뛰어난 기술력에 늘 찬사만 쏟아진 건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BMW 차량 일부 부품에 기인한 차량 화재 등의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원가절감으로 인한 부품 부실이 아니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김 회장은 “사고 원인은 외부에서 장착한 추가적인 전기구조물 등 요인이 다양하다”며 “옵션 및 부품 원가절감이 차량 화재와 사고로 바로 이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무엇보다 원가절감의 핵심은 품질 유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엔진과 동력계통, 전장장치 등 주요하게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은 상품성을 우선한다는 뜻이다. 김 회장은 일부 차량의 불량을 피해 갈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자동차는 약 2만5000개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기술이 더해질 때마다 부품 개수가 증가해 물리적으로 불량률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는 내구성 테스트다. 2009년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레이싱 트랙으로 유명한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북부 서킷에서 최첨단 자동 주행을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미국 라구나 세카, 네덜란드 잔드보르트, 스페인 발렌시아, 독일 호켄하임링과 라우시츠링 등 전 세계 레이스 트랙을 달렸다. 2011년 뮌헨에서 뉘른베르크까지 주행을 마친 테스트 차량은 운전자 제어 없이도 제동, 가속, 추월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BMW 전문가들이 테스트한 구간만 2만㎞가 넘고, 레이더, 초음파, 사방 카메라 등 최첨단 센서 시스템들이 동원됐다. 경쟁자들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진 끊임없이 기술적 진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집념이 깔려 있다.
▎김효준 BMW 그룹 코리아 회장은 “위기에서도 기다릴 줄 아는 기업문화”를 강점으로 꼽았다. / 사진:인성욱 객원기자
진화(Evolution)-항공엔진에서 미래전장까지
“위기는 어차피 반복되고 진화는 이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성장하려면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야 하지요.” BMW 제품이 견고하고 스포티한 주행력으로 시리즈마다 호평을 받은 이유를 묻자 김 회장은 “꾸준히 역량을 집중해온 기업문화”라고 꼽았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BMW는 처음부터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다. 원래 항공기 엔진 업체였다.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기에 쓰이며 부동의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패전 이후 군수품이란 이유로 생산이 금지됐다. BMW는 지금의 상호명으로 바꿔 모터사이클로 재기했고, 1928년엔 자동차 산업에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BMW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건 약 반세기가 지난 1966년이 되어서였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만장일치로 갈채를 보낸 1600-2를 출시하면서였습니다. 1970년 17억 달러에 불과했던 전 세계 판매 수익이 40억 달러로 껑충 뛴 것도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였죠.” 김 회장은 위기에서도 기다릴 줄 아는 역사적 경험이 BMW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도 예외 없이 고비를 맞았다. 김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유수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무섭게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BMW 그룹도 한국 철수를 고민했다. 김 회장은 BMW 본사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내용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한국 시장에) 자신 없으면 지금 철수하라. 하지만 다시 진출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사업을 지속한다면 고객 신뢰감은 엄청날 것이다.” 투자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본사 결정에 해외 지사에서 반기를 든 경우는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본사는 한국 시장 철수 계획을 철회했다. 오히려 BMW코리아에 2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BMW코리아는 이 자금으로 부지런히 딜러들을 지원했다. 덕분에 수많은 딜러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협업은 BMW그룹의 성장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MINI를, 1998년엔 ‘영국 왕실 차’로 불리는 명차 롤스로이스를 인수하며 전혀 다른 영국의 조직문화를 하나로 융합해나간 것도 결국은 호재 경영으로 작용했다. 김 회장은 “기술 유출을 우려한 폐쇄적인 문화는 기업 혁신의 동력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며 협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최근 연결성(커넥티비티)이 화두인 무인자동차 기술에서 기술협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BMW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아우디, 다임러, 에릭슨, 화웨이, 인텔, 퀄컴과 손잡고 5G Automotive Association(5GAA)을 설립한 것도 반자율주행시스템을 이미 장착한 BMW 5시리즈의 현 시점(레벨 2)에서 레벨 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차량 부품 공급업체인 콘티넨탈과는 2013년부터 자율 주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BMW그룹은 i 시리즈를 통해 미래 이동성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다. / 사진:BMW 제공
자본(Capital) -전기차 연구에만 10조원 투자
“올해 전기차 분야에만 70억 유로(약 9조2000억원)를 쏟아부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죠. 지난해 61억800만 유로(약 7조7000억원)에 비해 1조5000억이나 더 투자한 것입니다.” BMW그룹은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자체 연구혁신센터(FIZ)를 30여 년 전부터 운영해온 BMW그룹은 뮌헨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시설을 통합했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연구진 등 9000명이 넘는 전문가를 한데 모아 연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아무리 좋은 신기술도 체험해봐야 진가를 아는 법이다. 고객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BMW그룹은 최근 뮌헨 인근에 약 2만3000평 평방미터(㎡)(약 7000평) 규모의 자율주행 캠퍼스를 오픈했다. 소프트웨어 개발부터 주행 테스트까지 완전 자율주행차 기능까지 집중시킨 통합 연구개발 센터다.
2021년 공개될 최초의 자율주행 모델 ‘i넥스트(iNext)’의 거점이 될 예정으로 ACES 전략(자율주행, 연결성, 전기화, 차량공유)을 선점하기 위한 BMW그룹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엔 더 과감하게 투자했다. 약 1만3200㎡(4000평) 대지에 복합시설로 올해 문을 연 바바리안모터스 송도 콤플렉스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총 500억원이 투입됐다. BMW 본사의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선 2014년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에만 770억원, 2017년 BMW 안성 부품 물류센터에 1300억원 등을 투자했다.
“병무청과 협의해 직업 교육생들의 군복무 기간을 동일하게 맞추도록 했습니다. 신입사원으로 채용 전 교육 이수에 무리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본 투자는 반드시 노동력을 수반한다. 김 회장은 최근 국내에 도입한 독일식 진로 교육 시스템 적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아우스빌둥(Ausbildung)은 일과 학습을 융합한 독일의 이원 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수료한 교육생들은 대부분 정식 채용돼 사회에 조기 정착이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차 정비뿐 아니라 제빵, 치기공, 경찰, 은행 등 350여 개가 넘는 직업에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현재 세계 30여 개국에서 채택했다. “한국은 우수한 학력과 스펙에도 대부분 신입직원이 입사 후 바로 업무에 투입되지 않아 직무교육을 받은 뒤 이직 등 장기적인 고용이 어려운 실정이었다”는 게 김 회장이 밝힌 아우스빌둥 국내 도입 취지다.
인재 양성(Human)- “850명 교육 후 채용”
한국에서 인재 양성에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건 BMW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다. 자동차 정비 분야에 먼저 기회가 열려서다. 주관처인 한독상공회의소는 수료생들의 교육 이수와 인증을 위해 독일 현지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BMW코리아는 앞서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을 실천해왔다. 2004년부터 자동차 전문 인력을 위주로 산학 협력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해 지난해 850여 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BMW 본사도 지속적으로 신규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약 4% 확대 채용한 신규 인력은 차량 전기화와 자율주행, 국제 생산 네트워크부터 자동차, 모터사이클 및 금융, 모빌리티 서비스 부문까지 아울렀다. 그해 수습 인력 훈련 프로그램에만 3억5000만 유로를 투자했고, 총 4750명의 견습생이 BMW그룹에서 직업훈련을 이수했다. 지금까지 약 13만 명 규모의 인력을 창출한 BMW그룹이 탄탄한 자본력으로 고용의 모범적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BMW식 경영철학을 다시금 이니셜로 풀어냈다. “브랜드(Brand)의 B, 사람(Man)의 M, 일(Work)의 W 세 가지 축이 BMW 100년 역사를 유지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축을 지탱하는 토양에는 앞서 본 네 가지 요소가 담겨 있죠. 남보다 앞서는 기술력(Tech), 위기를 뛰어넘는 진화(Evolution), 적재적소를 노린 과감한 투자(Capital), BMW의 철학을 이어갈 인재 양성(Human)까지. TECH를 아우른 BMW는 또 다른 100년 역사를 꾸려갈 겁니다.”
ⓒ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