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 기술은 제조업의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3D 프린팅 기술이 2010년대 초반부터 왜 이리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까요? 그 이유를 기사를 통해 알아보세요. 3D 프린팅 기술의 현상황과 그 한계점도 함께 알려드립니다.
2016년 후반 글로벌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은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에 스웨덴의 아캄 AB와 독일의 콘셉트 레이저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두 기업 모두 3D 프린터를 이용해 메탈, 즉 금속 부품을 만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GE의 포트폴리오와 전혀 상관없는 3D 프린팅 기업을 1조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 인수한 이유가 뭘까.GE가 인수한 이유를 알려면 1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비행기 엔진을 개발하는 CFM이라는 기업이 있다. GE가 프랑스 엔진 기업 사프란 에어크래프트 엔진(과거 스넥마)과 함께 설립한 조인트 벤처다. 이곳에서 비행기 연료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엔진 개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연료 노즐이었다. 너무나도 복잡한 부품과 공정 탓에 만드는 데 계속 실패했다. CFM은 3D 프린팅 업체 모리스 테크놀로지에 도움을 요청했다. 비밀 단서 조항을 달고 이곳에 설계도 파일을 보냈다. 며칠 후, CFM 관계자들은 보통의 엔진 연료 노즐보다 25%나 가볍고 5배나 영구적인 부품을 마주했다.
모리스에 건넨 연료 노즐은 20개 부품으로 구성됐다. 모리스 테크놀로지가 개발에 성공한 제품은 단 하나의 부품이었다. 2012년 GE항공은 모리스 테크놀로지를 인수해 비밀리에 헬리콥터 엔진 부품을 3D 프린터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18개월 만에 헬리콥터 부품의 반 이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900여 개 부품을 단 16개로 줄였다. 심지어 300개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 단 하나의 부품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2014년 CFM 팀은 GE항공 대표에게 이 성과를 보고했다. 대표는 곧바로 GE 대표와 이사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GE항공은 미국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엔진 조립 공장을 건설했다.
이곳에서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연료 노즐과 탄소섬유 복합소재로 만든 팬 블레이드를 장착한 엔진을 개발했다. LEAP라는 이름의 차세대 엔진이다. GE항공 역사상 가장 잘 팔린 엔진으로 꼽힌다. 2017년 10월까지 엔진 1만2200개를 주문 받았다. 총 1700억 달러(약 191조)에 달한다. GE는 미국 앨라배마주 오번시에 3D 프린팅으로 연료 노즐을 만드는 공장을 또 건설했다.
3D 프린팅의 효과를 본 GE가 10억 달러에 3D 프린팅 기업을 인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GE는 메탈 프린터 관련 사업을 위한 ‘GE애디티브(Additive, 적층이라는 뜻으로 3D 프린팅의 한 기법이다)’ 사업부도 설립했다.
3D 메탈 프린팅, 대세로 떠올라
GE항공이 3D 프린팅으로 항공기 엔진 부품을 만들면서 3D 프린팅 패러다임은 플라스틱에서 메탈로 바뀌었다. 그동안 3D 프린터는 제품의 프로토타입 정도만 만들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것을 깼기 때문이다. GE항공은 3D 프린팅으로 금속 부품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부품은 안전할까. 자동차나 항공기 같은 운송수단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는 안전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3D 프린터로 제작된 금속 부품의 성능이 주조와 단조의 중간 정도로 상당히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부품의 안전성도 입증된 셈이다.
3D 프린팅 시장은 이제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 부품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1위 3D 프린터 기업 스트라타시스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2월에는 메탈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데스크톱 메탈’이 구글과 BMW 등으로부터 4500만 달러(약 506억원)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2015년 10월 이후 97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도 이 분야에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D 프린팅은 제조업에 혁신을 불러오는 도구라는 평가와 기대를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2월 당시 한 연설에서 “3D 프린팅은 우리의 제조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몰락하던 미국 제조업을 3D 프린팅으로 되살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3D 프린팅 시장 규모도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경영 컨설팅 기업 Wohlers Associates는 “2016년 3D 프린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17.4% 증가한 61억 달러(약 6조8600억원)였고, 2022년까지 262억 달러(약 29조4700억원)로 고속 성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3D 프린팅 시장을 이끌어가는 나라는 미국이다. 원천기술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고, 부품 생산활동도 가장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 기관 MarketsandMarkets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3D 프린팅 시장에서 39.3%를 점유해 1위를 차지했고, 2위가 독일(9.2%), 중국(7.4%)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의 점유율은 1.8%로 3D 프린팅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11위에 그쳤다.
선진국에 비해 약 2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평가되는 3D 프린팅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한국 정부도 나섰다. 지난 2월 26일 과기정통부, 산업부, 기재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2018년 3D 프린팅 산업 진흥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D 프린팅 기술표준 선도, 3D 프린팅 전문기업 육성, 3D 프린팅 전문인력 양성 및 현장형 교육 강화 등 12개 과제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3D 메탈 프린팅 분야를 위한 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3D 프린팅 산업은 크게 하드웨어인 3D 프린터와 소재·원료, 3D 프린팅을 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나뉜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는 “현재 한국 기업이 사용하는 하드웨어와 소재, 솔루션은 대부분 수입”이라며 “국산화가 안 되어 있다는 게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3D 프린터 활성화는 특허 만료 덕분
3D 프린팅 산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3D 프린팅 기술이 최근에 나왔다’고 생각한다는 것. 일반인이 아는 것과 달리 3D 프린팅 산업은 3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정기적으로 펴내고 있는 『지식 재산정책』(2014년 9월) 책자에 3D 프린터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 카이유 국제특허사무소의 코다마 히데오 변리사가 소개됐다.
이 인터뷰에서 코다마 히데오 변리사는 “1981년에 이미 기능성 포토 폴리머 RP(Rapid Prototype, 쾌속조형) 시스템 보고서를 발표했고 일본에만 특허 출원을 했다”고 밝혔다. 즉,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처음으로 3D 프린터 상용화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다.
1986년 가구 회사에 다니던 척 헐(Chuck Hull)이 입체인쇄술이라는 이름의 특허를 출원한 것. 그해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설립했는데 3D 프린터 제조 회사인 3D시스템즈(3D Systems)다. 이 회사는 1988년 세계 최초의 3D 프린터 판매를 시작했다. 이 프린터는 ‘광경화수지 레이저 조형 방식’으로 알려진 ‘SLA(Stereo Lithography Apparatus)’ 방식이었다고 한다.
현재 대부분의 3D 프린터는 적층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FDM(Fused Depostion Modeling, 적층 모델링 방식)’이다. 쉽게 말해 필라멘트 같은 소재를 녹여서 노즐을 통해 내보내고 이를 쌓아 제품이나 부품을 만드는 것이다. 1989년 S. 스콧 크룸이 이 방식의 특허를 출원했다.
당시 3D 프린터 가격은 고가였기 때문에 사용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3D 프린터는 2009년 FDM 방식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고산 대표는 “FDM 방식의 특허가 만료된 이후 다양한 기업이 3D 프린터 제작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다양한 기업이 뛰어들면서 혁신이 시작됐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3D 프린터가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이 넘는 3D 프린터부터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대중적인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산업용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제품과 100만원 도 채 안 되는 3D 프린터로 만든 제품의 질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프린팅에 필요한 소재도 너무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프린터와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질과 완성도가 다르다. 일반인들은 초보자용 3D 프린터와 이것으로 만든 제품만 볼 수 있기 때문에 ‘3D 프린팅으로 만든 제품은 조악하다’는 오해를 한다. 3D 프린팅 산업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3D 프린터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프랑스 낭트대가 95㎡(29평) 규모의 주택을 3D 프린터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건축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3D 프린팅을 이용했다는 사례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 심지어 3D 프린팅을 이용해 사람의 장기를 만들기도 하고, 음식도 3D 프린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소재가 그만큼 다양해졌고 기술력도 좋아졌다. 다만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특히 다양한 기업이 도전하고 있는 건축에서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3D 프린터로 집이나 건물을 지으면 철근이나 틀 없이 짓게 되는데, 이러면 건물의 내구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산 대표도 “사람의 장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바이오 분야와 제조 분야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3D 프린팅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3D 프린팅으로 만드는 것이 효율성이 좋은 게 아니다”면서 “3D 프린터로 집을 만드는 것과 조립식으로 집을 짓는 것을 비교해보면 조립식 집이 더 효율적인데, 굳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3D 프린터로 집을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3D 프린팅 시장은 앞으로 기술력 싸움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2018년 3D 프린팅 산업 진흥 시행계획’에 따르면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은 3D 프린터의 기능 개선, 티타늄 등 다양한 신소재 개발, 바이오 등 차세대 핵심 분야 등의 연구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박스기사]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 “상상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게 3D 프린터의 매력”
'고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라도 ‘우주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맞다. 그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였고, 현재는 3D 프린팅 스타트업 에이팀벤처스의 창업가로 일하고 있다.
왜 3D 프린팅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됐나?
2010년 실리콘밸리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를 보고 무척 놀랐다. 나에게 쏟아진 관심과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 과정을 밟은 후 한국에 돌아와 비영리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창업가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에 3D 프린터를 갖다 놓은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기억과 함께 3D 프린팅 산업을 조사해보니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직접 도전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3명이 시작했는데 현재는 30여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40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
에이팀벤처스는 어떤 일을 하는가?
처음에는 3D 프린터 제작에 집중했다. 크리에이터블 D3라는, 초보자와 교육용 3D 프린터를 출시했다. 가격은 100만원 정도다. 성능이 좋아서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지금은 온라인 제조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프로토타입이나 간단한 제품을 만들고 싶은데 3D 프린터가 없는 곳과 3D 프린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을 연결해주는 공유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3D 프린팅과 모델링을 해주기도 한다. 온라인에 각자의 공장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일이다.
3D 프린팅이 제조업의 혁명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부품이나 제품을 만들려면 과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상상만 하면 바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값싼 프린터로 만들면) 비록 결과물이 조악할 수 있지만,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일이다. 뭔가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 3D 프린터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뭘 만들 때 찰흙이나 나무 같은 한정된 재료만 사용했다. 학생들도 이젠 플라스틱 같은 재료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3D 프린터는 제조에 대한 장벽을 없앴다.
3D 프린터의 장점은 뭔가?
무엇보다 시제품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에 뛰어든 스타트업이 시제품 하나를 만들려면 돈과 비용이 많이 든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소량의 맞춤형 제품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그리고 여러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제품은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 수 있다. 대량생산의 경우에는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게 비효율적일 수 있다. 대량생산 제품은 금형을 짜는 게 오히려 더 저렴하다. 3D 프린터가 대량생산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3D 프린팅 시대가 뭘 의미하나?
3D 프린터는 하나의 도구다. 그런데 이 장비를 이용하면서 제조에 상상력을 더하는 게 가능해졌다. 제조업의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었는데,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