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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문근영, 국민여동생에서 연기파 배우로

원조 국민여동생이었던 문근영,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에서 그녀만의 방황까지. 최근 사도로 다시한번 연기변신에 성공한 스물아홉 연기파 배우 문근영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자.


▤"나는 욕심쟁이예요"


문근영

어느덧 데뷔 17년 차다. 스물아홉의 나이, 배우로서 이미 많은 걸 이뤄낸 문근영에게 연기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천재에게는 ‘무궁무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어린 시절 압도적인 재능이 발현되고 말았기에. 때문에 ‘완성’된 것을 또 다른 차원의 완성으로 끌고 나갈 일만이 평생의 숙제로 남은 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홀로 걷는다.


배우의 숙원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 문근영은 열네 살 어린 나이에 배우로서의 모든 걸 이뤘다.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 은서(문근영 역)는 떠나는 엄마의 뒤를 쫓다가 울음을 터트린다. 열네 살 소녀가 그러하듯이 소리 내어 ‘엉엉’ 울지도 않고 오로지 눈동자에 ‘사연’(事緣)을 담은 채 눈물 한 방울만 떨궈내는 모습은 그간 아역배우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 건 이를 지켜보던 어른들이었다.


엄마를 잃어야만 했던 아이 역으로 시청자들을 울리더니 영화 <장화홍련> <어린신부> <댄서의순정> 등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국민여동생’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으로 연기의 범주를 넓히는 데 성공하면서 최연소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자력으로 ‘국민여동생’이라는 갑옷을 벗고 배우로서의 왕좌에 오르던 순간이었다.


어느덧 데뷔 17년 차다. 스물아홉의 나이, 배우로서 이미 많은 걸 이뤄내버린 문근영에게 연기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욕망에 충실할 때 후회도 없어요”

문근영 사도

영화<사도>의 한 장면. 문근영은 혜경궁 홍씨 역할을 맡았다. 그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조명하는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이 만나던 9월 2일, 서울신문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문근영을 만났다. 그녀의 실제 모습은 그간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마냥 친근한 여동생일 줄 알았는데 유난히 까만 눈동자로 공간을 두루 살피며 카페에 들어오는 모습이 낯설었다. 서늘한 예민함이 느껴졌다.


그 순간 원로배우 윤여정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예민하지 않으면 어떻게 배우를 하겠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예’자가 들어간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요. 그게 싫으면 다른 일을 하면 돼요.”


처음 만났을 때 여배우의 어떤 예민함이 느껴져서 긴장됐어요. 윤여정 씨는 ‘배우라면 예민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근영 씨도 같은 생각인가요?


“네, 배우라면 어느 정도 감정의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예민함보다는 진지한 면이 더 큰 것 같아요.”


매사 진지하다 보면 피곤하지 않을까요?


“우울한 기분에 잠식돼 있을 때가 감정적으로 좀 더 안정돼요. 타고난 성질이 그런 것 같아요. 고독한 그 상태에 빠져있는 걸 오히려 즐기는 편이죠.”


남장여자, 도예가, 시각장애인 등 언제부턴가 독특한 캐릭터를 맡는 것 같아요. 쉽게 갈 수도 있는데 모험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쉽게 가는 길이 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딱히 어렵게 왔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한때는 ‘늘 도전해요’라고 거창하게 말했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본질을 직시해보니 그냥 제 취향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송강호·전도연, 닮고 싶은 배우예요”


문근영 인터뷰

어린 시절에 데뷔해 상처도 많았다는 문근영. “여전히 사람을 믿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믿어야죠”라며 싱긋 미소짓는다.


대중이 근영 씨에게 보내는 기대감에도 부응해야 할 텐데요.


“대중의 취향을 반영해서 더 인기를 얻고…. 물론 고려해봐야 할 문제죠. 하지만 제가 연기라는 ‘직업’을 갖고 삶을 영유해가는 보통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작품을 선택할 때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기준은 뭔가요?


“그냥 꽂히면 하는 거죠.(웃음) 예전에는 어른들 말씀 잘 듣느라고 추천해주신 작품을 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자아가 좀 강해져서요.”(웃음)


그래서 최근엔 자아의 ‘명령’에 따라 미스터리 물을 선택했군요?


“네.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말하시는 거죠?(웃음) 이전까지는 대중과 나, 그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고민했다면 요즘은 확신을 가지고 원하는 걸하고 있어요. 어차피 연기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라서 제 욕망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래야 혹여 결과가 안 좋더라도 ‘내가 잘못 선택했나 보네. 근데 난 재미있었어.’ 이걸로 끝.”


배우 강수연이 지난호 인터뷰에서 “(나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 좋아”라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영화 <사도>는 어떤 확신이 들었기에 출연을 결심했나요?


“사실 송강호 선배님 때문이기도 해요. 그분이 영조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할래’ 그랬죠.(웃음)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국내 배우가 송강호, 전도연 선배님이거든요. 송 선배님은 영화 <살인의 추억> <우아한 세계> <밀양>에서도 좋았고. 아, 정말 좋아해요.”


최근 송강호 씨와는 어떤 대화를 나눴어요?


“선배님은 그냥 ‘허허허’ 그러세요.(웃음) 저만 신나서 ‘연기는 이런 거 아니에요?’, ‘이 작품은 이래서 좋았어요’ 그러면 선배님은 ‘아 그르냐?’ 하고는 다시 ‘허허허’ 하시죠.”


혜경궁 홍씨는 해석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물인데, 연기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영화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중심이에요. 혜경궁 홍씨는 크게 분석할 말한 신이나 감정들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 나름대로 서브텍스트로서 그들의 관계(영조-사도세자)를 조명하는 역할에 충실하려 했어요.


영조의 며느리이자 사도의 아내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의 어머니였던 이 여인을 말이에요.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을 보고 있는 부인으로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어쨌든 사도가 세자 책봉까지도 받았었잖아요. 잘만 하면 중전이 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에도 초점을 맞췄고요.”


본인의 연기가 만족스러웠나요?


“항상 연기에 대해서는 만족을 못하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느껴요?


“순간의 진심은 그 순간에만 존재해요. 이를테면 제가 어떤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 순간은 어떤 진심을 갖고 찍었을 거예요. 그런데 세월 지나면 저의 생각이라든지 감정의 색도 달라지겠죠? 다시 같은 장면을 연기하면 또 다른 감성이 불거져 나올 거예요. 이렇듯 사사로운 변수들이 존재하는 한 완벽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만족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저어돼요.”


이준익 감독과는 호흡이 잘 맞았나요?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이 굉장히 에너지가 밝으시고 또 되게 순수하다고 해야 되나? 이게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순수가 아니라 정말 많은 걸 경험하셔서 연륜에서 나오는 ‘모든 걸 내려 놓겠노라’ 하는 순수 있잖아요. 그런 여유로움 덕분에 나이 차가 있어도 친구처럼 지냈어요. 감독님이 ‘우린 친구야’ 그래요.”(웃음)


뮤즈가 되어 보고픈 감독은 없나요?


“누군가의 뮤즈로 한정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많은 사람이 저를 뮤즈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많은 감독, 배우 분들이 저와 작업하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욕심쟁이죠?”(웃음)


‘나는 욕심쟁이에요’라고 말하며 싱그럽게 웃는 그녀의 얼굴 선 사이로 일렁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퍽 보기 좋았다. 눈동자는 밤바다 마냥 유달리 깊고 까맸다. 혹자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려서 데뷔해서 어려운 일은 없었나요?


“어렸을 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놨다가 상처받은 일도 있었죠. 나는 어렸지만 상대는 다 성인들이었잖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한 어린 애였으니까 똑같은 상처도 더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소녀


문근영 바람의화원

문근영은 2008년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 최연소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혹시 또래들과 대화에서 공허함을 느끼진 않았나요?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기는 했어요. 제가 경험한 걸 이 친구들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속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많았어요. 그 덕분에 어렸을 때 제 별명이 ‘언니’ 아니면 ‘할머니’, ‘고민 상담 선생님’이었죠.(웃음) 친구의 말을 들어주고 내 경험을 비추어서 답변해줄 때 거기서 사실 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공허하진 않았어요.”


지금 친구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계속 이렇게 가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이 걸어가 보자. 인생.”(웃음)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을 받았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정신차리고 보니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상을 받았던 거예요. 당시에는 기쁜 것보다 두렵다는 기분이 더 컸어요.”


최연소인데 기쁘지 않았어요?


“우선 겁이 났죠. ‘벌써 이 상을 받으면 나는 얼마나 더 잘해야 되는 거지?’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리고 앞에 계신 대선배님들과 눈이 마주치는데 ‘내가 뭘 했다고 이 분들 앞에서 이런 상을 받고 있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럼 이제까지 후회 없이 하얗게 불태운 작품이 있었나요?


“아직 없어요. 욕심이 많나 봐요. 물론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근데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늘 갖고 있어요.”


놓쳐서 아쉬운 작품은 없었어요?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했으면 잘했을 텐데’ 하는 작품은 있을지언정 놓쳐서 아쉬운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후회하면 끝이 없어요. 꼬리를 물고 쫓다 보면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죠. 그래서 후회라는 게 무의미한 거예요.”


근영 씨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어요?


“진심으로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을 당했을 때, 그런 순간들이 인생에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떨 때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나 자신의 이상일 수도 있고요. ‘나는 내가 이런 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런 순간들이 좌절감을 주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사람을 믿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믿어야죠”라며 싱긋 미소 짓는다.


배우로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픈 마음은 없나요?


“제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전환기가 올까요? 자의식을 버리고 어깨에 힘 빼고 연기에만 임하고 싶어요. 만약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이 단순히 작품, 감독 등 외부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부터 왔으면 해요. 그것이 인생관이든 연기관이든 내 안에서부터 전환이 시작됐으면 좋겠어요.”


배우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내면에 감성의 ‘날’이 서 있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친해지기 어렵더군요.


“저도 배우들이랑 친해지기가 어렵던데.(웃음) 거의 일반인 친구들밖에 없어요.”


이상하게 그들과는 오래 대화해봐도 내면을 파악하기가 힘들더라고요.(웃음)


“배우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의 ‘막’을 걷어내지 않는 이상 서로 친해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한테는 ‘친해진다’는 건 정말 다 털어놓고 깊이 교감하는 걸 뜻하거든요.”


그렇게 친해진 배우들이 있나요?


“그런 맥락에서 친한 배우는 천우희, 김아중 언니예요. 아중 언니는 최근에 제주도 갔다 오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우희라는 친구는 아주 예전부터 고민들을 나누며 친해졌어요.”


방황의 시간 “이젠 다 털어냈어요”


문근영 클로저

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2010년 연극무대에 처음으로 도전한 문근영은 사랑에 빠진 스트리퍼 역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혹시 평소 소설을 자주 읽나요?


“아뇨. 읽으면 힘들어요. 이입되니까. 어렸을 때부터 대본을 보던 습관이 있어서 어느 순간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는 거죠.”


그럼 어떤 책을 즐겨 읽어요?


“오히려 인문학 서적을 좋아해요. 철학이나 심리.”


인문학의 출발점이 바로 ‘자신’에 대해 질문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해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낀 건가요?


“네, 맞아요. 나에 대해 모를 때가 많잖아요.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게슈탈트 증후군’ 마냥 갑자기 나란 인간이 생소해질 때가 와요. 결국엔 자신을 잘 아는 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어떤 근간을 이해하는 첩경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래야 훗날 다양한 역할에도 첨벙 빠져들 수 있을 것 같고요.”


연기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면요?


“항상 하는 생각은 ‘진심을 다해서 하자’ 그거 하나에요. 캐릭터는 변해도 본질이 진실하면 사람들로부터 공감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연극, 영화, 드라마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뭘 하고 싶나요?


“왜 난 연극이라고 말하고 싶죠?(웃음) 가장 배우로서 살아있는 느낌은 연극할 때 드는 것 같아요. 연극은 보러 온 사람들만 알아요. 이 배우가 연기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를 말이에요.”


2010년 연극 <클로저>에서 스트리퍼 역을 해내서 주목받았죠?


“그때 진짜 열심히 했는데 무대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공연 끝나고 매일 울었어요. 속상해서요. 자꾸 무대에서 기가 죽는 거예요. 거의 한 달 동안은 ‘못한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맨날 울었었는데. 버티다 보니 조금씩 기(氣)도 생기기 시작하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연극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어제 연기했던 문근영이랑 오늘 연기했던 문근영이 각기 달라요. 처음엔 연극이 재미없을 줄 알았거든요. 매번 같은 연기를 하는데 어떻게 똑같은 신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매회가 새롭더라고요. 어제 분명히 눈물 흘렸는데 오늘은 대성통곡하게 되고. 그때그때마다 컨디션, 상대 배우와의 호흡, 관객의 분위기 이게 좌지우지하면서 달려져요.”


계속 연기 이야기만 하네요. 근영 씨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 연기하고 싶어요. 저에게 연기는 늘 재미있고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도 배우로서 방황한 기간은 없었나요?


“있었죠. 2010년, 제가 연기 시작한지 10년쯤 됐을 때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매리는 외박중>, 연극 <클로저>를 한꺼번에 다했어요. 당시 어떤 작품은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한번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결과물이 결코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묘한 혼란스러움이 들었어요.”


의왼데요? 그때 인기상도 받고. 청춘 스타로서 또 다른 전성기였잖아요?


“시상식에서도 일련의 깨달음이 있었어요. 1999년 아역상을 받으러 시상식에 갔을 때 드라마 <학교>로 장혁 선배가 청춘스타였어요. 그리고 2010년 시상식에선 드라마 <추노>로 대상을 받으셨죠.


당시 장혁 선배 바로 옆 테이블에는 (장)근석이랑 (유)아인 오빠, 박유천 씨 등이 있었고요. 거기가 이른바 ‘청춘 스타’ 테이블이었던 거죠. 10년 전에는 팬들이 ‘장혁’을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는데 이제는 그걸 제가 그 자리에서 겪고 있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아, 지금 이런 인기도 다 부질없다. 훗날 이 청춘스타 테이블에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스타를 꿈꾸던 어린 친구들이 환호를 받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죠. 어쨌든 장혁 선배는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굳건히 앉아서 대상을 받았어요. ‘나도 저 자리에 앉아 환호성 받고 있는 후배들을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보면서 박수 쳐줄 수 있을까? 그 시간까지 내가 버틸 수나 있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고민의 해답은 찾았어요?


“이제부터는 버릴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은 다 버려야 저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느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시간의 허무함… 이런 것들이 오버랩 되면서 방황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이제 그 방황은 끝났겠죠?


“그 방황이 끝난 게 최근이에요.”


네? 그 동안 방황하는 티가 나지 않았는데.


“방황하는 중간에도 틈틈이 연기는 열심히 했으니까요.(웃음) ‘그래도 해야지 뭐든. 하면 달라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그런데 크게 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나를 직시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각의 범주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달라지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일상에서 또 다른 일상을 발견하면서부터요. 한 번은 뉴욕에서 두 달간 무작정 지내봤어요. 이국에서 이방인처럼 지내며 새로운 나를 직시하게 되던걸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어요”


국민여동생 문근영

|여배우의 ‘나이 듦’에 대해 그는 “각자 그 나이대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저도 자연스럽게 늙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여배우에게 ‘나이 듦’은 예민한 문제죠. 근영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늙는다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미숙·김희애 선배님 다들 나이가 있으신데 여전히 아름다우시잖아요. 그런데 기사를 보면 ‘20대 못지 않은 몸매, 피부’ 이런 제목이 나붙어요. 전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들의 피부가 20대 못지않은 게 그렇게까지 과하게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의문이 드는 거죠. 마치 ‘너는 40~50대가 되어도 20대에 못지않게 아름다워야 돼’라고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불편해요. 각자 그 나이대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나이대의 시간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거잖아요. 자연스럽게 늙고 싶어요.”


이제 17년 차 대선배님이세요. 혹시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나 동료 배우가 있나요?


“천우희가 탐나요. 관객은 배우 천우희를 보면서 ‘무궁무진하다’고 느껴요. 그런 점이 부러워요. 저 스스로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저를 보면서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근영 씨한테는 왜 기대감이 없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은 제가 신선하지 않잖아요. ‘국민여동생’이란 별명이 달릴 정도로 오래 봐 왔으니까요. 분명히 저는 아직 스물아홉, 무궁무진한 나이인데 말이에요.”


‘식상하다’는 편견에 상처를 받은 적 있나요?


“속상하기는 하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궁무진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미소) 관객의 시선은 시선대로 존중해야 하는데, 관객의 어깨를 붙들고 ‘나 좀 봐 달라’라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걸 의도하지 않고 저는 저대로 연기에 몰두한다면 언젠가는 관객들이 ‘어, 문근영, 쟤가 이런 모습도 있었어?’ 깜짝 놀랄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서야 비로소 ‘이게 저예요. 이제 아셨어요?(활짝 미소)’ 이럴 수 있는 거죠.”


앞으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건 이젠 더 이상 저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배우에 대한 평가는 작품과 대중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수없이 그 의미가 바뀌고 다르게 해석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배우는 배우다’ 그런 생각을 갖고 연기를 하고 싶어요.”


문근영은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진실을 털어놓자면 배우는 플랫폼일 뿐이지 자신은 그저 연기만 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마지막 답변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2002년 7월 문근영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문근영을 만나다. 다른 차원을 갖고 있는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근영이의 눈을 보다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이 아인 이렇게 깊은 눈을 가진 거지?’ 아이의 눈이 깊으면 슬퍼 보인다. 아무쪼록 연예인이 아닌 연기자의 훌륭한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김 감독의 바람대로 문근영은 배우로 성장했다. 최근 방황을 끝내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그녀.


햇빛은 눈부셨고 공기는 서늘했다. 여름과 가을의 교차점에서 그녀의 삶에 잠시간 편입될 수 있어 즐거웠다. 17년간 집적된 배우 인생에서 그녀가 발견해 낸 것은 ‘연기’ 그 자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