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이 있는 가고시마에서 동쪽으로 4km 떨어진 사쿠라지마. 평범한 일본 온천 여행이 지겨운 분들, 아니면 큰마음 먹고 일본 온천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 주목. 에도시대 정원의 볼거리부터, 이색 모래찜질까지 즐길 수 있는 일본의 최남단으로 떠나볼까요?
일본 최남단의 가고시마는 도쿄·오사카 등지와 달리 좀 더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휴양지다. 특히 이국적인 정취를 원한다면 제격이다. 낭만적인 이국의 분위기 속에 골프나 온천을 즐기려는 한국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고시마현은 일본 규슈 지역 7개 현 가운데 최대 면적(289.79㎢)을 자랑한다. 일본의 최남단이라 피한(避寒) 명소로도 인기다. 거의 1년 내내 영상 기온을 유지하고 겨울철에도 5°C 안팎으로 포근하다. 가고시마를 이야기할 땐 화산을 빼놓을 수 없다.
가고시마시에서 동쪽으로 4km 떨어진 사쿠라지마(櫻島)는 연간 180만 관광객이 찾는다. 이곳의 미나미다케(南岳) 화산은 약 2만6000년 전에 첫 화산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471년과 1779년 역사적인 분화를 일으킨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14년에도 대분화하면서 인명피해를 냈다.
당시 30억t의 분출물이 동쪽 해협을 메운 끝에 섬과 육지가 연결된 현재 지형을 만들었다. 10월 26일 오전 가고시마 페리 승선장에서 사쿠라지마로 향하는 페리에 탑승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검고 높다란 화산이 여행객을 맞이했다.
|센간엔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미나미다케 화산의 분화 모습.
▒ 화산이 빚어낸 관광명소
미나미다케는 지금도 한 해 1000여 차례씩 분화하는 활화산이다. 박물관 기능을 하는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에 들르면 화산활동의 역사와 현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연구와 관광안내 일을 병행하는 후쿠시마 다이스케 이사장(화산학·지질학 박사)은 “일상생활에서 활화산의 악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며 “1500여 가구가 살고 있고 경제활동도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섬 면적의 10%에 불과한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귤과 무는 특산물로 인기라 농가당 소득수준이 웬만한 지역보다 높다. 화구 인근의 마을엔 각각 대피소가 있어 미연의 사태에 대비한다. 화구 반경 2km 이내로는 접근이 금지됐다.
맑은 날 화산의 묘미를 색다르게 만끽하려면 거꾸로 사쿠라지마에서 나와 더 먼 곳에서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센간엔(仙巖園)은 화산·바다와 어우러진 일본식 정원의 정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센간엔은 일본 에도시대 때 사쓰마의 19대 영주 시마즈 미쓰히사가 1658년에 건축한 정원이다.
가고시마는 800여 년 동안 시마즈 가문의 영토였다.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정원 곳곳을 둘러보는 순간 바다 건너 보이는 사쿠라지마에서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올라왔다. 미나미다케가 작은 규모로 분화한 것이다. 기모노를 차려 입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탄성과 함께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다. 이날처럼 운이 좋으면 분화 장면을 실시간으로 기념 촬영할 수 있다.
화산과 주변 경관을 둘러본 후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전쯤엔 가고시마의 명물인 온천과 모래찜질 체험을 추천한다. 바쁜 일상에서 쌓인 찌뿌듯함, 여행의 피로가 싹 날아간다. 화산 활동이 사람을 곤란하게도 하지만 때론 이롭게도 해준다는 ‘대자연의 섭리’를 실감할 수 있다. 가고시마의 온천은 일본 전역에서도 유명하다. 바닷가를 보며 따끈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노천 온천, 깊은 산 속에서 솟아나는 온천 등 취향별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2. 가고시마 도심의 평온한 오후. 3. 이부스키 해변의 검은 모래밭에서 아이들이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4. 사쿠라지마에서는 족욕을 하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온천보다 더 즉각적인 피로회복 효험을 맛보려면 모래찜질이 제격이다. 이부스키(指宿) 해변의 검은 모래밭은 모래찜질을 하려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이색적인 모래찜질 온천인 이곳에서 유카타를 입은 여행객들은 안내에 따라 모래에 파묻혀 자연의 안마를 받을 수 있다. 옷을 갈아입고 모래찜질장이 있는 해변으로 향하자 삽을 든 직원들이 안내했다.
머리 부위를 수건으로 보호하고 ‘차려’ 자세로 눕자 삽을 이용해 몸 위로 검은 모래를 골고루 덮었다. “텐 미닛(Ten Minutes).” 직원이 열 손가락을 펴며 한쪽의 시계를 가리킨다. 10분 시간을 준수해달라는 뜻이다. 화산이 내뿜은 지열에 의해 60~80°C로 뜨거워진 천연 모래에 너무 오래 갇히면 화상을 입거나 심장에 안 좋을 수 있다.
묵직한 무게감도 잠시, 4~5분쯤 지나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모래손이 지압을 꾹꾹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뜨거워졌는데 ‘시원하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10분여의 찜질을 마치면 직원의 별도 안내없이도 자리에서 일어나면 된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를 털고 샤워와 온천까지 마치니 근육이 이완된 듯 나른하면서도 유쾌했다.
가고시마대 의학부 다나카 교수팀에 따르면 모래찜질은 심박 수 증가, 체내 독소배출 등의 효능이 있다. 인근의 고급 호텔 실내에서도 모래찜질을 할 수 있지만 바닷바람과 마주하며 지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이부스키 해변 코스를 추천한다.
가고시마는 자연친화적인 명소들이 하나같이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등산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기리시마(霧島) 국립공원을 눈 여겨볼 만하다. 일본 최초 국립공원으로 해발 1700m인 가라쿠니다케(韓國岳) 등 20여 화산이 밀집해 있다.
한국의 단군신화처럼 일본의 발상지로 건국신화 속에 나오는 지대다. 맑은 날 가라쿠니다케 봉우리에 오르면 한국 땅이 보인다고 한다. 가을이라 산 곳곳을 붉게 뒤덮은 단풍이 인상적이었다. 산을 중심으로 트레킹 코스와 캠핑장, 온천, 숙박시설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차도 바깥으로 사슴 떼가 노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재미 요소다.
약 5500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이케다(池田)호수는 둘레만 15km에 달하는 규슈 최대 호수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차로 한 바퀴 둘러봐도 상쾌함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사무라이들의 마을이었던 지란(知覽)에 가면 평화로운 농촌 풍경 속에서 200~250여년 전의 집을 둘러볼 수 있다. 집집마다 입구에 방벽을 갖추고 미로처럼 꾸며 적의 습격에 대비했다고 한다. 하나 더 가볼 곳이 있다.
가고시마에는 도자기를 굽는 심수관 도요지(沈壽官陶窯址)가 있다. 이곳에선 15대 심수관(54·본명 심일위)이 도예가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 따금씩 여행객을 맞는다. 심수관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도공 심당길(沈當吉)의 후손이다. 12대 이후로 심수관 이름을 쓴다. 전시관 등을 둘러보면서 과거에 일본 땅에 스며들어 조선의 우수한 도예 기술을 전파했던 한국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가고시마 명물 흑돼지로 만든 돈가스.
먹거리를 찾는 미식가에게도 가고시마는 한번쯤 가 볼 만한 여행지다. 지역에서 난 흑돼지로 만든 샤브샤브·돈가스가 유명하다. 부드러운 육질의 흑돼지 요리에다 화산지역 특유의 특산물인 흑당 소주를 곁들이면 제격이다. 쓰지 않고 뒷맛이 깔끔해 한국에서 소주를 즐기지 못했던 여행객이라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가고시마로 향하는 여로(旅路)는 이전보다 편리해졌다. 대한항공은 이번 동계시즌부터 가고시마 직항노선을 기존 주 3회에서 주 7회로 증편했다.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공항까지는 1시간 35분, 공항에서 도심 중앙역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중앙역에서는 센간엔이나 심수관도요지 등 관광명소로 향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가고시마 여행 정보는 일본정부관광국 홈페이지(www.jroute.or.k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1월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일본 온천 여행을 계획한다. 보통 일본은 온천을 즐기기 위해서 료칸에 묵는 경우가 많다. 료칸에 묵을 때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하니 한 번 알아보고 여행을 가는 것을 권장한다.
이코노미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