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지하철은 20세기 초에 탄생돼 그동안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를 도시에 안착시키는 이동수단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은 뉴욕의 지하철에 매료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뉴욕의 지하철이 가장 뉴욕다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낡은 열차가 뉴욕을 대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34가 해럴드 스퀘어 역.
뉴욕도 서울만큼이나 고단한 도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뉴욕의 지하철은 지하로 숨기는커녕 당당하게 뉴욕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고 있다. 우선 뉴욕에서 지하철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에 대한 책, 사진집, 엽서, 티셔츠 등이 상품으로 나와있고 관광객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지하철 관련 상품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관광객을 홀리기 위한 상술일까? 아니면 일상이라는 민낯을 있는 그대로 내비칠 줄 아는 뉴욕의 용기일까? 어느 쪽이 됐든 뉴욕에서 지하철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압도할 만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한낱 지하철이 말이다.
한 번만 봐도 충분히 충격적인 뉴욕 지하철
일단 뉴욕 지하철은 심하게 더럽다. 승강장 바닥은 때에 찌들었고 열차 선로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에티켓도 지나치게 자유로워서 어디서나 음식을 먹고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쥐가 많아지는 것도 놀랍지 않다. 한번은 동영상사이트 ‘유투브’에서 쥐가 피자조각을 입에 물고 뉴욕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영상이 유행할 정도였다.
최근에는 지하철공사가 ‘쓰레기 청소를 시작할 테니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캠페인 광고를 실시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뉴욕 지하철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첫 번째 충격이 가시면 두 번째 충격이 찾아온다. 뉴욕 지하철은 굉장히 낡았다. 운행한 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벽면에 금이 가 있거나 환기구가 없어서 노숙자 냄새가 빠지지 않는 역사(驛舍)가 다반사다.
비가 오는 날, 뉴욕의 한 지하철역. 뉴욕에서는 흔한 일이기 때문에 불평하는 뉴요커는 별로 없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물이 콸콸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시설이 낡았으니 자연재해가 찾아오면 그 피해가 더욱 극심해진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입힌 피해를 아직도 복구하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이런 낙후성을 단순히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뉴요커는 구식을 신식으로 바꾸는데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뉴욕의 메트로카드는 아직도 터치가 아니라 슬라이드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토큰(Token)’도 고작 10년 전에 사라졌다.
뉴욕 지하철은 시끄럽기까지 하다. 역 입구, 승강장, 지하철 내부까지 소란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바로 거리의 음악가들의 퍼포먼스 공연 때문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본 사람이라면 여주인공이 뉴욕 지하철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지하철은 각종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어왔다.
뉴요커의 '보통의 삶'이 녹아 있는 지하철
각양각색의 뉴요커가 가장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공간에는 자연히 더러움, 낡음, 소음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노숙자부터 양복쟁이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이 드나들기 때문에 더러워졌다. 아마추어 음악가부터 전문 예술인까지, 온갖 레벨의 사람이 공연을 벌이기에 소란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지하철이 이토록 특별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뉴요커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활기 때문이다.
뉴욕이 오늘날 최고의 도시로 인정받는 것은 이곳이 현대적인 공간이라서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도시 베이징, 도쿄, 서울이 이제는 뉴욕보다 더 최첨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리, 빈, 런던과 같은 유럽의 도시가 갖고 있는 유구한 전통과 역사도 뉴욕에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뉴욕만이 내뿜는 매력은 바로 사람에 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다. 다문화, 다인종, 다언어의 버라이어티가 펼쳐지는 현장이다. 타임스퀘어 앞에는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인종이 에너지를 내뿜는다. 길거리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손님들과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근처 골목에는 티베트 식당에서 에티오피아 식당까지 즐비하다.
세상 어디에서 또 이런 체험을 할 수 있겠는가? 건물은 부쉈다가 새로 지을 수 있지만, 사람은 계획대로 모을 수 없듯이 뉴욕의 오랜 인기는 어쩌면 다음 명제를 증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