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미지의 두려움, 포비아를 이겨내라!

우리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나 자신에게 해당하는 공포도 있으며, 조직 전체를 향한 공포도 있다. 공포 때문에 절망하지만, 공포 덕분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공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삶의 활력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공포는 생존의 필수조건이기도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긴장으로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기도 한다.

 

“태고부터 가장 강렬한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이다.”(H.P.러브크래프트)



의외로 겁이 많은 전쟁영웅, 나폴레옹의 일화 중 하나다. 나폴레옹의 보좌관이 나폴레옹의 침실을 지나다가 겪은 일이라고 한다. 방 안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 보좌관이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나폴레옹은 온통 땀범벅이 된 채 몸을 덜덜 떨면서, 칼을 들어 커튼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커튼 뒤에 고양이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은 일종의 고양이 공포증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듯 겉으로는 용감해 보이는 사람도 실은 아주 작고 약한 존재를 무서워하는 경우가 꽤 있다. ‘공포증(Phobia)’은 예측 불가능한 자극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말한다. 공포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고소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처럼 잘 알려진 것들뿐 아니라 고양이공포증(Ailurophobia), 물공포증(Aquaphobia), 거미공포증(Arachnophobia), 폭풍우 공포증(Astraphobia), 무질서 공포증(Ataxophobia), 비행 공포증(Aviophobia), 박쥐 공포증(Chiroptophobia), 광대 공포증(Coulrophobia)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공포증이 있다. 심지어 세균 공포증(Mysophobia), 휴대전화없음 공포증(Nomophobia), 방사선 공포증(Radiophobia) 같은 현대사회의 문명 발전과 관련된 신종 공포증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인간은 왜 이토록 많은 것을 무서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공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포는 인류 문명을 존재할 수 있게 한 심리적 근간이기도 했다. 폭풍우와 추위에 대한 공포가 안전한 주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주거공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경이로운 건축문화를 발전시켰다. 인간에게 공포라는 예민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없었더라면, 인간은 그야말로 겁을 상실한 채 온갖 위험천만한 상황에 자신을 내던져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이다. 공포는 위험 앞에서 탐욕을 내려놓게 만들고,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위험을 대비하게 만들어 인류 문명을 진화시킨 내적 동력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6년 사회공포증으로 병원을 찾아간 환자가 1만7758명으로 2013년 1만6506명에 비해 무려 7.5% 증가했다고 밝혔다. 흔히 ‘소셜포비아(social phobia)’라고도 말하는 사회공포증(사회불안장애)은 현대인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치명적인 위험이다. ‘사회적 존재’로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모든 종류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면 삶 전체가 위협받게 된다. 사회공포증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고, ‘나에게서 나쁜 냄새가 난다’는 망상에 시달리며 ‘타인이 나를 증오할 것이다’라는 지레짐작으로 관계 맺기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관적인 과잉 공포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발작을 일으킬지 몰라 두려워하고 그 걱정으로 외출을 포기하기도 한다.

 

모든 공포증의 공통점은 ‘제3자가 볼 때는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당사자가 과도한 공포심을 느끼며 자극 자체를 피하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이다. ‘객관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주관적으로 과잉 된 공포’를 느끼는 것이 공포증의 특징이다. 사라 라타의 <포비아>에 따르면 공포 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특정 물건이나 상황으로 인해 유발되는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이다. 물건, 상황, 경험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로서 비행 공포증, 폐소 공포증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사회 공포증이다. 타인에게 놀림을 당한다든지, 따돌림을 당할까 봐 두려워 아예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단념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모임이나 발표, 데이트나 축제 등 인간사회의 모든 어울림이 사회공포증 환자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셋째, 광장공포증 혹은 공황장애다. 세 가지 공포증 중에 가장 강도가 심한 경우가 많다.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장소에서 발작을 일으킬지 몰라 심하게 두려워하고, ‘다시 그때처럼 내가 발작을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외출을 단념하기도 한다. 특정 공포증이 물건, 상황, 경험 등을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공황장애는 발작을 일으키는 것 그 자체를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를 담당하는 곳은 우리 뇌의 편도체 부분이다. 편도체에 자극이 주어지면 공포의 감정이 생기고, 그 공포는 뇌 안에서 알람을 울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위험해!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라고!’ 그러나 편도체에 전달되는 것과 똑같은 정보가 전전두엽에도 전달된다. 이는 뇌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정보를 전달받은 전전두엽은 다시 편도체로 ‘긴장 풀어, 저건 그냥 장난감 뱀이야!’라는 식으로 안심을 시킨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면서 뇌는 공포 요인들을 무시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과학자들은 공포증을 포함한 불안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전전두엽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이 유독 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편도체는 ‘겁낼 게 없다’는 전전두엽의 이성적인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편도체만이 홀로 사이렌을 주야장천 울려대는 거다.” _사라 라타 지음, 이효경 옮김, <포비아>(돋을새김, 2015)

 

가짜 공포증 조장하는 사회

 

누군가 자신을 도청·감청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두려움도 현대인의 신종 공포증이다.

 

뇌의 편도체 부분이 ‘이건 위험해!’라는 공포의 알람을 울린다면, 전전두엽에서는 ‘괜찮아, 넌 해낼 수 있어. 겁내지 않아도 돼!’라는 이성적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공포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편도체와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고리가 유독 약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가도 ‘아, 이건 내가 조금만 주의하면 되는구나’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상황에서, 공포증 환자는 계속 뇌 속의 앰뷸런스를 끝없이 울려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겁낼 게 없다, 괜찮을 것이다’라는 이성적 명령을 강화하는 훈련을 통해서 공포증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포비아>의 저자인 심리학자 사라 라타는 불안과 공황발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혹시 내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나는 절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즉 공포증은 치료 가능한 것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게다가 진짜 공포증이 아닌 것도 공포증 행세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아직 공포증을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 하더라도 현대사회에서는 ‘가짜 공포증’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혐오증을 가리키는 ‘제노포비아’라는 단어는 인종에 대한 극도의 차별적인 태도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질병으로서의 공포증이 아니며 오히려 아주 멀쩡하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인종을 차별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일 뿐이다. 많은 종류의 ‘포비아’는 ‘공포증’이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책일 뿐이다. 호모포비아(동성애자 공포증), 제론토포비아(노인 공포증), 사이코포비아(정신질병자공포증)는 모두 공포증(포비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사실상 ‘사회적 차별’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증을 치유하는 핵심적 원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감성의 알람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뇌가 ‘타인의 부정적인 태도’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특히 사회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아주 사소한 불쾌함의 표현까지도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는 표시로 오해하기 쉽다.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부정적인 신호로 보이고, 그리고 다른 대상을 향한 부정적 신호조차도 ‘나를 향한 부정적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다.

 

극도의 예민함을 둔화시켜라

 

“공포증을 치료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 되면서 효과도 좋은 방법은 공포증 환자에게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서서히 노출시키는 것이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선 건물 꼭대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긴장을 풀도록 연습시킨다. 그런 다음 나지막한 디딤대에 아주 천천히 올라서보게 한다. 다음에는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보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고층건물의 옥상에 세운다. 이전 단계에서 공포로 인한 증상들을 잘 관리했을 때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_사라 라타, <포비아>(돋을새김, 2016)

 

노출요법(exposure therapy)은 두려움의 대상과 오히려 친밀해짐으로써 공포를 극복하는 길이다. 고소공포증을 앓는 사람에게는 낮은 디딤돌에서 엘리베이터로, 고층건물의 옥상으로 조금씩 단계를 높여 두려움의 대상과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은 가상현실 환경을 사용한 노출 요법이 각광받고 있다.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실제 비행기를 체험하게 할 수 없으므로 비행기와 매우 비슷한 환경을 가상으로 만들어 비행기와 조금씩 친해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국제시장조사업체 GIA(Global Industry Analysts)의 발표에 따르면, 가상현실 테크닉을 이용한 의료 시장의 규모가 2018년이 되면 북미에서만 24억3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료장비가 대중화되면 가상현실을 통한 심리 치료는 훨씬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날로그식 노출요법은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실제로 높은 곳을 체험하게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그저 환자의 마음속에서만 공포를 경험하게 만드는 상상노출법은 환자의 방어심리 때문에 치료 효과가 적은 것에 비해, 가상현실을 이용한 노출요법은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융합하여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노출치료는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안겨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계획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극의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실수, 정면돌파하라

 

영화 <맨 온 와이어>의 한 장면. 지상 411.5m 세계무역센터 두 타워 사이, 한 줄의 와이어만으로 당시 지상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 사이를 성공적으로 횡단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 영화지만, 고소공포증 환자들에게는 이런 영화조차도 되도록 기피하고 싶은 끔찍한 자극이 될 수 있다.

 

 

나도 오랫동안 발표 공포증을 앓았다. 강의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 길을 그만 가야 하는 걸까’하는 회의도 들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마주치는 정면돌파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강의를 비롯한 다양한 모임에 덜 나갈까’를 궁리하다가 ‘작가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작가가 되면 방 안에 틀어박혀 글만 써도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독자들에게 더 많이 읽힐수록, 강연 요청이 더 늘어나버렸다. ‘아뿔싸’ 싶었다. 이러려고 글을 쓴 게 아니었는데, 내 작은 내면의 요새에 얌전히 갇혀 있고 싶은 마음이 박살 나버렸다.

 

그런데 작가로서 ‘독자와의 만남’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제가 지금 많이 떨립니다’라고 고백하고 시작했더니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가 두렵다고 겁을 먹고 있는 것만큼 내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는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자신감, 결국에는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 찬 예감도 함께 깃들어 있었다.

 

‘강의를 한다’는 중압감보다는 ‘청중과 대화를 한다’는 생각이 도움을 주었다. 별로 웃기지 않은데도 많이 웃어주시는 분들을 보면 더 힘이 나서 준비하지 않은 이야기보따리도 아낌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강의 시작 후 5~6년 동안 사람들의 눈보다는 허공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선생님은 글은 잘 쓰시는데, 말씀은 잘 못하시네요’라는 타박까지 들었지만,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예전 같으면 엄청난 상처를 받았겠지만, 어느 순간 괜찮아졌다.

 

이제 강의를 할 때마다 깨닫는다. 실수를 하지 않으면 콤플렉스의 극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에게 실수할 기회를 준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게 된다. 실수를 통해서 조금씩 공포에 덜 시달리게 되고, 나 자신을 덜 나무라게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덜 떨게 되었다. 조금씩 실수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공포에 맞서는 길은 정면돌파가 최고다.



정면돌파란 항상 두렵지만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아 좋다. 대신 내 실수를 눈감아주고, 내 실수조차 사랑해주는,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나는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화려하고 멋진 말이라서가 아니라, 내 안의 장애물에 맞서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소박하게 담고 있어서, 그 자체로 치유적인 속삭임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몇 번이고 소리 내 읽으면, 점점 더 적게 실수하고, 점점 더 깊게 나 자신의 중심적 에너지와 가까워지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지혜로 향하는 길이란?
글쎄, 알고 보면 평범하고 간단하다네.
실수하고, 실수하고, 또다시 실수하는 것,
그렇지만 더 적게, 적게, 더 적게.”

_덴마크의 시인 페이트 히엔(Peit Hien)

 

정여울 - 작가, 문학평론가. 1976년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헤세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