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상에 대한 통계 오류가 정책 추진에 심각한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수조원이 들어가는 정책이 자칫 헛물만 켤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을 제대로 수립·집행하려면 통계 기준부터 명확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3월 25일 낸 ‘중소기업 관련 통계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사업체의 99% 이상을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이른바 ‘9988’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종사자 수를 기준으로 통계를 재분류한 결과 2015년 기준 전체 영리기업 일자리 1893만 7000개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부가 밝힌 88%가 아니라 80.4%(1521만 8000개)라고 지적했다.
사업장 노동자 수 300인 기준으로 대·중소기업 분류
중소기업 관련 통계가 기업체가 아니라 사업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확한 실태 파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노동부의 사업체 조사는 대기업 지점·지사를 각각 개별 단위로 구분해 집계해 대기업 지점·지사라도 사업장 노동자 수가 300인 미만이면 모두 포함된다. 대기업의 지점·지사도 직원 수가 적으면 모두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중소기업 비중이 과대 계산되고, 물리적 사업장이 없는 경우 중소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오류가 단순한 통계 착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대책 발표 당시 중소기업 빈 일자리, 즉 ‘일자리 미스매치’가 약 20만 1000여개라고 파악했다. 그 근거 자료로 사용한 ‘중소기업 빈 일자리’ 통계 역시 정확하게 말하면 ‘300인 미만 사업체’ 기준이다. 일자리 미스매치 규모가 정부가 예측한 것보다 작아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일은 정책의 지원 대상 관련 통계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자영업자 역시 부처마다 다른 기준으로 집계한다. 통계청의 자영업자는 ‘근로자를 1인 이상 고용하거나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기 혼자 또는 1인 이상 파트너(무급으로 일하는 가족 포함)와 함께 사업하는 사람’이다. 사업자 등록과는 무관하다. 무등록 사업자인 노점상이나 일부 대리운전 기사, 농부도 자영업자로 잡힌다. 국세청에서 파악하는 자영업자의 기준은 납세 대상 사업자 중 법인을 제외한 개인사업자다. 통계청 정의에서 무등록 사업자는 빠지지만 부동산업이나 임대업자가 대거 포함된다.
‘청년’의 개념도 제각각이다. 현재 통계청 고용동향에 나오는 ‘청년층’은 15∼29세를 가리키지만, 청년 일자리 대책의 청년은 15∼34세를 의미한다. 법령마다 청년의 기준이 다른 것도 청년 정책을 꼬이게 만든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청년으로 보지만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할 때는 34세 이하까지 청년으로 간주한다.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은 15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본다. 심지어 청소년 기본법에선 9세 이상 24세 이하로 규정한다.
통계를 위해 세운 기준이 현실과 괴리가 큰 경우도 있다. 중기부에서 주로 활용하는 ‘소상공인’ 개념은 중소기업 가운데 직원 수 5인(제조·운송·광업은 10인) 미만인 사업자를 말한다. 법인사업자와 개인사업자를 모두 포함한다. ‘작은 사업자’라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엄밀히 말하면 ‘직원이 적은 사업자’다. 매출 규모는 따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통계에는 의사나 변호사 등도 소상공인에 들어간다. ‘소상공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인 ‘영세 사업자’와는 거리가 멀다. 2015년 중소기업청이 ‘소상공인·전통시장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소상공인 범위를 개편해 정책대상을 영세사업자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기준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귀농·귀촌의 경우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귀농·귀촌법에 따르면 귀농인은 ‘농촌 이외 지역에서 농업인이 되기 위해 농촌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을 뜻한다. 도시로 분류되는 행정구역 ‘동’에서 농촌 지역인 ‘읍·면’으로 이주하는 것이 현행법상 귀농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읍·면 지역에 거주하던 직장인이 농촌으로 이사해 농업으로 전업해도 귀농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귀촌인은 ‘농업인이 아닌 사람이 자발적으로 농촌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대도시 집값이나 전월세가 치솟아 신도시 읍·면 지역 아파트에 이동한 사람들도 모두 귀촌인으로 집계된다.
의사·변호사도 소상공인
개념 정의의 오류는 통계 착시로도 이어진다. 가령 국세청 방식의 자영업자 기준으로 대출 통계를 집계하면 부동산 임대업자나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로 인해 전체 자영업자의 소득 수준 등이 높아진다. 자영업자의 대출 위험성을 파악하는 데 쓰이는 연체 확률 통계를 보면, 전체 자영업자의 연체 확률은 2%대지만 이는 0.7% 수준인 부동산·임대업이 반영된 수치다. 자칫 4% 수준인 음식점·도소매업 연체 확률을 과소 책정할 소지가 있다. 또 정부는 귀농·귀촌 인구가 크게 늘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읍·면으로 분류되는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유입된 ‘도시 직장인’의 영향으로, 사실상 ‘거품’이 끼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혜택이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예컨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분식 포장마차 주인은 통계청 기준으로는 자영업자지만 정부의 자영업자 보호나 지원은 받을 수 없다. 행정구역이 읍·면인 신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사람은 정부의 귀농창업 자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대로 엉뚱한 이들의 단물을 빼가는 부작용도 생긴다. 과거 소상공인에게 연 300만원 한도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노란우산공제’가 의사·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의 ‘세(稅)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인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일부 부족함이 있어도 정책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통계는 더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개념이나 통계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면 정책 목표 달성은커녕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대상이 누구고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정책을 내놓기 전에 명확한 정의와 통계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함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