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입니다. 황금빛을 뜻하는 ‘기(己)’가 12지신 중 돼지를 뜻하는 ‘해(亥)’와 만났는데요. 풍요를 의미하는 황금과 돼지가 만났으니 곱절로 길(吉)하다는 해이기도 해요.
기해년을 앞두고 황금의 기운이 짙게 풍기는 울산의 국내 최대 순금 제련소를 찾았습니다.
경기가 어려울 땐 금값이 오른다.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시대를 가도 금과 바꿀 수 없는 물건은 없을 터다. 화폐경제 시대에도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는 이유다. 여기까진 상식이다. 그러나 순금(純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당장 흐르는 강물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프리카 인권보호단체의 잠입르포로 익숙한 장면이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금광이나 금맥에서 원석을 캐내는 광부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광석더미에서 순금 추출하는 ‘연금술사’
그러나 실상은 보다 육중하다. 어린 아이의 고사리 손이 아닌 거대한 기계설비로 가득하다. 국내 최대의 금괴 제작업체인 LS-Nikko동제련소가 그렇다. 울산의 온산국가산업공단에 위치한 이곳 제련소에선 2017년 한 해에만 약 41t의 금괴를 생산했다.
‘동제련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구리) 생산이 주 업무다. 순도를 높인 분말 형태의 구리광석인 동정광을 수입해 용광로에서 녹인 다음, 전기분해로 순도 99.99%의 전기동(불순물을 제거한 구리)을 추출해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슬라임(slime)’이 발생한다. 동광석 제련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이다. 이 슬라임을 정제하면 금뿐만 아니라 은과 백금 등 여러 가지 귀금속을 얻을 수 있다. 금 10돈(37.5g)을 얻기 위해선 약 3t의 동광석이 필요하다. 아울러 셀레늄, 팔라듐 같은 생소한 희소금속도 추출해낸다는 것이 제련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은 귀금속 생산라인에서 10g·100g·1㎏·12.5㎏ 등 총 네 가지 규격으로 제작된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인 12.5㎏ 금괴는 2018년 12월 12일 기준 시세로 5억6000여 만원에 달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금괴는 국내외 시장에 공급돼 귀금속과 산업 소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LS-Nikko동제련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런던금시장연합회(LBMA)에 등록돼 세계 시장에서 순도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삼엄한 경비 속 출입구는 ‘단 하나’
고가의 금속을 취급하다 보니 보안은 필수다. 귀금속 생산라인의 내·외부를 43대의 CCTV가 24시간 감시한다. 인가된 인원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에는 금속탐지기까지 설치했다. 신발까지 벗고 검사를 마쳐야 공장을 나설 수 있다.
LS-Nikko동제련의 2017년 매출액은 약 7조4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직원 규모가 85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1인당 매출액이 8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영열(57) 직장은 귀금속 생산라인을 준공했던 1980년부터 40년 가까이 현장을 지켜 온 베테랑이다. 외부인은 생산라인에 들어갈 수 없어 전화상으로 소회를 물었다. 유 직장은 “LS-Nikko동제련은 구리 종주국인 칠레에 귀금속 회수 플랜트를 수출할 정도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췄다”며 “함께 땀 흘린 선후배의 웃음과 땀방울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