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IT 기업의 최고 이슈는 바로 양자컴퓨터예요. IBM을 필두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 아마존 등이 차례로 뛰어들었지요. 현재 양자 컴퓨터 기술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을까요? 그리고 이 기술이 앞으로의 기업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게 될까요?

 

사진:UPI

 

#1. 어느 날 우주선 12척이 지구에 착륙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18시간마다 한 번씩 문을 열어준다. 미국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와 이론물리학자 이안 도넬리는 우주선에서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이들의 언어엔 과거-현재-미래가 일직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루이스에겐 과거-현재- 미래가 하나로 연결되는 관점의 변화가 생긴다. 영화[컨택트](원제 Arrival) 2017

 

사진:워너브라더스

 

#2. 천재 과학자 ‘윌’은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과학단체의 총격에 목숨을 잃는다. 아내 에블린은 윌의 뇌를 양자컴퓨터에 업로드해 살려냈다. 윌은 초월적 힘을 갖게 된다. 영화[트랜센던스](원제 Transcendence) 2014

 

사진:디즈니

 

#3. 악당 타노스가 우주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켰다. 어벤져스팀은 몸을 구성하는 원자 간 거리를 조정해 신체 크기를 바꾸는 앤트맨 능력 ‘양자역학’에서 답을 찾는다. 양자 영역에 갇혔던 앤트맨이 5년 만에 현실로 돌아오고 어벤져스팀은 시간여행을 기획한다. 결국 타노스보다 6개 인피니티 스톤을 먼저 찾아 평화를 되찾는다. 영화[어벤져스 엔드게임](원제 Avengers Endgame) 2019

 

IBM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공개한 상용 양자컴퓨터 시스템 ‘IBM Q 시스템 원’. / 사진:IBM

 

양자물리학과 양자컴퓨팅을 모티브로 한 영화 몇 가지를 추려봤다. 각도는 다르다. 첫 번째 영화는 양자컴퓨터의 특성인 중첩과 얽힘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준다. 두 번째 영화는 양자물리학이 컴퓨터를 만나면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마지막 영화는 두 개념에 더 큰 상상력을 더해 과거와 미래를 바꾸는 원리로 쓴다.

영화계 단골 소재뿐이 아니다. 최근 IT업계를 중심으로 ‘양자’ 기반 기술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암호 등 다양한 분야가 실험실 수준에서 벗어나 연구개발 성과는 물론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2019년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까지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양자컴퓨터를 꼽았다.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들어가 있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같은 반도체엔 이미 양자 기반 기술이 적용돼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양자컴퓨터 개발이 가시화된 건 최근 들어서다. 특히 산업계가 바빠졌다.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전자,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 대거 뛰어들면서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글이 개발한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를 탑재한 양자컴퓨터 장비/ 사진:구글

 

양자컴퓨터는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였던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꿈에서 출발했다. 1981년 IBM과 MIT가 공동 개최한 ‘제1회 컴퓨터 물리학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곳에서 세계 석학 50여 명이 컴퓨팅과 양자물리학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했다.

 

파인만 교수는 “자연을 시뮬레이션하려면 자연에 기반한 컴퓨터를 개발해야 한다”며 “현재 0 또는 1이라는 확정값을 기반으로 계산해 결과를 내는 고전적(디지털) 컴퓨터로는 불확실성에 기반한 자연(양자) 세계를 제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기에 양자역학의 원리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한 기존 컴퓨터 연산방식을 기초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잠깐 정리해보자. 기존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전기신호의 여부에 따라 흐르거나 차단하게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있음(1)과 없음(0)이라는 두 가지 상태가 결정된다. 이 구성이 하나의 비트(Bit)로, 우리가 흔히 컴퓨터 인식 방식을 이진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양자가 단위다. 양자는 0과 1을 구분할 수도 있고, 00·01·10·11의 0과 1을 동시에 쓸 수 있다.


기존 PC 연산체계 깨는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 개발업체 리게티 컴퓨팅의 장비. / 사진:리게티 컴퓨팅

 

앞서 영화[컨택트]에서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보듯 양자컴퓨터도 모든 값이 중첩되면서 얽히는 현상을 이용해 연산한다. 쉽게 말해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6가지 숫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중첩(superposition), 동시에 6가지 숫자가 얽혀 조합을 이루는 얽힘(entanglement)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모든 걸 순서대로 봐야 했던 기존 방식보다 가용 인프라가 확 늘어난다.

 

연산방식도 당연히 빨라진다. 이른바 양자컴퓨터의 비트, 큐비트(Qubits) 단위가 나온다. 2의 n승에 해당하는 연산이 한꺼번에 이뤄지는데 10큐비트면 2의 10승, 즉 1000개를 한 번에 연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50큐 비트면 1000조쯤 되는데 기존 슈퍼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이렇게 빠른 컴퓨터가 어디에 필요할까. 금융, 화학, 의료, 물류, 제약, 자동차, 항공 우주 분야 등 영역에서 처리할 데이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수초 만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암 치료용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도 그렇다. 수많은 화학제의 조합으로 임상 효과를 검증하는 일은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양자컴퓨터라면 며칠이면 해낼 수 있다.

 

이 밖에도 물류 알고리즘을 개발해 배송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바꾸고, 비행 제어 시스템 버그를 잡아 항공안전망을 더 촘촘히 꾸릴 수 있다. 금융 서비스 기업은 더 정교한 수익 모델을 개발할 수도 있다. 산업계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로 해결하지 못했던 각종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韓 전문가들 사이에선 긍정론 VS 부정론

 

IBM의 양자컴퓨터 개발 연구실 내부 / 사진:IBM

 

전문가들 생각은 어떨까. 긍정론과 회의론은 여전하다. 긍정 편에 선 정연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는 “당장 양자컴퓨터로 모든 컴퓨터 업무를 바꾸는 건 스포츠카로 채소를 배달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분명 지금 컴퓨터 기술로 못 하는 계산이 필요하고, 지금도 수많은 컴퓨터가 인터넷에 접속해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모든 일은 양자컴퓨터 사용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있었다. 조동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계산이 의미 있으려면 의미 있는 계산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어야 하고 오류도 없어야 한다”며 “지금 구글팀에서 얘기한 에러 발생률은 0.15%인데 이런 오류가 쌓이면 연산 자체가 의미가 없는 데다 초전도체 방식은 극저온에서 정상 가동될 정도로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다”고 말했다.

 

 

단시간에 양자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선 두 사람 모두 동의하는 셈이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은 일단 ‘긍정론’에 서 있다. 엄청난 자금 실탄을 쏟아부으면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려 애쓰고 있다. 조 교수 말대로 초전도를 이용한 작은 규모의 양자컴퓨터가 나왔고, 삼성전자가 투자한 아이온큐(IonQ)는 초전도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온에서 정상 가동되는 양자컴퓨터도 내놨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아예 클라우드 서비스로 엮어 양자컴퓨팅이 뭔지 경험할 환경까지 내놓으며 활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식이다.

가장 최근 성과는 구글이 내놨다. 2019년 10월 23일(현지시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이 실렸다. 양자컴퓨터 성능이 기존 디지털컴퓨터를 압도한다는 ‘양자 우월성(quamtum supremacy)’ 구현에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엔 구글이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릴 일(*난수 생성)을 ‘200초’ 만에 해낼 수 있는 54큐비트급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시커모어(Sycamore)’가 쓰였다. 학문적으로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양자우월성’을 처음 입증한 사례다.

※ 난수 생성: 일정한 규칙 없이 임의로 나타나는 수, 기존 컴퓨터가 0 또는 1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난수 샘플을 100만 개를 모으려면 1만 년 걸리는데, 시커모어 프로세서는 200초 정도 걸린다는 내용.


구글, 세계 최초 ‘양자우월성’ 입증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양자우월성’을 보여준 구글의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 / 사진:리게티 컴퓨팅

 

구글이 양자컴퓨터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건 아니다. 2011년 세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를 캐나다 디웨이브가 내놨다. 현재도 디웨이브가 양자컴퓨터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축 중 하나인 까닭이다. 이 기업이 내놓은 첫 양자컴퓨터는 한 대 가격이 1000만 달러나 됐다.

 

128큐비트 프로세서를 탑재한 이 제품은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에 납품됐다. 2013년 구글은 512큐비트짜리 디웨이브 2를 1500만 달러(약 170억원)를 주고 샀다. 디웨이브는 2017년 4세대급으로 불리는 2048큐비트급 ‘디웨이브 2000Q’를 내놓기도 했다.

슈퍼컴퓨터 선두주자인 IBM은 1985년부터 양자컴퓨터에 관심을 두었지만, 상용화 개발은 한 발 느렸다. 그래도 2016년 세계 최초로 상용형 초전도 양자컴퓨터 ‘IBM Q 익스피리언스’를 클라우드에 서비스했다. 기업들이 IBM Q 익스피리언스에 접속하면 양자 프로세서를 활용해 다양한 알고리즘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조 기반 시뮬레이션에 동원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2017년부터 삼성전자, JP모건 체이스, 옥스퍼드대 등 12곳을 필두로 현재까지 100여 개가 넘는 기관이 IBM 양자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IBM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2020에서 2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을 공개해 하드웨어 제작사로서의 건재함도 과시했다.

하지만 업계는 54큐비트급 구글 시커모어에 더 주목했다. 이유가 있다. 디웨이브의 경우 최근 내놓은 양자컴퓨터가 2048큐비트급이라고는 하나 7큐비트로 이뤄진 하드웨어를 300개 정도 이어 붙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IBM도 비슷한 방식을 응용해 큐비트 성능을 개량한다. 하지만 시커모어는 한 개의 프로세서가 내는 성능이다. IBM은 구글의 양자우월성 입증 발표가 나오자 곧바로 평가절하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보다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이 뜨거워진 탓이다.

양자컴퓨터 개발 주력업체는 현재 디웨이브, IBM, 리게티, 구글, 아이온큐 등 5개사 정도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전자, AWS가 가세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글로벌 IT 기업의 관심사는 각각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컴퓨팅 소프트웨어에 더 주목하며 방향성을 달리했다.

 

2011년 양자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QuArc(Quantum Architectures and Computation Group)’를 개설했다. 2017년엔 개발자 전용 큐비트와 운영 시스템을 공개하고,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MS 퀀텀 개발 키트(QDK)’도 출시했다. 양자컴퓨터를 하드웨어 솔루션 ‘에저 퀀텀(Azure Quantum)’도 같은 맥락에서 출시됐다. 기존 컴퓨터 환경에서도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텔은 수백 혹은 수천 개 큐비트를 제어하는 전자 제어장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큐비트 자체보다 이를 통제하는 기술을 가지면, 훨씬 더 빠르게 업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앞다퉈 뛰어드는 글로벌 IT 기업

 

세계 최초로 상용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캐나다 디웨이브의 최신작 ‘디웨이브 2000Q’ / 사진:IBM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는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지난해 10월 양자컴퓨터 개발업체 아이온큐(IonQ)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캐피털인 삼성캐털리스트펀드와 무바달라캐피털이 5500만 달러를 투자한 것.

 

아이온큐는 구글이나 IBM이 개발 중인 ‘초전도체’ 방식이 아닌, ‘이온덫(이온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한다. 양자컴퓨터 구현 기술 후보 중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받는다. 삼성전자도 양자컴퓨터 대량생산의 단초가 될 기술이라 믿고 있다.

막차를 탄 AWS는 ‘개발’에서 ‘활용’으로 축을 옮기며 판을 더 키우고자 한다. 지난해 12월 아마존 브라켓, AWS 양자컴퓨팅 센터, 아마존 양자 솔루션 랩 프로그램 등을 공개하며 양자컴퓨팅 기술 전략 로드맵을 발표했다. 자체 기술개발 경쟁보다는 기업이 실제 양자컴퓨팅을 도입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다.

최근 몇 년 사이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양자컴퓨터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국, 한국까지 달려들면서 국가 간 기술경쟁력과 안보까지 엮인 자존심 경쟁으로 번졌다. 미국 벤처캐피털이 수천억원을 쏟아부으며 팔을 걷어붙였고, 정부가 불을 댕겼다. 2018년 12월 미국 의회는 5년간 양자컴퓨터 연구에 1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중국도 올해 안후이성에 문을 열 양자연구소에 13조원 투자를 발표했다. 양자통신 얘길 꺼내며 5G통신, 군사보안기술까지 미국을 넘어서겠다고 발표한 게 중국이다. 유럽연합(EU)은 양자역학 태동지로서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2028년까지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를 ‘퀀텀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엔 통신, 컴퓨팅, 센서, 시뮬레이션 등 응용 분야가 포함돼 있다. 한국은 관련 기술 개발에 5년간 445억원을 쓸 계획이다.

양자컴퓨터 개념이 나온 지 40년. 의미 있는 결과물이 있었지만, 논란은 여전했다. 그래도 네이처는 구글 시카모어 결과물을 담은 논문을 두고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비행 성공에 비견될 만한 일”이라며 “당시 비행은 36m를 날아갔지만, 훗날 우주탐사로 이어졌다. 최초의 양자우월성 입증도 새로운 양자컴퓨터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추켜세웠다. 성패와 상관없이 새 시대가 열렸다고 본 셈이다. 한창 초석을 다지고 있는 김정상 아이온큐 공동창업자와 빌 배스 AWS 엔지니어링 부사장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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