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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삼척의 시멘트 공장이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는 이유

삼표그룹 계열사 삼표시멘트의 삼척공장이 ‘죽음의 공장’으로 변했어요.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이 공장에선 지난해 8월 이후 지난 7월 31일까지 15명이 숨지거나 다쳤어요. 특히 지난 5월 13일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지 2달여 만인 7월 31일 또 다른 하청노동자가 추락사했어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 사진:삼표

 

지난 1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김철홍 인천대 교수(산업안전공학)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 법과 안전은 뒷전이 됐다”고 말했다.

삼척경찰서와 고용노동부 태백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 오전 9시20분쯤 강원 삼척시 오분동 삼표시멘트 1공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소속 탁모(48)씨가 7m 아래 시멘트 저장시설로 떨어져 숨졌다. 탁씨는 컨베이어벨트 보수작업 중 중지돼 있던 컨베이어벨트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밀려 추락했다.

 

지난 5월 13일에는 탁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 김모(62)씨가 합성수지 계량 벨트에 끼이면서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고소작업차(스카이차) 후진을 유도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차량에 치여 사망해 1년 사이에 3명이 동료 곁을 떠났다.

삼표시멘트가 잇단 사망사고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삼표시멘트는 사고 이전은 물론이고 사고 후에도 철저한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5월 13일 숨진 김씨는 석회석이나 찰흙 등을 구워 시멘트의 중간제품(클링커)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합성수지(유연탄 대체 보조연료) 운반 컨테이너를 혼자 관리했다.

 

합성수지가 타고 남은 찌꺼기도 혼자 치웠다. 삼표시멘트 일하는 한 노동자는 “해당 공정이 2인 1조였더라면 사고 시 작동을 멈추고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사고 후 2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고 토로했다.


‘2인 1조’는 안 지켜졌고, 사고원인 규명도 ‘無’

 

 

지난 1월 시행된 김용균법은 무용했다. 김용균법에 ‘2인 1조 의무화’ 규정이 빠졌기 때문이다. 김용균재단 관계자는 “2인 1조 작업을 하라는 지침이 있긴 하지만, 경영자총연합회 등의 목소리에 밀려 제재 수단이 빠졌다”고 했다.

 

실제 삼표그룹은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은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라고 설명했지만, 2인 1조 작업은 시멘트 중간제품 생산라인에 각각에 1명씩 2명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예컨대 김씨가 일했던 시멘트 중간제품 생산 6호기에서 무전 연락을 취할 경우에 7호기 근무자가 100m 거리를 이동해 업무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삼표시멘트는 5월 13일 사고 후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9일 6호기 생산중단을 풀고 시멘트 중간제품 생산을 재개했다. 사고원인은 규명되지 않은 채였다. 주간근무(8시~17시까지) 시 2인 1조를 투입한다는 조치에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생산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하지만 공장 내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형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장은 “3교대 근무 중 주간근무만 각 시멘트 중간제품 생산라인 당 2인 1조를 진행할 뿐”이라면서 “저녁과 새벽 근무는 전과 동일하게 1명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표시멘트는 사고 후 곧장 사고 설비와 동일한 설비를 그대로 가동했다. 김용균법 상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진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고용노동부가 전면 중지를 명할 수 있는 환경은 화재, 폭발, 붕괴, 위험물질 누출 등 4가지 경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작업을 중지하려면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는 판단이 있을 경우’만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철홍 교수는 “기업은 생산 중단으로 입을 손실을 고려해 전면 중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안전이 이익에 밀리는 것 ”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에선 사고 원인 규명이 빠진 공장 가동과 사고 재발이 되풀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삼표시멘트는 지난 7월 31일 추락사 이후에도 동일 생산 라인 전면 중단을 진행하지 않았다. 생산 중단은 시멘트 중간제품을 분쇄해 시멘트로 만드는 총 7개 생산라인 중 사고가 난 2~4호기에 그쳤다.

 

이 지부장은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면서 “지난 5월 근로감독 후 180건이 지적됐지만, 사고 원인 규명은 빠졌고 두 달도 안 돼 또 사람이 죽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5월 19일 문종구 삼표시멘트는 대표이사가 밝힌 “더 이상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철저히 수립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다짐은 공염불에 그쳤다.

 

삼표시멘트는 사고 당일인 7월 31일 문종구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에서 다시한번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1년 새 사망 사고가 3건이 발생하면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시작됐다”면서 “당국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주 처별 규정 강화해 안전 확보해야” 지적


일각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용균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경영계 반발에 밀려 반쪽짜리에 그쳐서다. 실제 김용균법은 2018년 12월 국회 통과 후 시행령 및 시행규칙 마련 과정에서 경영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됐다.

 

2019년 6월 11일 김용균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 공청회에서 강해성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실장은 “사망과 같은 중대 재해 발생 시 전체 작업을 중단하면 노동자들은 다 떠난다”고 지적했고, 고용노동부는 “직고용 대상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숨지면 사업주와 관련 공무원까지 더욱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산업안전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장 내 근로자 사망 등 사고 시 사업주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5년 동안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친 경우 법원은 사업주 10명 가운데 9명꼴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했다.

 

벌금은 500만원 이하가 절반에 달했다. 김철홍 교수는 “안전을 강화하는데 드는 돈보다 사망사고 시 내는 벌금이 훨씬 적은데 누가 안전을 챙기겠나”라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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