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가 요즘 ‘핫’해요. 시장조사 회사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국내 중고거래 앱 순 이용자(UV) 수는 1090만 명이라고 해요.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 네 명 중 한 명은 중고거래 앱을 쓴다는 말이에요.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원에서 올해 약 20조원으로 커졌어요.
얼마 전 아내가 장모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니 요즘 당근마켓이란 데서 괜찮은 물건을 많이 사고판다더라. 너도 한번 해 봐라.” 동네 친구 분들이 당근마켓 얘기를 많이 한다는 거다.
때로는 그 어떤 숫자나 데이터, 통계 수치보다 이런 ‘생활 지표’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공 여부를 생생히 보여주기도 한다. 동네에서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혹시 당근…”이라며 인사하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모바일 중고거래가 일상에 이미 깊이 자리 잡았음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 영상마다 붙어 있는 당근마켓 광고를 보며 당근마켓의 ‘최근 바람’이 집중적 마케팅의 결과일 수 있다는 의심을 잠시 했으나 곧 접었다. 장모님의 ‘전도’를 받아 당근마켓을 설치한 아내는 앱을 훑어보며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곧 실제 거래까지 몇 건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집에 있는 물건 중 팔 수 있을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래 된 중고거래의 새로운 바람
중고 시장은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헬로마켓 등이 주도한다. 전통의 강자 중고나라에 새롭게 등장한 당근마켓이 강력하게 도전하는 형국이다. 위 닐슨코리아클릭 조사에서 당근마켓 월 이용자는 981만명으로 경쟁사를 크게 앞섰다. 당근마켓 일 방문자 수가 11번가나 G마켓 같은 대형 전자상거래 앱을 제쳤다는 조사도 있다. 전자상거래 회사 중 일 방문자 기준으로 당근마켓 위에 있는 것은 쿠팡뿐이다.
중고거래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 동네마다 헌책방이 있었고, 가끔 바자회가 열려 헌 옷가지와 장난감을 내다 팔곤 했다. 이 때만해도 개인들에게 중고거래는 돈 벌자고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상하지 않고 보관하기 좋은 책 정도가 중고거래의 안정적 통로가 있는 경우였다. 사용 시기가 지난 아이들 장난감이나 유모차, 옷 등은 상태가 멀쩡해도 주변에 넘길 적당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요즘처럼 개인들이 다양한 품목을, 돈이 되는 방식으로 거래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의 등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003년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가 문을 연다.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 물건을 올리고 사고 팔 수 있게 되었다. TV홈쇼핑과 온라인쇼핑과 함께 발달한 택배 덕분에 쉽게 물건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중고나라는 회원 2300만명, 연간거래액 3조5000억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고 최근 유진자산운용에 인수됐다. 매각대금은 1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고 다양한 물건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해 주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효용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 사이의 개인거래는 필연적으로 신뢰의 문제를 가져왔다. 택배상자에 물건 대신 담긴 벽돌은 중고거래의 대표적 이미지의 하나로 남았다.
그러다 모바일 시대가 왔다.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니 거래는 더 쉬워지고 많아졌다. 환경이 바뀌자 중고나라의 아성도 금이 갔다. 2010년 모바일 중고거래 서비스로 탄생한 번개장터는 구매와 결제, 배송을 모두 앱 안에서 자체 제공해 편의성과 신뢰를 높였다. Z세대가 선호하는 스마트기기나 독특한 상품이 거래되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2015년 나온 당근마켓은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신뢰도를 높였다. 거주지 반경 6㎞ 내 회원과만 거래할 수 있어 물건을 주고받는 부담이 덜하다. 잠시 나가서 건네주거나 받으면 된다. 택배를 부르거나, 만나기 위해 중간지점을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 지역 대상이라 거래 상대방이 어느 정도 걸러진다. 언제든 길이나 마트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면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무엇을 사서(buy) 어떻게 사나(live) 보는 관음증적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같은 동네에는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마련이니,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사고 어떻게 쓰다 처리하는지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간다. 1500만원짜리 시계를 내놓은 옆 동네 아저씨는 뭐하는 분일까?
최근 중고거래 열풍은 장기간 불황과 그에 따른 긴축 생활의 한 모습이다. 살 때 최대한 아끼고, 팔만한 건 팔아 조금이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추세에 불을 붙였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쓸 물건과 더 이상 쓰지 않을 물건들을 찬찬히 골라내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패션 매체 비즈니스오브패션은 코로나19 이후 중고 시장이 2배 이상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e베이는 지난 6월 영국에서 중고 물품 거래가 3월에 비해 30% 늘었다고 밝혔다. 2018년에 비해선 400% 이상 늘었다.
디지털 기술이 효율화한 우리의 소비 생활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중고거래가 늘어날 기술적, 사회적 변화는 꾸준히 이뤄져 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중고거래를 위한 효율적 플랫폼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예전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중고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주차장에 서 있던 차가 우버로 인해 더 자주 운행하게 된 것처럼, 비어 있던 방이 에어비앤비 덕분에 숙박객을 찾게 된 것처럼 집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이 쓰임새를 찾았다. 중고거래도 공유경제의 일부가 되었다.
편리한 중고거래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변화는 사회적 변화로도 이어졌다. 젊은 세대는 소비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스마트 시대 중고거래의 ‘네고’ 과정은 마치 게임과 같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무한대로 펼쳐진 수많은 사이버 매대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물건을 저렴하게 찾아낼 수 있다. 중고거래는 이제 구질구질한 행동이 아니라 합리적인 행동, 혹은 개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되었다. 자원 낭비를 막고 환경을 지키는 행동이라는 명분까지 부여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 모든 부분의 효율, 즉 회전율을 높이고 있다. 중고거래는 기술에 의한 소비 분야의 효율화라는 흐름의 대표적 모습으로서 당분간 계속 확산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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