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직도 40년 전 ‘워크맨’과 ‘마이마이’를 살 수 있다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소니, 삼성 등 제조사들조차 구하기 힘든 제품을 구하기 위해 70~80년대 추억을 담은 음향기기 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바로 서울 종로구의 세운상가 이야기에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국내 전기·전자산업의 시발점이었다. 50년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전자부품을 떼다 파는 전파사가 시작이었다. 이후 용산전자상가로 상권이 이동했지만, 오디오기기 판매·수리에선 지금도 세운상가가 메카 역할을 한다. 4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장인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엔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분야별 장인 6명이 뭉쳐 고급 오디오기기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협동조합(‘수리수리협동조합’)을 세웠다. 설립 당시 ‘일반 애프터서비스(AS)센터에서 고칠 수 없는 물품만 받는다’고 내건 조건이 조합의 브랜드가 됐다.
조합에 한 달 평균 들어오는 의뢰는 20~30건 남짓. 입소문이 돌면서 많게는 50건까지 들어온 달도 있다고 한다. 최근엔 ‘워크맨’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수리하려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조합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아날로그 음향기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낡은 추억까지도 고쳐드립니다’
이곳에서 말끔하게 수리된 플레이어는 중고시장에서 10만원 넘는 가격에 팔린다. 조합원인 김광웅(67) 광진전자 대표는 “중고제품을 수리 후 되파는 전문 업자까지 생겼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승근(76)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사장이 꼽는 세운상가의 강점은 인프라다. 턴테이블 축·기어 등 재고가 없는 부품이라도 상가 주변 공업사와 연계해 만들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손님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낀 물건’이라며 ‘수리비가 얼마든 꼭 고쳐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 장인들은 사람들의 오래고 낡은 추억까지도 수리해 파는 건가.
사진·글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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