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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중개수수료, 중·저가 집 살 땐 더 내도 어쩔 수 없다고?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의 주먹구구식 중개수수료 개편 권고안이 논란이 되고 있어요. 중저가 주택을 매매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중개수수료를 물도록 해 부담이 늘어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요. 이런 권고안을 만들면서 제대로 된 조사나 여론 수렴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어요.

 

 

권익위는 지난 2월 9일 ‘주택중개보수 요율체계 및 중개서비스’ 제도개선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제안한 중개수수료 개편 권고안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1안은 현행 5단계인 거래금액 구간 표준을 7단계로 세분화하고 구간별 누진방식 고정요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2안은 집값이 12억원 미만인 매매에 대해선 1안과 같이 계산하고, 12억원을 초과하는 거래에 대해선 중개사와 거래당사자가 협의해 요율을 정하는 내용이다. 3안은 거래금액과 상관없이 단일요율제 또는 단일정액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4안은 매매·임대 구분 없이 0.3%∼0.9% 범위에서 중개사와 의뢰인 협의로 중개보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세입자 보호? 권고안 적용시 수수료 부담 가중도


권익위는 4가지 방안을 제시했을 뿐 어떤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누진제 방식의 2안이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권익위가 선호도 조사에서 2안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내용을 함께 발표했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변호사·법무사· 감정평가사의 보수도 누진방식인데 현재 공인중개사가 보수 체계만 누진방식이 아니다”라며 “공인중개사도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문제는 권익위가 제시한 1, 2안의 부동산 중개수수료 요율 체계가 누구나 이익을 보는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9억원 이상 고가 주택 거래 중개수수료는 낮아지지만 중·저가 주택 거래 중개수수료는 올라간다. 공인중개사들의 수익은 비슷한 수준이 된다. 결과적으로 중저가 주택 거래자의 부담을 늘려 공인중개사 수익을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9억원짜리 아파트를 매매할 때 중개수수료는 현재 최대 810만원이지만 1, 2안을 적용하면 누진방식으로 계산해 480만원으로 낮아진다. 전세의 경우도 보증금 6억원인 아파트 중개수수료는 현재 최대 480만원에서 210만원까지 내려가게 된다. 매매 9억원, 전세 6억원 이상에선 중개수수료 부담이 덜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9억원 미만 주택을 매매 거래하는 경우 수수료 한도는 올라가게 된다. 현행체계에서 2억∼6억원 미만 구간 수수료율 상한은 0.4%로, 5억9000만원짜리 주택을 매수할 경우 중개수수료는 최대 236만원이다. 하지만 1, 2안 적용시 6억원 미만 주택 거래의 수수료 한도는 0.5% 고정되어 중개료가 295만원으로 60만원 가까이 더 늘어난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우리가 중점을 둔 부분은 세입자다. (매매거래자보다는) 임대차 중개 비용을 낮추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매매의 경우 한두 번 거래하고 나면 끝난다. 자주 있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수수료율을 높이는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권익위 설명처럼 임대차 중개수수료는 내려가는 효과가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분석 결과 6억원 이하 주택 임대차 거래시에도 수수료율 인하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안에 따르면 구간별 누진방식으로 9억원 이하 임대차 거래시 중개보수 구간을 3억원 이하(0.3%), 3억 초과~6억원 이하(0.4%), 6억 초과~9억원 이하(0.5%)로 구분한다.

 

3억원, 6억원, 9억원 주택을 임대차 거래한다고 가정할 때 드는 수수료는 각각 90만원, 210만원, 360만원이 된다. 고정 요율이라 수수료가 내려갈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현행 기준으로 2억9000만원 주택을 임대 거래할 때 드는 수수료 상한은 약 90만원, 5억9000만원 주택을 임대 거래할 때 수수료 상한은 약 240만원이다. 현행 체계에선 수수료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수수료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익위는 이런 결론을 내면서도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권익위 관계자는 9억원 미만 주택 거래시 현재 공인중개사들이 실제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적용하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은 조사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권익위 “직거래하면 중개사에 실비 안 내도 돼”


권익위가 밝힌 주택 중개보수 및 중개 서비스 개선방안, 국민 선호도 조사 역시 권익위가 임의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였다.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공식 조사가 아니었다. 심지어 설문 참여 인원의 70%가 ‘부동산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 여론조사도 없이 권고안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우리는 한 번도 여론조사를 해본 적이 없다. 여론조사를 한다고 당위성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우리가 판을 깔았으니 제대로 된 조사는 국토부에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원석 중앙대 교수(부동산학)는 본지와 통화에서 “권익위가 조사기관이 아니지만 관련 기관에 자료를 의뢰하거나 간담회를 통해 시장상황을 명확히 파악했어야 한다. 현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성급하게 대안을 제시해 공인중개사나 소비자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가 집을 보여줄 때 알선 횟수 등을 고려해 중개·알선수수료를 지급하는 근거를 마련하도록 권고한 내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수고비를 받지 못한다는 중개사들의 불만을 해결하려는 방안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은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 논리라면 자동차전시장에 들러 차를 타보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을 때도 직원에게 수고비를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그런 상품들은 팔기 위해 전시해 놓은 상품이기 때문에 부동산 매물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수고비를 내지 않으려면 부동산도 직거래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협회에서도 이 방안이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소개해야 하는데, 이를 매뉴얼화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주택 종류, 면적, 지하철역과의 거리뿐 아니라 곰팡이, 결로, 수리 여부 등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며 “권익위 권고대로 제도가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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