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25일로 20세기에 일어났던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은 발발 71주년을 맞이했어요. 이 계제에 이 전쟁에 관해 21세기에 들어와 국내 학자들이 출판한 저술 가운데 열세권의 책과 두 편의 논문을 살펴보면서 여기에 반영된 연구 초점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해요.

 

2020년 6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된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 행사 장면. 2000년대 이후 6·25전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 사진:김성태

 

6.25 전쟁은 19개국(어뢰제거 요원을 파견한 일본을 포함한다면 20개국)이 참전했고, 4개국이 병원선을 파견했으며, 5개국이 포로송환에 참여했고, 그 5개국 가운데 4개국이 정전이 성립된 뒤 출범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참여하고 있다. 모두 합쳐 28개국(또는 29개국)이 직접 관여한 전쟁이다.

 

유엔 회원국이 60개국에 지나지 않았던 때 관여국이 그 절반이나 됐음에 미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연구자에 따라서는 ‘제3차 세계대전을 대체한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참전국 또는 관여국의 수가 그렇게 많았던 데다가 전쟁이 37개월을 끌었고 미래의 평화협정을 예견하면서 그 전제로 매듭지어진 휴전협정은 오늘날까지 발효하고 있기에, 이 전쟁에 대한 출판은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연구자에 의해 70년 넘게 계속되어왔다.

 

이 제한된 지면에, 거기에 나타난 연구 경향을 소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주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구미 학계의 오랜 관심은 이 전쟁이 어떤 배경에서 일어났으며 기원(起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전개되다가 휴전에 이르렀고 또 이 전쟁이 국제정치와 남북한 각자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에 집중되었다.

 

이 점은 국내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자적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구미 학계의 학문적 성과를 소개하거나 그 틀에 맞춰 해석하는 사례 또는 한국군 당국의 전사적(戰史的) 서술 등이 주류를 형성했다.


2000년대 들어 더욱 두드러진 ‘내전’설

 

6·25전쟁 중 중국 인민 지원군 총사령관인 팽더화이와 군사작전을 협의하고 있는 김일성(오른쪽).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자료의 공개와 발굴은 이 전쟁에 관한 연구에 큰 자극을 주었다. 옛 소련 및 중국의 기밀문서가 활용되면서 구미 학계에서도 그러했지만, 한국학계에서도 연구는 훨씬 더 활발해졌다. 거기에 더해, 국내에서 지난날에는 금기로 여겨졌던 자료, 예컨대, 양민학살에 대한 자료가 그 이전 시기보다 훨씬 많이 발굴되면서 연구의 폭은 넓어졌다. 그리하여 대체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한국학계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것을 대체로 네 측면에서 살피기로 하겠다.

첫째, 이 전쟁이 ‘국제전’이 아니라 ‘내전’이었다는 목소리가 훨씬 커진 것이다. 이 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연구자는 동서냉전이 종식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이전에는 부당하게 ‘빨갱이’로 몰리는 위험에 직면해야 했다. 북한이 이 전쟁을 ‘내전’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에 적시한 저술 가운데 김명섭 교수와 조성훈 교수의 저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내전’설을 개진하거나 ‘내전’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분석을 제시했다. 대표적 사례가 신복룡 교수의 논문이다.

 

원래 1996년에 발표했던 같은 제목의 논문을 개교한 이 논문에서, 남북분단과 6·25전쟁을 깊이 연구해온 신 교수는 이 전쟁이 김일성에 의해 ‘개전’됐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본 성격은 ‘내전’이었다는 논지를 전개한 것이다.

 

첫 논문이 발표된 1996년의 시점에서 본다면, 신 교수의 주장은 기존 통설에 대한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필자는 이 전쟁에 ‘내재적’ 또는 ‘내전적’ 요인이 개입됐음은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국제전’이었다고 본다.

 

이 전쟁에 중국을 끌어들여 종국적으로 미국과의 무력충돌을 유도해 두 나라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적대적 대결관계를 유지하게 하려는 음흉한 계산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개전을 허락했고 그리하여 이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복룡 교수는 ‘내전’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일성은 애초에 전면전이 아니라 제한전을 시도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필자는 이 명제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내전’설과 ‘제한전 시도’설 모두에서 신 교수가 제시한 자료와 논리 전개가 워낙 탄탄해 학계에서 활발한 토론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고 있다.

둘째, ‘내전’설을 제시하는 연구자들은 이 전쟁을 ‘6·25전쟁’으로 명명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비판한다. 이 전쟁의 역사적 뿌리를 조선왕조 말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쌓이고 쌓인 ‘계급적 갈등과 모순’으로,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남한에서 전개된 ‘미군정반대 투쟁’과 ‘남한 단독정부수립반대 투쟁’ 및 남북한 사이에 전개된 38선 주변에서의 무력충돌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하는데,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확전된 그 특정한 날을 명명의 주체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김동춘 교수의 경우, 남북화해를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염두에 둘 때, ‘상기하자 6·25’라는 구호로써 ‘북한의 남침’이라는 반북한적·반공적 선전과 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명명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전쟁’이라는 명명에 미흡함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6·25전쟁’이라는 명명보다 낫다는 취지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명명을 선호한다.

필자는 ‘6·25전쟁’이라는 명명에도 미흡함이 있으나 그래도 ‘한국전쟁’이라는 명명보다는 낫다는 의견을 이미 제시했었고, 지금도 그 의견에 변함이 없다. 영어로 ‘Korean War’로 부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의 번역어라고 볼 수 있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면, 대한민국 안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읽히기 쉽기 때문이다.

 

김명섭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공산주의 전쟁’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전쟁의 성격을 보다 더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명명에 대한 학계의 토론이 다시 활발히 전개될 것을 기대한다.

셋째, 위에 적시한 책들은 모두 이 전쟁에서 조선=한반도가 피해의 주된 무대였고 조선=한민족이 최대의 피해자였다는 주장, 곧 ‘한국 현대사의 침묵을 깬’(이임하 교수의 표현) 목소리를 강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정당한 발현이다. 이러한 인식은 연구 초점에서 그대로 반영됐다. 이제는 미국과 소련 및 중국보다도, 곧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안’을 더 집중적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이 점에서 박찬승 교수의 책 제목은 매우 시사적이다. 워싱턴이나 모스크바나 베이징이 아니라, 그리고 서울이나 평양이 아니라 훨씬 좁은 범위에 속하는 남한의 몇몇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이 전쟁에 접근한 것이다. 또 ‘정책결정자’라는 높은 곳으로부터가 아니라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아래로부터’(김동춘 교수의 표현) 접근한 것이다.


학살된 양민 등 피해자에 대한 관심 커져

 

1953년 7월 10일 판문점 정전회담 장면. 세 나라(한국, 미국, 중국)의 언어가 사용되고 동시통역이 아니라 축차 통역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렇게 ‘우리 안’과, ‘우리 안’에서도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을 때 우선 시야에 크게 부각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 사이의 불신에 따른 집단살해, 그리고 이웃 사이의, 심지어 4촌 사이의 그동안 쌓여있던 증오의 폭발과 그것에 따른 살해와 박해이다. 이것만 들여다보면 ‘국제전’설보다는 ‘내전’설에 기울어지게 된다. 신복룡 교수나 김동춘 교수 등이 강조했듯, 이 전쟁에 내전적 요소가 두드러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전쟁을 당한 ‘우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은 무고하게 죽은 양민들(김동춘의 책),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했던 피난민들 또는 월남자들과 이산가족들(김귀옥의 책), 불운의 포로들(조성훈의 책과 전갑생의 책), 납북자들(김귀옥의 책), 그리고 졸지에 남편을 잃은 전쟁미망인들(이임하 책),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쁜 놈’을 찾아내서 공을 세울 수 있는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된 ‘간첩’들(전갑생의 책) 등 이었다.

그 이전에도 시도됐었지만, 위에 적시한 책들은 거의 모두 이 피해자들에 관해 관심과 연민을 쏟았다. 특히 김동춘과 한성훈의 책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에 대한 집단 학살 사례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정부가 발족시켰고 가입을 권장했던 국민보도연맹에 들어갔던 ‘좌익인사’들을 후퇴하는 정부가 후환을 두려워해 곳곳에서 집단학살한 사례가 그 한 보기다.

 

그렇게 희생됐는데도 그들의 유족은 계속해서 국가의 감시를 받는 가운데 신원조회에서 다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책들을 읽노라면 “국가란 과연 무엇이고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정치학의 기본적 질문을 다시 제기하게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도진순 교수의 논문과 김태우 교수의 저서 역시 새로운 시도이다. 그들은 공산군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미군 폭격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광범위했으며 파괴적이었고 때로는 ‘오폭’이었나를 사실적으로 분석했다. 폭격으로, 심지어 오폭으로 발생한 대량의 피해자는 역시 우리 민족이었다. 목숨을 잃고 생활의 터전을 잃었으며, 비록 살아남았다고 해도 가족을 잃은 슬픔과 그 상처, 곧 ‘트라우마’(전갑생의 책)에 시달려야 했다.

넷째, 기존의 연구가 ‘개전’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김명섭 교수의 책은 ‘정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2000년 이전에도 ‘정전’에 대한 연구는 절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교수에 의해 ‘정전’에 대한 연구는 새 차원에 들어섰다. 정전을 성사시키기 위한 협상이 무려 2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요구했던 배경과 과정을 국내외의 수많은 자료를 거의 완벽하게 발굴하고 동원해 매우 꼼꼼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 주제에 관해 국내외 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을 썼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평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 찾아야

정전회담에서 세 나라(한국=조선, 미국, 중국)의 언어가 사용되고 동시통역이 아니라 축차 통역이 진행됨에 따라 회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에 이르기까지, 지난날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박태균 교수로부터 ‘디테일에 강한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무엇이었나를 새삼 깨닫게 한다. 유럽 한국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레이든 대학교로부터 우수도 사상 그리고 한국정치학회로부터 학술상을 받은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이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나게 큰 비극이었고 그 상처와 후유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 김명섭 교수는 정전협상과 정전협정을 분석한 뒤, 정전협정을 대체해 한반도에 영구한 평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국제법적틀, 곧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관심을 쏟았다.

이상에서 적시한 책과 논문 이외에도 새로운 흐름에 부합하는 연구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참으로 많이 출판됐다. 읽으면 읽을수록 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민족이 너무나 불쌍했다는 느낌, 그리고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린다면 공직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책임감 없이, 30대 젊은 권력자의 혈기에 젖어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켜 모든 참극의 원천을 제공한 김일성과 그 배후의 스탈린에 대한 반감을 버릴 수 없으며,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새삼 하게 된다. 그러한 뜻에서, 우리는 핵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 그리고 거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과 자세의 적절성 여부를 진지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 6·25전쟁과 관련해 2000년대에 출판된 13권의 책과 두 편의 논문

■ 김동춘 책, [전쟁과 사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돌베개, 2000 개정판 2006), [전쟁과 사람들: 아래로부터의 한국전쟁연구](한울아카데미, 2010).
■ 김귀옥 책, [이산가족 반공 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이산가족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역사비평사, 2004), 논문 ‘냉전 시대의 경계에 선 사람들: 월남자·월북자·납북자’,[황해문화](2010년 여름), 46~88쪽.
■ 도진순 논문 ‘1951년 1월 [예천군] 산성동 폭격과 미 10군단의 조직적 파괴정책’, [역사비평](2005년 가을), 100~129쪽.
■ 박찬승 책, [마을로 간 한국전쟁] (돌베개, 2010).
■ 조성훈 책, [한국전쟁과 포로] (선인, 2010), [6·25 전쟁과 국군포로](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4).
■ 이임하 책, [전쟁미망인, 한국 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책과 함께, 2010).
■ 전갑생 책,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새로운 자료 다른 시각] (선인, 2011).
■ 김태우 책, [폭격: 미 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창비, 2013).
■ 한성훈 책 [가면 권력: 한국전쟁과 학살 (후마니타스, 2014),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산처럼, 2018).
■ 김명섭 책, [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서강대학교 출판부, 2015).
■ 신복룡 책, ‘한국전쟁의 기원: 김일성의 개전 의지를 중심으로’,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선인, 2021), 559~602쪽.


김학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hakjoon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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