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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후각을 지배하는 향기 디자이너

향기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예요. 오감(五感) 중에 가장 은근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끌어당기는 요소가 바로 후각이기 때문이에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순식간에 기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 국경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후각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 향기 디자이너 레이몬드 매츠(Raymond Matts)를 만나보았어요.

 

 향기 디자이너 레이몬드 매츠가 자신의 이름을 딴 시그니처 향수 라인 중 하나를 시향하고 있다.

 

“향기의 힘은 수치로 표현할 수 없어요. 하지만 후각은 감정을 제어하는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감각보다 우리의 정서에 깊이 관여하죠. 향기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어떤 장소와 공간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갖고 다시 발걸음하게 하는 ‘절묘한 세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향기는 사람의 무의식을 자극해 제품이나 서비스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공간의 성격에 맞는 ‘센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의 구매 행동을 촉진하는 향기 디자인 마케팅은 서구에서 출발해 국내에도 대중화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향기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레이몬드 매츠는 30여 년 넘게 향수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다양한 브랜드의 시그니처 향수를 개발하고 여러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향기를 디자인해왔다.

세계적인 향료 회사인 Firmenich와 IFF에서 ‘fragrance evaluator(향수 평가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화장품 브랜드 엘리자베스아덴의 마케팅 디렉터로 근무할 당시, 할리우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시그니처 향수들을 디자인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에스티로더 향수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서 9년여간 토미힐피거, 클리니크, 오리진 등 에스티로더 산하 브랜드의 시그니처 향수 라인을 개발하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스티로더를 떠나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뒤에는 미국의 10~20대를 대표하는 의류 브랜드 ‘애버크롬비&피치’의 중독성 있는 향기를 디자인하며 명성을 얻었다. 애버크롬비&피치는 구글에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향수(perfume)가 제일 먼저 뜰 정도로 성공한 향기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그는 시그니처 향수 개발 이외에도 미국의 향기 마케팅 기업 프롤리텍과 함께 향기로 공간을 브랜딩하고 있다. 버라이즌, 뱅크오브아메리카, 월마트 등 장소와 산업을 가리지 않고 향기를 디자인해온 그는 “향기 브랜딩을 통해 고객들이 그 공간에 더 오래, 기분 좋게 머무르면서 직원들에게 더 친절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공간과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재정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향기를 활용하는 똑똑한 기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롤리텍의 한국 에이전시인 아이센트의 전속 향기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아이센트는 국내 최초로 ‘향기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바이오미스트 테크놀로지의 자회사다. 최아름 아이센트 대표는 수년간 레이몬드 매츠와 호흡을 맞추며 브랜드의 ‘liquid emotion’을 만들어왔다.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의 프렌치 누아르 향, 프리미엄 다이닝 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웨이팅 공간, 독특한 공간 콘셉트로 유명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더에러’ 등이 그들의 합작품이다.

향기 디자이너가 최적의 향을 디자인하려면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아름 대표는 고객사의 아이덴티티와 니즈를 파악하고 디테일한 환경 조사를 거쳐 레이몬드와 함께 향기의 테마, 밸런스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한성자동차가 올 뉴 벤츠 S클래스 출시와 함께 선보인 세 번째 시그니처 향수 제작에도 호흡을 맞췄다. 아이센트는 2015년부터 한성자동차의 시그니처 향수를 제작해왔다.

레이몬드 매츠는 오랫동안 맡아도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향기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세계에 최초로 향기를 도입하는 회사인 센세이블미디어(Sensable Media)와 함께 후각을 활용해 더욱 실감 나는 VR과 AR 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향기 마케팅은 앞으로 더 다양한 산업에 도입될 전망이다. 2006년 뉴욕에서 시작한 핸드메이드 퍼퓸 하우스 ‘르 라보’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니치향수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본인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프리미엄 향수 시장은 4400억원(2013년), 5000억원(2018년), 6000억원(2019년) 규모로 급성장 중이다.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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