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심평원은 삼성생명, 한화생명, KB생명,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KB손보 등 6개 보험사에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을 승인했어요. 이번 승인은 심평원에 한정됐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을 위한 협의도 진행 중으로 알려졌어요.
#. 고혈압 환자인 A씨(55)는 보험사에 관련 보험 상품 가입을 문의했다. 하지만 A씨는 보험사로부터 '고혈압 관련, 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며 가입을 거절당했다. 하지만 공공의료데이터를 확보한 보험사는 고혈압 환자들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혈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고혈압 환자 전용보험을 개발했다.
#. B씨(65)는 보험가입 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건강나이가 실제나이보다 적은 55세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실제나이가 아닌 건강나이로 할인 적용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됐다. 보험사는 공공의료데이터를 분석, 실제나이보다 건강나이가 낮은 환자들이 병원 이용이나 질환 발생률이 낮다고 판단하고 B씨 보험료 산출 시 건강나이를 적용했다.
위 사례들은 보험사들이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다. 보험사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축적된 공공데이터를 분석해 보험소비자 맞춤식 상품을 개발하고 개별 환자들의 위험을 측정해 보장 내역을 더욱 세분화하는 식이다.
먹거리 확보가 시급한 보험사들에게 공공데이터 활용은 헬스케어 시장 공략을 보다 수월하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또 보험소비자들은 기존에 없던 보험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문' 열렸다
공공의료데이터란 심평원이나 건강보험공단에 축적되는 병원 이용 환자들의 병력, 치료 내역 등을 말한다. 이때 보험사들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가명처리한 정보를 받는다.
사전허가를 받은 연구자가 심평원 폐쇄망에 접속해 데이터를 분석한 후 그 결과값만을 통계형태로 반출한다. 보험사가 고혈압 관련 상품 개발을 진행 중이라면 가명처리된 고혈압 관련 환자 데이터를 심평원으로부터 받아 분석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보험사들은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더욱 다양한 서비스 및 상품을 선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상선 항진(저하)증의 경우 보험사는 관련 환자 데이터가 부족해 손해율 산정이 어려워 상품 개발이 어렵다. 하지만 공공데이터 속 갑상선 항진증 환자들을 분석해 꾸준한 복약 관리와 건강한 삶 유지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 전용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
또 중대질환의 발생이력 및 질병발병 순차패턴도 분석할 수 있다. 간수치가 높아진 환자가 간경화, 이후 간암 등을 앓는 경우다. 이때 질병 악화 방지를 위해 보험사가 사전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도 등장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데이터를 통해 갑상선 항진증 환자가 꾸준한 복약 관리를 했을 때 질병이 어느정도 회복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며 "환자의 복약 관리를 직접 도와주면 해당 질환에 따른 보험금 청구도 줄어 손해율 관리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 보험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확보만 된다면 건강관리서비스를 접목한 다양한 질환 관련 보험상품 개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앞으로는 보험사가 헬스케어 관련 플랫폼 서비스도 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보험사 AXA 및 중국 핑안보험 등은 운동용품, 영양·건강식품, 디지털 건강기기 등을 판매하는 '헬스몰'을 자회사 방식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험사 역시 이러한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한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계획이다. 또 헬스케어 서비스 운영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선불전자지급업무 영위도 허용한다.
이러면 A보험사가 헬스케어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기업보험·단체보험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직원이 체중 감량 등 건강관리에 호전이 있을 때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이 포인트로 보험사 헬스몰에서 운동용품이나 영양제 등 구입이 가능해진다.
여전히 우려되는 개인정보 피해…해외는?
보험사가 공공의료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공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공공데이터 승인에서 보험사들이 개인정보 재식별을 시도하면 형사처벌 및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보다 엄격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7년 이전, 보험사들의 공공의료데이터 접근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가명으로 처리된 자료여도 이를 재식별해 개인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이후 심평원은 데이터 제공을 중단했다. 4년만에 공공데이터 활용이 재승인된 것은 가명 처리된 정보는 당사자 동의가 없어도 활용할 수 있다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데이터 3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법령 상 미흡함이 있다"며 "정부도 함부로 가명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민간에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공데이터를 이미 활용하고 있는 해외에서는 관련 제도 도입으로 소비자 불안감을 줄이고 있다. 전 국민 의료정보를 암호화해 개방한 핀란드는 회사 내 데이터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인증과 정기적인 갱신, 체계적인 모니터링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하고 있는 대만은 중앙건강보험청(NHIA)이 보유한 의료, 약제, 검사 데이터를 2013년부터 디지털화해 공개했다. 다만 민간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범위를 사망자로 제한해 논란을 줄였다. 이에 국내에서도 공공데이터 관련 개인정보유출 피해를 대비한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에 엄격한 데이터 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개인의료정보 침해 사고 발생 시 정보 피해자 구제방안 등 제도적 보완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며 "또 데이터 관련 개인정보유출 피해 발생시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보험의 의무가입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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