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문화예술 및 인테리어 기업으로 알려진 시공테크가 ‘아트 앤드 테크’ 기업으로 변신해요. 가상현실 소프트웨어, 콘텐트 및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에 대한 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새 시대 전시 예술을 선도하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에요.

 
 
김승태 시공테크 사장이 자사에서 개발한 VR 콘텐트를 소개하고 있다.

 

10월 13일 판교 시공테크 본사 연구실. 시공테크가 최근 개발한 가상현실(VR) 콘텐트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해외 기업과 공동 개발했다는 센서 부착 풋웨어 ‘사이버슈즈’를 신고 가상현실에 접속했다. 앞뒤로 발짓을 하자 가상 세계에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일반 VR 컨트롤러를 쓰면 한꺼번에 긴 거리를 ‘위치 스킵’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돼 어지럼증이 동반된다. 그러나 사이버 슈즈를 착용하니 어지럼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편안한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고, 농구공을 던지고, 글자를 쓰는 섬세한 작업을 가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김승태 시공테크 사장의 설명이다.

“이게 메타버스라는 겁니다. 온라인 캐릭터를 생성해 사람들과 관계 맺는 플랫폼이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개념 자체는 SNS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실감형 콘텐트 및 디바이스로 새로운 차원의 메타버스를 시장에 선보일 겁니다.”

시공테크는 우선 VR 교육 콘텐트로 실감형 콘텐트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초중고 학생 대상의 ‘생애주기별 안전교육’을 주제로 한 VR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가상 공간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화재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피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 영상 및 훈련을 제공하는 방식의 콘텐트다. 엔터테인먼트, 학생 간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섹션으로 구성돼 있으며, 제작한 VR 콘텐트는 2022년 5월 출시될 예정이다.


‘아트 앤드 테크’기업으로 변신


시공테크는 전시, 문화예술 기획 및 인테리어 사업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1988년 2월 설립해 약 33년간 국내 문화예술사업 발전에 앞장서왔다. 1993년 대전엑스포,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201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굵직한 국내 행사가 시공테크 주도로 개최됐다. 시공테크가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 기술 연구에 나선 것은 2010년경이다.

“국민소득 변화에 발맞춰 대중의 문화적 소양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더욱 몰입감 있는 전시 체험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맞닥뜨렸습니다. 인터랙티브 형식의 전시를 시도하게 된 까닭입니다. 전시 주제도 과거의 것에서 미래적 상상력을 담는 쪽으로 옮겨 가고 있던 만큼, 첨단 전시 과학 장비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죠.”

시공테크가 예술에 기술을 결합하는 ‘아트 앤드 테크(Art and Tech)’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외형 변화를 도모해 온 배경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는 고해상도 미디어 영상, VR/AR 등 가상현실 기반 실감형 콘텐트 및 인터랙티브 미디어, 키네틱 아트 제작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밀라노 엑스포(2015), 국립해양과학교육관(2020), 국립청주박물관 ‘영원한 세계 VR(2020)’ 등의 전시에 미디어 퍼포먼스, VR, 인터랙티브 기술 등 기업의 최신 기술 역량이 적용됐다. 김 사장은 “30년 전시 노하우에 신기술을 태워 고객 만족을 제고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시업계를 리드해보자는 것이 우리 포부였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장비 및 소프트웨어 개발도 미래 사업의 한 축이다. 2016년 시공테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가상현실 플래그십 총괄을 맡아 공간 기반 VR 제작에 성공했다. 2021년에는 해외 기업과 협력해 VR 기기용 ‘사이버 슈즈’를 개발해 KC 인증을 완료했다. 사이버 슈즈는 메타버스 속 공간 이동을 돕는 ‘VR 트레드밀(Treadmill)’과 유사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해 VR 기기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시공테크의 기술력은 내부에서 나온다. 1990년 영상, 조형물, 콘텐트를 제작해 사업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개설한 ‘문화기술연구소’는 2010년대부터는 키네틱과 VR/AR 콘텐트 등 미래 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변모했다. 매년 영업이익의 20% 이상이 연구소에 투입된다. 연구소 내 기술 인력은 60여 명으로 전사 인원의 25%를 넘는 규모다.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문기술력을 확보한 시공테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참여하는 성과를 냈다.

첨단기술에 관한 내공은 코로나19라는 변수를 이겨내는 힘이 됐다. 코로나19 발발로 전시업계 전망이 악화되고 업체들의 일도 급감했다. 특히 해외 전시 수주량이 대폭 줄었다. 악조건에서도 시공테크는 세종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내 스마트 실증 체험 공간 개설, 제2 여객터미널 미디어아트 구축 등 대단위 사업을 수주했다. 세계 최대 규모 키네틱을 비롯, AI, 머신러닝, 정밀 위치 제어, 자율 정밀 주행 및 실시간 이동 측위 등 자사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퍼포먼스를 이번 기회에 선보일 예정이다.

김 사장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해외 전시 사업이 줄어 매출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10년간 준비해온 ‘아트앤드 테크’ 기업으로의 이행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예상보다 5년 이상 앞당겨진 것 같다”고 평했다.

“지금의 위기는 시공테크가 한 번 더 업계 주도권을 잡을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5~10년 전부터 준비해온 실감형 콘텐트 시장이 이제 빛을 보고 있어요. 기획자, 영상콘텐트 전문가, H/W 및 S/W 개발자 모두가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능력을 키워 문화예술 및 전시업계의 미래를 선도해나가게 할 계획입니다.”


남다른 결단력이 성공 배경


시공테크가 실감형 콘텐트 및 인터페이스 개발을 결정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까지 걸린 기간은 6년에 못 미친다. 단기간에 외형 변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의 남다른 결단력 덕분이라고 김 사장은 언급했다. 1992년 입사해 경영관리, 전시기획, 영업 등 주요 조직의 실무를 도맡으며 30년 가까이 시공테크에 머물러온 그는 기업의 업력과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2017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엑스포 주제관 공사를 우리가 맡았습니다. 예산 900여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행사였습니다. 설계 및 디자인을 마치고 설치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현지 건설업체의 작업이 지연되며 전 공정이 늦춰졌습니다. 개막일에 맞춰 공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조치를 요구하니 일부 협력 업체가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약속한 기한이 15일가량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시공테크는 주저 없이 ‘인력을 실어 나른다’는 결단을 내렸다. 목공, 금속, 도장 등 국내 전문 인력을 포함한 100여 명을 비행기로 이동시켰고, 즉시 작업에 착수한 끝에 전시 일정에 맞춰 공사를 마쳤다. 시공테크에서 투입한 추가 비용은 15억원에 달했다. 이 일을 계기로 시공테크는 국가 프로젝트인 대통령기록관, 광산 회사인 ‘카작무스’ 사옥 내의 상징조형물, 아블라이한 파크 등 대규모 사업을 연달아 수주했다.

김 사장은 “이윤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카자흐스탄 정부, 엑스포 주최 측과의 신뢰를 지켰던 것은 장기적으로 훌륭한 결단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대응책을 찾아 즉시 실행한다”고 말했다. 시공테크가 이미 전시업계에서 정점에 서 있던 2010년 대에 실감형 콘텐트와 같은 신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우리 조직의 DNA는 ‘도전’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먼 미래까지, 세상 모든 것을 융합하고 재현해내야 하는 일이 전시다. 그렇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든 남다른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사 직원들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시공테크는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콘텐트 그룹’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 가고 있다. 지속해서 디자인, 연출, 콘텐트 역량을 발전시키고 기술 연구를 거듭해 세계를 호령하는 콘텐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그룹 목표다. 또 전문가 네트워크를 강화해 그룹의 창조성을 강화해나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모든 사업은 이야기를 짜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화면에 표현하면 영화, 책에 적으면 소설, 공간에 입히면 전시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을 넘어 세계에, 또 현실을 넘어 가상에 우리 이야기를 써 내려갈 계획입니다.”


정하은 인턴기자 jung.haeun@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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