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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예능 인기순위 1등 공신은, 출연자 아닌 연출자의 역할!

한때 <명작스캔들>이라는 TV 교양프로그램에 MC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음악·미술의 명작들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PD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료 영상을 준비해왔다. 그 영상을 보고 스튜디오의 전문가들이 서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취지도 좋았고, 내용도 아주 훌륭했다. 타 방송사 PD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며 해외에서 상도 받아왔다. 그러나 시청률을 매번 바닥이었다. 개편철만 되면 매번 프로그램 폐지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1년 조금 넘기고 <명작스캔들>은 폐지되었다.




스튜디오에 초청된 전문가들이 굳은 표정으로 어려운 단어만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영역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면 밥줄이 끊긴다고 생각한다. 좀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돌팔이’ 소리 듣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PD 중에 항상 즐거운 표정의 송영석 PD가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굳은 표정의 ‘교양국’ 소속의 교양스러운 PD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그에게 전문가들의 멘트가 너무 지루하니, 화면 아래에 좀 재미있는 ‘자막’을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사람 참 좋은 송PD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 다음 녹화 후, 그는 화면 아래 온갖 흥미로운 자막을 집어넣었다. 실제로 자막이 들어간 방송은 이전보다 훨씬 재미있었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다음날 송PD는 교양국의 윗사람에게 호출당해 호되게 야단맞았다. ‘교양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했다’는 이유였다.


명작스캔들



예능 프로그램 구별 요인


언젠가부터 ‘예능’이라는 용어가 아주 익숙해졌다. ‘예능’이란 TV프로그램의 한 분야를 뜻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사실 2000년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이란 아주 낯선 용어였다. 그 이전의 TV프로그램은 대충 ‘드라마’, ‘쇼’, ‘오락’, ‘시사교양’ 등으로 나뉘었다. ‘예능’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쇼’나 ‘오락’이란 용어 대신 ‘예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예능’은 원래 예술적 능력을 지칭하거나 연극·영화·음악 등의 영역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단어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의 뜻으로만 쓰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능’은 상당히 헷갈리는 용어다. 도무지 기준이 애매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예능 프로그램’이고, 어디부터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걸까?


‘자막’이다. TV의 자막 유무가 ‘예능 프로그램’과 여타 프로그램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송PD가 교양국의 윗사람에게 혼나고 온 것도 예능국의 전유물인 ‘자막’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교양국PD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그 따위 유치한(?) 예능적 자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는 줄 나는 전혀 몰랐다.


예능 자막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 자막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박명수나 유재석일 경우도 있지만, 꼭 두 사람의 대화내용일 필요는 없다. 자막의 주인은 시청자일수도 있고, 장면을 편집하는 PD일수도 있다. 상황의 자세한 설명일 때도 있고, 의성어·의태어일 수도 있다. 요즘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스(CG)까지 동원된다. 


출연자의 얼굴에 땀이나, 눈물을 그려 넣기도하고, 눈의 색깔이 빨갛게 변하거나, 머리 뒤로 태풍이 불어오기도 한다. 이같이 화려한 자막으로 야기되는 시청자의 감각적 경험은 자막이 없을 때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무한도전>이 그토록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자막’의 기술에 있다. 자막의 기술은 PD의 영역이다. 물론 작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영상의 편집과 맞물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에 자막을 넣는 이는 PD다. 


수십대의 카메라가 녹화해 놓은 화면을 오직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해내야 하는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다. 뛰어난 에디톨로지적 능력을 발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토록 인기가 있는 거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맞춤영상정보 서비스(VOD, video on demand)’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시간에 맞춰 TV앞에 앉아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스마트폰만 켜면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만 타면 죄다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쪼그리고 있는 거다. 전 국민이 거의 영상중독이다.



예능 자막


예능 프로그램식 자막 편집은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나타난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다. ‘예능(藝能)’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다. 일본에서는 쇼나 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을 통틀어 ‘게노진(げいのうじん, 芸能人)’이라 부른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노진의 숫자는 엄청나다.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수십 명씩인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이들 각자가 내는 목소리는 대위법적 폴리포니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거의 소음 수준이다. 게다가 출연자들의 목소리만큼이나 다양한 자막이 화면 좌우상하를 날라다닌다. 


자막의 크기나 색깔, 모양 또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자막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이 이토록 ‘화려(?)’한 까닭은 자막의 기원이 일본만화, 즉 ‘망가(漫畵)’의 풍선글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예능 감독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라 할지라도 감독의 편집이 조금만 처져도 아주 쉽게 망가진다. 요즘 로버트 드 니로가 그렇다. 예전의 그 폼나는 연기자가 아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3류다. 처지는 감독들이 그 훌륭한 연기자를 그렇게 망쳐놓는 거다. 말년의 말론 브란도 또한 그랬다. <대부>나 <지옥의 묵시록>에 나온 그가 아니었다. 이들에 비하면 알 파치노는 나름 잘 버티는 듯하다.


예전에는 누가 주연배우인가가 영화를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했다. 감독이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감독이 누구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감독했다면 일단 믿고 본다. 감독의 역량이 영화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임을 대중도 알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음악이다. 


최근 감동 받았던 영화를 한번 기억해보라. 그 영화에서 음악이 빠졌다고 생각해보라. 우리가 받을수 있는 감동의 양을 절반 이하로 확 줄어든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거다. 화면이 커서가 아니다. 영화관을 꽉 채우는 영화음악 때문이다. 음악은 공간이 악기다. 어느 공간에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 사실 화면에서 진행되는 스토리에 몰두하느라 관객들은 배경음악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영화음악이 중요한 거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화는 배경음악으로 완성된다. 바로 이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 감독의 에디톨로지적 역량이다. 화면과 화면의 편집을 통한 몽타주기법, 그리고 화면과 음악의 편집을 통해 총체적 에디톨로지로서의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이제 가상현실과 영화, 게임 등이 편집되면 또 어떤 에디톨로지의 세계가 펼쳐질까 아주 궁금해진다. 그래서 아주 오래살고 싶은 거다.


김정운 문화장조학자

[월간중앙, 201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