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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명화 속 음식 이야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그림에는 음식 재료가 자주 등장한다. '피는 꿀보다 달다', '굶을지언정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다'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명언도 많이 남겼다. 자신의 작품을 남들에게 소개할 때도 그는 요리 용어를 자주 끌어오곤 했다.


달리는 상처 많은 소년이었다. 그의 부모는 첫 아들을 일곱 살에 잃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죽은 형의 그림자는 3년 후에 태어난 달리를 뒤덮었다. 형의 망령에 사로잡혀 늘 "큰 애였더라면..."이라는 말을 하던 부모로 인해 달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는 언제나 남들이 볼 수 없는 환상을 봤다. 지하철을 혼자서는 타지 못했고, 차들이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환상 때문에 길을 건너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그 심리적 원인의 비밀을 찾은 달리는 프로이트를 찾아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기도 했다. 물론 매번 퇴짜를 맞았지만. 그리고 이듬해에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 달리, 달걀, 그리고 달걀 프라이


달리의 그림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는 바로 '달걀'이다. 


실바도르 달리 나르시스의 변신


'나르시스의 변신'이라는 작품을 보면, 고개를 숙인 채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슬프게 바라보는 달리의 모습이 나르시스가 돼 왼편에 앉아 있다. 그 옆으로는 나르시스와 아주 비슷한 형상으로 손가락이 있고 그 위로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이 보인다.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수선화가 활짝 피어올라와 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없었던 외로운 소년 나르시스의 영혼이 수선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접시 없는 접시 위의 달걀들'에서는 접시 위에 달걀 프라이 두 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달걀 프라이 하나가 실에 묶여 매달려 있다. 달리는 달걀 프라이를 엄마 뱃속에 있었던 기억으로 묘사한다. 


"내게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곳은 파라다이스였다고. 무엇보다 파라다이스는 따뜻했고, 고요했으며, 부드러웠고, 균형이 있었으며, 두터웠고 끈끈했다. 내가 본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이미지는 프라이팬 없이 떠다니는 달걀 프라이였다. 그 이미지는 일생을 두고 환각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살면서 혼란이나 흥분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는데 그 저변에는 반드시 달걀 프라이의 환각이 있었다."


그러니까 달걀은 질서가 생기기 이전의 카오스, 즉 무의식의 세계를 뜻하는 모양이다.



▦ 괴짜 달리가 사랑한 여인, 갈라


달리는 여자 옷처럼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고, 익살스럽게 꼬부라진 콧수염으로 유명하다. 또한 유머감각이 기괴한 편이어서, 한 번 웃기 시작하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그가 웃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열 살 연상의 여인, 갈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인 프러포즈 역시 특이하다. 


달리는 알몸에 지저분한 것들을 마구 묻힌 채 썩은 양파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면도칼로 몸에 상처를 내 피를 보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무정한 여자였던 갈라에게 이런 자해적인 유머가 효과를 봤는지, 갈라는 전 남편과 이별하고 달리의 품으로 왔다.


실바도르 달리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바로 갈라이다. 하필이면 왜 구운 갈빗대를 부인의 어깨에 걸쳐 놓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달리는 "그건 구운 갈비가 아니라 생 갈비에요."라고 답했다.


"구운 갈비이건 생 갈비이건, 왜 갈빗대를 부인과 함께 그렸냐고요?" "나는 양 갈비를 좋아하고, 내 아내도 좋아해요. 그러니 그 둘을 함께 그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나요?"



▦ 달리의 초현실적 상상력의 근원, 카탈루냐 요리


달리는 스테이크를 거의 생고기로 먹었다. 가끔 식욕을 돋우기 위해 뜨끈뜨끈한 황소의 피를 음료 삼아 마셨는데, 이때 그가 남긴 말이 "피는 꿀보다 달다"였다. 어린 시절 부엌은 그가 들어가지 못하는 금지된 구역이었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하녀들 몰래 부엌에 들어가 생고기를 훔쳐 달아나 숨을 헐떡이며 꿀맛 같은 피맛에 도취됐다.


카탈루냐 사람이었던 달리가 좋아했던 카탈루냐 요리는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는 편이다. 어떤 음식은 14세기 조리법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또한 카르타코인, 로마인, 무어인, 프랑크족, 서고트족, 그리스인 등 그 땅을 정복했던 각 종족의 요리가 혼합되어 있어서 더욱 독특한 맛을 자랑했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이 낯선 요소와의 만남을 통해 익숙치 않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듯, 카탈루냐 요리도 낯선 재료와 이질적인 소스가 결합해 구미를 돋운다. 재료와 맛이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면서, 맛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폭을 한층 더 확장하는 요리다. 아마 달리의 초현실적인 상상력은 서로 낯선 재료들을 어우러지게 하는 카탈루냐 요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