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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미국 자동차 브랜드의 자존심, 지프 랭글러 루비콘


지프 랭글러 루비콘


독일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요즘, 고군분투하는 미국 브랜드가 있다. 사륜구동의 명가 지프다. 수입차 가운데 한국 소비자에게 가장 홀대(?)받는 미국 차 중에서 지프는 고유의 개성 덕분에 유일하게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프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지프니까 그저 좋아서, 지프이기 때문에’ 구매를 한다. 탁월한 동력 성능이나 편의 장치에서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다. 지프만의 디자인과 문화적 헤리티지 때문이다. 지프 오너는 ‘개성이 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런 강한 브랜드 파워가 쌓이면서 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연 평균 20% 이상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요즘 매년 국내에 쏟아지는 신차는 수입차를 포함해 50종이 넘는다. 기본 성능이 사실상 비슷하기 때문에 브랜드와 디자인이 다를 뿐 성능 격차는 따지기 어렵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차가 중요하다. 지프가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지프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미국인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지프 오너들은 몸을 편하게 해주는 편의장치나 운전을 돕는 보조장치보다는 지프를 통해 미국의 아이콘을 찾아 나선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때로는 불편을 즐기면서 지프를 탄다. 지프를 타면 '도전적인 사람'이라는 시선과 평가가 쏟아진다. 도대체 지프에 녹아 있는 '헤리티지'는 무엇일까. 




지프의 시작은 2차 세계대전이다. 독일은 월등한 기동력을 앞세운 사륜구동 차량으로 미국과 연합군을 압박했다. 이에 미국 국방부는 곧바로 사륜구동 군수차 개발에 착수했다. 목표는 ‘최고 시속 80km, 차체 무게 590kg, 적재량 0.25톤, 승차 정원 3명’ 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1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을 했다. 아메리카 밴텀, 포드, 윌리스-오버랜드 등 3개 회사가 경합을 한 끝에 1941년 이 조건에 맞는 군용차 업체로 윌리스 오버랜드의 ‘윌리스MB’가 낙찰됐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군용 지프의 용도가 사라지자 민간용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윌리스MB는 맵시 있게 외관을 다듬어 민간용 ‘CJ Civilian Jeep’ 시리즈로 탈바꿈했다. 물론 험로 주파 능력과 개성 만점 디자인은 그대로 계승했다. 처음에는 농부나 건설현장 노동자가 주요 고객이었으나 점점 산악도로 주파나 캠핑카 같은 레저용으로 용도가 다양해졌다. 이에 맞춰 디자인도 꾸준하게 바뀌었다.

지프는 사실상 불편한 차였기 때문에 매니아층은 두터웠지만 대중까지 확산하기는 어려웠다. 별도의 운전기술이 있어야 했고 승차감은 형편없었다. 이런 단점을 완벽하게 개선하고 대박을 터뜨린 차가 1983년 출시된 ‘체로키’다. 성능과 디자인은 지프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 편의장치를 듬뿍 달았다. 


럭셔리 지프의 원조 격으로 미국 상류층의 레저용 차로 인기를 끌면서 SUV 붐을 가져왔다. 처음부터 군사용이었던터라 지프는 2000년대까지도 이런 전통을 고수했다. 그래서인지 편의장비가 거의 달려있지 않다. 그러나 요즘 신차는 예전에는 손발을 써야 했던 것을 전자식으로 바꿔 전자제품인지 자동차인지 모를 정도로 전자장비가 잔뜩 달려 있다.

지프의 슬로건은 ‘자연 생활로 돌아가자’이다. 군용 지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랭글러의 시트는 아직도 수동으로 움직인다. 창문과 불과 3~4년 전까지 손으로 돌리는 방식이었지만 요즘에는 전동식으로 변경됐다. 차량 지붕도 손으로 나사를 풀어 열어야 한다. 버튼만 누르면 20초 만에 열리는 전동식 컨버터블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크라이슬러코리아가 판매하는 지프 모델 가운데 대표 모델은 두 가지다. 아웃도어의 전설 랭글러와 럭셔리 SUV 그랜드 체로키다. 랭글러에는 초대 모델 윌리스MB와 최초 민간용 사륜구동 차량 CJ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지프의 개성적인 디자인과 독보적은 험로 주파능력이 그대로 전수되었다. 1986년 첫 선을 보인 이 차는 전세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오프로더(험로 주행차량)’로 꼽힌다. 자유와 모험이라는 미국적 아이콘을 대표하는 랭글러 시리즈 가운데 인기 모델은 루비콘이다.


그랜드 체로키


컴패스




고급 스포츠카를 타는 자동차 매니아도 랭글러는 구입 대상 1순위에 오른다. 캠핑같은 아웃도어 바람이 불면서 랭글러 판매는 날개를 달았다. 산악 험로를 주파해 자연 깊숙한 곳에서 오지 캠핑을 하는 다이나믹한 드라이빙의 재미는 랭글러만의 독보적인 가치다. 더구나 5인승의 적재 공간은 자전거 한 대가 통째로 들어갈만큼 광활해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이런 이유로 중고차 시장에서 랭글러는 ‘제 값을 받는 몇 안되는 미국차’로 꼽힌다.

루비콘의 외관 디자인은 1972년 역사의 지프 디자인 유전자 그대로다. 직사각형 덩어리 차체에 원형 헤드 램프와 7개의 막대기 형태로 구성된 7슬롯 그릴이 대표적이다. 나사로 연결된 세 조각의 지붕은 정통 오프로드를 즐길 때 떼어낼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험로 주파 성능이다. 커다란 타이어에다 파트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달아 오프로드에서 경쟁 모델을 제압한다. 


동력장치는 연비 좋은 디젤이다. 2.8L 디젤 엔진은 최고 200마력, 최대 토크 46.9kg/m의 넉넉한 힘을 낸다. 연비는 가솔린 엔진에 비해 30% 이상 좋아진 9.4km/L다. 편의장치도 보강됐다. 예전 랭글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오토 라이트 기능 뿐 아니라 후방 카메라, 타이어 공기압 디스플레이도 적용됐다. 안전 주행을 도와주는 전자식 주행안전장치(ESC), 전자식 전복방지 시스템(ERM), 내리막 주행제어장치(HDC), 언덕 밀림 방지 장치(HSA)도 달려있다. 가격은 4인승 4940만원, 5인승 5140만원. 내비게이션 같은 편의장치를 추가한 최고급 모델인 랭글러사하라는 5440만원이다.




그랜드 체로키는 오프로드 성능은 그대로 간직한 채 도심 생활에 적합하게 개발한 차다. 일반도로에서 시속 200km까지 달리는 주행성능과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출퇴근과 레저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독일 럭셔리 SUV에 뒤지지 않는 인테리어와 편의장치를 보여준다. 우선 외관 디자인에서 지프만의 위풍당당함을 뽐낸다. 여기에 모던하고 고급스러움이 추가됐다. 헤드램프와 안개 등이 더 날씬해진데다 앞부분 하단 범퍼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도시적 감각을 물씬 풍긴다.

실내는 최고급 가죽 소재인 나파 천연 가죽으로 실내를 감쌌다. 사륜구동은 기본이다. 눈길 오프로드 등 5가지 주행 조건에 적합한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을 달아 초보나 여성 운전자도 손쉽게 구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 고급형인 오버랜드 서밋 모델은 첨단 전자장비인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차고를 56mm 높이거나 41mm까지 낮출 수 있다. 고속주행과 오프로드 성능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승, 하차할 때 편리하다.

이 차의 엔진은 두 가지다. 2.41마력에 최대 토크 56.0kg/m에 연비 11.7km/L를 내는 3.0L V6 터보 디젤, 286마력에 최대토크 35.4kg/m, 연비 7.8km/L의 3.6L V6 가솔린이다. 두 엔진 모두 독일제 ZF 8단 자동변속 기가 궁합을 맞췄다. 편의장치는 럭셔리 승용차와 맞먹는다. 전방 추돌 경보 시스템, 레이더로 앞차와의 거리를 조절하고 정지까지 해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젖은 노면에서 브레이크 효율을 높여주는 ‘레인 브레이크 서포트 시스템’ 같은 첨단 안전장치가 대부분 적용됐다. 한국어 음성인식이 가능한 8.4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은 쓰임새가 좋다. 가격은 디젤 6890만~7790만원, 가솔린 699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