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사망한 지 20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인들은 그가 영웅인지 악당인지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퐁텐블로 성에서는 매년 나폴레옹을 기리며 그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고 나폴레옹의 열성적인 팬들은 모두 자비로 수천 유로를 들여 옷을 해 입고 무보수로 이 행사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성 팬들과는 달리 나폴레옹을 차갑게 바라보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이 의견 대립에 대해 파리 나폴레옹 재단의 영국 역사학자 피터 힉스 교수는 “이 견해는 대체로 정당을 기준으로 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좌파에서는 나폴레옹을 괴물로 보는 ‘검은 전설(black legend)’이, 우파에서는 지속성 있는 제도를 만든 강력한 지도자로 보는 ‘황금의 전설(golden legend)’이 전해 내려온다”고 덧붙였다.

나폴레옹


1989년 프랑스 정부는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반대파 수천 명을 단두대로 처형한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공식적으로 기념했다. 하지만 나폴레옹과 관련된 기념일은 공식적으로 기려지지 않는다. 일례로 10년 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나폴레옹 최대의 군사적 승리로 일컬어지는 오스테르리츠 전투 200주년 기념식을 거부했다. 힉스 교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역사의 일부가 아닌 듯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2010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묻는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프랑스 점령 당시 망명지 런던에서 프랑스를 이끌었으며 전후에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 골 장군에 이어 나폴레옹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파리 거리에 세워진 나폴레옹의 동상은 단 두 개 뿐이다.



나폴레옹을 쏙 빼 닮은 상송은 "나폴레옹은 합당한 만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를 재건했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그는 후대에 긍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하지만 공화파는 자기네 파가 아니면 무조건 싫어한다."

파리 소르본대 교수이자 나폴레옹 연구소의 소장인 자크 올리비에 부동은 "나폴레옹과 관련해서 프랑스 여론은 깊이 분열되어 있다. 한쪽은 그를 위대한 사람, 정복자, 군사 지도자로 존경하지만 다른 한 쪽은 피에 굶주린 폭군, 혁명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비난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권위주의를 꾀한다거나 훌륭한 공화주의자가 아니라는 비난을 들을까 두려워 좀처럼 나폴레옹을 언급하려 들지 않는다."


나폴레옹 초상화


올 3월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나폴레옹의 폐해(The Napoleonic Evil)>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 대립이 다시 한번 불거졌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면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스팽은 "나폴레옹은 명백한 패배자다. 그가 물러날 당시 프랑스는 고립되고 패배한 나라였다. 다른 나라에 점령 당하고 지배를 받았으며 미움을 샀고 이전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더구나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으로 깨어난 해방 세력을 질식시켰다. 그리고 군주제의 생존과 부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동시에 최대 규모의 나폴레옹 협회인 '나폴레옹의 기억(Napoleonic Memory)'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편집인 다비드 샹터란은 나폴레옹의 업적을 열거했다. 


민법 제정, 국무회의 창설, 프랑스 중앙은행 설립, 국가감사원 설립, 중앙집권화되고 일관된 행정체제 수립, 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 '에콜노르말'로 알려진 사범학교 설립, 상공회의소 창설, 미터법 실시, 종교의 자유 인정 등. 샹터란은 "그는 프랑스의 구세주였다."며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프랑스 공화국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관은 오늘날까지 제 기능을 하며 프랑스 사회를 떠받친다. 이탈리아와 독일, 폴란드 등 나폴레옹이 정복한 나라들이 실제로 이 중 다수를 모방했으며 그것들은 현대국가의 근간이 됐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나폴레옹 학자 장 튈라르도 나폴레옹이 현대 프랑스의 건축가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또한 그는 만약 나폴레옹이 왕정주의자들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1799년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프랑스는 군주제와 봉건제도로 회귀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폴레옹


"고대 로마의 킨키나투스처럼 나폴레옹은 대중 구원을 위한 독재를 원했다. 킨키나투스는 독재 집정관(국가 위기 사태의 해결을 위해 원로원에서 임명)으로 일하는 동안 전권을 쥐고 있었지만 위기 상황이 끝나자마자 미련없이 농부로 돌아갔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구질서가 회복되지 않았다. 1814년 루이 18세가 황제에 즉위한 후 그는 입헌군주제를 실시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는 로마 황제처럼 옷을 입은 나폴레옹이 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석고상 등 제1제국의 미술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 스테판 게강은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에 매료되는 현상을 '국가적 질병(a national illness)'이라고 표현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이끌렸다. 요즘도 나폴레옹에 적대적인 사람들조차 그의 매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는 혁명에서 출발했고 그것을 확장시켰으며 완수했다. 그리고 1804년 이후에는 폭군이요 독재자가 되었다." 프랑스에는 독재가 아니라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일종의 향수가 있다고 게강은 말했다.

나폴레옹에 매료되는 건 프랑스인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의 수백 개 단체가 나폴레옹을 존경하고 그에 관히 연구하고 논의한다.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갖춰 입고 그가 이끌었던 전투를 재현하고 화려한 무도회와 행사를 연다. 북미에서 활동하는 나폴레옹 학자로 국제 나폴레옹 협회의 회장인 J 데이비드 마크햄은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에 매료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전세계가 그에게 매료되었다.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그에 관한 책이 더 많이 쓰여졌다."

나폴레옹 관련 수집품은 유럽과 북미의 경매장에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최근 호주 멜버른의 한 박물관에서는 나폴레옹의 머리카락과 반지 등 유물이 도난당했다. 프랑스의 한 경매에서는 나폴레옹이 임종 당시 입었던 때묻은 잠옷용 셔츠가 매물로 나왔다가 철수되었다. 원래 소장자의 후손들이 외국인에게 유품이 팔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유품의 매각을 방지하는 법원의 금지명령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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