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논란이 뜨겁다. 환경부와 산업계는 이 문제를 놓고 수년 째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오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면 도입해야 마땅하지만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계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밀어붙여 국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환경부의 입장도 강경하다. 최근 업종별 탄소배출 할당량이 결정되고, 10월이면 기업마다 개별 할당량이 정해진다. 2015년에 본격적인 거래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지금 합의점을 찾는다고 해도 기업이 대응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환경부와 산업계가 ‘윈-윈’ 하는 묘안을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환경부가 내년부터 시행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위한 업종별 배출권 할당량을 발표한 후 터져나온 산업계의 반응이다. 환경부는 2017년까지 배출권 거래제 적용대상 업체의 배출 총량을 16억4000만t으로 정한다고 5월 27일 발표했다. 산업계는 즉각 불만을 표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와 철강협회 등 18개 주요 업종별 단체는 6월 1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환경부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발표대로 시행되면 3년간 최대 28조 500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는 게 산업계의 주장이다. 환경부는 반박했다. “산업계가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과장하며 환경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녹색성장을 강조한 이명박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2020년까지 한국의 온실가스 발생량을 자발적으로 30% 줄이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를 위한 핵심 정책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먼저 업종별로 할당량을 정해 기업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준다.
기업이 이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추가로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온실가스 줄이기에 노력해 할당량보다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남는 만큼의 배출권을 팔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은 시장에서 주식처럼 거래된다. 시행 초기에는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하면 일반 투자자도 이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 파는 게 가능하다.
이 제도는 도입 취지나 명분에서 큰 문제는 없다. 시장 논리를 도입해 기업 스스로 환경을 지키며 성장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과 일부 국가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도 최근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온실가스 거래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매번 기업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다 2012년 5월 우여곡절 끝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 해 11월 14일에는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나왔다. 수차례 공청회와 토론회를 통해 산업계와 학계, 시민단체의 의견도 수렴했다.
올 1월 28일에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첫 기본 골격을 짜는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하는 게 목표다. 5월 27일에는 배출권 발행 총량과 업종별 할당량을 결정했다. 오는 7월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 거래제 참여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
기존의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제에 참여 중인 650여 개 기업 중 규모가 큰 500여 개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참여 기업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10월에는 업체별로 최종 배출권을 할당받는다. 본격적으로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1월부터는 배출권 거래기관인 한국거래소(KRX)나 장외거래를 통해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당사자인 산업계는 격앙되어 있다. 경기침체와 비용부담이 그 이유이다. 산업계는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산업계가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도입을 하더라도 시기를 늦춰줄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19일 대한상공회의소를 포함한 경제 5단체와 주요업종별 15개 협회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정책 추진 관련 산업계 공동 건의문’을 국무조정실 등 정부 관련 부처와 국회에 전달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운 2009년과 달라진 경제 여건을 고려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실효성 있게 재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산업계는 정부의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해마다 최소 수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2009년 예상한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보다 2010년 실제 배출량이 더 많았다. 이런 추세를 유지하면 2020년에는 정부가 예상한 8.13억t보다 많은 8.99억t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전망이다. 예상치 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상황에서 2020년까지 6.69억t이라는 정부의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펼친다면 기업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정면돌파할 생각인 듯하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목표치를 하향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최근 정부가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여서 이러한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하지만 환경부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목표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배출권 발행 총량과 업종별 할당량을 결정한 5월 27일 이전까지 약 두세 달 간 환경부와 산업계 사이에는 ‘미묘한 평화’가 유지됐다. 그동안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던 산업계와 경제계 단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2~3개월 사이 환경부와 산업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업계 관계자는 앞에 나서서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가 칼을 쥐고 있는 환경부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기업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밀어붙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기업의 최대 관심사는 ‘배출권 할당량’에 쏠렸다. 업종이나 기업별로 얼마의 배출권을 할당 받는가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만약 온실가스 배출권에서 손해를 보지 않더라도 각종 환경평가나 조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크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강하게 반대하는 몇몇 단체에 환경부가 압력을 넣었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환경부가 대한상의 쪽 온실가스 담당자에게 ‘다른 단체는 정부 정책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대한상의만 혼자 강하게 반대한다’며 불만을 전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한상의가 환경부와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 게 쉽지 않았던 상황이다.”
환경부 측은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할당량은 환경부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부처와의 협의를거쳐서 업종별 할당량이 결정되기 때문에 할당량을 무기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난해 말부터 환경부가 개별 경제단체와 협회를 찾아 정책 취지를 설명하고 토론회를 여는 등 설득 노력을 했다. 그런 정부의 취지에 산업계가 공감을 했기 때문에 예전처럼 강하게 반대입장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환경부의 해명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본지가 접촉한 대부분의 경제단체나 협회는 ‘공감’ ‘찬성’이라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해) 어떠한 발언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산업계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5월 27일 발표 이후 산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산업계 입장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합리적인 범위에서 총량을 결정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수용하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결정에 대한 산업계의 의견은 ‘정부가 2009년에 조사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배출 총량 기준을 세웠다. 지금 기준대로면 대부분의 기업이 할당량을 초과하게 된다. 모두가 할당량을 초과하면 구매할 배출권조차도 없다. 배출권이 없으면 t당 10만원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발전업계나 에너지업계는 13조원이 넘는 돈을 과징금으로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낮게 측정된 총량은 둘째치고, 그에 대응할 만한 시간이 없다. 당장 내년부터 5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말 이를 위한 테스크포스팀(TFT)을 별도로 구성했다. 정부는 최대한 많은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 적절한 할당량을 산정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TF팀이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다. 이제 총량이 정해지고 기업별 할당량이 10월에 정해지는데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경북 구미와 경남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부산에 소재를 둔 한 제조업체 대표는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적용 시기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당량을 산정할 때 기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참조한다는 지침이 있다. 최근 3~5년의 배출량이 근거가 될 것 같다. 지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것이 기준이 돼 기업별 할당량이 산정이 될 수 있어서 배출량 거래제 시행 이후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할당량에 선정에 대한 정확한 세부사항을 기업에알리지 않아 생긴 웃지 못할 일이다.
답답한 것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많은 기업이 자사가 생산하는 제품에 저탄소 인증을 받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V·노트북·냉장고 등 40개 제품에 저탄소 인증을 받았다. LG전자는 33개 제품,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제품에 저탄소 인증을 받았다.
대기업들이 저탄소 인증을 받으려는 이유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영향이 크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온실가스 배출량 또는 기술수준, 대상 업체의 예상 성장률,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정도를 감안해 할당량을 정하도록 했다. 저탄소 인증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것으로 참작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저탄소 인증을 받으면 제품 판매나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면서도“정부가 세부적인 할당 기준을 밝히지 않아 (저탄소 인증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외 몇몇 기업은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제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목표치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에 따라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부과하는 제도다. 현재 650여 개 기업이 대상이다.
이 중 500개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로 옮겨가고 남은 150여 개 기업에 한해 기존대로 유지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로 옮겨 가는 기업이 그동안 목표치 대비 얼마를 저감했는지를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정도에 참작되기를 기대해서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할당 총량이 정해졌고 10월에 기업별 최종 할당량이 정해진다”며 “그 사이에 여러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업종별 총량이 정해졌으니 산술적으로 계산만 하면 기업이 대강 어느 정도의 할당량을 받을지 알 수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할당량이 결정된 다음도 문제다. 정부가 아무리 공정하게 기업별 할당량을 정한다고 해도 기업별로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개별 기업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환경부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최종 할당량이 결정되는 시기는 10월이다. 내년 1월부터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이 되는데 정부와 협상을 벌일 시간이 촉박하다. 박근혜정부가 이전 정부가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이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상, 산업계와 환경부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