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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에도 계약서가 필요하다?

사회의 한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효도 계약서.  하지만 효도를 계약하는 것은 거부감이 있다. 천륜인 효도를 계약으로 강제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도 계약과 부동산 계약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효도 계약서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민법 제561조는 ‘상대부담 있는 증여에 대해서는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쌍무계약’은 계약의 당사자 모두에게 의무가 있는 계약으로 부동산 거래 계약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부동산 계약을 하면 부동산 소유자는 그 등기를 상대방에게 넘겨줄 의무를 부담하고,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은 그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처럼 한 계약으로 두 가지 의무가 발생하는 것을 쌍무계약이라고 한다. 쌍무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이 그 의무를 이행했음에도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당사자 일방은 계약의 해제권을 행사해 그 계약을 없던 일로 할 수 있다. 부동산의 소유자가 부동산을 넘겨주었는데, 매매대금을 받지 못했다면 그 계약을 해제하고 이미 넘겨 준 부동산을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효도 계약서의 원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법 제561조의 ‘상대부담 있는 증여’라는 것은 자녀를 ‘상대’로 효도라는 ‘부담’을 지워 ‘증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처럼 효도 계약서를 작성할 경우 부모는 부동산을 넘겨줄 의무를 부담하고, 자녀는 부모를 방문하는 등 효도를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쌍무계약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후 자녀가 효도 계약서상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민법 제561조에 따라 마치 부동산 계약에서 부동산 구매자가 매매대금을 내지 않는 것과 같은 법률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는 부동산 등기를 자녀에게 해주었더라도 그걸 취소하고, 다시 부모 앞으로 명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효도 계약서는 '조건부 증여'

자산의 대물림 방식은 크게 상속과 증여로 나눌 수 있다. 상속의 장점은 배우자 공제, 자녀 공제, 금융재산 상속 공제, 동거주택 상속 공제 등 각종 공제가 많고, 그 공제의 양도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배우자 상속 공제의 경우 최대 3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상속의 단점은 사망 시기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증여의 가장 큰 장점은 증여의 ‘시기’와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담을 하다 보면 자산의 대물림 방식이 ‘상속에서 증여로’ 바뀌고 있는 현상도 감지된다. 특히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른 시기에 자녀나 친척들을 상대로 증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효도 계약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건부 증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효도라는 조건을 붙여 증여하는 것이다. 효도 계약서 샘플은 그림과 같다. 효도 계약서 작성 요령은 간단하다. 부동산 계약을 떠올리면 쉽다. 작성 요령은 ①부모가 자녀에게 부동산 등을 증여할 것을 약정하고 ②자녀에게 부동산 대금 대신 ‘효도의무’를 다할 것을 조건으로 설정하면 된다. 다만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으로 ③자녀가 약속한 효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동산 등 증여하겠다는 물건을 다시 찾아온다는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한편 자녀나 손자, 사위, 며느리 등에게 사전에 증여하는 게 상속세를 줄일 수 있는 팁이다. 그 이유는 ①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 남아 있는 재산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점 ②피상속인 사망 당시 남긴 재산이 공제를 한 후에도 30억원이 넘는 경우, 그 초과 부분에 대해 50%에 달하는 고율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는 점 ③피상속인의 사망 당시 남아 있는 재산이 적을수록 상속세가 줄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위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는 ‘증여’ 열풍이 불기도 했다. 국세청의 2015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증여세 납부 인원은 10만 명을 넘어섰고, 과세표준은 25조원으로 역대 최대에 이르렀으며, 3조 5000억원에 가까운 증여세 결정세액을 기록했다.


하지만 과도한 증여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녀에게 재산을 주는 것은 좋지만 적절한 법률적 검토를 받지 않아, 가족 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분쟁 유형은 크게 증여자의 사후에 일어나는 분쟁과 증여자의 생전에 일어나는 분쟁으로 나눌 수 있다. 증여자 사후에 발생하는 분쟁의 대표적인 예는 유류분 분쟁이 있다. 유류분 분쟁은 특정한 자녀에게만 재산을 몰아서 증여한 경우, 다른 상속인들이 특정 상속인이 증여받은 재산의 일부를 돌려달라는 형태로 진행된다. 증여자의 생전에 발생하는 분쟁의 대표적인 경우로 ‘부모의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이후 부모에게 효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위와 같은 분쟁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서는 효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양한 형태로 효도 계약서 응용이 가능하다

효도 계약서는 2015년 12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부모가 자녀에게 20억원 상당의 전 재산을 증여했는데 자녀가 이후 부모 부양을 소홀히 하자 혹시나 해서 작성해뒀던 효도 계약서를 근거로 부동산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대법원은 부모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는데, 효도 계약서가 없었다면 승소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줄 때 반드시 ‘효도’만 조건으로 걸 필요는 없다. 당사자 합의만 된다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떤 조건을 넣어도 된다. 또한 반드시 ‘자녀’에게 재산을 줄 필요도 없다. 수증자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므로 사위나 며느리에게 재산을 줘도 되고, 손자에게 줘도 무방하다. 이른바 효도 계약서를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액 자산가들은 다양한 형태로 효도 계약서를 응용하고 있다. ①수익형 상가를 자녀에게 증여해 주되, 상가 월세의 일정 비율을 자신에게 돌려달라는 조건을 붙이는 ‘알뜰형’ 효도 계약서, ②손자뿐 아니라 사위, 며느리에게 재산을 주는 ‘화목형’ 효도 계약서, ③자녀가 없는 경우 ‘조카’ 등 친척에게 재산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노후 및 제사를 부탁하는 ‘후견형’ 효도 계약서를 예로 들 수 있다. 효도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 과도한 조건을 거는 것은 곤란하다. 1억원 상당의 재산을 주며 10억원 상당의 의무를 부과한다거나, 매일매일 부모를 방문하라는 조항처럼 그 자체로 실현이 힘든 조항을 넣는 것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