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 내에서, 여왕벌은 군림하지 않고 집단 운영 체제를 유지한다.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집단을 이끌어오는 모습은 말 그대로의 민주적 의사결정이다.
육지에서 가장 덩치가 큰 동물은 코끼리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코끼리 수컷은 5t이나 나간다. 덩치가 클수록 짝짓기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포식자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기에 가능한 한 덩치를 키우는 쪽으로 진화를 해온 덕분이다. 초원의 제왕인 사자도 슬슬 피할 뿐 덤비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 코끼리들이 아주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다. 덩치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꿀벌들이다. 웬만한 크기의 아카시아 나무를 무 뽑아내듯 하는 게 코끼리들이지만 그 나무에 벌집이 있다 싶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벌집이 비었든 아니든 무조건 피하고 본다. 영국의 생물학자 루시 킹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코끼리들은 벌들이 내는 ‘붕붕’ 소리만 들어도 줄행랑을 친다. 달리면서 주변 코끼리들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경고까지 한다. 사자도 어쩌지 못하는 코끼리들의 취약 부위인 눈, 코 뒤, 귀밑 등을 사정없이, 그것도 죽을 때까지 끈질기게 공격하니 그 큰 덩치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이런 생존력은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와 같다. 사실 우리도 가능하면 벌통을 건드리지 않지 않는가? 꿀벌의 이런 능력은 물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닐 것이다. 꿀벌의 기원을 아주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려 1억 년 전, 그러니까 공룡들이 이 지구를 어슬렁거리던 시절까지 간다. ‘내력 있는 가문’이라는 건데, 생태계에서 한 종이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도 번성한 상태로 살아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지시하고 통제하는 존재 없이 상호 소통
꿀벌 집단은 거의 대부분 한 여왕벌과 일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벌들은 모두 여왕의 딸이자 서로는 자매들이다. 그러니까 모두 한 가족인 혈연사회다. 그래서 기계적일 정도로 헌신적인 협력을 이뤄내는 걸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꿀벌의 헌신적인 협력에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한 몫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가장 똑똑하다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도 아직 완전히 해내지 못하고 있는 걸 이 작은 꿀벌들이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일단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인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집단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 꿀벌 공동체의 운영 방식은 인간과는 다르다. 여왕벌은 필수 존재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여왕벌이 하는 일은 한 가지, 쉴 새 없이 알을 낳아 개체 수를 늘리는 일이다. 권한이 많은 것도 아니다. 페로몬을 뿌려 다른 일벌들이 알을 낳지 못하게 할 뿐인데 이유일한 권한은 각각 다른 후손을 만들어낼 경우 집단의 분열이 생기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알 낳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하루 1500개에서 2000개나 되는 알을 낳아야 하는데 이건 암탉이 하루 50개의 알을 낳는 것과 같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다. 그 외의 집단 운영은 모든 일벌들이 알아서 꾸려간다.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지시하고 통제하는 존재 없이 상호 소통을 통해 집단을 운영한다.
그런데 1년에 서너 번 정도 꿀벌 집단엔 커다란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친다. 여왕벌이 쉴 새 없이 알을 낳다 보니 개체 수가 너무 많아져 집단을 분리(분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지시하고 통제하는 존재가 없는데 누가 떠나고 누가 남을까? 사실 꿀벌들에게도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많은 연구 결과 분가해 새로운 곳에 정착한 꿀벌들은 그 중 75~76%가 겨울이 끝나기 전 죽는다. 반면 기존 벌집에 남아있는 꿀벌의 80%는 살아남는다. 분가한 꿀벌의 사망률이 높은 건 대개 식량 때문인데 거주지를 옮기느라 식량 비축을 많이 못하는 탓이다. 그러니까 떠나는 게 아주 위험하다는 얘긴데 누가 떠날까? 아직까지 떠나는 일벌과 남는 일벌이 어떻게 가려지는 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떤 여왕이 떠나는 지는 밝혀졌다. 꿀벌 집단엔 여왕이 필수이니 기존의 여왕이 떠나든가, 아니면 새로 옹립되는 여왕이 떠나든가 해야 한다. 누가 떠날까?
우리들의 상식으로 보면 아마 새로운 여왕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꿀벌들의 세상에서는 반대다. 오랜 터전을 새로운 여왕에게 주고 기존의 여왕이 떠난다. 아마 새 여왕보다는 세상 경험이 있는 기존의 여왕이 떠나는 것이 전체 종의 생존 차원에서 더 바람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여왕은 구성원의 3분의 2쯤(보통 수천~1만여 마리)을 데리고 어느 날 일제히 정든 터전을 날아오른다. 다 같이 날아올라 근처에 모인 벌들은 이제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새로운 터전을 구하는 일이다. 무리 없이 구한다 해도 구성원의 75%가 죽을 정도니 새로운 거주지 선정은 집단의 생존에 절대적인데 어떻게 할까? 여기에 꿀벌 지혜의 진수가 있다.
새로운 터전 정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
새로운 터전 구하기는 먼저 정찰벌들의 주변 지형 탐색으로 시작한다. 우리로 치면 나이가 많아 경험 많은 일벌이 주로 탐색에 나서는데 미국 코넬대 토머스 실리 교수에 의하면 꿀벌들이 선호하는 집터가 있다. 지상으로부터 약 6.5m 정도 되는 높이에 있는 나무 구멍이 그곳인데 내부 크기가 높이 150cm, 지름 20cm쯤 되면 적격이다(양봉 벌통보다 약간 작다). 무엇보다 구멍 내부는 좀 작더라도 입구가 좁아야 한다.
그래야 포식자들을 막기 쉽다. 6.5m의 높이 또한 이쯤 되어야 쉽게 발견되지 않는 까닭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터득한 지혜일 텐데 편리함보다는 안전 중시를 우선한다. 햇빛이 잘 비치는 남향도 필수다. 추운 날 에너지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찰벌들은 괜찮은 곳이라고 여겨지면 마치 처음 집을 마련하는 사람처럼 구멍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조사한다.
수백 마리의 정찰벌들이 주변 5km 정도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한 지 몇 시간쯤 지나면 돌아온 정찰벌들의 보고가 시작된다. 보고는 춤으로 이루어진다. 춤이 그들의 언어인 까닭이다. 정찰벌들은 이제는 유명한 ‘8자 춤’으로 자신이 적당한 후보지를 발견했다는 걸 알린다. 8자 춤이란 꿀이 있는 꽃이나 새로운 거주지를 발견한 벌들이 이를 동료에게 알리기 위해 숫자 8과 같은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춤이다. 물론 단순한 춤이 아니다. 춤에는 적당한 후보지가 어디에 있는지(방향),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거리), 그리고 얼마나 좋은지(적합도) 같은 정보가 들어있다.
문제는 다들 자기가 발견한 곳이 괜찮은 곳이라고 내세운다는 점이다. 당연히 정찰벌들 사이에 경쟁 오디션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보통 10~20개의 후보지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관찰 사례 중에는 많게는 34개의 후보지가 나온 경우도 있었다). 정찰벌들은 확신이 있을수록 더 강하고 빠르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마치 대선 주자들이 열변을 토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열정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꿀벌 집단엔 한바탕 춤 잔치가 벌어진다. 자신이 발견한 곳이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정찰벌의 ‘열정’과 ‘확신’을 지지하는 벌들이 그 춤 대열에 합류하는 까닭이다. 인상적인 건 춤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춤이 가리키는 현장을 직접 가 보고 난 후 지지를 결정한다.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일도 없다. 오로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온몸으로 투표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중구난방인 듯하던 혼란에서 조금씩 질서가 생겨난다. 괜찮은 후보지를 주장하는 춤에는 갈수록 지지자가 늘어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의 지지자는 줄어들다가 없어진다. 되는 쪽으로 몰아준다.
물론 순탄한 과정만 있는 건 아니다. 첫날 열 개가 넘는 후보지 중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선택된 듯 보였던 곳도 다음날 강력한 후보지가 나타나면 뒤집힐 수 있다. 결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좋은 곳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지 판도가 변하면 지지자가 줄어든 쪽은 조금 더 좋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합류한다. 이 과정에 벌들의 또 다른 지혜가 있다. 초기에 한 후보지를 강하게 주장했던 정찰벌이나 열광적인 최초의 지지자들이 일정 시점이 지나면 차례로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에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던 벌들은 오후 1시면 물러나고, 오후 1시에 그런 벌들은 오후 4시쯤 그렇게 한다. 왜 그럴까? 아마 이들이 2선으로 물러날수록 합의에 이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지지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꿀벌들은 이런 과정을 몇 시간씩, 아니 며칠씩 하면서 결국 후보지를 하나로 좁혀간다. 격렬한 토의를 방불케 하는 이 과정은 길게는 4일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끝장 토론인 셈이다. 그렇게 모두가 참여하는 만장일치를 만들어낸다. 여왕벌은 그 어떤 간여도 하지 않으며 모든 꿀벌은 오로지 자유 의사에 따라 소신 있게 투표한다.
물론 항상 만장일치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마르틴 린다우어가 관찰한 17개 꿀벌 집단 중 합의에 이르지 못한 집단은 2개였다. 지지자들이 딱 절반 정도로 나뉘는 바람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 중 한 집단의 벌들은 끝까지 의견 일치가 되지 않자 각자 두 무리로 나뉘어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는 실력 행사까지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왕벌을 모셔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100m쯤 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150m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공방을 계속했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이러는 동안 여왕벌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결국 꿀벌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대부분의 꿀벌은 이 과정을 거쳐 대체로 가장 적합한 거주지를 선택한다. 모두가 참여해서 가장 좋은 가능성을 찾아내는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낸다. 요즘 갈수록 중시되는 집단 지능의 많은 사례이자 꿀벌들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 번성하고 있는 비결 중의 하나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에는 이유가 없는 게 없다. 꿀벌의 만장일치 의사결정 시스템도 효과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꿀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신이 보낸 전령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우리에게 뭘 알려주고 있을까.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가장 활동적으로 실행한다.
집단의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이 집단의 선택이 되는 참여도가 높을수록 헌신도 또한 비례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효과적인 이유다. 꿀벌들은 이걸 이미 오래전에 터득해 본능적으로 실행할 정도로 시스템화하고 있다. 토머스 실리 교수의 표현을 빌면 “개체들에게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모두 활용,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린다. 우리 회사, 우리 사회는 어떨까? 모두를 위하고 모두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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