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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이사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내가 살 집의 필요조건 4가지

새 집을 고를 때 투자가치나 학군 이외에도 따져봐야 할 중요한 조건이 있다. 공간의 철학자 신기율이 말하는 이사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내가 살 집의 필요조건. 



힘들 때 이사하면 십중팔구 안 좋은 집 택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든 시절을 맞을 때가 있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하던 일이 꺾인다거나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이 ‘지금 사는 터가 안 좋다’는 이유로 혹은 심기일전을 이유로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그럴 때 이사하면 십중팔구 안 좋은 집을 택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인간관계, 문제 있는 투자를 결정했던 선택의 패턴이 집을 고르는 데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에도 자기유사성을 반복하는 일종의 ‘프랙탈(Fractal)’이 존재하는 셈이다. 때문에 이사는 가장 안정적이고 상승세일 때 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주변과 소통하지 못하는 집은 '병든 집'이다

가끔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주변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전원주택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눈에 보아도 확연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런 집은 도무지 주변 풍경에 녹아들지 않는다.


이런 공간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나는 이곳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정서가 생길 수 있다. 공간이 마음의 허세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현실과의 괴리감을 만들어 오판을 하게 만들거나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전원주택을 짓고 귀촌했지만 도시에서 살던 방식을 고집하다 적응에 실패하고 몸도, 마음도 힘겨워진 채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자신과의 밸런스, 주변 사람들과의 밸런스가 깨진 공간은 결코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부조화의 집을 ‘병든 집’이라 부르곤 한다.


풍수에서 병든 집은 대문으로 ‘황천살(黃泉殺)’이 들거나 ‘귀문방(鬼門方)’이 지저분한 집으로 표현된다. 패가망신한다는 황천살이나 귀신이 드나든다는 귀문방 같은 이름은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방향에 대한 두려움은 계절풍으로 시작되는 환경의 극단적인 변화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특히 난방과 방풍이 제대로 안됐으니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바람을 살기(殺氣)로 여겼다. 때문에 최대한 바람을 막고 외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집의 첫째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로 바람에서 자유로워진 오늘날에는 주변과 소통이 안 되고 밀폐된 집이 그곳에 사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과거에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 집이 병들지만 현대에는 주변 사람과 통하지 못할 때 병들어가는 것이다. 이사하는데 있어 좋은 집을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든 집’을 피하는 것이다. 



나를 설레게 하는 동네, 길을 찾아라

집으로 드나드는 길은 미로가 아닌 미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고 들려야 한다. 저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소리와 냄새가 나는 곳인지 알만큼 충분히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곳들이 모여 있는 길이 나를 쉬게 하고 평화롭게 해주는 명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집으로 가야 되냐’고 물을 때마다 집만 보지 말고 그 집으로 오가는 길을 함께 보라고 충고하고는 한다.


벌써 3년째 아침마다 왕복 1시간이 걸리는 아이의 통학이 즐거운 이유도 바로 길 때문이다. 집이 있는 정릉에서 아이의 학교가 있는 서대문까지는 그야말로 서울의 명당을 두루 거치는 최적의 코스다. 갈 때는 예기(藝氣) 가득한 평창동과 우백호 인왕산을 지나고 오는 길은 광화문과 가회동을 거쳐 재기(財氣) 넘치는 성북동길로 이어진다.


과거 궁이 들어선 최고의 명당과 부촌의 길들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복잡한 출근시간에도 한적한 이 길을 따라갈 때면 엉킨 생각들이 정리되고 긴장으로 짧아졌던 호흡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아이는 인왕산 호랑이 상을 지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봄이면 산길로 꽃비가 내리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이럴 때면 비록 내가 명당에 살지는 못해도 그 길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명당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휴식을 원한다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과 길을 공유하고 돈을 벌고 싶다면 부자들의 길을 공유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좋은 대학, 큰 도서관이 있는 길을 찾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의 DNA에 공명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 길이 내 마음의 길을 같은 모양으로 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성북동이나 평창동 같은 특정한 지역이 현대적 의미의 부촌이자 명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길이 명당이 되는 시대’다. 경리단길, 가로수길, 연남동 공원길처럼 길이 먼저 유명해진 뒤 그 지역의 가치가 동반상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터를 찾을 수 없거나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해도 실망하긴 이르다. 아직도 도시의 골목, 골목에 나만의 길, 나만의 명당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집 주인의 애정이 남다른, 함부로 고치지 않은 집을 골라라


우리가 이사할 때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다.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의 에너지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사람이 떠나도 공간에는 한동안 그가 남겨놓은 자취, 유령DNA가 남아 크든 작든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실제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학원 선생님이 몇 년 전,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저희 학원은 4층에 있었는데, 요즘 학원생이 많아져서 3층까지 확장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상하게 3층에서는 집중을 못해요. 4층에 있을 때는 차분하게 공부했는데 한층 내려오니까 엄청 떠들고 수업 분위기가 안 잡히는 거예요. 저도 뭔가 기분이 자꾸 떠 있는 느낌이고요.”


알고 봤더니 3층은 몇 년 동안 화장품 방문판매 사무실로 쓰였다고 한다. 주로 나이 지긋한 주부 판매사원들이 모여 수다를 즐기던 일종의 동네 사랑방이었던 것이다. 공간 전체가 수다스러운 기척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 갑자기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게 쉬울 리 없다.


그의 말로는 다시 돌려놓는데 거의 반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도 터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경우 유령DNA가 최소 100일 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때문에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이 집의 전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다.


실제로 집주인의 직업이 괜찮거나 그 집에 사는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부동산업자들의 은근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그러나 단지 겉으로 보이는 사실로만 그 집을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정작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그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관계’다. 집을 팔기 위해 잠깐 집안을 깨끗이 치울 수는 있지만 그 집을 다루는 태도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눈빛이나 말투, 표정을 보면 집주인이 집에 어느 정도의 애착을 갖고 있는지가 보인다.


집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지, 아니면 빨리 비싼 값에 팔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다면 집과 사람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정말로 아이가 명문대에 갈만큼 공부가 잘되는 집, 가족들이 무탈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집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싫은 사람을 멀리하듯 집 역시 편안하고 좋으면 애착을 갖고, 불편하고 힘들면 미련 없이 떠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공간을 볼 때는 그 공간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묻어있는 공간’을 봐야 한다.


그래서 이사를 한다는 건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갈 때면 미리 이사 갈 집의 부엌이나 마루에 쌀이 든 솥을 두고 절을 하며 가신(家神)에게 신고식을 치렀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는 맨발로 터를 밟기도 했다. 발끝에 전해지는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예전처럼 집이라는 공간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대했을 때 이사는 내 운명과 삶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굳이 솥단지를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집에 애정을 담아 가볍게 인사하며 그 공간이 내게 전하려는 말을 느껴보려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