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주춤하고 있다. 2017년 주식시장의 최고점은 만들어진 것 같다. 11월 초에 기록한 2561포인트를 올해 중에 다시 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정적 계기는 반도체다. 모건스탠리에서 반도체 경기 정점이 멀지 않았으니 보유 비중을 줄이라고 권유하면서 관련 주식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2020년까지 반도체 호황을 예상하고 있는 우리 투자자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 반도체 경기가 꺾인다고 해도 지금 당장 주가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시장이 좋기 때문인데, 선진국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여서 반도체 주가 하락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반도체 경기 정점에 대한 우려가 힘을 얻고 있는 게 더 부담스럽다. 한달 반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에서 반도체 경기 정점에 대한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주가 하락폭이 이번만큼 크지 않았다. 만일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이로 인해 IT산업 전반이 약해질 경우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업종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둘을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새로운 성장산업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화학 등 전통적 산업이다.
반도체 경기 정점에 대한 우려 제기
새로운 산업은 반도체와 IT의 대안이 되기 힘들다.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제약을 포함한 바이오와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인데 규모가 IT의 10%에도 못 미친다. 시장에서 생각하는 만큼 성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 자체가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해 내는 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것을 잘 결합해 효율을 높이는 과정이므로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현재 4차 산업혁명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이 체계적으로 분류돼 있기보다 투자자의 입에 오르내리는 테마를 잡다하게 모아 놓은 형태여서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중후장대형 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과거 산업이라는 얘기인데 경제 발전 단계상 2000년 중반에 기록했던 수익성을 넘기 힘들며 이익이 늘어난다고 해 봐야 순환적인 회복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금융완화 정책이 약화되고 있는 점도 투자자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11월 말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점차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 간 미국이 금리를 네 번 올렸음에도 주식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앞으로 금리를 더 올리더라도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건 맞는 생각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인상 속도를 유지할 경우 멀지 않은 시간에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은 임계점 밑에 있지만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영향력이 갑자기 커질 수 있다.
임계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은 기준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높아지거나 비슷해지는 때다. 과거 두 금리가 역전됐던 1990년, 2000년 그리고 2007년 모두 주가의 방향이 하락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준금리가 시장금리와 엇비슷해지는 시점부터 투자자들이 금리 수준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경기 둔화도 시작되기 때문이다.
2017년 말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1.5%로 오를 걸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3% 내외다. 둘 사이에 격차가 1%포인트가 안 된다.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시장금리가 상승해 둘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그동안 미국 금리가 움직였던 패턴과 맞지 않는다. 과거 미국의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사이에는 ▶기준금리를 처음 인상하기 전에 시중금리가 크게 올랐다가 ▶막상 금리를 인상하면 시중금리가 반대로 하락한다 ▶금리 인상이 2~3번 계속되는 동안 시중금리가 따라 오르다가 ▶시장 금리가 어느 정도 오른 후에는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금리를 한번 인상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작년 중반에 미국 금리가 1.3%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세 번의 금리 인상과 함께 지금은 시중금리가 2.3%가 됐다. 기준 금리를 올리더라도 더 이상 시장 금리가 오르지 않는 상황이 된 건데 그만큼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비슷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기 확장 어디까지 이어질까
경기에 대한 우려도 계속 남아있다. 경기 자체만 놓고 보면 크게 흠잡을 데가 없지만 주가가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기가 어지간히 좋지 않고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힘들 것 같다. 가장 최근 미국의 경기 저점은 2009년 6월이다. 지금까지 101개 월째 확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 된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경기 확장 기록은 1991년 4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20개월이었다. 그 다음은 1961년 2월 이후 106개월이고 이번이 세 번째다.
경기 확장 강도는 지금이 과거 두 기간에 비해 약하다. 경기가 확장되기 시작한 2009년 6월 이후 9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평균 1.7%에 지나지 않는다. 내용면에서도 경제 내적인 힘보다 저금리와 대규모 유동성으로 인한 영향이 더 커 인위적인 경기 부양 외에 별다른 동력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S&P500지수는 2009년 2월 735를 바닥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105개월째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상승률이 250%에 달한다. 이전 번영기인 1990년대의 상승률 305%에는 못 미치지만 다른 어떤 경기 회복기보다 높은 수치다. 미국 경제 회복의 질과 양적 측면 모두가 과거에 비해 미흡함에도 주식시장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성장보다는 사상 초유의 낮은 금리와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한 효과가 주로 작용한 걸로 보인다.
경제 펀더멘털과 관련한 주식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경기 확장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이 가능할 경우 주가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추가로 더 상승할 수 있지만 경기의 방향이 바뀌면 시장이 의외로 크게 하락할 수 있다. 내년에 경기 확장이 계속돼 역사적인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다. 이와 달리 확장 국면이 지속되더라도 거시변수가 지금보다 월등히 좋아지긴 힘들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장률 자체가 높지 않은데다, 유동성은 반대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경제가 위축기에 들어간다면 주식시장은 9년에 가까운 경기 회복이 정리되는 압력에 금융정책의 방향이 바뀐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요동을 칠 수 있다. 우리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힘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상태인데 선진국 경제가 둔화될 경우 수출 부진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주가가 하락으로 종합주가지수가 후퇴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하락을 논할 정도는 아니다. 선진국 시장이 여전히 사상 최고치를 오가는 강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이 좋은 상태에서 우리 시장만 하락하는 건 한계가 있다. 당분간 반도체 주식이 떨어지는 동안에는 먼저 하락했던 종목이, 그리고 반도체와 바이오가 바닥을 잡은 후에는 이들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형태로 시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