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 임무를 신생 창업이나 구조조정으로 새롭게 체질을 개편한 ‘젊은 기업’에 맡기고 있다. 그 계기는 약 10년 전 급작스럽게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침체된 경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높아진 실업률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성장 시대는 저물고 앞으로는 저성장 시대라는 뉴노멀(new normal)로 경제 패러다임이 전환하면서 취약한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면서 고부가 산업 구조로 체질 변혁하는 게 현안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금부터 약 5, 6년 전부터 본격화한 4차 산업혁명 물결은 해법을 찾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구세주와 같았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신산업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해 다수의 혁신 벤처 등장뿐만 아니라 기존 업체의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융합·창조의 조력자(enabler)였다.
신설 기업 수가 2012년 100을 기준으로 보면 2016년에 한국 129.7, 영국 134.1, 미국 112.3이었다. 중국은 281.9로 크게 늘어났다. 또 벤처캐피탈 규모도 2010년 100을 기준으로 볼 때 2016년에 미국은 231.7, 한국은 229.9로 급증했다. 프랑스 122.8, 독일 112.5, 일본 106.1로 뒤를 이었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벤처캐피털 규모는 12억1000만 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1위 미국(666억3000만 달러), 2위 캐나다(23억8000만 달러), 3위 일본(13억7000만 달러)에 이어 4위였다(OECD, 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7).
젊은 기업 육성에 많은 자본 투입하고도…
그렇다면 정말로 젊은 기업이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뒷받침할 정도로 지금 제자리를 잡고 있을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중국을 대상으로 젊은 기업 현황을 살펴봤다. 이들 젊은 기업은 각국의 산업 활성화 정책과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 기반 비즈니스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창업한 신생 업체일 뿐만 아니라 사업구조조정으로 재창업한 업체를 가리킨다. 분석 대상으로 젊은 기업은 4개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금융업종이 아니면서 설립 연도 기준으로 10년 이하인 기업으로 삼았다.
조사 결과, 집중적인 정책 뒷받침에도 한국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젊은 기업은 전체 기업 가운데 7.2%에 불과했다. 2012년 26.6%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미국이 31.4%인 것과 비교하면 큰 격차를 보였다. 더구나 젊은 기업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핵심 업종인 정보통신기술(ICT) 관련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업종은 더욱 우려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과 비교해 감소한 기업 수 가운데 반도체를 포함한 IT 하드웨어 업종이 거의 절반(42%)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서비스 업종 비중이 6%로 미국(13%)·일본(16%)보다 크게 떨어졌다.
젊은 기업의 매출액·총자산 모두 급감하면서 성장성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기업당 평균 매출을 기준으로 2012년 대비 2016년 매출증감률을 살펴보면 전체 기업은 16.6% 감소했지만 젊은 기업은 34.7% 감소로 더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총자산도 마찬가지다. 전체 기업은 기업당 평균 총자산이 2.9% 늘어났지만, 젊은 기업은 오히려 9.9% 줄어들었다. 중국이 138.8% 증가, 미국이 30.3%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심각하다. 또한 순이익을 총자산으로 나눈 총자산이익률(ROA)이 0% 이하가 30.1%에 달하고, 0% 이상이면서 10% 미만인 젊은 기업이 54.9%에 이른다. 자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업체가 많은 것이다. 다른 측정 지표로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 미만이어서 성장 잠재력이 낮다고 평가받는 업체가 29.7%에 달했다. 중국 1.3%, 미국 13.0%와 큰 차이를 나타냈다. 다만 수익성 측면에서 영업 이익률과 순이익률은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매출액영업이익률이 6.9%로서, 2012년 대비 3.2%포인트 증가해 전체 기업보다 나은 실적을 보였다. 매출액순이익률도 마찬가지로 젊은 기업이 더 개선됐다.
종합적으로 젊은 기업이 줄어들고 있으며, 성장성은 떨어지고, 현상 유지를 가리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국내 기업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젊은 기업 육성이 부진한 원인을 찾는다면 무엇보다 예전만큼 기업가정신이 치열하지 않아 새로운 사업 발굴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을 희구하는 성향이 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글로벌기업가정신개발원이 발표한 2018년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에서 조사대상국 137개국에서 한국이 24위로서 아시아권인 홍콩(13위)·대만(18위)에 뒤처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부터 주요 100개 기업 대상으로 조사해 산출한 기업가정신지수를 살펴보면 2013년 하반기 급락한 이후 재상승하고 있으나 아직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 한국은 24위 불과
이런 결과로 활동제조업체 중 신생 업체의 비율을 의미하는 신생률은 거의 현상 유지하다가 2015년에 급격히 저하됐다. 없어진 업체 비율을 의미하는 소멸률도 2012년부터 떨어지고 있다. 또 다른 부진 원인으로 스스로 창업에 나서도록 유인하고 성공한 기업에 자금과 인력이 몰리는 ‘창업 풀(pull)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정부가 기술 개발, 자금·판로 지원을 통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투입 위주 정책은 창업 의욕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수요 중심의 자율적인 창업 동기가 미흡해 시장에 기반한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성장의 아이콘으로 커나가는 기업이 많지 않고, 이들 기업으로 인력과 자금이 들어오는 데도 제약이 있다. 한계기업이 아닌 정상적인 업체가 사업 재편을 통해 젊은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정책적 지원 또한 미흡하다는 점도 부진한 원인의 하나로 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다수의 미래형 신산업이 등장할 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젊은 기업을 육성하는 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주요 경쟁국의 정책 추진과 진척 상황을 보면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수단으로 젊은 기업 육성을 목표로 한 종합적인 촉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젊은 기업군에는 신설 창업 업체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의 분사, M&A 등 사업 재편을 통한 설립된 업체까지 포괄해야 한다. 이들의 창업부터, 성장, 재편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책 수립도 필요하다.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젊은 기업에게는 인력 및 기술 공급, 금융 및 제도적 지원, 국내외 시장 개발 등 종합 지원책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부합된 기술 기반 비즈니스의 젊은 기업을 육성하는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신생 기업 육성책뿐만 아니라 산업 중심 역할로 자리매김한 중소·중견 업체를 재편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4차 산업혁명 과정의 패러다임 변화로 세계적으로 기술 기반의 밸류체인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낙오되지 않고 조속히 편입할 수 있도록 산업 리스트럭처링을 촉진해야 한다. 사업 개발을 위해 금융·인적 기반뿐만 아니라 AI 클라우드 등 핵심 기술을 공동 제공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지원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기술 기반의 성장 지향형 창업을 촉진하려면 다양한 지원책을 한꺼번에 담은 ‘칵테일형 정책’ 개발도 요청된다. 목표에 부합한 신기술 기반 사업에 대해 R&D부터 사업 개발, 인력·기술 등 인프라 지원, 법제도 및 세제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책을 담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대응용 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 특구’를 만들어 국가 핵심 정책 분야(기술·사업 개발)에 대한 R&D를 비롯해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 인프라 구축, 수요자 이용 및 검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운영 과정에서 요구되는 규제 해소와 세제 유인책을 강구해야 한다.
기술력과 사업력이 우수한 젊은 기업들이 협소한 시장 등으로 성장에 제약을 받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 마련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활용해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당면한 사회적 과제를 해소하려는 욕구가 강한 국가를 대상으로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패키지로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의 대기업과 벤처기업 등이 공동으로 제휴해 해당국에 우수한 인프라를 구축해 ICT 기반의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시장 수요와 성공한 창업 롤 모델을 통해 창업을 유인하는 창업 풀 전략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요자인 대기업·중소기업이 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국내 스타트업·벤처기업을 M&A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특히 자금 보유와 기술 수요가 많은 대기업이 벤처 업체를 M&A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는 한 성공 모델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젊은 기업이 기업공개가 아닌 M&A를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만 다수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키워낼 수 있다. 아울러 전통 업체에게는 사내 벤처의 육성과 차후 사업 분할에 이르기까지 금융 및 세제 지원 범위와 기간을 확대 적용하도록 제도적 정비도 요구된다.
창업 풀 전략과 오픈 이노베이션 등 활성화해야
끝으로 젊은 기업과 전통 업체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활성화해야 한다. 젊은 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닌 반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통적인 중소·중견 업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미흡한 관계로 기존 사업의 고부가가치화나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애로를 겪고 있다. 그래서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지닌 기술 혁신형 스타트업을 발굴해 이를 전통 업체와 연결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해 사업화하는 오픈형 ‘비즈니스 모델(BM) 마켓’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기업이 사업하는 데 흥이 나야 젊은 기업이 많이 생겨난다. 과거 2000년 전후의 닷컴시기에 개인과 기업은 스스로 창업에 달려들거나 벤처 업체에 적극 투자에 나섰고, 젊은 학생들은 ICT 관련 교육기관으로 달려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앞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면서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의 ICT 강국이 됐다. 그때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부는 장기적이면서 지속적으로 흥을 북돋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젊은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더 풍요로운 세상과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