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한국판 서문에 “북한은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기득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꼬았지만, 한국은 반대입니다.
정부·정치권은 25만 택시기사 편에 섰고, 대기업은 서로를 견제하며,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갈라파고스화되는 한국 시장, 방법이 있을까요?
지난 10월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에게 물었다. “한국 산업계에 가장 큰 위협이 뭐냐?”고. 답변에 뜸을 들이는 그를 위해 미·중 무역전쟁, 중국 산업의 성장, 4차 산업혁명, 발목 잡는 정치 등을 예시로 들었지만, 대답은 ‘노(No)’의 연속이였다. 결국 그는 ‘공유차’가 답이라고 잘라 말했다. 배경은 이랬다.
“차량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시대가 온다. 목돈으로 자가용 차를 사봐야 2시간 타고 20시간을 세워두는 게 문제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한 대를 많은 가구가 쓸 수 있게 된다. 당초 친환경차·자율주행차·커넥티비티(연결성)·공유차 등이 따로 발전할 때는 ‘뜬구름’ 얘기로 치부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기술이 한데 뭉치며 자동차·전자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나가고 있다.”
고 센터장은 자동차·타이어 부문뿐만 아니라 글로벌 산업을 거시적으로 분석하며 수차례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인물이다. 그는 “이제 한국 산업계에 생존을 위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왔고,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데이터도 그의 확신에 힘을 실어준다. 2050년엔 현재 10억 대 넘는 자가용이 약 3억 대로 줄고, 자율주행차를 2억 대가량 활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알아채고 먼저 움직인 이가 있으니 바로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다. 지난 10월 4일 손 회장은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과 손잡았다. 손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주문형 차량 서비스 제공 회사 ‘모넷 테크놀로지(모넷·MONET)’를 도요타와 공동 출자 형태로 올해 안에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두 기업이 미국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를 통해서 기술제휴(도요타자동차)와 대주주 참여(소프트뱅크그룹) 등으로 간접적이나마 선이 닿은 바 있으나 직접 합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버 힘 빠진 틈타 차량공유제국 건설하는 손정의
모넷은 도요타자동차의 자율운전 시스템 등 모빌리티 플랫폼과 소프트뱅크그룹의 인공지능(AI) 데이터를 결합한 서비스 제공업체다. 이번 합작은 콧대 높은 도요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성사됐지만, 손 회장의 야심은 이미 2016년부터 시작됐다.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320억 달러) ▶미국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 투자 ▶이스라엘 보안솔루션 업체 사이버리즌 인수(1억 달러) ▶로봇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샤프트 인수 ▶세계 최대 공유택시업체 우버 투자(90억 달러) ▶중국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 투자(100억 달러) ▶싱가포르 차량공유업체 그랩 투자(30억 달러) ▶인도 차량공유업체 올라 투자(2억1000만 달러) ▶브라질 차량공유업체 99 투자(1억 달러) 등이다. 고 센터장이 말한 대로 이미 손 회장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술과 서비스를 한데 모아 차량공유제국을 구축하고 있었다.
제국이란 표현이 다소 과해 보여도 여기엔 이유가 있다. 차량공유 플랫폼은 이동과 관련된 엄청난 데이터도 축적한다. 고 센터장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처럼 쌓인 데이터를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빅데이터를 분석해 교통, 물류, 숙박, 관광, 보안 등 전 범위에 걸친 산업에서 정보로 쓸 수 있다”며 “손 회장의 이 같은 광폭 행보를 두고 외신이나 업계 전문가들이 ‘제국’이란 표현을 곧잘 붙인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눈으로 보면 의미 없던 일도 미래의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 손 회장의 제국에선 전기차든, 수소차든, 내연기관차든 차량 기술 방식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선 차량공유 서비스가 불법이라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실제 제국을 구성하는 해외 공유 서비스 업체는 위세를 뽐낸다.
미국 우버는 이미 65개국 600여 개 도시에서 사용되고 있고, 카풀 서비스 ‘우버풀’, 프리미엄 자동차 호출 서비스 ‘우버 블랙’, 자전거·오토바이 등으로 음식 배달을 대신 해주는 ‘우버 이츠’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중국에는 당국이 해외 플랫폼의 자국 진입을 막으면서 기형적으로 커진 디디추싱이 있다. 중국 ‘국민’ 차량공유 서비스로 가입자는 약 4억5000만 명 이상이고, 하루 2500만 명 이상이 사용한다.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그랩도 현재 동남아 8개국 500개 도시에서 1억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한 상태다.
이 정도 속도라면 휴대전화가 집 전화를 없앴듯 자율주행차가 자가용을 없앨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반도체, 자동차 산업이 골격을 바꿔야 할 때란 얘기다. 한국은 뭘 하고 있을까. 한국 내 차량공유 시장을 잡을 거물로 평가받는 현대자동차엔 ‘후발주자’란 꼬리표가 붙었다.
현대차 ‘후발주자’ 삼성 ‘반도체 올인’ LG ‘車 부품 답보’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