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 있으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 시작된다. 따뜻한 봄기운이 반가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 예를 들어 함박눈이나 벙어리장갑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웹툰 속의 겨울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강도하의 <아름다운 선>, 이준의 <다정한 겨울>, 심윤수의 <겨울동화>, 쥬드 프라이데이의 <진눈깨비 소년>은 모두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겨울의 찬바람 같은 쓸쓸함과, 함박눈을 연상시키는 따뜻함이 혼재해 있는 듯하다.
1. <아름다운 선> -강도하
2005년 연재된 <위대한 캣츠비>는 대한민국만화대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독자만화대상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만화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인기가 대단한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선>은 <위대한 캣츠비>가 마무리된 이후, 주인공 캣츠비의 시선이 아닌 캣츠비를 좋아한 '선'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경은 눈 내리는 겨울이다. 재개발지역을 뒤로 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선이 캣츠비에게 이별을 고한다. 캣츠비가 실연의 상처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한 그녀가 캣츠비보다 먼저 이별을 꺼낸 것이다. 선은 먼저 이별을 꺼냄으로써 한때마다 사랑했던 캣츠비를 위로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더 깊은 상처로부터 보호한다.
그렇게 이별을 말하고 떠난 선의 흔적은 눈밭 위의 발자국으로 남아있다. 그 흔적을 바라보는 캣츠비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먼저 떠난 사람이 아닌 남은 사람에게도 이별은 겨울만큼 춥고 배고픈 것이 아닐까.
한편, 캣츠비를 떠나 보낸 후 한 달이 지났어도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를 좋아했을까?", "사랑은 했을까?"라며 되새김질 하는 선의 모습에서 여전히 캣츠비를 놓아주지 못한 미련이 나타난다. 미련만큼 눈도 여전히 내리고 있다. 그리고 선은 결국 과거 속 남자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심장을 쓸고 간 후, 그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못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다. 추위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좇아 여행을 떠났던 선은 과연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 <아름다운 선> 웹툰 보러가기 →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beautysun
2. <다정한 겨울> -이준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한 두 아이의 조금은 특별한 겨울나기"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과연 "조금 특별한" 모습이라는 얘기는 어떤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작품을 펼쳐보면 백화점 아동복 코너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뜻밖의 대사들을 쏟아낸다.
"가슴은 모아주고 허리라인은 그대로 살아있어야 된다", "좀 슬림하면서 옆태가 살아있는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어린이보다는 숙녀에게 어울리는 요구사항을 쏟아내는 것이다. 참다못한 종업원이 아이에게 야단을 치자 아이의 아빠는 죄송하다며 아이와 함께 급히 매장을 빠져나온다.
"나 이제 열아홉 살이야! 언제까지 아동용 옷 입으라구?"라며 아빠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여자아이는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한다정, 보기엔 영락없이 열 살짜리 소녀 같은 여자 주인공은 사실 맥주도 마실 수 있는 나이였던 것이다.
화가 풀리지 않아 혼자 매장을 돌던 다정이 뒤로는 키가 180cm는 족히 돼 보이는 멋진 '훈남'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멋진 훈남이 "엄마를 잃어버렸어요"라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다정이의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하는 그 사내의 정체는 열일곱 살 김민성,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소년이다.
'조금 특별한' 두 주인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키 작은 다정이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목놓아 울고 있는 민성이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멀쩡하게 생겨서 불쌍"하다거나 "저능아 옆에 있으니 여자애가 오히려 누나 같네"라는 말을 내뱉는다.
어쩌면 다정이와 민성이에게는 자신들이 성장해온 시간들 전부가 차디찬 '겨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그들이 보여줄 '특별한 겨울나기' 속에서는 찬바람쯤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그들의 우정, 용기, 지혜가 함께한다.
* <다정한 겨울> 웹툰 보러가기 →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friendlywinter
3. <겨울동화> -심윤수
겨울을 소재로 하는 단편들이 시리즈로 연재된 작품으로, 눈,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와 같이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동화(童話)'라기보다는, 함박눈을 마주할 때 퇴근길 정체부터 걱정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冬話)'에 가깝다.
가령 '눈사람'편에서는 한 여인이 헤어진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은 구름으로 올라가 다시 눈이 되어 세상에 뿌려진다. 거리를 헤매던 눈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추위와 외로움이다. 이렇듯 구성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 같지만, 그 속에는 어른들을 위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눈사람은 문득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림자를 만드는 햇빛의 존재도 알게 된다. 이제 눈사람은 자신을 녹이려 하는 태양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태양을 피해 어느 집 처마 끝에 도착한 눈사람은 창문 너머로 헤어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을 목격한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얼어 있는 심장'에서도 겨울을 상징하는 '얼음'을 통해 색다른 감정을 이끌어낸다. 심장이 얼어버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여인이 있다. 그런 그녀를 깨우기 위해 그는 자신의 온기로 얼음을 녹인다. 손은 얼음에 상처를 입게 되지만 결국 그녀의 심장을 꺼낼 수 있었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는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면 희생에 대한 보답이 따르는 해피엔딩이 뒤따라야 할테지만, 그녀는 "그의 차가운 손에 깜짝 놀라 그 손을 뿌리치고" 말았고 "이번엔 그의 심장이 얼어갔다." 세상살이가 언제나 동화(童話)처럼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맹목적인 희망보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 <겨울동화> 웹툰 보러가기 →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113121
4. <진눈깨비 소년> -쥬드 프라이데이
이 작품은 남자친구를 따라 서울로 상경한 주인공 '송해나'가 이삿짐에서 나온 그림 한 장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십 몇 년 전,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이다.
학교에 지각한 그녀는 1교시가 끝날 때까지 미술실에서 숨어 있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미술실에는 똑같은 이유로 1교시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년이 있다. 입학식 때 해나와 인사를 나눈 남자후배, '정우진'이다. 카세트 스피커에서는 앨리엇 스미스 노래가 흘러나와 미술실을 가득 메우고,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다소 로맨틱한 첫만남을 시작으로 둘의 '우연은 눈처럼 겹쳐, 쌓이기 시작한다.' 작품은 이처럼 평범한 여고생 송해나와 10년을 프랑스에서 살다가 귀국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정우진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두 인물 간 감정의 교류와 어긋남을 주요한 이야기로 다룬다.
색연필과 물감으로 선보인 듯한 컬러의 느낌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아련해진 고교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강화시킨다. 초겨울의 으스스함을 떠올리게 하는 진눈깨비와는 달리, <진눈깨비 소년>은 함박눈처럼 포근한 추억을 상기시킨다.
* <진눈깨비 소년> 웹툰 보러가기 →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22643
지금까지 쓸쓸하거나, 혹은 더 따뜻한 웹툰 속 겨울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몇 편 들여다보았다. 아직 쌀쌀한 지금, 이 작품들을 보면서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는 2월을 떠나보내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을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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