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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아시아 순혈 재벌가 50개 가문 순위

포브스는 500개 이상 가문의 정보를 검토하고 평가해 50개 가문을 선정했다. 우리나라는 삼성 이병철 가문을 선두로 현대 정주영 가문, LG 구 씨 가문, 효성 조 씨 가문이 순위에 올랐다.


가족은 아시아에서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기업집단과 유명 상표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삼성 그룹과 이 씨 가문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경을 넘어 뻗어가는 자신들의 기업 제국을 이용하여 본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가 가문은 많다. 이들 가문의 영향력을 알아보고, 또한 승계 및 경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50개 가문의 목록을 만들었다. 여기에서는 최소한 3대에 걸쳐 부를 형성한 가문만을 다루었다.


삼성가문


1위 삼성 이병철 가문(266억 달러 / 대한민국)


삼성의 역사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인 이병철이 1938년에 대구에서 작은 상회를 설립했을 때 시작되었다. 창업주가 1987년 사망한 후 아들 이건희가 회장이 된 삼성그룹은 1990년대 들어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 오늘날 이 씨 일가의 2·3세대가 경영하는 4개 기업집단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15명 이상이 경영하는 55개 기업의 매출액은 총 3350억 달러다.


2위 리 가문(241억 달러 / 홍콩)


광동주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한 리자 오지가 처음 손댄 사업은 귀금속 거래와 환전이었다. 그는 다른 7명과 함께 자신의 첫 부동산 회사인 이터널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샤틴 호텔 재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후 그는 궈더성(5위), 펑징시와 함께 순훙카이를 세웠다. 1973년에는 스스로 헨더슨 개발을 설립했다. 1976년에 설립된 자회사 핸더슨 부동산은 이후 홍콩과 중국 최대 부동산회사로 성장했다. 자녀인 피터, 마틴, 마거릿은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3위 암마니 가문(215억 달러 / 인도)


장남인 무케시는 1957년 인도에서 향신료와 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인 릴라이언스 텍스타일 인더스트리가 1968년에 출시한 섬유 브랜드 비말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02년 디루바이가 사망한 후 두 아들 무케시와 아닐은 서로 불화를 겪고, 이후 제국은 분할되었다.


체아라와논


4위 체아라와논 가문(199억 달러 / 태국)


세계 최대급의 사료 및 가축 공급자인 차른 뽁판드(약자 CP) 그룹은 방콕의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되었다. 치아 엑 초르와 촌차른 체아라와논 형제는 처음으로 자기 가게를 열고 중국에서 수입한 종자를 태국 농가에 판매했다. 지금은 치아 엑초르의 아들인 다닌이 그룹을 이끌며 그의 세 형제 및 기타 친척이 일가의 재산을 나눠 갖는다. 그의 세 아들 모두 활동 중이며, 앞으로 다닌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5위 궈 가문(195억 달러 / 홍콩)


궈 가문의 부동산 제국은 홍콩의 마천루에서 중국 본토 내 700만㎡ 이상의 부동산에까지 뻗어 있다. 궈더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여 1969년에 펑징시, 리자오지(리쇼키)와 함께 순훙카이를 창업했다. 1972년에는 순훙카이부동산을 상장했다. 장남 월터는 CEO 겸 회장을 역임하다 2008년에 가족들의 압력을 받아 사임했다. 그 후에는 그의 동생인 토머스와 레이먼드가 함께 회장 자리에 앉아 공동 경영했다, 2014년 12월에는 토머스가 시 공무원을 매수한 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사임했다. 지금은 모든 혐의를 벗은 레이먼드가 그룹의 유일한 회장이다.


6위 궈 가문(189억 달러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1928년, 빈털터리 10대이던 궈팡펑은 중국 한 작은 마을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1941년에 세 형제와 함께 홍룽을 창업했다. 현재는 이들의 자녀와 손주들이 자산 2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세계 각지에 영업망을 갖춘 기업집단 홍룽 그룹 지분 과반을 보유 중이다. 홍룽 그룹이 보유한 150개 호텔은 세계 20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홍룽 그룹의 포트폴리오에는 아시아 최대급 금융서비스 회사, 최대의 소비재 및 산업용품 상사가 포함된다.


7위 프렘지 가문(170억 달러 / 인도)


프렘지 가문의 기업 와이프로의 역사는 현재 회장인 아짐 프렘지의 부친 모하메드 하샴 프렘지가 1945년에 웨스턴인디안베지터블프로덕트를 설립하고 땅콩으로 식용유를 생산하면서 시작했다. 1966년 모하메드가 사망하자 아짐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었다. (나중에는 공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비누 같은 품목을 새로 취급하기도 했지만, 가문이 부유해진 것은 사업영역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적시에 확장한 덕분이었다. 아짐은 회사 이름을 와이프로로 바꾸고 데스크탑 컴퓨터 조립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공급을 시작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컴퓨터의 Y2K 문제 해결에 집중되던 2000년까지 와이프로는 인도 첨단기술 업계 전체가 그랬듯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해 아짐은 뉴욕 주식거래소에 와이프로를 상장했다.


8위 차이 가문[금융](151억 달러 / 대만)


거대 금융서비스사 푸본금융은 창업주 차이완차이가 작년 10월 사망한 이후부터 그의 아들들인 대니얼과 리처드가 이끌고 있다. 이들과 사촌지간인 차이홍투는 형 차이정다 및 다른 가족과 함께 대만 최대 대출기관인 캐세이파이낸셜홀딩의 지분을 공유하고 경영한다. 형제 중 넷째인 T. Y. 차이는 2010년에 소유 지분을 형제들에게 매각한 후 자기 회사인 호맥스 이쿼티를 통하여 부동산에 투자한다. 홍투와 형제들은 부친 차이완린이 사망한 2004년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농가 출신인 완차이·완린 형제는 1962년 캐세이 보험를 개업했다가 1979년에 캐세이와 푸본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 갈라섰다. 지금은 3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9위 힌두자 가문(150억 달러 / 인도, 영국)


금융, 교통, 에너지, 첨단기술,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집단 힌두자그룹의 경영자는 네 형제다. 힌두자그룹의 역사는 이들 형제의 부친인 파르마난드 딥찬드 힌두자가 인도 신드주(현재는 파키스탄 영토)에서 장사를 하다 1919년 이란으로 이주한 후 시작되었으며, 그룹 본사는 줄곧 이란에 있다가 1979년 아들들이 런던으로 옮겼다. 오늘날 그룹은 스리찬드와 고피찬드 형제가 런던에서 공동으로 경영한다. 프라카시는 제네바에, 아쇼크는 인도에 있다.


10위 미스트리 가문(149억 달러 / 인도)


올해는 거대건설기업 샤푸르지팔론지그룹 창립 150주년이다. 팔론지 미스트리가 리틀우드팔론지 앤코를 설립한 1865년이 그룹의 시작이다. 회사는 1881년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뭄바이에 있는 말라바르 언덕에 저수지를 건축했다. 팔론지의 아들 샤푸르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회사에서 일했으며, 타타그룹의 지주사인 타타선즈에 그가 투자한 소수 지분은 가문이 현재까지 부를 쌓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닌 3세대 승계자 팔론지는 인도와 페르시아 만에서 벌어지는 공사를 수주하여 큰 이익을 냈으며, 특히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는 술탄의 궁전을 짓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아들인 샤푸르에게 일을 물려줬다. 작은아들 사이러스는 타타그룹 회장이다.


현대가


11위 현대 정주영 가문(135억 달러 / 대한민국)


정 씨 가문의 사업영역은 자동차, 선박, 건설, 보험, 유통업을 포괄한다.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성장한 정주영은 1940년대에 서울에 자동차 정비소를 세우면서 왕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전후 복구과정의 기회를 활용하여 1946년에는 현대자동차를, 1947년에는 현대건설을 설립한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이던 현대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재산 중 반 이상은 정주영의 차남인 현대자동차 회장 정몽구와 아들 정의선이 보유한다.


12위 하르토노 가문(127억 달러 / 인도네시아)


황웨이위안은 1950년에 자와틍아 주 쿠두스 시에 위치한 파산 직전의 담배 회사를 인수하고 이후 회사 이름을 자럼으로 바꾼다. 웨이가 1963년 사망한 후 아들인 로버트 부디와 마이클 하르토노가 기업을 승계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담배 제조사인 자럼의 COO는 부디의 장남 빅터 하르토노다. 시가총액 기준 인도네시아 최대 대출 기관이자 자산 기준 2위 은행인 뱅크센트럴아시아 역시 가문의 부를 구성한다. 하르토노 가문은 파린도인베스트먼트를 통하여 총 주식 중 47%를 통제한다.


13위 시 가문(123억 달러 / 필리핀)


헨리 시는 젊어서부터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했다. 그는 이후 조그마한 신발 가게를 열고, 이를 필리핀 최대의 쇼핑몰 개발운영기업 SM프라임으로 키워낸다. 현재 가문의 관심사는 금융에서 소매업까지 아우르며, 기존 쇼핑몰 주변에 ‘소도시’를 짓는 방식 등으로 성장 중이다. 시 가문은 필리핀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영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에도 지분이 있다. 자녀들 모두 경영에 참여하며, 매주 만나 다 같이 사업을 논하는 점심 식사 자리에는 모친도 가끔 참석한다. 손주 세대 역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14위 치라티왓 가문(117억 달러 / 태국)


치라티왓 가문은 센트럴그룹을 통하여 소매, 부동산, 관광, 요식업을 영위한다. 가문의 부 중 65% 이상을 차지하는 센트럴리테일은 태국 최대급 소매업체다. 그룹은 2013년에 경영권을 잡은 최고경영자 토스 치라티왓의 지휘 하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점포를 열며 지역 내 영향력을 넓혀 왔다. 토스의 조부이며 중국 출신 가난한 이민자였던 띠앙 치라티왓은 방콕에서 처음 개업한 자기 가게에 켕셍레(바구니 판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20년이 지나 띠앙과 자녀들은 가게를 방콕 오리엔탈 호텔 근처로 이전하고 센트럴트레이딩 스토어로 개명한 후 신문, 잡지, 기타 상품을 판매했다. 띠앙의 아들 삼릿은 1957년 방콕 프라나콘에 태국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열었다.


15위 고드레지 가문(114억 달러 / 인도)


118주년을 맞은 매출 41억 달러 짜리 소비재 기업 집단 고드레지그룹에서 일하는 고드레지 가문 사람은 9명이며, 그 중 아디 회장은 이 유명 그룹을 이끄는 3세대 경영인이다. 그룹의 역사는 1897년 아르데시르 고드레지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자물쇠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918년에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그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동생 피로즈샤가 뭄바이 교외에서 확보한 광대한 토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문 최대의 자산이다. MIT 출신인 아디는 1963년 입사하여 200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정위통가문


16위 정 가문(111억 달러 / 홍콩)


정위통 가문은 홍콩 최대급 기업집단 저우다푸를 소유한다. 여기에는 아시아 최대의 귀금속 소매 업체와, 정위통이 1970년에 설립한 부동산 대기업 뉴월드디벨롭먼트 등이 속한다. 아들인 헨리가 사업을 주도하며 손자인 애드리언이 3세대 계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각광받는 인재인 손녀 소냐는 가문의 호텔 왕국을 이끈다. 정위통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17위 궈 가문(109억 달러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궈허녠은 1949년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설탕, 쌀, 밀가루를 거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궉 그룹에는 고급 호텔 체인 샹그릴라, 아시아 최대의 석유·가스 탐사 해양플랜트 운영 기업인 싱가포르의 PACC오프쇼어서비스홀딩스, 한때 일간지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수많은 기업이 속한다. 싱가포르 국적인 조카 궈콩펑이 운영하는 윌마르인터내셔널은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이다. 궈허녠의 아들 중 궈콩옌은 샹그리라아시아 대표이며 궈콩청은 케리 그룹(그룹의 홍콩 및 중국 영업을 담당)의 부회장이다. 이 둘의 자녀들은 여러 그룹사에서 일한다.


18위 사지 가문(108억 달러 / 일본)


산토리 회장 사지 노부타다는 2014년 유력 주류 업체 산토리홀딩스의 CEO를 사임하고, 회사의 116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자리를 넘겼다. 산토리의 역사는 도리 신지로가 일본에서 서양식 주류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리의 아들 사지 게이조는 1961년 회사를 이어받아 산토리를 음식점, 생수, 골프장, 영화제작, 포도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류로 사업영역을 넓힌 거대기업으로 변혁한다. 1990년부터는 조카 도리 신이치로가 경영권을 이어받아 11년 동안 경영했다.


미탈가문


19위 미탈 가문(101억 달러 / 인도)


라자스탄 주 출신인 모한 랄 미탈은 1950년대부터 제철업체를 가족끼리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아들인 락시미 미탈도 산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6년 가문 안에 갈등이 발생하자 모한 랄은 아들 락시미를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이곳에서 제철소를 세운 락시미는 이후 형제들과 결별하고 설립한 미탈스틸을 2006년 아르셀로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시가총액 90억 달러)인 아르셀로미탈을 만든다. 락시미의 딸인 바니샤는 스테인레스스틸 제조사 아페람의 최고전략책임자이며 아들 아디티아는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책임자다.


바오가문


20위 바오 가문(90억 달러 / 홍콩)


해운업계 거물 바오위강의 후손이다. 바오위강이 사망한 1991년에 장녀 애너가 월드와이드해운(현재 BW그룹)을 상속했다. 그녀의 남편인 헬무트 조먼이 2010년까지 회사를 경영하며 가스, 해양 석유생산 및 저장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는 이들의 아들 안드레아스가 경영을 담당한다. 바오위강의 차녀 베시는 부동산 및 인프라회사 워프를 물려받았으며 경영은 남편 피터 우가 담당한다. 예상 후계자는 지주회사인 휠록앤코의 회장인 아들 더글러스다. 삼녀 시시와 남편 와타리 신이치로는 기업보험, 무역, 고급승용차 판매업을 영위하는 일본사업부를 소유한다. 사녀 도린과 남편 정웨이젠이 물려받은 월드와이드인베스트먼트는 가문의 사적 자금도 관리한다. 바오위강은 상하이에서 은행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후 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1949년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자 홍콩으로 피난하여 해운회사를 세웠다.


21위 카두리 가문(89억 달러 / 홍콩)


카두리 가문의 관광 및 전력 사업은 바그다드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유대계 이라크인 엘리 카두리 경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 전 상하이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들인 로렌스와 호러스 카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제2차 세계대전 후 가문의 부를 재건하고 로렌스의 아들 마이클 카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현재 마이클은 홍콩앤상하이호텔과 CLP홀딩스의 회장이다. 처남인 로널드 매컬리는 홍콩상하이호텔의 이사이며 상당한 지분을 보유중이다. 카두리 가문은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과 빅토리아피크를 운행하는 피크트램의 지배 주주다. 이들은 자선사업으로도 유명하며 홍콩과 네팔의 댐, 교량, 농업 프로젝트와 학교 운영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22위 비를라 가문(78억 달러 / 인도)


간샴 다스 비를라가 방적공장을 건설한 1919년은 비를라 가문이 제조업으로 진입하는 분기점이었다. 이후 가문은 매 세대마다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며 확장과 분열을 거듭했다. 간샴 다스의 증손자 쿠마르 비를라는 선친의 이름을 딴 아디티아비를라그룹의 대표로서 지금까지 20년 이상 경영하며 금속·화학업체를 인수했다. 오늘날 매출액 410억 달러를 자랑하는 이 그룹은 여러 상표를 통하여 시멘트 제조에서 의류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다.


23위 황 가문(77억 달러 / 싱가포르)


황팅팡은 1934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가 엘리야 탐비(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사람인 아난다 크리슈난의 먼 친척)의 도움을 받아 세운 시노그룹은 3개 상장사와 다양한 비상장 기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황팅팡은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싱가포르와 홍콩에 호텔, 쇼핑몰, 콘도 700개 이상을 지었다. 장남 로버트는 시노그룹 소속사로 홍콩에 상장된 침사추이부동산 회장이며, 차남 필립은 시노그룹의 자매사인 싱가포르 부동산회사 파이스트오거나이제이션을 경영한다. 로버트의 아들 대릴 황용광은 시노그룹 전무이사다.


24위 차이 가문[식품](69억 달러 / 대만)


차이옌밍의 부친은 1962년 농산물통조림을 수출하는 소기업 이란식품공업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이후 현재 차이옌밍이 회장으로 있는 스낵·음료 대기업 왕왕그룹으로 성장한다. 차이옌밍은 1996년 왕왕홀딩스를 싱가포르에 상장했다가 2007년 상장폐지하고, 2008년에 홍콩에 상장한 신설기업 왕왕차이나로 음식료사업으로 이전했다. 왕왕은 2009년 모국인 대만에 상장했다가 2013년에 상장폐지했다. 차이옌밍의 차남 차이왕자는 회사의 COO고 장남 차이샤오종과 외조카 정원셴은 이사다. 회사 주식은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25위 모리 가문(61억 달러 / 일본)


도쿄 출신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는 소규모 부동산 회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고 1959년 모리빌딩을 설립했다.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용하여 상업용 및 주거용 건물을 다수 건축했다. 다이키치로는 포브스 선정 1991년·1992년 세계 최고의 부호이기도 하다. 그가 1993년 사망하자 아들인 미노루와 아키라가 회사를 물려받았으나 이 둘은 1999년 회사를 분할한다. 미노루는 회사 이름을 승계하여 아시아 부동산 시장의 유력인사로 활동하다 2012년 사망했다. 재산 일부는 그의 부인 모리 요시코가 상속했다. 아키라는 도쿄 샹그리라 호텔 등 호텔 30개와 임대건물 88개를 운영하는 모리트러스트를 경영한다. 딸 다테 미와코는 모리트러스트의 호텔리조트 부문 대표다.


26위 추 가문(60억 달러 / 싱가포르)


추더바는 1986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을 로이드은행에 인수될 위기에서 구한 세 투자자 중 하나이며, 1960년에 말레이시아 메이뱅크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부친인 추양전이 투자한 싱가포르 은행들은 1933년 OCBC와 합병하였으며 추더바는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화교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호텔들을 매입하였으며, 이 중 싱가포르의 역사적 건축물이기도 한 굿우드파크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운영 중이다. 추 가문은 은행 관련 지분을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했지만 호텔 사업은 계속 보유하고 있다. 추더바의 딸인 메이비스는 추더바가 사망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굿우드 회장이다.


27위 LG 구 씨 가문(59억 달러 / 대한민국)


전자, 화학, 통신 등을 영위하는 대한민국 4위 기업집단 LG그룹 가문이다. 구인회가 1947년에 허만정과 공동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는 원래 가정용품 제조사였다. 그룹 회장인 구본무는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다. 구본무는 외아들이 1990년 대에 사망하자 동생 구본능의 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으며, 지금은 구광모가 회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능은 LG그룹의 관계기업 집단으로서 전자 산업을 하는 희성그룹 회장이다. 구본무의 사촌들은 의류업을 하는 LF를 경영한다. 창업주의 조카들은 전력, 기계에 특화한 LS를 이끈다.


28위 위자야 가문(58억 달러 / 인도네시아)


으카 칩타 위자야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17살부터 과자를 팔던 그는 이후 1962년에 시나르마스를 창업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기업집단인 시나르마스는 펄프, 제지, 농업, 식품, 부동산, 금융, 에너지, 인프라, 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으카의 삼남 프랭키 위자야가 경영하는 골든아그리리소스는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가문 소유 지분 중 가장 큰 수익을 낸다. 차남 황홍녠은 싱가포르에서 독자적으로 투자한다. 3세대 중 4명 이상이 그룹 안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다.


29위 바자즈 가문(56억 달러 / 인도)


바자즈그룹은 마하트마 간디의 측근인 잠날랄 바자즈가 1926년 설립했다. 잠날랄의 장남 캄라나얀은 1942년 경영권을 승계하여 스쿠터 등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창업주의 손자인 라훌은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한 후 19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이륜차 사업을 담당했다. 그의 사업 감각 덕분에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바자즈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라훌의 사촌인 니라즈, 셰카르, 마두르를 포함한 바자즈 가문은 여러 기업집단을 운영하다 2008년 라훌의 남동생 시시르가 설탕과 소비재 부문 경영권을 가지고 독립하면서 분할되었다. 현재는 라훌의 장남 라지브가 대표기업인 바자즈오토를, 차남 산지브가 금융을 담당한다. 시시르는 비를라 가문(22위) 출신 여성과 결혼한 아들 쿠샤그라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중이다.


30위 부르만 가문(55억 달러 / 인도)


31위 로히아 가문(54억 달러 /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출신 직물 거래업자 모한 랄 로히아는 1973년에 아들 스리 프라카시 로히아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1976년에 방적사 생산업체인 인도라마신시틱스를 창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영역은 석유화학으로 확장되었다. 환갑을 앞둘 무렵 모한은 기존 인도네시아 회사만으로는 세 아들에게 충분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장남 옴 프라카시는 인도 법인을 맡았고, 막내 알로케는 태국으로 떠나 현재 석유화학 대기업인 인도라마벤처스를 경영 중이다. 스리 프라카시는 2008년에 철강계 거물이자 처남인 락시미 미탈이 사는 런던으로 이주한 반면 아들인 아밋은 싱가포르에 자리 잡았다. 아밋은 그룹 이사로서 신규 프로젝트와 기업인수를 책임지게 되었다. 인도라마의 아프리카 지역 사업도 그의 관할이다. 인도라마가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에 투자한 약 20억 달러는 해당 지역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 중 최고액이다.


32위 워노위조요 가문(49억 달러 / 인도네시아)


워노위조요 일족은 1927년 중국에서 이주했다. 친척이 운영하던 담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수르야는 1958년에 크레텍(정향담배) 제조사 구당가람을 세웠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후수르야의 장남 라크만 할림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그가 사망한 2008년부터 동생인 수실로 워노위조요가 경영에 참여했다. 지금도 수실로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크레텍 생산기업으로서 약 60억 달러(시가총액 기준) 규모인 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33위 파텔 가문(48억 달러 / 인도)


약학 교수였던 라만바이 파텔은 친구 인드라바단모디와 함께 1952년에 카딜라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들의 첫 일은 빈혈치료용 비타민 생산이었다. 1975년에는 라만바이의 아들이며 약학을 전공한 판카즈가 카딜라에 합류했다. 모디의 아들이 입사하자 동업자들은 1995년에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파텔 가문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참고하여 이름붙인 자이두스 그룹의 주력사는 카딜라헬스케어다. 2001년에 부친이 사망한 후 판카지가 회장이 되었다. 카딜라는 현재 매출액이 13억 달러로, 인도에서 손꼽히는 복제약 제약사다. 판카지의 아들로서 3세대인 샤르빌은 2007년부터 카딜라에서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유명한 설탕대체품 슈거프리를 생산하는 자이더스웰니스의 회장이다.


34위 황 가문(44억 달러 / 싱가포르)


황칭창은 동업자 여섯 명과 함께 1935년 유나이티드차이니즈뱅크(현 유나이티드오버시스뱅크)를 설립했다. 아들 황주야오는 회장 및 CEO로 38년을 재직하며 UCB를 싱가포르의 지방 은행에서 동남아시아 제3의 대출기관으로 끌어올리고 2012년 회장에서 사임했다. 그의 장남 황이종은 지점 484개를 보유한 동남아시아 최대급 은행 UOB의 CEO다. 차남, 삼남인 황이차오, 황이린은 자회사를 경영한다. 현재 회장은 가문 외부인이다.


35위 소벨 가문(42억 달러 / 필리핀)


필리핀에서 역사가 오랜 기업집단 중 하나인 아얄라 그룹을 이끄는 것은 가문의 7세대다. 181년 전 마닐라에서 작은 증류소로 시작했던 아얄라는 현재 아얄라랜드, 뱅크오브필리핀아일랜즈, 글로브텔레컴, 마닐라워터 등 상장사의 지주사이자 필리핀 최대급 기업집단이다. 일곱 형제가 아얄라의 지분 3분의 1 이상을 보유한다. 장남인 하이메 2세가 회장 겸 CEO고, 그의 아들 페르난도는 사장 겸 COO다. 8세대 중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3명이다. 소벨 가문이 보유한 아얄라 재단은 마카티 시의 아얄라 박물관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36위 린 가문(41억 5000만 달러 / 말레이시아)


린 가문의 부는 말레이시아의 외딴 산지에 있는 빽빽한 열대우림을 유명한 휴양지로 바꿔놓은 故 린우통의 비전으로부터 나왔다. 1968년 창립했을 때 겐팅 그룹에는 호텔 및 카지노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 그룹은 여러 나라에서 야자유, 전력발전, 석유가스, 부동산, 크루즈 사업 등에 다각화했다. 영국,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있는 카지노로 가장 유명한 겐팅 그룹은 현재 2세대인 린궈타이가 지휘한다. 그의 아들이자 승계 예정자인 린공후이는 겐팅홍콩의 최고정보책임자 겸 비서실장이다. 린우통의 부인을 포함하여 5명 이상이 재산을 공유한다.


37위 살림 가문(41억 2000만 달러 / 인도네시아)


안토니 살림이 이끄는 살림 그룹의 사업 영역은 식품, 플랜테이션, 자동차, 부동산, 소매, 은행업이다. 안토니의 부친 린샤오량은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1938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의류를 방문판매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67년에 그를 만나면서 얻은 관계는 이후 오랫동안 린샤오량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 수하르토가 1998년 하야하자 살림 그룹은 파멸할 뻔했다. 시간이 흘러 그룹은 재건되었고, 안토니의 아들이며 세계 최대의 인스턴트 라면 생산자인 인도푸드수크세스마크무르의 이사이자 유제품 부문 자회사 대표인 액스턴이 승계를 준비 중이다.


38위 뤄 가문(41억 달러 / 홍콩)


케네스 로는 부의 기원을 부친 뤄딩방이 세운 의류 대기업 보시니에서 찾는다. 케네스는 1970년 부인 이본과 함께 스웨터 공장을 세웠다. 지금 케네스는 세계적인 의류업체인 크리스탈 그룹의 대표이고 아들 앤드루는 CEO다. 반면 뤄자바오는 부동산에서 부를 일궜다. 주룽에 있는 파크 호텔 등이 그의 값진 재산이다. 변호사인 딸 웬디는 백화점 사업을 운영하고, 아들 앨런은 호텔을 경영한다. 지난 5월에는 다른 딸이 납치당했다가 몸값을 내고 돌아왔다.


궈가문


39위 궈 가문(40억 5000만 달러 / 싱가포르)


궈 가문은 폰티악랜드그룹을 통하여 싱가포르 리츠칼튼, 파티나, 카펠라, 콘라드센테니얼 등 고급 호텔과 밀레니아워크, 밀레니아타워, 센테니얼타워 등 최고급 상업시설을 소유한다. 궈량겅, 궈량더, 궈량청, 궈량핑 형제는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로 1958년에 이주한 직물 상인 겸 부동산업자였던 부친 헨리 궈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궈량더 회장의 외아들인 에번은 카펠라호텔그룹 아시아의 이사다.


40위 랄 가문(40억 달러 / 인도)


랄 가문이 소유한 아이허모터스(Eicher Motors)는 로얄엔필드(Royal Enfield) 모터사이클로 유명한 인도 제3의 상용차 제조사다. 그룹의 기원은 만 모한(Man Mohan) 랄이 수입 트랙터 판매 및 서비스 회사 굿어스(Goodearth Co.)를 설립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1958년 독일 아이허 사와 합작하면서 아이허트랙터(Eicher Tractor)로 이름을 바꿨다. 만 모한이 독일에 유학 보낸 아들 비크람(Vikram) 랄은 30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이후 비크람의 아들 시다르타(Siddhartha)는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모터사이클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당시 15개에 이르던 실적 부진 자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볼보와 합작하여 트럭을 만들었다. 그가 경영하는 동안 로얄엔필드 판매량은 2000년 2만4000대에서 작년에 30만대로 늘어나, 미국 대기업 할리데이비슨의 전 세계 판매량을 앞질렀다. 현재 회사의 모터사이클 부문은 전체 매출액 14억 달러 중 1/3, 순이익 중 70%를 차지한다. 비크람의 아내 아니타(Anita)와 딸 심란(Simran)은 인도에서 유명한 가정용품 상점 굿어스(Good Earth)를 경영한다.


펑가문


41위 펑 가문(39억 달러 / 홍콩)


토미힐피거, 아베크롬비앤피치, 에어로포스테일 같은 서양 브랜드의 중개상으로 유명한 세계적 무역회사 리앤펑이 펑 가문 소유다. 가문이 중개자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1906년, 영어 교사였던 펑바이랴오는 지금의 광저우에 수출회사 리앤펑을 공동 설립한다. 영어가 유창했던 그는 중국 제조업자와 서양 구매자 사이에서 핵심 중개자가 되었다. 아들인 펑한주는 1937년 홍콩에 리앤펑의 첫 지사를 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펑바이랴오의 동업자는 자기 지분을 펑 가문에 되팔았다. 작년 매출액 197억 달러를 달성한 상장사 리앤펑의 경영자는 펑바이랴오의 손자 윌리엄으로, 형 빅터가 사임한 2012년에 회장이 되었다. 빅터의 아들이며 작년 중역이 된 스펜서는 이익이 2011년 정점에 이른 후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42위 반구르 가문(38억 5000만 달러 / 인도)


콜카타 재계에서 유력한 가문인 반구르 가문의 뿌리는 상품과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한 문지 람과 람 쿠와르 반구르 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세대가 경영에 참여하는 동안 그룹은 인도의 황마, 제지, 시멘트, 발전 등 분야에 진출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후계자 5명이 이 거대한 기업집단을 각자 나누면서 가문의 자산도 분할되었다. 후계자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베누 고팔이며, 아들 하리 모한은 이익을 내지 못하던 회사를 인도에서 손꼽히는 시멘트 제조사 시리시멘트로 키워냈다. 하리 모한의 아들 프라샨트는 시리의 전략부서를 총괄한다.


43위 진달 가문(38억 달러 / 인도)


진달 그룹의 사업영역은 철강, 발전, 시멘트, 인프라, 소프트웨어다. 그룹 회장은 10년 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창업주 옴 프라카시 진달의 부인 사비트리 진달이다. 농가 출신인 옴 프라카시는 1952년부터 양동이를 만들었다. 1964년에는 히사르에 진달인디아라는 파이프 공장을 세웠고, 5년 후에는 진달스트립스라는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회사들은 네 아들 각각에게 분할 상속되어 독립적으로 경영되지만 모두 소속은 여전히 진달그룹이다. 아들 중 사지안은 뭄바이에 있는 자회사 JSW에너지를, 프리드 비라즈와 라탄은 각각 진달SAW와 진달스테인리스를 경영한다. 옴 프라카시의 손자 파르드는 부친 사지안이 첨단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만든 신생 벤처캐피탈사 JSW벤처펀드를 운영한다.


44위 아보이티스 가문(36억 달러 / 필리핀)


세부에 본사를 두고 발전, 교통, 금융, 식품, 부동산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 기업집단 아보이티스에 쿼티벤처스(AEV)가 이 가문 소유다. AEV는 스페인 농가 출신인 파울리노 아보이티스가 필리핀으로 이주한 후 19세기 후반에 세운 회사다. 회사 사업영역은 마닐라삼 매매 및 일반 상거래로 시작하여 이후 비사야 제도 사이에서 상품을 운송하는 국내 해운업으로 옮겨갔다. 아보이티스 가문은 1994년 AEV를 필리핀 증시에 상장했지만 건설과 조선업체는 비상장을 유지했다. 영업에 일상적으로 관여하는 가족 19명 중 대부분은 4·5세대다. 이 가문은 400명이 넘는 친척과 친목모임을 갖는다고 알려졌으며, 이들의 채용과 승진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정식 절차를 밟는다.


45위 라따나락 가문(35억 달리 / 태국)


채널7 방송국이 소속된 곳이 바로 끄릿 라따나락이 경영하는 이 가문 소유 방콕브로드캐스팅앤티비다. 끄릿과 모친, 여동생 다섯, 아들 차촌이 나누어 가진 부는 끄릿의 중국 태생 부친 추안 때부터 쌓인 것이다. 6세일 때 방콕으로 건너온 추안은 항만노무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아유디아은행와 시암시티시멘트의 주주가 되었다. 이 가문에도 2006년에 설립한 똔손프로퍼티라는 부동산 회사가 있다. 차촌은 가문 소유의 투자회사들을 경영한다.


46위 문잘 가문(32억 달러 / 인도)


92세인 히어로그룹(Hero Group) 창업주 브리즈모한 랄(Brijmohan Lall) 문잘은 현재 인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히어로모터코퍼레이션(Hero MotoCorp) 명예회장이다. 브리즈모한은 1947년 펀자브 주에서 세 형제와 함께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이 세운 히어로사이클(Hero Cycles)은 한때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이기도 했다. 이후 이들의 사업영역은 자전거에서 모터자전거로 이동했다가, 1984년에 혼다(本田)와 합작하면서 모터사이클이 되었다. 이 가문이 2010년에 넷으로 나뉘면서 브리즈모한 집안은 혼다 합작법인을 맡아 경영하게 되었다. 1년 후 문잘 가문은 27년에 걸친 혼다와의 협력 관계를 청산했다. 현재 브리즈모한의 아들 파완(Pawan)이 회장으로서 경영을 담당하며, 손자들은 녹색에너지 및 금융서비스 벤처기업을 경영한다.


아시아재벌


47위 히라난다니 가문(31억 달러 / 싱가포르)


나라인다스 히라난다니는 1947년에 현재 파키스탄에 속한 지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직물업체인 로열실크스토어를 창업했다. 그가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했을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장남 라즈 쿠마르가 경영에 갑작스레 참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아소크 쿠마르가 합류한 후 형제는 회사를 번창하는 의류점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임차료 상승 때문에 부동산을 처음으로 매입해 본 형제는 가게에서 힘들게 일하기보다 공간을 임대할 때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회사 로열브라더스를 통하여 인도에서 손꼽히는 쇼핑몰을 여럿 소유하게 된 라즈와 아소크 쿠마르가 ‘쇼핑센터의 왕’으로 불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제는 6년 동안 복잡한 구조조정을 거친 후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기 위하여 2011년에 자산을 분할했으며 그 결과 회사는 둘로 나뉘었다. 라즈가 운영하는 로열홀딩스는 라즈의 아들 키신 R. K.의 RB캐피탈과 합병 예정이다. 부자는 함께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사무용 빌딩을 건축하고 있다. 아소크와 아들 바비가 이끄는 로열 그룹은 최근 힐튼 호텔로부터 객실 540개짜리 더블트리 호텔을 1억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48위 뤄 가문(30억 달러 / 홍콩)


효성조씨


49위 효성 조 씨 가문(29억 5000만 달러 / 대한민국)


조 씨 가문은 세계 7위 타이어제조사 한국타이어를 보유할 뿐 아니라, 이와 별도 기업집단인 효성그룹을 통하여 산업자재, 건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사업을 영위한다. 한국타이어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조홍제가 인수한 허름한 타이어 가게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6년 조홍제는 섬유·직물 전문회사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그는 사업 초기 여러 가지 시도를 했으며, 한 예로 현재의 삼성물산은 원래 1948년에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함께 창업한 건설사였다. 현재 조홍제의 차남 조양래가 한국타이어 회장, 장남 조석래가 효성그룹 회장이다. 작년에는 원래 승계 예정자였던 조현문이 형 조현준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는 등 조석래의 아들들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었다. 효성 대변인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50위 하미에드 가문(29억 달러 / 인도)


마하트마 간디를 따르던 크와자 압둘 하미에드는 인도가 필수 의약품을 자급하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35년 뭄바이에 시플라를 설립했다. 가장이던 그가 1972년 사망한 후 아들 유수프와 무스타파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유수프가 회장이던 시절, 회사는 AIDS 등 질병 관련 저가 복제약을 공급하며 대형 제약사와 경쟁했다. 유수프는 2013년 퇴임했지만 권한 없는 명예회장 자리는 유지했다. 1년 후 무스타파는 부회장 자리를 사임했다. 그의 딸 사미나 바지랄리는 7월에 이사회에 합류한 후 경영상 담당 분야를 넓혀가는 중이다.


재벌 50개 가문 중 거의 반은 중국계지만, 개방경제 체제 안에서 수십억 달러를 동원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세대가 역사가 일천한 기업집단을 경영하고 있는 중국 본토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가문은 이 중에 없다. 중국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앞으로도 이들 가문은 부를 유지하고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