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요즘 그런 말이 있다. '한 번 다녀온 건 흠도 아니다.' 그만큼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 특히 황혼 이혼의 비율은 급증했다. 1995년 중년 이혼 비율은 전체 이혼의 8.2%에서 지난해 29.9%로 급증했다. 무턱대고 같이 못살겠다며 이혼하기 전, 이혼도 '잘 하는 방법'이 따로있다. '돌싱' 변호사가 전하는 이혼 잘하는 법에 대해 들어보자.
“두 분은 이제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조정실에서 판사의 이 말이 떨어지면 대부분 여자들은 운다. 소리 내어 우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고, 그저 눈물만 흘리다 천천히 일어난다. 반면 남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먼저 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결혼생활에 한이 많은 건 여자 쪽인 것 같다. 그래서 이혼 상담을 하는 쪽도 여자가 훨씬 많다.
“실은 제가 이혼녀입니다. 명색이 변호사인데 저도 양육비 못 받고 있어요. 이게 우리나라 이혼입니다.”
“어머, 그래도 변호사님은 능력 있잖아요. 양육비 좀 못 받아도 뭐가 걱정이겠어요?”
양육비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혼이 곧 아이와의 절연이 되는 우리나라 이혼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다.
“이혼만 하면 훨훨 날아다닐 것 같아요, 변호사님.”
“글쎄요. 이혼 후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저는 이혼 안 했을 겁니다. 몰랐으니 했지.”
“이혼하면 그렇게 힘든가요? 변호사면 돈도 잘 버실 거고 누가 무시도 안 할 거고….”
그녀의 오해처럼 그렇게 걱정 없는 이혼녀의 삶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혼은 변호사에게도 어렵고 서러운 결정이자 과정이다.
▒ 변호사인 나도 이혼이 힘들었다
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지만 이혼 과정은 대부분 지난하다. 죽어도 이혼은 못한다고 버텨서 판결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부터 재산을 빼돌리거나 아이를 데려가서 보여주지 않아 애가 이혼에 휘말리는 일이 많다. 그런 상대방과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소송을 하고 나면 여전사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어릴 때 이혼한 나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 그나마 수월하게 일과 양육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혼녀란 이유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이혼 후 3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혼했었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이 안 날 때가 온다.
하지만 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다가 가슴이 칼로 베이는 듯 싸하게 아픈 날은 계속 반복된다. 주변에서 ‘애 잘 키웠다’는 칭찬을 들으면 더 없이 뿌듯하다가도 문득 외로움이 찾아들 때나, 모든 복을 타고난 듯한 사모님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밀려드는 서러움은 여전히 반복된다.
그동안 도통 생각나지 않았던 이혼의 이유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전 배우자와 얽힐 때다. ‘그래. 이래서 내가 이혼했지’라며 가슴이 꽉 막혀버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비로소 ‘내가 이혼 잘했지’라며 시원해 한다. 이런 심정은 연애니 결혼이니,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을 다 부질 없어지게 만들어 현재의 ‘이혼녀’ 생활을 감사하며 지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전 배우자도 나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혼이 정답일까?
이혼 상담을 오는 사람 중 열에 일곱은 ‘이혼을 꼭 하겠다’고 결정 내린 후 재판을 준비하러 오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담이나 한 번 받아보자’하며 오는 사람이다.
나는 실제로 이혼을 해봤기 때문에 이혼을 권하지 않는 변호사 축에 속한다. 좋은 배우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배우자도 아닌 이와의 결혼 생활은 아직 자녀가 어리다면 유지하는 게 낫다.
남편과 같이 사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이혼 후 그간 해본 적 없는 몸 고생을 할 마음도 없는 중산층 여성의 경우 적나라한 재산분할 견적서(!)를 뽑아주면 이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예상보다 훨씬 더 경제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성(性) 문제로 외도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세간에서는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성격 차이’를 두고 실상은 성(性) 문제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보면 성 문제 하나 때문에 이뤄진 이혼상담은 없었다. 일례로 배우자의 외도가 넓은 의미에서의 성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내나 남편과의 성(性) 문제 하나 때문에 외도가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함께 살기 힘들어져서 하는 게 이혼이라지만 이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가 가정폭력을 주도하거나 자녀를 괴롭히는 경우, 중증의 의심병이나 성격적 결함이 있는데도 치료나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 심각한 마마보이나 마마걸인 경우 이혼을 강하게 권한다.
반면에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가 그렇다. 이혼을 하게 되면 성년의 자녀가 남편의 보호자가 되기 때문에 차마 자신의 자녀에게 부양의 짐을 건넬 수 없어 엄마로서 이혼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약 2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여성은 대개 모성이 강하다. 가정 폭력까지 동반된 환경에서 힘겹게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분을 만날 때마다 국내에 정신의학과 치료를 위한 믿을 만한 의료시설이 더 많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모든 이혼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이혼 과정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이혼 과정에서는 물러설 때를 아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남이 보면 별 의미 없는 배우자와의 감정싸움이 자신에게는 인생을 건 자존심 싸움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스트레스를 받아 제 명에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대폭 양보하는 것이 남는 계산법이다. 서로 원하는 금액 차이가 억 단위가 난다면 계속 다퉈야 하지만, 몇 천 만원 차이라면 빨리 정리하고 그 시간에 건강 챙기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보는 게 낫다.
이혼에 동의했거나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확신이 없다면 과감하게 이혼을 거절하거나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특히 내게는 나쁜 배우자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였다면 이혼 시기를 자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로 미루는 게 현명하다.
결국 모든 이혼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이혼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더라도 이혼 후 생활을 감당 못한다면 결코 성공한 이혼이 아니다. 이혼 결심이 섰다고 해서 선언하듯 ‘이혼하자’거나 ‘이혼하면 얼마 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부터 꺼내지 말고 이혼 후 어떻게 살아갈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짜놓고 내 협상안을 들고 이혼 요구를 해야 한다.
성급한 재혼까지 겹치면 또 한 번의 이혼을 고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이혼하게 되면 위축된 자세로 지내게 되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되다 보면 자존감도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립할 의지도 줄어들어 경제적 어려움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따라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이혼이 되기 위해서는 이혼 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키워둬야 한다는 말이다.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혼 후 어떤 허드렛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이혼 후 성공적인 새 삶을 살 수 있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남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성향의 분들은 이혼 후 재혼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재혼은 초혼보다 더 조건을 중요시하고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자기반성 없는 ‘재혼 로망’은 ‘절망의 반복’ 될 수 있어
요즘에는 이혼 상담을 하면서 재혼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럼 꼭 해주는 대답이 있다. “당신의 남자(여자) 보는 눈이 바뀌지 않는 한 재혼은 하지 마세요.”
이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성향인 건 아니다. 대부분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만난 경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눈이 안 바뀌는 한 전 배우자와 비슷한 이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이성 보는 눈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면 재혼보다는 교제만 길게 하는 게 낫다.
반대로 전 배우자와 다른 점 하나에 끌려 재혼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전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경우 상대방의 경제력만 보고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다. 아무리 재혼은 조건 위주의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은 사람이 부딪치는 일상의 반복이기 때문에 조건 하나에 꽂혀서 하는 재혼은 잘못된 만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옆에서 이런 저런 조언이 있었더라도 결혼을 선택한 게 당신 자신이듯 이혼도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 원칙을 간과하는 이혼이 요즘은 늘고 있다. 부모에 이끌려 상담을 오는 젊은 부부를 보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은 결혼생활이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란 말을 한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벗어났다는 사실에 홀가분하겠지만 이후에는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상과 삶만 남는다. 이혼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부터 다지길 권한다.
'돌싱' 변호사는 '이혼녀'라는 사실을 안 밝히는 게 낫다고 충고를 덧붙였다. 타인의 사생활에 유독 관심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이혼녀'에게 갖는 불온한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혼은 홧김에 저지르기엔 무척 많은 위험과 시련을 감수해야할 일이다. 만약에 정말로 '이혼'을 결심했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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