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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분노조절장애, 내 안의 분노와 화해하는 방법

분노조절장애. 왜곡된 자존감으로 인해 시작되는 마음의 병이다. '착한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우리는 참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참기만 하는 것은 결코 건강하지 않다. '나는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라는 억울감과 자존감의 결핍은 분노조절장애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분노조절장애

층간소음으로 인해 급기야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묻지마 살인’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급증하는 현대사회에서 ‘분노’는 사회 전체의 숨은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다. 분노는 실제로 그 결과가 범죄나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위험한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거나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분노는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항시적인 감정노동 상태에 놓여 있는 서비스직 종사자들, 가정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들, 나아가 매일 미디어를 통해 충격적인 뉴스를 들어야 하는 현대인들 모두가 사실 분노조절장애의 위험 속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르는 이 정신적 문제의 심리학 용어는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인데,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 욱하는 순간, 평생 후회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

분노조절장애가 위험한 첫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가장 상처 입기 쉬운 사람이 바로 가장 가까운 사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주범이 주로 친부모라는 것도, 존속 살해의 빈도수가 높아지는 것도, 바로 그 욱하는 순간의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분노의 과도한 표출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삶의 능률과 행복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노조절의 문제는 가정은 물론 직장 내 폭력, 인터넷 악성 댓글을 통해 엉뚱한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우리는 화를 내고 뒤늦게 후회할 것이 아니라 화내지 않고 올바르게 승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우, 그 원인은 대개 ‘나는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좌절감 혹은 억울함에서 시작된다. 그 공통적인 원인에는 ‘마음을 털어 놓는 대화’의 단절이 가로놓여 있다. 내가 왜 분노하는지,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어떤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분노를 더욱 키운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는 고립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자신의 고민은 결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분노한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그 왜곡된 분노의 핵심에는 ‘자존감의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일찍이 인간을 파괴하는 분노의 감정을 깊이 연구했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당한 처분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분노는 격심해진다고.

▒ 나는 분노한다, 당신이 나를 거부하므로

맥베스


분노 중에서도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거부했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 심리학자 가이 윈치는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에서 ‘거부당하는 느낌’이야말로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청소년의 폭력적 행동의 원인 중에서는 폭력집단 가입 여부, 가난, 마약 사용보다 ‘거부당한 경험’이 훨씬 앞쪽에 놓인다고 한다. ‘당신이 나를 거절하니까, 나는 당신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분노의 도화선이 되곤 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사실 과도한 기대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당신이 나를 항상 최고 우선순위에 놓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사소한 상대방의 실수에도 과도한 분노를 유발시킨다.


분노가 우리 정신의 지휘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어떤 경우에라도 분노가 일을 제대로 바로잡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의도나 정의감에서 비롯된 분노일지라도, 사태를 바로잡는 노력은 차분한 이성과 정확한 판단력, 건강한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화’라는 감정 자체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간혹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화를 ‘옳은 것’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또한 ‘화났을 때 당신의 모습이 매력적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조언에도 기울여서는 안 된다. 화가 자신의 용기를 북돋우는 조력자라는 식의 자기합리화도 금물이다.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속의 방’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나의 분노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관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마음의 방을 만들지 않는다면, ‘걸핏하면 분노하는 자신’을 제3자가 되어 바라볼 기회가 없어진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나만의 방’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를 불러낼 수 있다면, 분노뿐 아니라 다양한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열쇠를 본인 스스로 쥘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종이 위에 써보거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마음챙김 명상도 도움이 된다. 이런 방식이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런 마음의 검열관을 멀리하고, ‘나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라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분노는 한 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마음의 재앙이기 때문에 불이 확산되기 전에 처음부터 진압해야 한다. 분노의 불씨가 시작되려 할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머릿속에서 흥얼거려보거나 천진난만한 갓난아기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선은 ‘마음의 방’ 속에서 지금 불타오르고 있는 분노와 거리를 두는 제2의 나, 더 합리적이고 더 치유적이며 더 강인한 나를 불러오는 것이 중요하다.

베니스의 상인


“저는 앉아서 긴장을 풀기 위해 두 번의 깊은 심호흡을 해요. 그 다음 초록빛 바다를 떠올리면서 ‘내 어깨가 쳐지고 느슨해진다’거나 ‘내 얼굴은 시원해지고 차분해진다’라는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죠. 저는 이 과정을 사무실에서 재빨리 할 수 있어요. 회의장에서나 다른 곳에서도 천천히 호흡하면서 문장을 말하고 심상에 빠져들어요. 이것은 정말로 효과적이라 저는 다시 완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제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만 할 때는 가능한 근육의 긴장을 풀고 앉아 저만 알 수 있도록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문장을 반복해요. 저 말고는 아무도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을 모를 거예요.” -로버트 네이, <쿨하게 화내기>(시그마프스, 2015) 중에서


아무리 화가 나도 죄 없는 물건들에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되며, 설사 타인이 내게 잘못을 했더라도 그것을 ‘화난 모습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세네카는 말한다. 긴 호흡을 유지하며 끈질긴 악덕에 맞서라고. 화는 그저 끔찍한 것일 뿐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우리는 분노가 결국 자기 파괴를 향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잊은 채, 사람들은 화의 도움을 받아 어떤 행동을 하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나쁘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타인의 화를 더 큰 화로 갚곤 한다. 


나는 잘못이 없다는 착각에서 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모른 채, 우리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자신의 모습을 마음의 거울에 비춰보지 못한다. 화가 당신의 머리채를 휘두르려 할 때, 우선 멈추자. 화가 난 사람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을 주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분노의 발화점이 사실 아주 하찮은 곳에서 시작된 것임을 상기 해보자.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보자. 화를 내면서 나를 파괴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시작된 분노가 점점 쌓이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진 감정의 화약고가 되곤 한다. 평소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 참고, 숨기고, 안으로 가둬두기 때문이다. 의지력을 시험하는 상황에 들기 전에 우선 의지력을 길러두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의지력 훈련에는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훈련, 즉 마음이 올바른 판단력에 따라 결심하는 대로 몸도 그것에 따라오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내 안의 분노와 화해하는 길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감정을 자제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삼가는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평소에 ‘습관적인 충동’을 이겨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부분에서 의지력을 훈련해두면, 큰 일이 일어났을 때도 그 자제력과 의지력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힘들더라도 기대거나 구부리지 않고 의자에 똑바로 꼿꼿이 앉는 훈련을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한다든지,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욕을 참는다든지, 사탕이나 쿠키, 케이크 등 단 것을 섭취하는 것을 피한다든지, 하루에 몇 번씩 악력기를 힘이 다할 때까지 쥐었다 폈다하는 간단한 의지력 훈련을 통해 안 좋은 상황이 다가왔을 때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의 저자 가이 윈치는 의지력 강화 훈련으로 가장 좋은 것은 왼손잡이가 오른손만 사용한다든지, 오른손잡이가 왼손만 사용해보는 훈련을 4주 이상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오른손잡이인 사람들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밥 먹기, 문 열기, 머리빗기, 요리하기, 교통카드 찍기 등 모든 행동을 왼손으로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4주 이상 익숙한 충동이나 습관을 ‘나만의 의지’로 극복하는 훈련을 하면, 다른 일에 있어서도 의지와 행동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약물에 의지하지 않고, 타인의 도움에 호소하지 않고, 자기 치유로 분노를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챙김 명상이다. 마음챙김의 기본은 내 마음을 판단하지 말고, 제어하지도 말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관찰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마치 외계인이 지구에 처음 와서 지구인을 관찰하는 듯,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관찰이 평소와 다르게 좀 더 시각화된 방법, 계량화될 수 있는 방법이면 더 좋다. 예컨대 도박이나 음주에 중독되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해보는 것이다.


“긴장을 풀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눈을 감아도 좋습니다. 도박하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 관찰해보세요. 그 욕구가 파도처럼 밀려와 당신을 덮치고 밀려가는 것을 말이죠. 당신은 인간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연구하는 외계인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욕구의 강도를 마치 지진계처럼 시각화해서 마음에 나타내보세요. 욕구의 파도가 밀려오면 계기판의 바늘이 진폭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관찰해 보세요. 지진파 하나가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그 다음 지진파가 시작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지진파가 강해지고 약해질 때마다 당신 몸의 각 부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나하나 느껴보세요.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당신의 생리적 반응을 관찰하세요. 지진파들이 하나씩 하나씩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마침내 모든 지진파의 진폭이 다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가이 윈치,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임지원 옮김, 문학동네, 2016) 중에서


▒ 판단하지도, 제어하지도 말고 ‘지켜보기’

분노조절장애


내 경우엔 하루 한두 번 마음챙김 명상 말고도, 작지만 소중한 ‘인생의 여집합’을 만드는 것이 분노조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는 ‘내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몰두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 인생의 여집합으로 악기 배우는 것을 택했다. 몇 년째 첼로를 배우고 있는데,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지만 마음챙김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음속에서는 아름다운 교향악이 울리는데, 현실에서는 별로 곱지 못한 울퉁불퉁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악기를 만지고, 악기를 고치기 위해 마치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처럼 악기상을 찾고, 그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첼로 선생님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일과 상관없는 곳’에서 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전에는 ‘나는 왜 이러지, 왜 뭔가를 시작해놓고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지’하고 스스로 자책하던 내가, 무언가를 그야말로 진득하니,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에게 이런 ‘마음의 여백’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첼로를 통해 배웠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오만을 내려놓고, 음악 그 자체의 치유적 힘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여백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기치유의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평판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며, 그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삶을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분노가 우리 삶을 틀어쥐는 고삐가 되지 않도록, 분노가 내 삶의 지휘자가 되지 않도록, 분노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들과 대화할 능력이 있다. 이런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분노조절의 기회는 늘어날 수 있다.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굴복하여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기, 분노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보고도 함께 흥분하지 않기, 분노를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분노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행동이나 언어’를 개발해내기,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의 분노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정여울 - 작가, 문학평론가. 1976년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헤세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