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가키 에미코가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담아낸 <퇴사하겠습니다>는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일개 사회인으로서 쓴 일본인으로서의 경험이 한국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보기 드물게 한적한 동네, 나카메구로(中目黑)의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프로 헤어(둥글게 부풀린 파마 머리)에 데님 미니스커트ㆍ스니커즈를 매치한 51세 여성이 앉아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稻垣えみ子)다.
무심한 듯 조곤조곤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가 한국에 ‘퇴준생’ 신드롬을 몰고 온 주역이다. 지난해 펴낸 <퇴사하겠습니다>(엘리)의 한국어 번역본이 지난 1월 출간된 뒤 한국엔 ‘퇴사 신드롬’이 일었다. 그의 책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는 아예 그의 책 제목을 딴 프로그램을 제작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엔 <퇴사 준비생의 도쿄>(데퀘스트), <퇴사학교>(알에이치코리아) 등 ‘퇴사’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 줄줄이 출판됐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이런 책들의 주요 독자층은 30~40대다.
이나가키는 이런 퇴준생들의 롤모델이다. 그 자신이 10년간 퇴준생이었고, 실제로 스스로 “일본 최고의 직장 중 하나”라고 부른 아사히(朝日)신문사를 퇴사했다. 지난해 1월, 그가 50세 되던 해다. 40세 되던 해 스스로에게 “50세가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어”라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대학 졸업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했던 첫 직장이자, 28년간 몸담으며 평생 직장일 거라 믿었던 곳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다.
퇴사 후 전업주부가 된 것도 아니다. 그에겐 남편도, 자식도 없다. 회사를 자의로 퇴직했으니 회사원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보험 혜택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표정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가히 ‘무직장 상팔자’라 할 만했다.
한국에서 덕분에 퇴사 신드롬이 불고 있다.
“앗, 그럼 다들 회사를 그만둬 버리는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본인은 정작 그만두지 않았나?
“퇴사를 종용하거나, 퇴사를 하면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로 이 책을 쓴 건 아니니까.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회사 사회’에서는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지탱해준다. 회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인 사회에서 회사 밖으로 나오는 것은 충격을 동반하는 일이다. 나 자신도 그랬고.”
그럼에도 퇴사 후 삶에서 희망이 가득하다고 책에 썼는데.
“맞다. 저는 어느 때보다도 희망에 가득 차 있고, 또 무척이나 편안한 상태다.”
왜 그런가?
“28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퇴사하는 과정은 마치 강도를 당한 것과 같았다. 내가 그동안 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옷이며 가방ㆍ휴대전화 등 전부를 도둑맞고 내 몸뚱이 하나만 남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나 자신만 남고 보니 뭐랄까, 굉장히 후련했다.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건 한순간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내 힘으로 해왔다고 여겼던 많은 것이 사실은 내 힘이 아니었다는 것, 회사에 내가 이만큼 기대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나?
“‘제로(0)’다. 한 번도 없다.”
불안하지 않은가?
“물론 불안은 있다. 하지만 회사원이라고 해서 불안이 없나. 회사원의 불안은 욕망에서 기인한다. 사람의 욕망이란 무서운 구석이 있어서 모두가 출세주의자가 되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다’는 게 어렵다. 예를 들어 인사 이동 때문에 상처 입고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지 않나. 나도 그랬다. 하지만 퇴사 후 나는 진정한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라는 옵션을 생각하지 않는 건 사실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 아닐까.”
“회사는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게 좋다”
▎이나가키가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의 원제는 ‘혼의 퇴사(魂の退社)’다. 일본의 경영학 부문 히트 서적인 ‘혼의 경영’을 비튼 제목이다.
그의 책에서 많은 이들은 다음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가 재미있어졌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직접 물어보았다. 그는 38세이던 시절, 자신으로선 납득할 수 없었던 인사 발령 얘기를 꺼냈다. 다카마쓰(高松)라는 곳으로 발령받았던 때다. 다카마쓰는 우동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가가와(香川)현의 작은 도시다. 그의 후배가 “유배를 가는군요”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좌천으로, 의욕이 충만했던 그에겐 괴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나가키는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을 봤다.
그의 말이다.
“돈을 쓸 시간도, 쓸 만한 곳도 없었다. 대도시에서 해왔던 ‘헤픈 생활을 통한 행복의 추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월급은 똑같았지만 소비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월급이 늘어난 셈이었다(웃음). 그러다 보니 회사에 매달리게 되는 느낌이 덜해졌다. 자유를 느끼게 됐다. 월급에 매달리게 되면 회사라는 곳은 무서워진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수 있게 됐다.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는 ‘회사에 잘 보여야 다음 인사 이동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식의 일에 매달리지 않게 된 거다.”
그 전까지 이나가키는 꽤 화려한 소비생활을 했다고 한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산해진미를 찾아다녔고, 옷가게에선 VIP 대접을 받으며 쇼핑을 했다. 집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옷이 넘쳐났다. 그런 그에게 다카마쓰 생활은 신세계였다.
책에도 이런 심경을 솔직히 썼다. “(다카마쓰 시절) 당시의 나는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에 무척 진지했다. 아마도 나를 ‘유배 보낸’ 인간들에게 ‘날 물 먹였다고 생각하지? 천만의 말씀! 난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쪼잔한 심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쪼잔하고 필사적인 마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마트 대신 직거래 농산물 장터를 이용하고 백화점 쇼핑을 하는 대신 뒷산의 복사꽃에 열광하면서 이나가키는 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뭐였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상처받지 않게 됐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납득할 수 없는 인사 발령을 받기 마련이다. 사실 대부분의 인사 발령은 ‘이게 뭐야’라는 탄식을 유발한다(웃음). 그런데 그런 ‘이게 뭐야’라는 인사 발령 이야말로 성장의 기회이자, 회사에서 일을 하는 ‘다이고미(だいごみㆍ참맛)’다.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으니까. 꾹 참고 안으로 삭이기만 하란 얘기가 아니다. 평가라는 건 결국 남이 하는 것이고 내가 바꿀 수 없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면 나만 괴로울 뿐이다.”
직장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회사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남이 하는 평가에 매달려서 괴로워하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회사와 나의 관계도 건강해진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니까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 좋지 않은 평가를 들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중요한 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여기서 잠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자면 이나가키가 말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회사가 어찌 되건 말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이나가키가 “남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은 다카마쓰 총국의 마감 일정 개선부터 ‘아사히신문을 개선하는 1인 모임’을 만들어 회사에 이런저런 건의를 했던 프로젝트다.
그도 한때 회사가 전부였지만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회사는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게 좋다. 적당히 좋아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생의 목표는 뭔가?
“없는데(웃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 하나 있다. ‘직함’이라는 것을 갖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다 죽는 것.”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이나가키지만 한국에서도 자신의 책이 열풍을 일으킬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가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헬조선’이란 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헬조선’이라는 말 역시 결국 돈에 가치를 두었기에 생겨난 말 아닐까. 내 가치관이 돈에 지배당하게 되면 결국 어디에서 살든 ‘헬’이다. 결국 간단하다. 남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다시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