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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평양 로열패밀리의 피비린내 풍기는 권력다툼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3대에 걸쳐 권력세습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전대미문인 일이다. 현재 북한 절대권력가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싹을 제거하기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는가 하면 지난 해에 김정남을 암살하기도 했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까지 암살을 음모한 계획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는 권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곁가지를 계속 쳐내는 중이다. 

 

2017년 2월 13일 벌어진 김정남 암살 사건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한때 권력승계 1순위로 점쳐지던 인물이다. 이복동생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암살 지시를 내렸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북한 김씨 세습 정권 내부의 실상에 관심이 쏠렸다. 집권 7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체제에서도 끝나지 않는 평양 로열패밀리의 피비린내 풍기는 권력다툼. 그 뿌리와 실상을 짚어본다.

 

평양 로열패밀리

▎ 김정일(앞줄 왼쪽)과 김정남(앞줄 오른쪽)이 1981년 8월에 함께 찍은 사진.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줄곧 권력 승계 1순위로 꼽혀 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김정남 암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몇 개의 가지가 엉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과정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가계도(family tree)다. 70년 노동당 통치를 이어온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의 여성 편력이 빚어낸 일이다. 특히 김정일은 결혼·동거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난 것만 3명의 여성에게서 모두 합쳐 3남2녀를 낳았다.

 

후계권력에서 밀려난다는 건 곧 몰락을 의미한다. 김정일의 여인들과 그 소생들이 죽음을 무릅쓴 권력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생결단의 싸움은 후계자 낙점과정에서 치열하게 벌어졌고, 그 이후에도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이어져 왔다. 마그마처럼 꿈틀대다가 이례적이고 폭발적인 분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정남 암살은 그중 하나다.

 

생전에 김정남이 남긴 글에서는 호두 속 같이 어지러운 김 씨 일가의 속사정을 엿볼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아버지 김정일과 권력 후계에서 멀어지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우면서도 담담하게 적고 있다. 한 일본 언론인과 2011년 3월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다.

 

평양 로열 패밀리 김정남

▎ 김정남(오른쪽)은 한때 “북한의 세습은 잘못됐다”며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정남과 여러 차례 접촉했던 고미 요지(왼쪽) 도쿄신문 편집위원.

 

“제가 유학을 떠난 뒤로 저의 이복형제들인 정철·정은·여정이 태어나면서 부친의 애정도 그들에게 쏠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완전 자본주의 청년으로 성장해 북한에 돌아간 때부터 부친께서는 저를 경계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친의 기대 밖이었을 것입니다.”(고미 요지 지음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중에서)

 

김정남의 언급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는 “유학 시절 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었고 형제들은 베른에 있었다. 서로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 아버지를 둔 형제지만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는 대목에선 권력의 냉혹함을 넘어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김정남이 이 같은 메일을 쓴 지 불과 9개월 만에 김정일 위원장은 심근경색으로 급사했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이복동생인 김정은의 손에 쥐어졌다.

 

김정은의 대관식은 김정남의 죽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갈등을 빚다 결국 상대를 제거해야겠다는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 정도로 김정은과 김정남의 골은 깊었다. 곁가지로 말려나지 않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었다. 봉건 왕조처럼 적통(嫡統)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싸움이 평양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불화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김정일이었다. 김정일은 32세이던 1974년 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낙점됐다. 1960년대 중반 이미 최고 지도자 김일성 수상(당시 직책)의 장남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 시절 사실상 첫 여자로 알려진 성혜림과 만나게 된다. 김정남의 생모다.

 


‘형제의 난’ 씨앗 뿌린 김정일의 선택

 

평양 로열패밀리 가계도

 

성혜림은 1969년 프놈펜 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정도로 잘나가던 영화배우였다. 그녀는 월북 작가 이기영의 며느리였다. 그런데 이 집에 드나들던 김정일이 성혜림에게 한눈에 빠져버렸다. 결국 다섯 살 연상인 친구의 형수를 강제로 이혼시킨 뒤 동거에 들어갔다.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남편 이평이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김정일은 막무가내였다. 김정일의 사랑은 불타올랐다. 1971년 5월 성혜림이 첫아들 정남을 낳자, 김정일은 새벽길로 달려와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서방으로 망명한 언니 성혜랑씨의 전언이다.

 

관심은 그때까지였다. 김일성 몰래 시작한 동거라 아들 김정남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몇 년 지나지 않아 김정일의 사랑이 시들해졌다. 버림받은 성혜림은 우울증과 심장병에 시달렸다. 신병 치료를 위해 서방을 오갔고, 탈북 망명설까지 터져 나왔다. 결국 그녀는 모스크바 병원에서 쓸쓸히 숨졌다. 그녀의 유해는 아직도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모스크바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성혜림을 버린 뒤 김정일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북송 재일 동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다.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는 28년간 김정일과 살았다. 성혜림이 불과 5년 안팎의 시간을 김정일과 보낸 데 비하면 절대 권력자의 사랑을 차지한 승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해진다. 열 살 연하인 그녀를 김정일은 말년까지 챙겼다. 유선암 치료를 위해 프랑스에 머물던 그녀가 숨지자 직접 특별기까지 보내 운구했다. 서방 정보당국에서 고급관이 실린 고려항공기를 포착하고 최고위급 인사가 사망했다고 파악했을 정도였다. 평양 대성산에는 아직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그녀의 성대한 묘소가 마련돼 있다.

 

김정은과 김정남은 한때 ‘평양판 형제의 난’이라 불릴 정도의 갈등을 빚었다. 우암각 사건은 외부에 포착된 대표적 사례다. 2009년 4월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특각(特閣)에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보위군으로 불리는 보위부 소속 특수병력도 동원된 심야의 습격이었다. 우암각으로 불리는 이 별장은 김정남이 평양 체류 때 주로 머무는 안가였다. 김정남은 아버지의 비밀연회를 흉내 낸 ‘파티 정치’를 벌였는데, 실제로는 김정남 지지세력의 모임으로 여겨졌다.

 

김정은

▎ 2015년 3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김여정(왼쪽에서 둘째)과 함께 동해안 전방에 위치한 신도방어중대를 시찰하는 모습. 당시 두 남매만 군부대 시찰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노동신문

 

보위부원들이 급습했을 때 김정남은 우암각에 없었다. 일 년 중 상당 시간을 마카오와 홍콩 등지를 오가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보위부는 압수해 간 서류를 뒤졌고 김정남의 수족과 같은 관리인과 측근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김정남이 평양에 머물 때 은밀하게 접촉한 권력 내부의 인사들과 우암각 파티에 초대된 멤버들을 파악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후계에서 밀려났지만 김정남은 최고권력자인 김정일의 장남이었다. 그런 김정남과 추종세력의 근거지인 우암각을 보위부가 짓밟는다는 건 북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후에는 김정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김정남이 유력시됐던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김정은이 잠재적 위협 세력인 김정남 일파를 거세하기 위한 선제공격을 펼친 것이란 관측이 대북정보 당국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김정남을 제거함으로써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기반에 중대한 위해 요소 하나를 없애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이 친중 성향인 김정남을 북한 유고 사태 시 대안으로 고려한다는 관측 등은 김정은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김정남 살해는 엄청난 부담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북한 정권과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잔혹성을 전 세계에 고스란히 노출해버렸다. 권력을 위해서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건 물론 형제까지 암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국제공항을 범행 무대로 택하고, 국제사회가 극도로 우려하는 독극물인 VX까지 이용했다는 점은 충격을 던졌다.

 

북한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체제 존립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명분을 여기에서 둔다. 하지만 폭압적 세습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과장된 ‘피포위 의식’일 뿐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진짜 위기는 내부에 있다는 건 누구보다 김정은이 잘 알고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그 싹을 잘라내겠다며 벌인 어설픈 암살극은 또다른 보복의 씨를 뿌렸다. 김정은이 주연을 맡은 평양 로열패밀리의 피비린내 나는 활극은 또다른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