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논의가 진행된 5년의 진통은 일단락됐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지금부터다. 2004년에 시작된 주 5일 근무제에 이어 대대적인 노동 환경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바라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용주와 근로자의 시선은 4인 4색이다. 노동자 개인과 사회 전반에 몰아칠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삶의 질을 높여주는 선물이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오히려 삶을 더 팍팍하게 해줄지 모르는 양날의 칼 같다. 논란은 다음의 근원적 질문으로 모아진다. ‘노동자 스스로 일할 자유를 결정할 수 있는가?’
▎주 52시간 근무제가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밤새 불을 밝힌 사무실 풍경이 사라질 전망이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두고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한숨이 깊다. 초과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수당을 덜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현행법률이 허용하고 있는 주당 근로시간은 표준 근로 40시간에 야간 근로 12시간과 휴일 근로 16시간을 더해 총 68시간이다. 그러나 개정 법률은 휴일 근로 16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52시간을 초과하는 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처럼 수당 감소분을 보전할 수 있게 협상을 대신해 줄 든든한 노동조합도 없다. 급여가 줄어들어 겪게 될 생계 부담은 온전히 근로자와 가족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가뜩이나 대기업 근로자의 처우에 한참 못 미치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
중소기업 고용주는 비용 늘고, 근로자는 임금 감소
특히 초과근로와 휴일근로로 받는 수당이 급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타격이 크다. 경기도 안산의 산업단지에 있는 플라스틱 성형업체 K사장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해 계산해 보니 직원들의 임금이 30%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주 68시간을 꽉 채워 월 360만원을 받는 30대 후반 근로자가 제도 시행 후 받는 월급은 248만원으로 1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다.
영업직 사원과 같이 외근이 많아 시간 외 근무시간을 일일이 측정하기 어려운 근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연봉을 책정할 때 주 68시간을 기준으로 수당을 고정적으로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최대 52시간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이 크게 줄어든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근로시간 단축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이 수십 개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최저 시급이 올라 상여금도 안 주려고 하는 마당에 단축 근무까지 시행되면 생산직은 바로 소득에 직격탄을 맞는다. 저녁 있는 삶은커녕 투잡을 뛰어야 할 상황이다”고 했다.
임금 감소로 인한 가계수입 감소 부담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제조업 종사자들이 야근과 특근 등의 초과근로로 받는 수당은 월 88만4000원. 보고서의 시뮬레이션 결과 앞으로 52시간 단축 근무가 시행되면 제조업 종사자의 초과근로가 현재 평균 21.4시간에서 9.4시간으로 12시간 줄어들었다. 이를 토대로 한 수입 감소분은 현재 평균 월급 296만3000원에서 257만5000원으로, 감소율은 13.1%에 달한다.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이 중소기업의 고용주와 근로자에게 집중될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통계도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방안’ 연구보고서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간 12조3000억원의 노동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가 비용 중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부담액은 전체의 70%인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자본이 여유롭지 못한 중소기업 입장에선 임금을 삭감하거나 채용을 줄여 비용 증가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최선책일 수밖에 없다.
▎2001년 11월 18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주5일근무제 도입이 연내 입법에 이뤄지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기업은 유연근무제로 자율성 확대
고용부가 지난해 주 근로시간이 평균 59.6시간인 근로자(18개 업종) 107만10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주 52시간제 도입 시 월평균 임금은 305만2000원에서 266만4000원으로 12.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결과도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감소액은 평균 37만3000원이고, 비정규직은 40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라는 상대적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것이다.
반면 고임금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임금 감소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이 다소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이 다소 줄더라도 생계의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산 역할을 해주는 노조가 있어서 충격도 덜할 것으로 보인다. 몇몇 대기업은 자동화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프로세스 개선으로 절약한 비용을 성과급 명목으로 지급해 임금 감소분을 보전해 주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예행연습을 시작한 데 이어 지난 1월 15일부터 새로운 근태 시스템을 도입했다. 비(非) 업무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점심시간 외에 담배를 피우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등 잠시 자리를 비우는 자투리 시간을 모두 근무시간에서 제외했다. 팀장과 파트장에게는 팀원들이 52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도 내렸다.
삼성은 시범 운영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을 검토해 7월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한 달 동안 미리 정해진 총 근로시간에 맞춰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과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해 사용하는 제도다. 일이 몰리는 기간엔 근무시간을 늘려서 업무를 처리하고 이후 근무시간을 줄여 한 달간 총 노동시간이 법정 허용치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업무에 집중해 능률을 높일 수 있고 충분한 휴식이 보장돼 직원들이 반긴다.
LG전자도 지난 2월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시범 운영했다. 생산직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를 3월부터 전체 생산라인으로 확대했다. LG디스플레이는 대체 휴일제를 도입했다. 불가피하게 주말에 근무할 경우 주중에 대체 휴일을 부여하는 제도다. LG디스플레이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내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기존보다 30분씩 앞당겨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또 ‘플렉서블 타임’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오전 6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제과는 업무 시간 외에 전화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업무 지시를 못하도록 했다. 롯데그룹 19개 모든 계열사는 올해 초부터 PC 오프제를 시행하고 있다. 퇴근 시간 30분 이후나 휴무일에는 회사 컴퓨터를 자동으로 종료한다. 연장근무를 하려면 상사에게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 삼성이나 LG와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출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유연근무제도 시행 중이다.
▎주 5일 근무제는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가족과 여가를 즐길 시간이 늘면서 덩달아 경제도 활성화됐다. 2003년 9월, 주5일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레저용품 매장을 찾은 가족의 모습.
‘저녁 시간’ 얻었지만, 업무 시간은 창살 없는 감옥
대기업 직원들, 특히 사무직종 근로자들이 대체로 새 제도를 반기는 분위기다.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에 퇴근하지 못 하고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어졌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잘만 활용하면 육아 분담에 효과적이어서 환영한다. 현대그룹 계열사의 한 과장급 직원은 “아내가 올해 둘째 아이를 출산했지만 업무 때문에 육아를 돕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칼퇴근’이 가능해지고 주말에 불려 나갈 일이 사라져 가족과 보낼 시간이 늘었다. 덕분에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아내와 갈등도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법정근로 시간을 10% 단축하면 실제 근로시간은 8% 단축된다”고 추정했다. 그동안 주 52시간을 초과 근무해온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354시간 줄어든다고 예상했다. 약 보름의 여유 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직후에도 이 같은 근로시간 감소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박윤수·박우람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 40시간제 도입 이후 10인 이상 제조업 종사자의 1인당 근로시간은 연간 약 70시간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4~2011년 10인 이상 광업·제조업 사업체 종사자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1.5% 향상됐다.
일부 기업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일과시간에 업무 집중도가 높아져 능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야근이 사라지니 수당과 사무 관리비용도 아낄 수 있다.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근무 스케줄 편성과 책임의 재량권을 개인에게 부여하면 평가의 객관성이 높아져 성과 중심의 인사 관리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대기업 근로자라고 해서 마냥 좋을 수도 없다. 어디든 꼼수가 있게 마련이다. 업무 자료를 집으로 가져가 비공식적인 야근을 하거나 정시 퇴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놓고 남아서 야근을 하는 식이다. 직원 수 300명이 넘는 서울의 한 중견 기업 직원 B씨는 “말이 52시간이지 실제 근무시간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번거로워졌다”고 했다. B씨는 “상사가 부서원들에게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퇴근카드 찍고 야근해’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퇴근을 한두 시간 앞둔 오후에 느닷없이 일감을 던져 주기도 한다. 꼼짝없이 ‘유령 야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전엔 야근수당과 교통비를 받아 위안을 삼았지만 이젠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자원봉사’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근무시간 중 업무 외 활동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두고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한 중견 기업은 직원들이 업무 시간 중 자리를 뜨면 이를 10분 단위로 근무시간에서 제외하는데 화장실을 가거나 흡연,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예외 없다. 상사가 부서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거나 업무용 메신저를 통해 모니터링하는 식이다.
이 업체 직원 C씨는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여러 회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투리 시간을 모두 제외해 순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춘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C씨는 “어떻게든 법의 틀에 맞춰야 하는 회사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마치 기계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중소기업과 영세업체는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부담 증가가 예상된다. 반면 임금 감소로 중저소득 근로자의 생활 수준 악화가 우려된다. 서울의 한 인쇄소에서 근로자들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에도 야간 작업을 하고 있다.
일자리 늘어난다지만 실제 효과는 ‘글쎄!’
정부가 내세우는 근로시간 단축의 대표 효과는 일자리 창출이다.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고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희망적인 전망”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들의 고민은 인력을 더 늘리지 않고 생산성을 유지하는데 집중돼 있다. 자동화 설비가 대체하거나 아예 외주 업체 용역을 통해 충당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일자리보다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위주로 일자리가 늘어나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한 노무사는 “손이 비는 시간에만 일시적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숙련된 근로자를 제때 충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계 소득을 유지하려고 외벌이 부부가 맞벌이에 나서거나 부업을 하는 식의 변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지표상으로 일자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앞서 주 5일 근무제 시행 후 효과를 분석한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12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1인당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43분 정도 단축됐지만, 신규 고용률은 오히려 2.28%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은 시간당 임금을 상승시키고 기업에 비용 압박을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 52시간제는 보다 근본적인 논쟁의 소지도 품고 있다. ‘일할 자유’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향후 법적 분쟁의 가능성도 들어 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과 관련해서다. 노동권은 ‘일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는 게 법조인들의 견해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업선택권과 마찬가지로 일할 자유를 결정하는 주체는 근로자다. 법정근로 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는 노사 합의로 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52시간 상한선을 정한 새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더 일할 자유를 차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법 전문가인 주완 변호사(리셋코리아 노동분과위원장)의 지적이다. “중·저소득 근로자가 돈 벌 기회를 빼앗음으로써 중간소득 근로자가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하향화가 나타날 수 있다. 가난한 근로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은 ‘권리’에 해당한다. 향후 헌법소원심판이 제기될 여지가 크다.”
반론도 있다. 헌법이 정한 노동권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에 국가가 강제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근거는 헌법 제10조 2항이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는 규정과 함께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지키고 향상시키기 위해 근로의 조건을 일정부분 제한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론에 재반론이 이어진다. 이런 주장이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해당 조항의 태생 배경과 관련이 있다. 국가가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조항이 만들어진 건 1962년 5차 개헌을 통해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에 의해서다. 이듬해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개정 헌법이 시행됐는데 여기에 노동권과 관련한 의무 조항이 다듬어졌다.
이전의 헌법에선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규정하면서도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국가’란 표현이 없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노동전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근로 기준의 결정권자를 ‘국가’로 명시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 주도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며 “노동권 제한을 통해 국가가 목표로 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요즘 현실과는 맞지 않아 다듬을 필요가 있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제도가 바뀌어 뒤따르는 부작용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다만 충격을 최소화할 준비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갖췄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피해가 예상되는 현재 방식으로는 사회적 충격을 덜어내지 못할 것이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자칫하면 ‘노동의 세월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경제학 교수는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란 본래 목표 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칫 참사 수준의 폐해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경기도에서 노무법인을 운영하는 한 노무사의 말이다. “52시간 초과 불법 근로를 감시하는 데 노동관서의 감독은 한계가 있다. 근로자의 자발적 신고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실직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내부 고발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편법과 불법이 만연할 가능성도 크다. 법만 있고 지키는 사람은 없는 노동계의 ‘김영란법’이 될 수도 있다.”
시행 시기를 업종별·소득구간별로 유예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장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는 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근로제에 맞춰 단가나 계획 등 중요 사항을 변경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설·IT·연구개발 등의 업종이 대표적인 예다. 현행법에서 최대 3개월까지 허용하는 탄력근무를 적어도 6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야 한다는 요구도 이런 업무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탄력근로제와 재량근로제는 유연근로시간제의 방편이다.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는 건설업계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프로젝트 진행 기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공사가 끝난 뒤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유연근로제 허용기간 확대를 바라고 있다.
“필요할 때 일하고, 원할 때 쉬는 게 창조적”
구글의 동영상 사업부문(유튜브 TV팀) 엔지니어링 디렉터인 전준희 전무는 5월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열린 ‘한국 엔지니어와의 대화’에서 “회사에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회사가 개발한 제품의 출시 일을 앞둔 직원들에게 일주일 52시간 근무를 강제한다면 회사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구글에서도 우리가 필요할 때는 주말에 일하기도 했고, 하루에 12시간을 일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며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 일하는 방식보다 집중적으로 일하는 게 성과가 더 좋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 공통 추세다. 근면을 국민의 미덕으로 삼았던 건 이제 과거일 뿐이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 일과 삶의 균형은 거스를 수 없는 화두다. 근로시간 축소는 되돌릴 수 없는 앞만 보고 달리는 말이나 다름없다.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부작용이 빤히 보이는데도 정책 당국이 이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앞선 노동정책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까지 국민 생활과 밀접하고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한데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는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한 노동 관련 전문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과 생활수준 악화가 예상되는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변하는 노동계 목소리가 실종된 것도 아쉬운 점이다”고 말했다.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예상 문제의 해법을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올려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걱정이 서려 있다. 근로자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생계가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 근로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 보장 대책도 필요하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