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심상치 않다. 대한의사협회는 5월 20일 제2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문재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를 반대한다는 머리띠를 두르고 대국민 홍보에 나선다. 고질적인 의료계의 난맥상을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응급 환자가 119를 찾듯 ‘국민의사’ 이국종 교수를 만난 이유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는 다발성 중증외상외과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의사 가운과 모자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
그가 말하면 뉴스가 된다. 끊임없이 이슈를 몰고 다닌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경기남부권역 외상 센터장)인 이국종(李國鍾·49)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다. 2011년에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이역만리 오만까지 날아가서 살려냈고, 지난해 11월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왔다가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젊은 군인(오청성)을 직접 집도해 소생시켰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지난 4월에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외과계의 몰락-과연 돌파구는 없는가’라는 주제의 정책 토론회 발표자로 참여했다. 대한외과학회 특임이사 자격으로 밤새워 외상센터 현실을 다룬 세미나 자료를 300쪽이나 준비한 그는 정작 의원들이 도중에 자리를 뜨자 “진정성이 없다” “의사 생활 20년 동안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며 의료계와 정치인들의 무성의함을 질타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의료계 현실을 가감 없이 듣기에는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는 24시간 대기체제다. 낮이고 밤이고 긴급한 외상환자가 있으면 헬기를 타고 출동한다. 센터 책임자로서 행정적인 업무까지 담당해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그는 게다가 지독할 정도로 자기 업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를 기다리는 환자와 외부인도 많다. 면담을 요청하며 일주일을 매달려도 그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환자가 명의를 기다리듯 마냥 전화와 메모를 남기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병원 옥상 위 헬기 착륙장에서 포즈를 취한 이국종 교수. / 사진·나권일
환자 도착 1시간 내에 치료 마치는 게 관건
5월 14일, 센터 행정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둘러 수원 아주대병원에 있는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로 달려갔다. 병원 5층 행정실로 안내 받은 뒤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응급 환자가 외상센터로 후송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1층으로 급히 내려갔다고 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센터 출입구와 바로 연결된 외상소생실(Trauma Bay)에 10여 명의 의료진이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태세를 마친 그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곧이어 내부 화면에 119구급차가 도착하는 모습이 잡혔다. 환자가 외상소생실 침대로 신속히 옮겨졌다. 33세의 공장 근로자인데 4m 높이에서 추락해 크게 다쳤다고 했다. “웃어보세요” “고개를 돌려보세요”라는 의료진의 요구에 환자가 미세하게 반응했다.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대기한 의료진이 각자의 위치에서 동시에 응급치료에 들어갔다. 외상소생실에는 수혈을 위한 혈액이 상시 구비돼 있다. X선 촬영, 초음파검사, 마취, 수술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다. 의료진이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밀고 여기저기 검사실을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이뤄진다. 응급을 요하는 외상환자에게는 최적의 시스템이다. 이 교수가 미국에서 배워온 미국식 시스템이라고 했다.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 유학 중에 배우고 체득해 온 것을 다 쏟아부어 만들었다. 외상소생실에서는 응급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이 외상센터 핵심 역할을 한다.
이 교수는 환자의 치료 상황을 지켜보면서 중요한 때마다 직접 개입했다. 미군 소속 군의관 소령 한 명이 이 교수 곁에서 외상소생실의 운영 시스템을 배우면서 돕고 있었다. 외상소생실의 모든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돼 나중에 살아 있는 교재로 쓰인다고 했다.
외상소생실 바로 옆은 관찰구역으로 응급치료 장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수 있다. 관찰구역 내부에 큼지막한 디지털시계가 있었다. 외상소생실에 들어온 환자는 1시간 내에 치료를 마쳐야 하는 게 국제 표준이라고 했다. 사람은 체중의 2%가량만 피를 쏟아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1시간이 골든아워다. 외상치료의 선진국인 미국은 어디에서 건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할 경우 1시간 이내에 외상센터에 도착해 수술 받을 수 있는 확률이 82%다. 거의 대부분 골든아워가 지켜진다. 세계 최고의 외상센터로 꼽히는 미국 메릴랜드주 외상센터는 메릴랜드주 전역에서 외상 사고가 발생하면 18분 내에 이송을 마치고 수술 시작까지 이뤄진다. 메릴랜드주 전체 중증외상 환자의 예방 가능 사망률을 5% 이내로 개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외상환자의 50%가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를 만나러 왔다가 현장취재가 됐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 배치될 예정인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 / 사진·연합뉴스
연간 300회 이상 출동해 중증외상 환자 치료
환자가 한 고비를 넘기자 이 교수가 5층 행정실로 다시 기자를 안내했다. 자신의 노트북과 연결된 TV 화면을 통해 외상외과팀이 헬기로 긴급 출동하고 있는 녹화 영상을 틀어줬다. 외상외과 의사는 일반 외과의와 달리 항공 출동과 현장 응급 시술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단다. 헬기 안에서 약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환자를 구출하면서 상처 부위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손끝으로 막으며 수혈하고 응급수술을 진행하는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그의 의료용 헬멧에 달린 카메라로 치료 과정을 촬영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 외상센터에서 연간 1300명의 중증외상 환자 중 300회를 이렇게 긴급 출동해서 치료했다고 했다. 외상외과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베테랑이다.
밤에도 헬기를 타는가? 위험하진 않은가?
“중증 외상센터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를 포함해 여기 행정실 간호사들도 벌써 비행기록이 수천 시간을 넘었다. 낮이고 밤이고 응급 외상환자라고 요청이 오면 출동한다. 외상외과 의사는 기존의 응급의학과 호출에 의해 진료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현장 출동을 포함해 환자를 분류하고 처치하는 ‘게이트키퍼’의 역할을 해야 한다. 밤에 헬기를 타는 건 위험하지만 외상외과 의사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출동했다고 해서 우리가 따로 의료수가를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
의료수가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의사들이 정부 의료정책을 비판하는 데는 지금의 수가가 너무 낮다는 문제도 있더라.
“개업의들은 지금의 의료수가에 불만이 많다. 이해한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의료수가 문제로 집단휴업을 하겠다는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해 줄까? 우리나라 대형 병원들을 보면 얼마나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한가! 국민들이 그런 걸 다 아는데, 의사들이 수가 올려 달라고 파업을 하면 납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목소리는 전에 없이 강경하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억제한 데 대한 그동안의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듯한 양상이다. 현행 건강보험은 병이 생기면 환자가 진료비의 20~30%만 내고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후불제로 청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공단은 의사들의 청구액에 딴죽 걸기 일쑤여서 의사들은 그 대안으로 비급여 항목을 통해 부족한 금액을 보충해 왔다. 문재인케어가 실시되면 의사들 입장에선 비급여 항목은 줄고 후불제 급여로 다시 돌아가게 돼 의사들 몫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의사들이 뿔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교수가 말한 것처럼 국민들 반응은 싸늘하다. 의약분업으로 갈라선 대한약사회는 “한 달에 1300만원 버는 의사가 의약분업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국종 교수가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노트북과 연결된 TV 화면을 같이 보자고 했다. 영국과 일본, 한국, 오만 등 세계 각국의 병원 4곳의 건물 외관을 한 장의 사진에 모아놓은 화면이었다. 국내의 한 유명 병원의 화려한 건물 사진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어느 병원이 세계 최고의 병원일까? 스테인드글라스로 내부를 치장하고 바닥에 대리석 깔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병원이 최고 병원인가? 10년 전 제가 연수를 받았던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는 250년 된 낡은 건물이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했다. 하지만 내부의 의료장비는 최신이었다. 의사들도 정말 진성성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환자를 돌봤다. 로열런던병원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응급출동 건수가 연간 1500회다. 우리나라 전체의 4~5배다. 이 사람들은 외상환자가 발생하면 헬기에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모두 싣고 15분 안에 직접 현장으로 출동한다. 이런 영국이 의료 선진국인가, 화려하고 시설 좋은 병원 건물을 가진 우리나라가 의료 선진국인가?”
▎외상권역센터 외상소생실에선 수혈을 위한 혈액, 마취, CT 촬영, 수술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다. 환자가 검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검사실을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태움’을 해야만 병원 돌아가는 잘못된 구조
의사 생활이 20년을 넘었다. 지금의 의료계 실상에 대해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우리 의료계의 부끄러운 부분을 들여다봐야 한다. 압축성장으로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의료계도 그렇다. 곳곳에 치부가 있다. 의료수가도 문제고, 선진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병원의 의료인력 고용도 문제다. 지금 대형 병원의 젊은 의사들은 도무지 쉴 틈이 없다. 레지던트와 인턴들 모두 힘들다. 오죽하면 ‘실컷 잠자고 싶다’는 게 젊은 의사들의 가장 큰 희망사항이겠나. 의료인력 충원에 써야 할 돈을 건물 치장하는 데 투자한 것이다. 국민(소비자)들이 그걸 좋아한다는 명분을 들이대면서 그렇게 한다.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의사는 고단한 수술실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인정받는 자리에서 존경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아래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암 수술을 연간 1000건 넘게 한다고 홍보한다. 그게 자랑할 일인가? 그건 정상이 아니다.
간호사들은 또 어떤가? 1년 안에 그만두는 간호사가 35% 이상이다. 언론에서 ‘태움(영혼을 태울 정도로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것을 뜻하는 은어)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구조를 봐야 한다. 지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밀려드는 환자를 제때 치료할 수 없는 현실이다. 태움으로 간호사들을 윽박질러야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근대적인 구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병원들은 바닥에 대리석을 까는 데 돈을 쓰고 있다. 악순환이다. 병원의 외관만 화려하면 뭐하나. 의료계 내부는 아직도 ‘평화시장 시대, 전태일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 교수의 생생한 증언은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병원 입원실의 병상당 면허 간호사 수는 선진국의 50%에도 미치지 못 한다. 국내 대형 병원들은 경영 수지를 맞추기 위해 인턴이나 레지던트 같은 저렴한 인력에 의존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젊은 의사들은 이런 구조에서 혹사당하느니 ‘덜 힘든’ 분야를 찾아 주저 없이 떠난다. 이 때문에 모든 의학의 모태라는 내과는 물론 산부인과·외상외과·흉부외과·신경외과 등 전문의 과정이 상시적인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이 교수는 “전국에 의사가 13만 명인데, 이 상태로 4년만 지나면 심장 수술을 담당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400명이나 부족해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 경기남부 외상센터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 외상센터에 이송되는 대부분의 환자가 중증다발성 손상 환자다. 당장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응급수술에 익숙한 세계 표준에 맞는 진정한 외상외과 의사를 키워야 하는데 그런 실력을 갖춘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100개 병상뿐이다. 환자를 더 받고 싶어도 병상이 모자란다. 수차례 간호사 인력을 더 파견해 달라고 당국에 공문을 올렸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인력이 부족하니 의료 인력이 행정도 담당한다. 행정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컵라면으로 때우는 게 예사다. 면허 가진 정규 인력이 부족해 급하면 의과대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정부도 이런 의료계 현실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왜 개선이 안 되는가?
“정부 담당자도 국민(환자)를 위해 정부가, 병원이, 의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고쳐주지 않는다. 수십 년째 그렇다. 정부는 환자가 넘치는 대형 병원과 화려한 민간병원들의 겉모습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개선해도 현장까지 도달하지도 않는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지금까지 다 헛돌았다. 그러다 무슨 사고가 터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한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이 딴청을 피운다.”
▎이국종 교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의료계 현실을 가감 없이 듣기에는 그만한 사람이 없다.
의료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면 될 일도 안 돼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사망 사건도 그런 사례다. 대한의사협회가 궐기대회까지 하는 데는 이화대학병원 소아집중치료실 근무 의료진을 구속한데 대한 불만이 컸다고 한다. 현재 모든 의사의 임상 기록은 완벽하게 전산화돼 있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 목동병원 의사들도 주거지가 확실해 도주의 위험도 없다. 그런데도 검찰이 의사들을 구속 수사한 데 대해 기자가 만난 몇몇 의사는 검찰이 국민의 화풀이 차원에서 의사들을 망신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속내를 드러냈다. 의사들이 진료 도중 환자나 그 가족에게 멱살을 잡히고 폭언·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할 정도로 의사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단체들은 의사가 불친절하다고 해묵은 레퍼토리를 틀어대니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뿔난 데는 자신들의 위상이 추락한 데 대한 상실감이 있는 것 같더라.
“동의한다. 하지만 의사들 자신의 잘못도 있다. 국민은 의사들의 리얼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형 병원들을 보라. 건물들마다 화려하고 최신 서비스를 받으려고 환자가 넘치는데, 의사들이 수가가 낮다고 불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의사협회 주장처럼 의사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싸우고자 한다면 각 분야의 학회장 등 책임을 맡고 있는 영향력 있는 인사와 의료계 원로들이 ‘진정성 있게’ 나서 줘야 한다. 이분들이 보건복지부와도 대화를 많이 하고, 정치권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끝까지 매달려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범퍼’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 젊은 의사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것 아니겠나!”
현재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있는 ‘문재인케어’에 대한 생각은?
“정부가 너무 당위성에만 얽매이고 있다. 국민들의 인기와 지지 여론에만 편승하고 있는 느낌이다. 뻔히 아는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 갖춰야 할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제대로 돼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고 국민부담 완화만 강조한다. 오랜 적폐는 덮어두고 대통령 공약이니 해야 한다면서 ‘돌격 앞으로’만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그저 돌격 앞으로다. 의료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면 될 일도 안 된다.”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의료정책이다. 의료비 부담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비급여 진료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미용이나 성형수술을 제외한 모든 항목의 전환이 목표다. 이를 위해 5년간 30조6000억원을 투입한다. 이에 따라 4월 1일부터는 상복부 초음파검사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그만큼 의사들의 몫이 줄었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을 점차 줄여서 건강보험 보장률을 올해 연말까지 67%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다. 국민들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케어를 이국종 교수처럼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정부 말대로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진하자면 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재정을 크게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그 얘기는 쏙 빼놓고 있다. 결국 언젠가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부를 수밖에 없다. 최대집(46) 대한의사협회장은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정책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정책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문재인케어의 전면 재검토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추진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줄다리기가 계속되면 피해자는 결국 수급자인 국민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케어’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이국종 교수는 문재인케어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 사진·연합뉴스
“외상센터는 중증 환자 치료 전담하는 공공의료”
정부와 의사협회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다. 해결 방법이 없나?
“의료수가 등 한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결국 나라의 컬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의사들이 날마다 궐기대회를 해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졸병이 아니라 군 장성이나 최고 지휘관이 전장을 누비고 다닌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현역 장성 시절에 총탄이 날아다니는 이라크 전장에서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부대를 지휘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게 미국 문화다. 밥을 먹을 때도 하급 병사가 먼저고 장교가 맨 나중에 먹는다. 우리나라는 언제 그런 시절이 올까? 최고 지휘관들이 폼 잡고 각 잡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목숨 걸고 전장(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달라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국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동의한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앉아서 일 시키는 사람을 더 높이 쳐준다. 의사도 그렇다. 외과 의사는 사회에 비유하자면 블루칼라다. 외상외과처럼 손과 얼굴에 피 묻히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젊은 의사들도 외상외과보다는 성형외과 전공의만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하는 사람, 블루칼라, 엔지니어에 대한 존중이 약하다. 그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6·25전쟁 당시 북한과의 교전 상황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유공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병원에 가서 국가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자신을 보는 간호사의 눈길이 싸늘하더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에겐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느 날 외과 의사 이학산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가 내민 카드를 보고는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의사가 환자 한 명 한 명을 잘 봐주면 그 사람들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환자를 진료하는 일 자체가 사회봉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외과 의사가 된 이유다.
그는 2003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병원에서 해군 대령 출신 외과 의사 브루스 포텐자(Bruce Potenza)를 지도교수로 만나 외상환자 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외상환자 치료시스템의 국제 표준도 그때 배웠다. 브루스 포텐자 교수는 그에게 “의사가 환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The Closer, The Better Outcome)”고 강조하곤 했다. 기회만 되면 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원칙을 거기서 배웠다. 그런데 왜 하필 의사로서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힘든 외상센터였을까?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 이하 젊은 사망자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등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이 압도적이라고 했다. 연간 2만 명이 훨씬 넘는다. 이들을 살리기 위한 긴급출동과 수술을 전담하는 게 외상센터다. 이국종 교수가 주도해 국회와 정부의 도움으로 2012년 국내에 도입됐다. 하지만 정치논리에 의해 원래 계획인 전국 권역 6개 설치에서 17개로 확대되면서 애초 이 교수가 생각했던 방향성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외상센터는 중증 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공공의료의 역할을 하는데, 당초 계획하고 의도한 방향대로 가고 있는 외상센터가 많지 않다고 했다.
▎경기남부 외상센터 5층 로비에는 이국종 교수를 지도한 의사와 외상센터 건립을 도운 고마운 이들을 알리는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다. 맨 위가 이 교수를 외상센터로 이끈 브루스 포텐자 교수다.
백악관이 주는 공로상 두 번 받아
전국 곳곳에 있는 외상센터마다 운영과 실력 등에서 격차가 있는 듯하다. 외상센터를 만들어낸 주역인데 운영과 관련한 대안은 있는가?
“우리 경기남부권역처럼 세계 표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외상센터는 환자가 넘쳐 병상이 모자란 실정이다. 그래서 외상센터로 와야 할 환자들이 적절한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중증외상환자가 적은 지역에 있거나 집중화되지 않은 중증외상센터는 환자가 없어 외과 의사의 수술 실력이 퇴보하지 않을까 걱정할 지경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일률적인 지원 방식을 중지하고, 엄격한 기준의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잘하는 소수의 외상센터에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환자가 많지 않은 외상센터는 외상센터 전담 전문의가 일반 진료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도 있더라.
“일부 외상센터의 외과 의사들이 복지부에 급성충수염 수술 같은 일반 응급수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외상센터의 국가적 재정 지원이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초점을 맞춘 정책 방향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 행정체계상 공항을 지으라고 편성한 예산으로 호텔을 지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가가 외상센터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만약 꼭 일반 진료와 외상 진료를 같이하고자 한다면 국가에서 인건비 지원을 받지 않는 게 맞다.”
이 교수가 보여줄 게 있다며 아주대병원 옥상에 마련된 헬기장으로 안내했다. 복지부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 응급 환자를 위한 닥터헬기를 배치했다. 헬기장이 무척 튼튼해 보여 물었더니 건물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지지대에 헬기장을 올려 힘이 분산되도록 정밀 시공했다고 했다. 30t 무게도 견딜 수 있단다. 신형 헬기장과 닥터헬기는 그의 보람이다. 10여 년 전, 그는 병원 당국이 옥상 헬기장을 짓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병원 잔디밭 바닥에 헬기장 표식을 직접 그려서 헬기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헬기장 표식을 정말 직접 그려서 만들었는가?
“그렇다. 미군 헬기들은 아무 불평 없이 내가 그린 지점에 주저 없이 착륙하더라. 응급 외상환자들을 적시에 후송해 왔다. 사고 한번 없었다. 하지만 한국 헬기들은 착륙하기엔 위험하다며 한번도 착륙한 적이 없었다. (잔디밭의 헬기장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교수는 2003년부터 주한미군 중증외상 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백악관이 주는 공로상을 받았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외상센터는 단순히 하드웨어 설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진정성을 가지고 그 속에서 함께 일할 의사와 간호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의료 기술도 더 숙련돼야 한다. 제대로 된 외상외과 의사라면 복부 수술뿐 아니라 악안면부·경부·흉부·골반 등이 포함된 다양한 부위의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 내부 손상이나 사지, 척추 손상을 제외한 신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상수술에 대한 ‘손상통제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 아직 중증 외상 환자 치료에 대한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전문외상처치술(ATLS)에 대한 임상 경험을 습득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국종 교수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살려내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2003년부터 주한미군 중증외상 치료도 전담하고 있다. / 사진· CNN 캡처
환자 도착 전화 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에 따르면 외상센터를 통해 제대로 된 외상외과 의사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외과를 지망하는 의사 인력 자체가 태부족인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교수의 고군분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몰두하고 있는 외상센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도 잘 모른다. 환자가 적은 지방의 몇몇 외상센터의 경우 일부이긴 하지만 도덕적 해이가 알려지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외상센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외상센터 국내 도입을 주도한 그는 힘이 빠진다고 했다.
항상 바쁘신데 오늘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은 것 같다.
“일주일 동안 잠을 거의 10시간도 못 잤다. 외상센터장이 하는 일이 그렇다. 외상센터 당직 의사는 환자가 도착했다는 콜을 받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고 진료를 볼 수 있을 만큼 예민하고 민첩해야 한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인력과 지원이 부족한 이런 시스템으로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제 고민이다. 그래도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다. 고생스럽다고 저마저도 쉽게 쉽게 간다면 의사로서의 제 인생이 의미 없어지지 않겠나?”
간혹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보고 그를 “언론플레이를 한다, 연예인처럼 행동한다, 주변과 문제가 많을 것 같다”고 댓글을 날리는 이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이 교수는 지독한 일중독자처럼 보였다. 실제 인터뷰 내내 그는 의사 가운과 모자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치료실과 행정실을 오갈 때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 복장 그대로였다. 자신을 담금질하기 위해 하루하루 스스로를 ‘태움’으로 몰면서 버티고 있는 듯 보였다. 과로 때문에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했다.
그를 만난 지 세 시간이 흘렀다. 그의 시간을 더 이상 붙잡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병원 현관까지 나와 깍듯이 배웅했다. 국민들이 바라는 의사가 꼭 못 고치는 병을 고쳐 준다는 화타나 명의만은 아닐 것이다. 의사로서 자기 몫을 제대로 해내려고 발버둥치는 이국종 교수 같은 의사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국종은 ‘국민의사’다. 국민에게 더 다가가겠다고 몸을 낮추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의사협회라면 집단 휴진을 결행하기 전에 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 글·사진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