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나. 원석 같던 재능은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나 탐내는 보석으로 단련되나. 84년 생 소설가 정세랑의, 작가로서의 입신(立身) 과정은 그런 궁금증들에 대한 하나의 예시 답안인 것 같다.
몇 차례 트위스트와 턴을 경유해 점진적으로 지명도와 역량을 넓혀나간 과정이었을 텐데, 그 과정이 새로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잠긴 작가의 눈물과 열망, 설렘과 자랑을 손금 보듯 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겠다. 21세기 첫 10년대 정세랑 소설의 일정한 성공은 어떻게 장르문학 작가가 장르문학에 배타적인 중앙문단(‘중앙’과 ‘문단’이라는 표현이 딱히 마음에 드는 것도, 구체적으로 만져지는 물리적 실체인 것도 아니지만 문학 분야의 어떤 중심, 중력을 표현하는 데 이만큼 적당한 용어도 없다)의 각종 허들을 뛰어넘어 문학 시민권을 획득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훗날 문학사가가 그런 점을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사설이 길었다. 8년 전 장르문학 작가로 조촐하게 시작한 정세랑이 결국 본격 문학(‘본격’이라는 표현 역시 애매하지만 사용했다)에서도 인정받는 중량급 인기 작가가 됐다는 얘기다.
정세랑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단문학, 본격문학이라는 지상 성채 밑의 지하에는(해당되는 분들에게 이런 표현이 거슬렸다면 용서 바란다) 수많은 재야의 무림 고수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들이 지표면 위로 올라오는 경우는 예로부터 극히 드물었다. SF 작가의 경우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는 듀나,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명훈, 정소연 등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장르문학 언저리에 머무는 느낌이다. 현재까지 확장성이 돋보이지는 않는다.
정세랑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문단 문학상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활동 반경, 인지도를 확 넓히고 끌어올리고 싶었다는 얘기다. 도전은 물론 성공적이었다.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2014년 [이만큼 가까이]를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이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가 달라졌다. 2015년 일본 국제교류기금이 마련한 ‘한일 차세대 문화인 대담’의 첫 주자로 선정돼 일본의 인기 작가 아사이 료를 만날 정도였다. 호사가스러운 입방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박민규·김중혁 등 결이 다르면서도 어떤 대중성을 공유하는 한참 선배들보다 빠른 순서였다. 그만큼 한국이나 일본이나 새로운 재능에 갈급했다는 뜻일까.
그런데 [이만큼 가까이]는 정세랑의 이 전 두 장편(2011년 [덧니가 보고 싶어], 2012년 [지구에서 한아뿐])처럼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문학출판 명가 창비라는 이름에 걸맞은 본격문학 작품이다. 이 대목이 한국 문단의 여전한 한계, 작가 정세랑의 역동성, 한국소설의 근미래를 두루 따져볼 수 있는 언덕바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그렇다면 정세랑은 과연 누구인지, 그의 소설은 어떤 색깔인지, 그의 지금 작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차례로 살펴보겠다.
“민음사 가게 된 게 인생의 가장 큰 우연”
많은 다른 작가처럼 정세랑도 날 때부터 소설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경영대를 나와 아마도 은행에서 일했던 정세랑의 아버지는 딸도 비슷한 과정을 밟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국어교사였던 외할아버지가 독서를 독려하며 이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결과적으로 어정쩡한 역사 과목(역사교육)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과제물을 제출할 때마다 교수 선생님들이 “자네 글은 촉촉한데 문학 쪽을…”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복수전공 과목으로 국문학을 선택한다.
이런 에피소드의 배경에는 역시 어려서부터의 폭넓은 독서가 깔려 있다. 정세랑은 “다양한 책을 읽었다. 자라서는 전혀 관심 분야가 아니었던 책도 읽는다. SF의 경우 대부분의 작품을 찾아 읽은 건 아니지만 계보를 따라가며 주요 작품들은 읽었다”고 말했다. 또 “한창 감수성이 민감하던 시기에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를 열심히 봤고,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에 빠져 살았다”고 했다.
이런 문화 소양이 경계선의 작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지금의 정세랑을 만들었을 게다. 장르문학, 본격문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정세랑 말이다.
정세랑은 대학 졸업 후 출판사 편집자가 됐다. 좋아하는 동화 한두 편 쓴 다음 평생 찬찬히 책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어린이책 출판사 비룡소에 지원해 합격했으나 출판사 내부 사정으로 이웃한 민음사에 자리가 났으니 일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민음사에서 책을 만들다 지금은 사라진 문예 계간지 ‘세계의 문학’ 팀에 배속돼 당시 막 발표되는 따끈따끈한 신작들을 어쩔 수 없이 읽게 됐다. 정세랑은 “막 태어나는 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편집자 자격으로 읽으며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한번 써볼까.”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한데 작가 등단의 길이 쉽지 않았다. 판타지 소설을 뽑아주는 등단 매체는 없었다. [이만큼 가까이]에 실린 서유미 소설가의 정세랑 인터뷰 글을 보면 무려 아홉 차례나 최종심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 등단상들의 상금을 모두 합치면 2억 5000만원이나 됐다고.
정세랑은 자신의 소설처럼 맺힌 데 없는 발걸음으로 지금은 폐간된 장르문학 전문 잡지 [판타스틱]의 문을 두드린다. “반은 인간, 반은 몽마(夢魔, 뱀파이어의 원형으로 악몽에 나온다)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범죄자를 잡은 이야기”인 단편 ‘드림 드림 드림’으로 드디어 작가가 된다. 2010년의 일이다.
이후는 앞에서 비친 바대로다. 장편 두 권을 잇따라 출간했으나 썰렁했다. 창비소설상에 이어 2016년 장편 [피프티 피플]로 이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으며 중앙문단에 확실한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피프티 피플] 역시 본격문학이다. 정세랑이 즐기는 판타지나 SF 요소는 없다.
‘비폭력 올바른 달콤 쌉쌀 로망’
정세랑은 지난해 11월 출간한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이 작품집을 비롯해 [이만큼 가까이] [피프티 피플]이 모두 창비에서 출간됐다. ‘정세랑은 창비 작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창비가 그만큼 재빨리 흥행 코드 변화를 읽었다고 할 것이다. 단편소설집을 묶다 장편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장편에서 단편으로 역주행했다는 점도 정세랑의 특이한 점이다)가 인터뷰를 한 2월 8일 현재 “2만 부가량 인쇄된 상태”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자신의 최고 판매 기록은 [피프티 피플]의 2만 2000부였다. 훨씬 빠른 속도다. [피프티 피플]을 뛰어넘을 것 같다고 한다. 이게 지금 정세랑의 시장 성적표다.
‘인생에서 가장 큰 우연은 어떤 일이었느냐’고 묻자 “비룡소가 아니라 민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우연은 작가를 만든다.
그렇다면 정세랑의 세계는 어떤 세계? ‘비폭력 올바른 달콤 쌉쌀 로망’. 억지 같지만 정세랑의 조어법(造語法)을 흉내 내 봤다. 2012년 두 번째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한아’는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신체 성분의 40%가 광물이어서 수만 년을 살 뿐 아니라 돌처럼 사랑이 변하지 않는 미지의 외계인과 한아의 사랑 이야기다. ‘한아뿐’을 연음해 읽으면 ‘하나뿐’이 되니 그만큼 외계인의 사랑이 진정성 있음을 전시하기 위한 일종의 말장난. 그런데 소설 성격이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요약돼 책 표지에 인쇄돼 있다. ‘친환경 SF 러브 로망’.
출판사에서 손님끌기용으로 붙인 줄 알았다. 물어봤더니 자기가 지었단다. 여주인공 한아는 소설에서 재활용 전문가다. 의뢰 받아, 안 입거나 못 입은 옷들을 멋지게 되살려준다. 그러니 ‘친환경’. 외계인과의 사랑 이야기니 ‘SF 러브’까지는 통과. 로망은? “왠지 러브로 끝나면 너무 짧아서.” 박자까지 맞춘 제목이다.
[옥상에서 만나요]가 가장 최근에 나왔지만 가장 최근에 쓴 작품들을 모은 건 아니다. 전체 9편의 단편 중 멀게는 등단하던 해인 2010년에 발표한 작품도 있다. 하지만 책 출간을 위해 고심해 가며 가장 최근까지 고친 작품들일 테니 ‘정세랑 월드’의 현재를 일별하는 데 부족함은 없을 듯.
이 작품집 가운데 독후감의 강렬함을 기준으로 추린다면 표제작인 ‘옥상에서 만나요’, 또 ‘영원히 77 사이즈’나 ‘해피 쿠키 이어’ 같은 작품을 꼽고 싶다. 하나같이 판타지 작품들이다. 정세랑은 역시 판타지를 쓸 때 가장 신바람이 나는 것 같다.
‘해피 쿠키 이어’는 이슬람 국가 출신 병원 실습생 이스마일과 한국인 여자 친구의 짜릿한 사랑 이야기. 거기다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소설 화자가 이스마일이다. 인종차별을 근원에서 차단하니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Political Correctness)이다. 게다가 여자 친구는 섹스를 할 때 절정에 이르면 이스마일의 귀를 물어뜯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씹어 먹는다. 이스마일은 실습 현장 사고로 귓바퀴를 잃는데, 잘려나간 자리에서 계속해서 새 살이 풀처럼 돋아나는 증상이 나타난 참이었던 거다. 새 살의 맛은 계속 바뀐다. 주로 과자 맛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신체를 섭취하는 카니발리즘은 어떤 맥락에서도 요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뭉뚱그려서 ‘달콤’이라고 하자. 당연히 제목의 ‘이어’는 ‘year’가 아니라 귀를 뜻하는 ‘ear’다.
[피프티 피플]은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 지방종합병원을 배경으로 제목처럼 50명(정확하게는 51명이란다)의 깨알 같은 사연들을 나열한 작품이다(정세랑은 본격소설조차 평범하게 쓰는 법이 없다!). 상관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병원을 중심으로 톱니바퀴처럼 얽히고설켜 이 시대의 풍경쯤 되는 거대한 그림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이기윤’은 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1년차 이기윤의 야간 근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는 작품인데, 56차례 칼에 찔린 남자, 목이 270도가량 잘린 10대 소녀가 응급실에 실려 온다. 이 소녀가 뒤에 나오는 작품 ‘조양선’에서 승희로 밝혀진다. 조양선은 승희의 엄마, 작품 ‘조양선’은 승희의 참극을 숨가쁘게 그린다.
정세랑은 “그 동안 호러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무신경해진 탓인지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폭력 장면을 ‘조양선’에서 자극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약간 후회된다”고 했다. 또 “장애인협회에서 이런 말 쓰지 말아주세요 하면 안 쓰는 게 맞고, 외국 이주민들이 이런 말 쓰지 말아주세요 하면 안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점을 젊은 독자들이 원하는 것 같고 나도 동의하기 때문에 조심하는 부분이다”라고 했다.
“규정할 수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기자의 문학관이 낡은 건가. 지나치게 도덕책 같은 소설은 오히려 문제 있는 것 아닐까.
“문학의 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규칙 있는 게임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문학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런 걸 신경 써서 보여주고 싶다.”
정세랑은 이런 입장이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문학은 어떤 시대 정신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변해갈 것이다.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세랑은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가 잇따를 때 문예지 좌담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작가가 되기 전 출판사 편집자 신분일 때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 많았다”고 밝혔었다.
정세랑 소설은 문학 내부만큼이나 문학 바깥에서 자주 호출을 받는다. 영화, 드라마, 게임 업계에서 작업 같이하자는 요청이 많다고 했다. 당장 퇴마사가 나오는 2015년 판타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배우 정유미가 출연하고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한다. 정세랑도 참가하기로 했다.
장르와 본격문학, 다른 예술 장르를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작업했던 작가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규정할 수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한국문학이 문학이라고 정의하는 영역은 너무 좁게 느껴진다. 나처럼 색깔이 다른 작가가 그 경계선을 허물거나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작가가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내가 한국문학의 정중앙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역할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작품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내 소설이 포함됨으로써 시리즈 전체의 폭이 넓어진다.”
그런 사명감이 너무 투철하면 생각이 무거워지지 않을까.
“나는 쓸 때 즐겁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 내 소설에 농담이 많지 않나. 무거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문단이 바뀌어야 할 점이 있다면.
“여전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 특정 지면으로 데뷔한 뒤 정확한 스텝을 밟지 않는 작가들이 살아남기 쉽지 않다. 등단해서 경력 초반에 소설집을 내 어떤 상을 받고 그 다음 장편을 쓰고, 단계별 규칙 같은 게 있는데 그걸 충족시키는 작가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색깔의 작가들만 계속해서 태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기존 관성과 다른 새로운 시도가 문학사적으로 모두 훌륭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는 있었다고 기록된다. 정세랑 같은 작가로 인해 한국문학은 어떤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닐까.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