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orbes Korea

북촌 한옥마을, 갤러리와 세컨드하우스로 확장되다

북촌한옥마을


북촌은 조선시대 백악산이라 불린 북산 아래 터를 잡은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소격동, 재동 일부가 속한 북촌에는 현재 1233동의 한옥이 남아 있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사대부 등 상류층이 살던 마을로 유명했던 북촌은 이제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전통 한옥의 풍경에 반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 북촌은 지도층 인사들이 새 둥지를 트는 보금자리로도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북촌한옥마을


우선 기업 오너 일가가 눈에 띈다. 포브스코리아가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홍라희 리움 관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등이 북촌에 한옥집을 마련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산사쓰식품 회장과 크라운제과 창업자 2세인 윤영주 가회헌 사장도 북촌 사람이다.

예술가들 진출도 눈에 띈다. 특히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국내 미술관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 북촌 일대에 자리한 전시공간은 50여 개 정도. 아트선재센터, 금호미술관 등 미술관을 비롯해 대형화랑인 현대·국제·학고재 외에도 이화익·PKM·조선·트렁크·도올·리씨·공근혜·빛 등 20여 곳이 기획전 위주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사동이 관광객 대상의 공예품매장, 식당가로 변모하면서 북촌이 새로운 미술동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촌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옥을 가진 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감사원 방향으로 오르는 언덕길 왼쪽에 자리한 김 회장의 집은 ‘가회동 1번지’로 통한다. 김 회장은 1960년대부터 북촌에서 살아온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의 북촌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2006년부터 북촌마을의 영세민을 위해 매년 쌀 240포대(포대당 10㎏)를 기증한다. 노인정 어르신들이 야유회를 갈 때마다 버스를 대절해 주기도 한다.

한화는 2000년대 들어서 김 회장 집 주변 언덕에 한옥을 현대식으로 꾸민 한화외교단지를 조성했다. 15채 규모로, 붉은 한옥식 기와에 발코니와 마당 등 서양식 주택 형태를 접목한 대표적인 한옥형 주택이다. 볕이 잘 들고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외국인들 사이에선 명품 주거지로 통한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의 말이다.

이 밖에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홍라희 리움 관장 등 많은 기업 오너 일가와 부유층이 북촌에 집을 마련했다. 이들이 북촌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이후다. 주로 서울 강남 일대 초고층주상복합이나 아파트 등 번잡한 주거지에 살던 이들이 북촌을 찾았다. 5~6년 전에도 한 차례 물갈이가 이뤄졌다. 한옥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북촌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강남의 큰손과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반대로 터줏대감들은 집을 팔고 아파트 혹은 전원주택으로 이주했다.

북촌에 입성한 부유층들은 대부분 나란히 붙은 주택을 구입해 리모델링한다. 공인중개소 등에 따르면 한옥마을은 주로 한적한 겨울에 리모델링이 많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한다. 무늬만 한옥으로 변질되는 것. 실제로 일부 한옥은 기존 건물을 아예 밀어버리고 건물의 밑부분을 콘크리트로 채웠다. 그리고 담장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목재와 기와로 마감했다. 또 경사진 길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처마 곡선도 집주인이 지하층을 높게 지어 사실상 2층집을 만들면서 파괴됐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한옥의 담벼락과 처마가 들쭉날쭉한 이유다.


북촌 한옥마을


부유층의 한옥마을 투자가 이어지면서 북촌 일대 한옥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다. 실제로 북촌 일대 시세는 주택시장 불경기에도 아랑 곳 않고 상승세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3.3㎡당 700만원 선이었던 한옥 시세는 최근 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위치가 좋은 곳은 3.3㎡당 5000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전세의 경우 99㎡ 기준으로 3억원이 넘는다. 중앙고등학교 인근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한옥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66㎡대 낡고 허름한 한옥조차도 전세를 얻으려면 2억5000만원은 줘야 한다”며 “사실 겨울에 춥고 주차도 불편해 실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비싼 건축비 역시 북촌마을 입성의 걸림돌이다. 일반주택은 3.3㎡당 300만~400만원이 들지만 한옥은 아무리 저렴해도 600만원을 넘어선다. 소목장, 와공(기와공사 인력) 등 인건비가 높기 때문이라는 게 시공업체의 설명이다. 기계화된 시공이 불가능하고 자재를 규격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촌 한옥마을


천정부지로 오른 상가건물 임대료도 북촌을 삭막하게 만드는 요소다. 관광객 유입이 많아지자 입주를 문의하는업체가 늘고 있다. 기존에 전세로 입주해 있던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옥이나 도로변 작은 매장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예술가와 장인들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터에 7성급 관광호텔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북인사마당 건너편인 이곳은 북촌 한옥마을, 덕성여중과 맞붙어 있다. 소규모 공방 자리에 밀고 들어오는 프랜차이즈 매장들도 북촌의 고풍스런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서울시와 종로구는 주민이 주도적으로 북촌 한옥마을을 가꾸고 지킬 수 있도록 ‘북촌협의회’를 창립했다. 주민대표 12명, 전문가 7명, 행정 공무원 6명으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북촌의 관광지·상업화 문제같은 현안을 논의하고 주민 간 갈등을 조정한다. 우리의 옛 정취를 간직한 명소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린 인사동이나 혜화같은 장소들처럼 본질을 잃고 변하지 않도록 직접 한옥마을을 지키자는 취지에서다.

한류를 타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한국의 매력을 알고 간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주목하는것은 대부분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와 발빠르게 트렌드를 쫓아가는 한국인들이다. 그렇기에 한옥마을과 같이 잠시나마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북촌협의회’는 이렇게 치솟는 가격과 상업화 속에서 자칫 본래의 멋을 잃어갈 수도 있는 한옥마을을 지켜내는 작은 움직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인다면 딱딱하게 변해가는 옛 정취에 슬퍼할 일이 조금은 적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