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김연아가 되고 싶었다는 차준환 선수는 한국 남자 피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을 들어요. 16세에 시니어 데뷔 후 1년만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죠. 더 이상 기대주가 아닌, 이제는 대한민국의 최고 남자 피겨스케이트 선수로서의 차준환 선수를 만나보았어요.

 

차준환은 올 시즌에만 11개 경기를 치렀다. 그는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도 해내야했던 시즌”이라고 돌이켰다.

 

"남자 김연아 선수가 되고 싶어요….”

눈가가 발개진 소년이 애써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2011년 7월 아홉 살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차준환은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경연 무대에서 탈락 직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그때 김연아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프리젠테이션에 나서는 등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선 한국 스포츠의 대명사. 한국의 피겨 유망주라면 누구나 ‘포스트 김연아’를 꿈꿀 법했다.

그의 이름 앞에 ‘남자 김연아’란 수식어가 붙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은 필요치 않았다. 2015년 12월 무렵이다.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랭킹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점수 합계 220.40점으로 우승하면서였다. 한국 남자 피겨 역대 최고점이었다. 이듬해 9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2016-2017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선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내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만 16세가 되던 2017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주니어로 데뷔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피겨 역사에서 이 나이에 시니어로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2014년 소치를 끝으로 은퇴한 러시아의 예브게니 플루셴코, 현 남자 피겨 최강자인 일본의 하뉴 유즈루(24)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어린 선수가 성인들 사이에서 제대로 기량을 낼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2018-2019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차준환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녀 피겨를 통틀어도 김연아가 2009년 금메달을 획득한 후 한국 선수가 시상대에 오른 건 9년 만이었다. 김연아를 닮으려 경주해온 결과였을까. ‘포스트 김연아란 수식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올 시즌 무리한 일정, 소화해내야만 했죠”

 

 

“부담스러워요(웃음). 저는 사실, 저로서 기억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요. 지금껏 ‘마이웨이’로 달려왔거든요.”

7년 전 카메라 앞에서의 다짐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잠깐 고민한 끝에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2011년 당시 경연에서 탈락하고 한참 우는 와중에 인터뷰를 해야 했어요. 목이 메어서 말을 잘 못하니까 제작진 분께서 ‘이 말만 하고 끝냅시다’하고 모범답안을 주신 거죠. 그래서 그 말만 하고 끝낸 거예요.”

차준환은 지난 3월 23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이하 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2018-2019 시즌을 마감했다. 마지막 대회에서 컨디션 난조로 19위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해 아쉬울 법하다. 4월 25일 서울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그를 만나 성공과 실패의 이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이번 시즌은 아쉬움으로 마침표를 찍은 건가요?

“네. 4월 세계선수권대회가 마지막이었어요. 다음 시즌은 9월부터 시작해요.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11개 경기를 치렀네요. 그랑프리 파이널 포함해서 초중반에는 좋았고, 후반에는 좀 어려웠어요.”

8개월 동안 11개 경기라면 강행군인가요?

“지난 어느 시즌보다도 많은 경기를 치렀어요. 짧게는 2주에 한 번 경기를 치렀어야 하니까요. 한 달에 두세 개씩 한 때도 있어요. 지난 시즌까지는 많이 뛰어야 여덟 경기였거든요.”

소화가 가능했나요?

“소화가 가능했다기 보단, 소화를 시켰어야 하는 시즌이었어요. 소화가 안 되더라도.”

왜 이번 시즌이 유독 중요했을까요?

“저도 고3이고(웃음). 대학도 있으니까요. 선수로서도 올림픽 다음 시즌이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또래들은 이제 막 중간고사 치를 시기네요.

“저도 아침에 학교(서울 휘문고)에서 시험을 보고 오는 길이에요. 한국에 와 있는 동안은 무조건 학교에 가요.”

서울시교육청은 국가대표 선수가 주요 국제대회나 훈련에 참가하는 경우 결석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국가대표 선수가 아닌 경우는 수업일수의 3분의 1 이내로 제한한다.

2시간 뒤인 오후 2시부터 연습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즌도 끝났는데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가요?

“피겨스케이팅 선수에서 휴식은 그림의 떡과 같아요. 감각을 잃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한 스포츠니까요. 비시즌에도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훈련에 나서죠. 이번에는 강도는 낮추고 감만 유지하는 정도로 훈련하려고 해요.”


“비법이요? 좌절까지도 즐기면 돼요”

 

큰 대회 중심으로 이번 시즌 총평을 하자면.

“상당히 만족스러워요. 그랑프리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경기 운영을 잘한 것 같아요. 4대륙선수권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실수가 많았어요. 사실 이때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어요. 피로가 몸에 너무 쌓여있었고, 더 이상 시합을 뛸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시즌 중후반, 그랑프리 파이널이 끝난 시점부터는 체력 고갈에 정신줄을 놓고 뛰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저한테 점수를 주고 싶어요.”

이번 시즌 세계선수권대회는 차준환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한 차례,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차례 넘어진 탓이다. 합산 229.26점을 받아 최종 19위로 쳐졌다. 지난해 12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기록한 자신의 ISU 공인 최고점(263.49점)에서 34.23점이나 주저앉았다.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기록한 255.83점에 견줘도 크게 모자라는 점수다.

부진 원인의 하나로 스케이트화 문제가 꼽혔다. 피겨 선수들이 점프를 하고 착지할 때 체중을 훌쩍 뛰어넘는 하중이 발목에 실린다. 신발이 발목을 꽉 잡아주지 못하면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차준환은 올 시즌에만 아홉 켤레나 바꿨건만 발에 맞는 스케이트화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도 스케이트화 발목 둘레를 테이프로 칭칭 감싸야 했다. 이는 임시 처방일 뿐이다.

차준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김연아 역시 2006년 스케이트화 문제로 은퇴를 고민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래 신던 스케이트화를 바꾼 뒤부터 (발에 맞지 않아) 일주일 간격으로 바꿔 신었다”며 “부상이 이어져 한땐 그만두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이는 한국에 선수용 피겨스케이팅 신발을 전문 제작하는 업체가 없다는 현실과 맞물린다는 지적이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용 신발을 제작하는 삼덕스포츠 유오상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에는 막 피겨에 입문한 어린이들이 신는 신발만 대량으로 제작한다”며 “전문 선수용 맞춤 신발은 비용이 많이 들어 쉽게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케이트화에 컨디션에 큰 영향을 줬다고 들었습니다.

“스케이트화에 문제가 생기면 선수 기량의 40%를 깎아먹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번 시즌엔 경기가 많아 새 신발을 고르고 길들이는 시간도 부족했어요. 결국 세계선수권대회 땐 쇼트프로그램 경기 당일 아침 연습에서 스케이트화가 완전히 꺾여버렸죠. 발목 부상까지 겹치는 바람에 그날 아침은 정신이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결국 쇼트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세 차례 넘어졌습니다. 그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특별히 두렵거나 당황하진 않았어요. 넘어진 것조차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선수들도 같은 리스크를 안고 경쟁하는 거잖아요. 적응해야죠. 그리고 마지막 두 대회를 실패했다고 보지 않아요.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피겨스케이팅이란 종목이 실수를 많이 하기 마련이거든요.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해요.”

실수에도 유연할 수 있는 건, 실수해도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렇게 차준환 선수를 포용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게 저예요. 아무리 시합을 망쳐도 회복을 잘해요.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때 정말 시합을 망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날 회복을 거의 다 했어요. 좌절할 시간에 회복을 해서 기량을 쌓아 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비법이요? 좌절까지도 즐기면 돼요. ‘내가 좌절하고 있구나’라고 온전히 저를 알고 받아들이는 거죠. ‘시합을 망친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혹독하게 다그치다보면 더 우울해져요. 제가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아요.”


“하뉴와 경쟁? 의식 안 해, 나 자신과 싸울 뿐”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팅을 접할 때가 언제인지요?

“유치원생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접하게 됐는데요. 장차 배우가 되고자 무용이나 성악 등 분야를 안 가리고 두루두루 배웠어요. 그 중 하나가 피겨스케이팅이었고요.”

그때 첫인상이 어땠나요?

“사실 저랑 딱 맞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 목표는 ‘자신감을 길러보자’ 정도였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온 거죠. 선택의 순간이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아요.”

배우보다 피겨 선수로서의 정체성이 더 커진 순간은 언제였나요?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SBS에서 방영했던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 출연했었어요. 국가대표 바로 아래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있을 때였죠. 대회도 꾸준히 나가고 있었고요.”

김연아 선수와의 인연은 그때가 처음이었나요?

“네. 그런데 이후에도 딱히 인연이 닿진 않았어요. 소속사가 달라서 그런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김연아 선수는 열다섯 살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우승했습니다. 2006년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였죠. 조바심이 들진 않나요?

“한국 피겨 선수라면 누구나 김연아 선배님을 존경할 거예요. 아주 뛰어난 선배님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선배님을 의식해서 피겨를 하진 않아요. 닮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남녀 피겨는 서로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적으로 여자 선수와 다르게 남자 선수는 전성기가 오는 시기가 늦는 편이에요. 여자 선수는 주니어를 일찍 마치고 만 16세에서 20세 정도가 전성기라고 볼 수 있고요. 남자 선수는 만 20세가 넘어갈 때 보통 전성기가 와요. 남자와 여자 종목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얘기죠.”

예전만큼 나를 기대주로 봐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은 없었나요?

“사람들이 저를 기대주로 보든 말든, 저는 제가 중요해요. 팬분들께서 저를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죠. 그런데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본의 하뉴 유즈루 선수는 나이가 26세(만 24세)입니다. 열 살 많은 셈이죠. 그런 성인 선수와 경쟁하면서 위축되진 않나요?

“유명 선수들이랑 겨룬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시니어 데뷔 2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이르잖아요. 제가 나가서 할 일만 하면 되고, 실수해도 포기 안 하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 선수로부터 오는 위축보단 저 스스로에 대한 긴장감이 크죠.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아무리 연습이 잘 돼도 끊임없이 걱정이 되거든요. 그런 걱정으로 더 긴장하는 것 같아요. 성공률 90%까지 끌어올린 점프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긴장감은 늘 있어요.”

심리학자 김태형은 저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에서 “자존감이 높으면 승패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진다고 해서 자기개념이나 평가가 바뀐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란다. 차준환도 실수조차도 경기의 일부로, 좌절조차도 그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의 소속사 관계자는 “피겨스케이팅은 수많은 관중과 심사위원 앞에서 홀로 평가받아야 하는 종목”이라며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면서 자기중심을 지키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페이스 조절이 베이징까지의 과제


차준환 선수에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성적이 아닌 듯합니다.

“아직 도전해야 할 일이 많아 섣불리 말하기 어렵네요. 성공의 기준은 모든 상황을 즐기면서 받아들였는지 여부가 아닐까요. 피겨스케이팅이나 혹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즐기는 게 힘들었던 적은 없을까요?

“아역배우 때 그랬어요. 그땐 배우라는 직업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었지요. 배우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제가 그때 좀 더 좋아하고,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즐기고 싶어요.”

남자 피겨에선 차준환 선수가 역사를 새로 쓰고 있죠. 한국에서 이런 성적이 나온다는 게 일면 용하다는 생각마저 갖게 합니다.

“한국이 피겨의 불모지이건 아니건 신경을 안 썼어요. 지금 하고 있고, 제일 잘하는 일이라서 열심히 해왔을 뿐이에요. 밖에서 보면 차준환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보는 차준환은 주니어 선수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해왔어요. 2015년 세계신기록을 낸 다음 해 바로 시니어로 올라왔지요. 두 시즌만이죠. 보통 남자 선수들은 주니어로 네다섯 시즌은 치르거든요. 그래서 더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나 싶어요.”

훈련하다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죠. 그 순간을 어떻게 넘어갔나요?

“저는 그냥, 그냥 넘어간 것 같아요. 특별한 방법론 없이요. 사실 캐나다에서 훈련하면서 어디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별로 없어요. 캐나다에서 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중2 때부터 캐나다에 와서 또래 친구들과는 어울릴 겨를이 없었거든요. 또래가 없었어요. 다 저보다 나이가 많고, 제가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었죠.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그냥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냥 넘겼던 것 같아요.”

피겨 선수라는 업(業)의 즐거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이건 사실 성적이랑 연관이 있는데, 태극기를 두를 때 가장 뿌듯했어요.”

왠지 준비된 멘트 같은데요.

“아, 진짜예요.(웃음) 이번 시즌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따고 처음 태극기를 둘렀거든요. 주니어 때는 입상해도 그렇게 세리머니를 안 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내 나라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뿌듯한 일을 했을 때 가장 기뻤어요.”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까지 이룰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진 시즌 초반에 스퍼트를 내곤 했는데, 이젠 스타트를 늦추더라도 저 스스로를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다듬었으면 좋겠습니다. 베이징올림픽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지난 시즌에 그랬듯이 꾸준히 즐기면서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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