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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화웨이 숨통 틀어쥔 사람은 손정의?

미국의 화웨이 공격에 중심축이 되는 것은 바로 모바일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가장 중심이 되는 기술을 가진 회사가 바로 영국에 있는 ARM이라는 회사지요. 하지만 이 회사의 소유주는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라고 해요.

 

 

미국 트럼프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해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우리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에게 의지한다. 미국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런정페이 회장의 자신감은 스마트폰에 쓸 자체 반도체 칩과 부품 등을 스스로 개발하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에 대한 믿음에 나온다. 그 믿음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하이실리콘도 퀄컴처럼 모바일 프로세스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반구조까지 완벽히 독자 설계한 수준은 아니다.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암)’이 만든 코어텍스(Cortex) 아키텍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arm이 보유한 IP는 현재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소형 프로세서(AP,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기반이 된다. 복제하기 어려운 기본 설계도를 arm이 보유하고 있고, 이를 계약을 맺고 가져다 자신들의 기기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전 세계에서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기업은 영국의 arm이 사실상 유일하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arm은 미국 손을 들어줬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국 화웨이를 상대로 설계자산(IP)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화웨이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arm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기업이라 볼 수 없다. 일본의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arm을 지난 2016년 234억 파운드(약 35조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인수 당시 arm의 연 매출은 2000억 엔, 우리 돈으로 2조 원 안팎이었다.


숨은 그림자 거인 arm, 시작은 초라

 

arm은 1983년 영국 컴퓨터 회사 ‘아콘 컴퓨터즈’에서 추진됐던 ‘RISC’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축소된 명령 집합 컴퓨터’를 뜻하는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령의 종류를 줄여 연산처리 속도를 높이는 회로 설계였다. 당시 암호명은 ‘아콘 RICS 머신(Acorn RICS Machine)’이었고 세 글자의 첫 글자를 따 ‘arm’으로 불리게 됐다. 애플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 세계 최초 개인용 휴대 단말기인 ‘뉴턴’에 RISC 칩을 싣기 위해서였다.

1980년 대 후반 경영위기를 맞은 아콘은 arm 부서를 버리고 애플과 합병을 결정했다. 이때 반도체 제조 분야 파트너였던 미국의 VLSI테크놀로지가 arm 투자를 결정해 기사회생했다. 회사 이름도 ‘Advanced RISC Machine’으로 바꿨다. 줄이고 보니 arm이었고 지금까지 회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투자를 받았지만 초기 직원은 겨우 12명. 1990년대 초반 PC열풍이 불었지만 이들의 선택은 달랐다. 거대기업에 견줘 자본력·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arm은 반도체 설계에 집중, 제조업체에 라이선스를 주고 대가를 받기로 했다. 현재의 사업모델이다. 게다가 틈새시장이었던 모바일이 목표였다. 신의 한수였다.

결과적으로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시장이 열리지 않아 1990년대 중반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휴대전화 시장이 열리고 노키아의 선택을 받으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모바일에 적합한 회로 설계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저소비 전력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위를 굳혔다.

arm 인수는 손 회장의 ‘10년의 꿈’이었다. arm을 인수하기 10년 전인 2006년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M&A를 이끄는 니키 가츠마사에게 arm 매수 가능성을 지시했다. arm의 진가가 발휘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전이었음에도 손 회장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소프트뱅크는 2조엔 가까이 들여 보더폰 일본법인을 매수한 직후라 여력이 없었다.

그가 다시 arm 인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5년 가을 무렵이었다. 당시는 소프트뱅크의 스프린트 재건 사업의 출구가 보이던 시점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arm 인수 결심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계기가 일어났다.

arm은 매년 가을 기술 회의를 연다. 2015년 강연자로 나선 arm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보안 기술을 모든 프로세서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arm의 본거지인 영국에서는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손 회장은 arm이 IoT(사물인터넷)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함의를 꿰뚫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과 연결되는 IoT 시대에는 모든 산업이 사이버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손 회장은 arm이 이에 대해 벌써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판단했다. 2016년이 되자 손정의는 암을 매수하기로 결심을 굳혔고 실행에 옮겼다. 터키에서 휴가 중이던 arm 수뇌부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2주 만에 거래를 끝냈다. 일본 경제 역사상 기업 매수 액수로는 사상 최대의 금액인 3조3000억 엔을 지불하고 나서였다.

소프트뱅크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손정의 회장의 비서였던 미케 디케노부는 그가 쓴 [초고속성장의 조건 PDCA]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손정의 회장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넘버원이 되기 위해 arm을 인수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반복돼 왔다. 그리고 다음에 찾아올 패러다임은 IoT라는 것이 손정의 회장의 생각이다.”

IoT 시대에 자동차·가전·공장은 물론 안경·구두까지 사물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인터넷을 연결시켜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반도체 칩은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선결조건이 있다. 늘 전원과 연결될 필요없는 초저소비 전력 반도체칩이다. 현 상황에서 그런 칩 생산에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한 기업이 arm이다.

매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바둑으로 치자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돌을 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2~3년 앞을 내다 보는 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내가 둔 수는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절묘했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이건 업계에 사활을 건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수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죠.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20년 안에 arm이 설계한 반도체가 1조개 이상 지구상에 뿌려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세계 유일 초저소비 전력 반도체 설계 보유

 

 

arm의 화웨이 제재 동참은 손 회장의 전략적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손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16년 12월,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찾았다. 이 일본 기업인은 트럼프와의 45분 간의 회동 후 “미국 시장에 최대 500억 달러(약 58조5500억 원)를 투자하고 이를 통해 4년에 걸쳐 5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마사(손 회장의 미국식 애칭)는 멋진 남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2013년 미국 3위 통신사인 스프린트를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2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6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다. 이 금액은 arm을 인수하기 전까지 일본 기업이 외국 기업을 사들인 사례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 지분의 85%를 소유한 대주주다.

당초 손 회장은 스프린트를 인수하면서 2014년 T모바일과 합병을 추진했다. 미국 1,2위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AT&T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동통신사가 3개로 줄어들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스프린트의 T모바일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다. 2017년에도 합병을 다시 시도했지만 ‘경쟁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실패했다.

6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미 10개 주 검찰총장들은 이날 T모바일과 스프린터 합병에 반대하는 소송을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양사의 합병이 경쟁을 저하하고 소비자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소송 이유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달려갔던 손 회장. 그의 포석은 트럼프에게 호감을 남겨 스프린트의 향후 M&A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었다. 현재 T모바일과의 합병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번 화웨이 제재 동참은 손 회장에게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트럼프와 쌓은 친분과 신뢰를 재확인하는 차원이자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였던 셈이다.

창업 30주년이었던 2010년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30년 후에 시가총액 200조 엔의 기업이 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arm이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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