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페스트, 20세기 초의 스페인독감, 20세기 중후반의 홍콩독감,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사스, 메르스, 최근의 코로나19까지. 전염병은 언제나 인간의 곁에 있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질병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정보예요. 정보전염병(인포데믹스)라고까지 불리는 잘못된 정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근거 없는 공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에요.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었다. 원인도 모른 채 피부에 생긴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The Black Death)으로 불린 이 병의 이름은 ‘페스트(Plague)’가 맞다. 한참 후에야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옮겨져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으로 확인됐다.

사망자 수는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년 동안의 유행 기간에 그토록 피해가 극심했던 이유는 한 번 발병하면 짧게는 6시간, 길면 닷 새 안에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 사회 구조를 붕괴시켰고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페스트는 원래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풍토병이었는데, 14세기 몽골 제국이 서방으로 진출하면서 유럽에 번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세계 인구가 흑사병 이전의 수준까지 회복되는 데는 300여년이 더 걸렸다. 오죽해야 밤중에 죽은 환자의 장례식에 온 친구 2명, 임종을 지켜보러 온 신부, 시체 나른 사람까지 4명 모두 그 다음 날 저승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까.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누는데,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가 ‘팬데믹(Pandemic)’이다. ‘모두’라는 뜻의 ‘팬(Pan)’과 ‘사람’이라는 뜻의 ‘데믹(Demic)’이 합쳐진 것.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감염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팬데믹은 물론 중세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흑사병이다. 이후 1918년 스페인독감, 1968년 홍콩독감 또한 팬데믹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WHO가 선언한 감염병 경고 중 최고 6단계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코로나19의 6단계 경고에 대해 다소 신중한 태도를 취해 왔던 WHO는 지난 3월 11일 ‘팬데믹’을 선언했다.

 

공식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이 선언됨에 따라 전 세계 각국은 보다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가동해야 필요성이 커졌다. 우리나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선언과 관련해 “지역사회 전파 차단과 해외 유입 억제라는 기존 대응 기조를 유지하되 국내외 상황 변화에 맞춰 대응 전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염병 경보단계 중 1단계는 동물 사이에 한정된 전염으로 사람에게는 안전하다. 그러나 2단계는 동물 사이에서 전염되다가 소수의 사람에게도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증가했을 경우, 4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해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초기 등 양상이 달라진다. 5단계는 전염이 널리 퍼져 같은 대륙의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로 전염병의 대유행이 임박하였다는 신호다.

전염병 경보 1~3단계에서는 주로 대비책을 준비한다. 그러나 4단계부터는 각국에서 여행자제 조치 등의 구체적 전염병 확산 방지 지침을 내리고 철저한 예방사업에 돌입하게 된다. WHO는 팬데믹을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질병이 예상 이상으로 전 세계에 퍼지는 경우’라고 설명한다. 다만 팬데믹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WHO나 각국 정부가 새로운 조치를 만들거나 따를 의무는 없다.

처음엔 발병 원인을 몰랐던 흑사병은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을 불러오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손을 자주 씻기 때문에 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데도,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이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다. 한센병 환자들이 흑사병을 몰고 다닌다는 이유로 집단폭행이나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인포데믹스

 

 

전염병 못지않게 희생자를 낫는 것이 ‘인포데믹스’이다. 인포데믹스는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전염병’으로 불리는 인포데믹스(Infodemics)는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 위험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행동에 관한 루머들이 인터넷, 휴대전화 등 IT 기기나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근거 없는 공포를 증폭시키는 폐해다.

인포데믹스는 2003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컨설팅업체 인텔리브리지의 로스코프 회장이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어 2007년 스위스 다보스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CEO연례보고서에서 또다시 중요한 화두로 언급된 바 있다.

대재앙은 근거 없는 민간요법이나 터무니없는 흉흉한 소문을 몰고 온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에서의 인포데믹스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지만, 질병과 관련한 괴담도 만만찮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각종 미확인 정보들이 범람하지 않았던가.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치료방법이라든가, 확인되지 않은 메르스 확진자와 감염자 명단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최근 화장지가 동이 난 것도 헛소문 탓이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리는 지금 ‘탈 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사회적 환경에 있어서 진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고, 공포와 우려 등 부정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포데믹스 현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정보생산자가 네트워크를 통해 더 쉽게 정보를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루머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적, 견제적인 파장이 엄청나다. 그 대안이 심도 있게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괴담 유포가 프라이버시 침해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행위임을 인식하도록 범국민적인 캠페인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새벽 산들바람은 여전히 인적이 드문 도시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지난밤 죽은 자들과 송장처럼 낮을 보내는 자들 사이를 잇는 이 시간, 페스트는 한순간 작동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듯하다. 모든 가게가 닫혀있다. 곧 열리지 않을 것이다.”

페스트 때문에 폐쇄된 프랑스 도심의 모습을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지금은 소설이 아닌 현실 이야기다.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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