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 자신의 진료기록사본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은 환자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환자의 편의를 무시하고 병원은 이메일 발급을 거부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는 ‘의료법 위반’이라고 해요. 또 과잉 진료를 방지하기 위한 진료 정보 교류 사업도 의사협회의 반대로 6만6000개 병원 중 3800개만 참여하는 등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해요.
“진료기록이요? 받아 가시려면 직접 오셔야 합니다. CD로만 드립니다.” 지난 5월, 서울 영등포의 A병원에서 치료받았던 환자 B씨는 MRI 등 진료기록을 달라고 전화로 요청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이메일로 자료를 받을 수 없느냐는 환자의 물음에 병원 관계자는 “CD로만 줄 수 있다”며 “다른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A병원은 장비치료사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면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장비치료사에게 치료받았던 70대 환자와 병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물리치료사까지 2명이 2차 감염되기도 했다. 병원 출입은 통제됐고, 병원에 있는 작은 물품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병원 측은 “내부에서 종이 한장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진료기록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환자가 수차례 문제를 제기하자 병원은 환자의 신분증 사진과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 동의서를 문자로 요구한 뒤 진료기록을 이메일로 보내줬다. 의료법상 이메일 서비스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였다.
환자 ‘권리’인 진료기록사본 이메일 발급, 병원은 ‘방치’
‘원격의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ICT) 기기를 이용해 의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일각에선 ‘오진 또는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환자의 편의를 위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메일 서비스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진료기록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는 방법이다. 현행법상 환자가 병원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환자가 이를 알지 못하거나 병원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0월 보건복지부는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발급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업무지침은 정부의 유권해석 등을 정리해 담은 해설서다. 지침에 따르면 환자가 원할 경우 병원은 환자의 진료기록부 사본을 우편이나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어야 한다.
담당의사의 확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진료기록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본을 발급받는데 담당의사의 확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환자가 진료비를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병원은 진료기록 사본 발급을 미루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온라인으로 신청할 경우 “즉시 발급하거나 발급예정시간을 안내해 제공할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또 “의료기관 직원의 정규 근무시간임에도 내부 규정을 이유로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 발급 요청을 거부하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환자가 이메일 서비스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관련법을 정확히 아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많은 병원이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할 때 환자나 환자 대리인의 방문을 요구한다. 일부 의료기관은 근거 없는 ‘의료법’을 내세우며 반드시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당연하다는 듯 불법을 저지르면서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병원 관계자는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면 환자의 진료기록이 유출될 우려가 있는데, 병원에선 이런 책임까지 지는 것을 꺼린다”며 “병원의 의무와 환자의 권리를 알면서도 의료법을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병원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환자의 불편을 강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온라인으로 진료기록을 신청할 때 신청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본인 확인’ 방법이 병원마다 다를 수 있지만, 환자의 정당한 요구를 병원이 묵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책·인센티브 제공으로 병원 참여 이끌어야
진료정보교류 시스템 확대도 환자의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복지부 사업이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적어 실제 혜택을 보는 환자가 많지 않다.
진료정보교류 서비스는 MRI, CT 등 환자의 진료기록을 병원에서 병원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환자가 병원을 옮겨 치료를 받을 때 처음부터 새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과잉 진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환자가 매번 초진 병원에 찾아가 CD나 USB에 진료 기록을 담아오거나 이메일로 자료를 요청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는 장점이 있다. 병원끼리 진료기록을 주고받을 때 해당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해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거의 없다.
의료기관이 진료기록을 공유하는 등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면 환자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고, 의료전달 체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2015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연구 결과 진료기록 공유시 처방 건수는 63%, 환자 진료비는 13%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정보교류 시스템은 보건복지부가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지만 문제는 이 사업에 참여한 병원이 적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한국도시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병원 수는 6만6000여 개. 그 중 진료정보교류 사업에 동참한 의료기관은 2019년 기준 3800여 개에 불과했다. 약 5%만이 환자의 불편을 덜어주는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업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단체는 대한의사협회다. 지난해 8월에는 16개 시도의사회에 진료정보교류 사업에 참여하지 말거나, 참여하고 있다면 중단을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의사의 지적재산을 정당한 대가 없이 가져가 정부가 주도적으로 환자 정보 빅데이터 사업을 할 우려가 있고, 사업 참여 과정에서 지출해야 하는 비용에 대한 보상도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중소형 의료기관 일부도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쏠리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2년까지 전국 모든 지역과 주요 거점 의료기관까지 진료정보교류 사업이 확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서울의 대학병원 관계자는 “진료정보교류 사업이 환자에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작은 병원 입장에선 비용 증가 등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병원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화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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