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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공정성 논란 ‘인국공 사태’, 청년들이 분노한 이유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지난 6월 22일 협력업체의 여객보안검색 근로자 1902명을 직접 고용한다고 발표했어요. 이른바 ‘인국공 사태’지요. 이로 인해 인국공을 준비하던 취준생들 사이에서 형평성 논란이 크게 문제가 되었어요. 아직도 이 문제가 쉽사리 진화되지 않는 가운데, 인국공이 속도감 있게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이는 배경에 눈이 쏠리고 있어요.

 

 

총선 여당 압승 영향 컸을 듯

 

공기업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할 정도로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상징성이 있는 공기업이라 총대를 멘 것으로 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일영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시절 지지부진했던 여객보안검색 근로자의 직접 고용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과정을 보면 지난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국공 노동조합 측은 “지난 2월 열린 제3기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여객보안검색 근로자 1902명을 인국공 자회사를 통해 간접 고용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는 입장이다.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면 경비업법에 따라 특수경비원 신분이 해제되기 때문에 경비자회사를 통해 고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합의문을 보면 ‘보안검색 1902명은 항공보안법, 경비업법, 통합방위법 등 직고용을 위한 법적 문제 해소를 고려해 별도회사(인천공항경비주식회사)로 사업부제 방식으로 타 직무(보안경비 1729명)와 구별해서 편제, 운영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인국공 측은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경비자회사로 임시 편제하고 직고용 전환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며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국공 노조 등에 따르면 인국공이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청원경찰로 전환해 채용하는 것에 대해 외부 용역을 맡겨 지난 4월 결과가 나왔는데, 청원경찰로 채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인국공은 지난 6월 16일에 또 다른 외부 용역을 의뢰했고, 이틀 만인 6월 18일에 기존 결론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받았다.

 

이후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6월 21일 오후 10시에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했다는 게 인국공 노조 측의 설명이다.

장기호 인국공 노조위원장은 “지난 3년간 노사 협의를 통해 합의한 것을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뒤집었는데 이를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장 위원장은 “이틀 만에 나온 용역 결과는 ‘특수경비원 신분으로 채용하는 게 맞는데, 법 개정이 오래 걸리니 청원경찰도 괜찮다’는 식이다”며 “이런 졸속 결과를 근거로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청원경찰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인국공의 이번 정규직 전환 발표는 이해당사자는 물론 국민 정서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경솔한 결정”이라며 “인국공의 직접 고용 결정은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혼선을 줄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인국공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원래 인국공은 경비업법 등의 법적 문제를 비롯해 공개채용으로 입사한 직원들의 반발 등을 감안해 여객보안검색 근로자를 자회사를 통해 채용한다는 입장이었다”며 “그런데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자 정규직 전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쪽으로 내부 기류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실제 구본환 인국공 사장은 인국공 노조 조합원에 ‘정책 결정은 정부에서 한 것이고 자신은 실행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 눈치 보느라” 지적도


공기업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사회적 가치’를 중점 평가하는 공공기관 경영 실적 평가 때문에 공기업들이 앞 다퉈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 실적을 평가해 발표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가치 등의 정성적 평가에 집중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6월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 실적 평가’를 발표하면서 사회적 가치 평가 기조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과)는 “공기업 입장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이 경영 평가인데, 과거 경영 평가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감점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가치 등이 경영 평가의 주요 항목이 되면서 가점 요소가 됐다”며 “글로벌 공항들이 검역, 출입국 심사, 보안 등의 무인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국공은 글로벌 기조에 역행하는 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우수(A)를 받은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2280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한수원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7831억원으로 2018년(1조1456억원)보다 32% 감소했다. 지난해 1조2765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로 이른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한국전력공사도 양호(B)로 평가됐는데, 지난해에만 5688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반면 현재까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방식을 확정하지 못해 정규직 전환 실적이 전무한 한국가스공사는 2019년 경영 평가에서 보통(C)에 포함돼 2018년 경영 평가인 양호(B)에서 한 단계 하락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간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은 1조2769억원에서 1조3345억원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참여했던 한 대학 교수는 “사회적 가치 등 정성적 평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제대로 된 경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애초 경영 평가가 도입된 취지에 맞게 실적 등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인국공의 이번 결정으로 향후 다른 공기업들도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직접 고용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스공사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가스공사 측은 자회사를 통한 간접 채용이나 직접 채용시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공개경쟁 채용 입사, 정년 60세 보장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측은 직접 채용, 공개경쟁 채용 철회, 정년 65세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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