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근 비엠케이리미티드 대표는 대한민국 명품 산업의 부흥기를 일궈낸 퍼스트 무버에요. 지난 2017년에는 자체 브랜드로 슈퍼푸드 코스메틱 브랜드 쥴라이를 론칭하였지요. 30년간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두루 섭렵해온 박 대표와 함께 한국 명품 시장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보았어요.
지난 2001년 설립된 비엠케이리미티드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해온 화장품 유통 전문 기업이다. 딥디크, 프레데릭 말, 세르주 루텐, 메종 프란시스 커정 등 세계적인 명품 향수 브랜드로 국내 니치 퍼퓸 시장을 개척했고, 로라 메르시에, 블리스 같은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를 론칭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또 신라호텔 서울 겔랑 스파를 비롯해 르메르디앙 서울 달팡 스파, 부산 샹테카이 아로마콜로지 스파, 메종 글래드 제주 스파 등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2017년에는 슈퍼푸드 코스메틱 브랜드 쥴라이를 론칭하며 자체 브랜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브랜드명 쥴라이는 생동감 넘치는 7월(JULY)에 사랑과 자연을 찬미하는 프랑스어 음률(LAI)을 합성한 것으로 ‘7월의 즐거운 리듬’을 의미한다. 마치 더치커피를 추출하듯 슈퍼푸드를 저온에서 240시간 동안 천천히 우려내는 슬로-브루(slow-brew) 공법을 적용해 영양소를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자체 브랜드 출시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비엠케이리미티드는 최근 프랑스의 유명 세라믹 브랜드 아스티에 드 빌라트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명품 리빙 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 명품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지난 7월 14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비엠케이리미티드 본사에서 박찬근(57) 대표를 만났다. 지난 30년간 국내 명품 시장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해온 박 대표는 “최근 국내 명품 시장에서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브랜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남성과 젊은 세대들이 명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럭셔리 시장의 가장 큰 추세는 소수 브랜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대부분 명품 브랜드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를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에르메스와 샤넬 같은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의 파워는 더욱 커지고 있어요. 이유는 이 브랜드들이 핵심 제품의 희소성을 기가 막히게 잘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은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무조건 매장을 늘리거나 제품을 무한정 만들어내지 않아요. 이처럼 명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해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과 차별화되는 최상의 소재를 사용하고 장인들의 숙련된 노하우로 한 땀 한 땀 빚어내기 때문에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죠. 최근 명품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남성과 젊은 세대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죠. 패션은 물론 화장품, 액세서리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는 상황이에요. 특히 남성 고객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지난해 에르메스에서 이례적으로 남성들만을 위한 패션쇼를 개최했을 정도예요. 루이비통과 샤넬도 백화점에 남성복 매장을 따로 운영하며 남성 고객들을 잡기 위해 신경 쓰고 있는 모양새죠.”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옹2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한 박찬근 대표는 대한민국 명품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선구자다. 베네통한국 공식수입사 대표, 지방시코스메틱 한국지사장 등을 지내며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두루 섭렵했다.
지난 30년간 날카로운 선구안으로 명품 시장 트렌드를 정확히 예측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박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소개로 베네통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명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됐다”며 “단기간에 급성장을 이룬 국내 명품 시장에는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30년을 꼬박 명품업계에서 보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명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셈이네요. 당시 국내에 들어와 있던 명품이라면 미국의 폴로 랄프로렌이나 이탈리아의 베네통, 피오루치 정도였죠. 특히 베네통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쳐주는 분위기였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오늘날 에르메스 수준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백화점 매입 담당자들이 자기네 백화점에 매장 좀 내달라고 제 방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으니까요. 의류로만 연 매출 1000억원을 기록했고, 1년간 학생용 가방을 200만 개나 판 적도 있었죠. 한마디로 해외 유명 브랜드를 명품으로 착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중반에 에르메스, 루이비통, 페라가모,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명품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 후반 들어 다양한 브랜드가 앞다퉈 소개되면서 명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거죠. 그간 변화된 부분이 참 많은데요. 무엇보다 명품에 대한 고객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명품이라면 무조건 추종하는 분위기였어요. 다시 말해 명품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해나가는 시장이었죠. 근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어요. 명품 시장에서 한국의 입김이 세지면서 명품에 미치는 영향력도 덩달아 커진 거죠.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브랜드에 당당하게 요구하고 브랜드는 고객들의 이런 니즈를 적극 수렴해 제품을 내놓고 있어요. 이런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이 들면서 우리 명품 시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명품 리빙 브랜드로 제2의 도약
비엠케이리미티드의 중장기 사업 미션은 경쟁이 치열한 뷰티 시장을 넘어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최근 프랑스의 유명 세라믹 브랜드인 아스티에 드 빌라트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국내 명품 리빙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8~19세기 프랑스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식기류를 비롯한 센티드 제품, 인센스 액세서리와 샹들리에, 스테이셔너리, 가구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이번 아스티에 드 빌라트와의 파트너십 체결은 지난 30년간 명품 시장에서 축적해온 우리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받은 결과”라며 “오는 10월 서울 한남동에 세계 최초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베네통을 들여와 국내에서 명품 시장이 뿌리내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고, 2000년대에는 딥디크라는 브랜드로 니치 향수 시장을 개척했어요. 그리고 이제 프랑스 세라믹 브랜드 아스티에 드 빌라트와 함께 국내 명품 리빙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려고 해요. 이처럼 최근 명품 시장은 패션과 뷰티, 리빙까지 의식주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외부에서의 대규모 모임을 지양하는 대신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홈파티 문화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거죠. 이런 추세로 미루어볼 때 향후 10년간 리빙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국내 명품 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엠케이리미티드가 소개하는 제품들이 고객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박 대표는 국내 럭셔리 비즈니스의 꾸준한 성장을 위한 해법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꼽았다. 박 대표는 “소수의 해외 유명 브랜드나 대기업의 자본 논리로 운영되는 브랜드가 모든 카테고리를 독식하는 기존 구조에서는 명품 시장이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 명품 산업이 지금보다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해요. 가방, 구두, 향수, 그릇, 크리스털 등 명품들도 각자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어요. 최근 국내외 젊은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SNS를 활용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는데요. 이들이 선보이는 크리에이티브한 제품들이 대중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어엿한 브랜드로 성장한다면 국내 명품 시장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유통 부문에서의 변화도 시급한데요. 코로나 이후 럭셔리 온라인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명품 산업이 하나의 문화로서 더욱 발전하려면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이외에 스트리트 매장들도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압구정 로데오길에 가보면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어요. 이유는 재미와 감동이 없기 때문이에요. 청담동 명품 거리나 가로수길도 마찬가지죠. 파리의 생토노레 거리나 밀라노의 몬테나폴레오네 거리처럼 골목마다 다양한 규모의 브랜드들이 공존하고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거듭난다면 지금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찾는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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