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등과 비교하면 토리노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진 도시가 아니에요. 하지만 토리노는 역사가 2000년이 넘은 고도(古都)이며 현재는 산업과 디자인 분야에서 매우 앞서가는 부유한 도시지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토리노가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을 주도한 명품 도시라는 점이에요.
이탈리아는 20개 주(州)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 밀라노는 롬바르디아주의 주도(州都)다. 롬바르디아주의 바로 서쪽은 피에몬테주다. ‘피에몬테(Piemonte)’는 Piede(발)+monte(산)가 축약된 것인데, 여기서 산은 다름 아닌 알프스산맥을 말한다. 그러니까 피에몬테는 알프스산맥의 ‘발끝’에 자리 잡은 지역이다. 피에몬테주의 주도가 바로 토리노(Torino)다. 영어식으로는 튜린(Turin)이라고 한다.
토리노는 무엇보다 먼저 이탈리아의 최대 공업도시이며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피아트(FIAT)는 다름 아닌 ‘토리노의 이탈리아 자동차 공장’이란 뜻의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의 약자다. 그렇다면 토리노는 연기 뿜는 공장이 가득한 도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토리노 중앙역을 나와 사보이아 왕궁 쪽으로 통하는 직선 거리 비아 로마(Via Roma)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이 깔끔히 정돈된 바로크풍의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런 명품 도시임을 알게 된다. 토리노를 이와 같은 도시로 만든 주인공은 사보이아 왕가의 통치자들이었다.
사보이아(Savoia)는 프랑스어로는 사부아(Savoie), 영어로는 사보이(Savoy)라고 하는데, 사보이아 가문의 본산은 알프스산맥 서쪽에 있는 현재의 프랑스 땅 사부아 지방으로, 주도는 샹베리다. 사보이아 공국은 13세기 말에 판도를 넓혀서 피에몬테 지방을 합병했고, 1563년에는 수도를 토리노로 옮겼다. 그렇다면 토리노는 300~400년 정도 된 도시일까? 사실은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이며, 시내에서 로마제국 시대 건축물의 흔적도 볼 수도 있다.
토리노의 상징, 몰레 안토넬리아나
16세기에 토리노 시가지를 스쳐 흐르는 포(Po)강 서쪽에 조성된 시가지는 마치 로마제국 시대의 도시들처럼 바둑판 모양으로 계획되어 있어서 구불구불한 길이라고는 전혀 없다. 게다가 건물들의 높이도 거의 모두 같아서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강하게 준다.
다만 19세기 후반에 세운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는 하늘을 송곳으로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다. 몰레(mole)는 이탈리아어로 웅대한 건축을 뜻하고, 안토넬리아나(Antonelliana)는 ‘안토넬리(Antonelli)의’라는 뜻이다. 안토넬리는 이것을 세운 건축가의 이름이다.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1889년에 완공됐는데 높이가 167m에 달하니 만약 파리에서 에펠탑이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손꼽혔을 것이다. 토리노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상징 이미지로 쓰이기도 했다.
몰레 안토넬리아나의 형태를 보면 상부는 날렵한 반면, 하부는 우람하고 입구는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 신전 입구처럼 강조돼 있다. 기둥만 보면 신고전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기존의 어떠한 건축양식과도 다르다.
특이한 점은 이 건축물에는 십자가나 그 흔한 성모 마리아나 성인들의 석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즉 기독교 건축이 아니라는 뜻이다. 천주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이탈리아에서 비기독교 건축물이 도시의 구심점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원래 유대교 성전으로 계획되어 1862년에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건축가 안토넬리가 공사 중 설계를 자주 변경한 데다 공사비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들어서 결국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토리노 시정부는 이것을 1877년 매입해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안토넬리는 새로운 용도에 맞게 설계를 수정하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지붕 높이를 이전보다 훨씬 더 높였고, 그 위에 마치 고딕 건축을 연상하게 하는 듯한 47m나 되는 첨탑을 올렸다.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현재 국립영화박물관으로 사용되는데 전망대가 있어 수많은 사람을 이끈다. 사실 토리노에서 이곳보다 더 멋진 전망대는 없다.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古都)
몰레 안토넬리아나에서 사보이아 왕궁 옆으로 돌아가면 토리노에서 대표적인 로마제국 시대 유적인 포르타 팔라티나(Porta Palatina)를 만나게 된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이 유적은 이 자리에 있던 로마제국 병영도시의 북쪽 성문이었다. 이 성문 유적 안쪽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두 인물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로마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한니발 전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기원전 218년, 로마에 대한 복수에 불타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에서 군대를 이끌고 남부 프랑스를 우회하여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었는데, 그가 알프스산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거점을 잡은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당시 이곳에는 켈트족의 일파인 타우리니(Taurini)족이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이 로마의 세력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로마가 한니발을 완전히 꺾은 다음이었다.
그 후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식으로는 ‘줄리어스 시저’)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갈리아(지금의 프랑스)를 정벌하기 위해 이곳에 로마군 전초기지를 세웠다. 이 기지는 기원전 28년경에 ‘타우리니족의 요새’라는 뜻으로 카스트라 타우리노룸(Castra Taurinorum)이라고 불렸고 나중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로마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져 도시명이 아우구스타 타우리노룸(Augusta Taurinorum)으로 굳어졌다. ‘토리노’란 지명은 다름 아닌 ‘타우리노룸’에서 유래했다.
한편 이탈리아어로 토리노는 tor(o)+ino로도 볼 수 있는데 ‘토로(toro)’는 황소, ‘이노(-ino)’는 축소형 어미니까 ‘작은 황소’, ‘귀여운 황소’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토리노의 상징이 황소가 됐다. 이런 연유로 토리노 거리 곳곳에 황소 형상이 유별나게 많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상징도 ‘황소’다.
까마득한 옛날, 남부의 원주민 오스크족은 자기네들이 사는 곳을 ‘어린 소의 땅’이란 뜻에서 비텔리우(Viteliu)라고 했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이것을 이탈리아(Italia)라고 부른 데서 ‘이탈리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탈리아’라는 지명은 원래는 남부지방에 한정되어 사용되다가 로마가 팽창함에 따라 반도 전체를 일컫는 지명이 됐다. ‘이탈리아’가 정식으로 국명이 된 것은 15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한 명품 도시
승승장구하던 로마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476년에 로마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탈리아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나라로 갈라져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이탈리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은 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통일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으며, 또 그들의 가슴속에는 통일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보이아 왕가의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구심점으로 하여 기나긴 외교전과 전투 끝에 외세를 몰아내고 1861년에야 이탈리아 북동부 지방과 교황령을 제외한 채 불완전하나마 일단 제1차 통일을 이룩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지 약 140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때 통일운동의 중심지였으며 통일을 주도했던 토리노가 통일된 이탈리아의 첫 번째 수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4년이 지난 1865년에 수도는 피렌체로 당분간 옮겨졌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꼭 150년 전인 1870년에는 끝까지 버티던 교황령의 수도이던 로마가 통일군에 의해 합병되었고 이듬해인 1871년에는 마침내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로 정해졌다.
그러고 보면 몰레 안토넬리아나가 유대교 성전에서 이탈리아 통일기념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던 것은 토리노가 이탈리아의 통일을 주도한 도시였음을 만방에 천명하는 것이었으리라. 또 그러고 보면 ‘작은 황소’를 뜻하는 토리노가 ‘황소’를 뜻하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것은 타고난 운명이었던 것일까?
정태남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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