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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 영화 관객 1억명 시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르네상스 되찾나

올 여름은 바다 영화의 한판 승부였다. <군도>가 문을 열어젖혔다면, <명량>이 영화시장을 휩쓸었으며, <해적>이 재미로 그 뒤를 받쳤다. 올해초의 신드롬은 단연코 디즈니의 <겨울왕국>이었다. 한국 영화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름 영화 시장을 통해 반전에 성공했다. <명량>은 개봉 한 달도 안돼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제 한국영화는 경제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으로 성장해하고 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횟수는 4.25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3년은 한국 영화계에 의미있는 한 해 였다. 영화 관객수가 2억명을 돌파했고, 그중 한국 영화 관객수는 1억 2727만 명이었다. 기억 나는 영화들만 해도 쟁쟁하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류승용의 <7번방의 비밀>, 한석규와 하정우가 연기 대결을 벌인 <베를린>, 김수현과 꽃미남 배우들이 나온 <은밀하게 위대하게>, 봉준호 감독의 역작 <설국열차>, 송강호의 멋진 연기가 돋보인 <관상>과 <변호인> 등이 1년 내내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 모았다. 


올해는 7월부터 한국 영화의 흥행이 터졌다. 한국 영화 6편이 7월 흥행순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군도:민란의 시대>가 7월에만 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더니, <명량>은 단 이틀만에 141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8월에는 <명량>, <해적>, <해무>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며 한국 영화의 달로 만들었다. 8월의 한국 영화 점유율은 83.3%나 되었다. 



 영화적 완성도가 높아지자, 수익률도 올라가다

이제 한국 영화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공급의 안정성, 수요 증가, 판로 확대 등 돈 되는 산업이 갖춰야 할 여러 조건을 채워가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만듦새가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 이른바 웰 메이드 영화로 불리는 수작들이 꾸준히 시장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7~8월을 점령한 한국 영화는 대부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한국 영화는 재미있다는 등식도 관객들에게 통하게 되었다. 


2014 한국영화 흥행순위


이외에 한국 영화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독특한 시나리오로 상반기에 인기를 끈 <수상한 그녀>부터 <명량>같은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영화가 계속 나왔다. 반면 그러다보니 영화 관계자들은 어떤 영화가 관객들에게 다가가는지 예상하기가 힘들어졌다.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무조건 된다’ 했던 영화는 의외로 고전하고, ‘이게 될까?’ 했던 영화가 성공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다양한 장르는 관객층도 두텁게 만들었다. 영화기획자들 사이의 주 타겟층인 ‘20~30대 여성 관객’에서 이제는 40~50대 남성 관객으로의 확장성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었다.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낮은 수익률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묻지마 투자는 사라졌고, 2012년 플러스 수익률을 회복한 후 지난해에도 적절한  수익률을 유지했다.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고, 제작 단계에서 부적절한 비용을 줄이는 관행이 자리를 잡으면서 바뀐 결과다. 


영화 수요가 늘어나고,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매출도 향상되다


영화 수요는 더 늘어났는데, 주로 극장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거두긴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온라인 시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온라인 영화 매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해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가장 큰 동력인 IPTV 및 맞춤형영상정보(VOD) 영화 서비스 매출은 전년 대비 32.6%나 늘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더 큰 폭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이 영화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수출액(완성작)은 2012년 대비 83.7% 증가한 3700만 달러에 달했다. <설국열차> 단 한 편에 편중돼 있긴 해도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크다. 중화권 등으로 수출하는 기술서비스(특수효과, 디지털 효과 등) 판매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 영화가 얼마든지 케이팝 (K-POP)처럼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스크린 쿼터 축소로도 꺽이지 않은 한국 영화 점유율


2007년 이후로 5년 동안 한국 영화는 침체기로 빠졌다.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와는 무관하게 제작 환경을 둘러싼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수면위로 드러난 결과였다. 과잉 투자의 부작용으로 투자 수익률이 -40%대를 기록할 만큼 내실이 없던 탓이었다.


한국영화 중흥기


수익률이 떨어지자 제작 편수가 크게 줄어 제작·배급·상영 산업 전반이 동반 침체를 겪었다. 가뜩이나 취약한 영화계 고용 문제가 불거졌고, 우수한 제작 인력이 이탈하면서 부정적인 연쇄 효과를 낳았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소비자들은 극장에도 발길을 끊었다.


이에 영화인들은 자구 노력을 시작했다. 참신한 기획을 발굴하고, 제작 과정에서 누수를 줄여 나갔다. 제작자는 더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고, 투자자도 따질 건 따지는 문화가 형성됐다. 영화 제작 밀도가 더욱 높아지자 신규 투자가 들어왔고, 좋은 작품이 연이어 시장에 나왔다. 그러자 2012년 관객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낸 한국 영화 1억명 시대가 열렸다. 관객 점유율은 58.8%로 올랐고, 극장 매출도 1조4551억원이나 되었다.



신생 배급사의 등장은 더 다양한 영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영화계에선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화제였다. NEW는 연초 <7번방의 선물>로 10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하더니, 연말에는 <변호인>으로 대박을 쳤다. 2009년 설립 이후 한 자릿수에 머물던 점유율은 2012년 매출 기준 11.8%로 올랐고, 지난 해엔 18.1%로 2위에 올라 배급 3강인 CJ · 롯데 · 쇼박스 구도를 깨는데 성공했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대기업 계열사도 아닌 신생 배급사의 성공은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는 약간 주춤한 편이지만,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숫자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배급사별 관객 점유율



해외에서 먼저 찾는 한국 영화! 한국 영화 수출액도 증가

올해 9월 개최되는 제3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이다. <좋은 친구들>, <끝까지 간다>, <도희야> 등 11편의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북미 최대의 비경쟁 영화제로 ‘북미의 칸’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이를 계기롤 북미 배급시장 진출에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고 있다.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영화 수입 건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출액이 늘었다. 물론 그 영향은 <설국열차>의 공이 컸다. 봉준호 감독이 헐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작품인 <설국열차>는 국내 개봉 전 이미 167개국에 선판매 됐다. 수입 국각들은 10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 영화를 샀다. <설국열차>의 투자 ·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해외수출만으로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만 달러 (약 204억원)을 벌여들였다.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북미 8개관에서 개봉할 때만 해도 흥행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첫 주에 적은 숫자로 개봉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을 늘려가는 ‘롤 아웃’ 방식으로 개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봉 2주만에 350개관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해외 배급사들에게 인기를 끄는 영화들은 대부분 문화적 특수성을 뛰어 넘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우리의 특수성을 반영하면서도 세계 보편적으로 통하는 스토리를 살린 게 해외 배급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앞으로 해외 시장 진출이 실질적인 수익 증대로 이어지려면 각국의 정서에 맞는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배우의 해외 진출은 한국 영화 및 영화인의 인지도를 높여


한국 배우들의 잇따른 해외 진출 소식 역시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말해준다. 이병헌은 <지.아이.조2>에 이어 <레드2>를 선보여 한류를 넘어 할리우드에 족적을 남겼다. 그는 현재 내년 개봉 예정인 <터미네이터5>에 합류해 촬영 중이다. 

<명량>으로 인기몰이 중인 배우 최민식은 최근 세계적인 거장 뤽 베송 감독의 <루시>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배두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이어 <주피터 어센딩>으로 다시 한번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 비 역시 차기작으로 할리우드 영화 <더 프린스>를 선택, 2009년 <닌자 어쌔신>에 출연한 이후 5년 만에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다. 

한편 국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예 수현은 할리우드 대작 <어벤져스2>에 이어 최근 <이퀄스>에도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져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영화의 명암, 스크린 독과점과 스태프 처우 개선


이렇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부르는 다양한 징후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상황도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한국 영화계의 배급 구조에서부터 비롯된 문제다. 영화산업은 크게 제작 · 배급 · 상영이란 축으로 이뤄진다. 각각 생산, 도매, 소매 역할을 하는데, 제작사는 해외에서 영화를 수입하거나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곳이다. 국내에는 약 2000여개의 제작사가 등록돼 있는데, 보통 규모가 크지 않다. 

한국영화 수익구조


영화 산업은 기본적으로 배급사가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영화를 찍을 제작사는 많지만 이를 배급해줄 배급사는 과점 체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주요 배급사는 보통 해당 영화의 30% 정도의 제작비를 대고 메인 투자자로도 참여한다. 게다가 상영관까지 소유하고 있다. 


결국 배급사가 어떤 영화에 투자할지 결정하고 직접 배급해서 자신이 소유한 극장에 영화를 거는 구조다. 이른바 수직 계열화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공들여 만든 영화가 최대한 많이 관객과 접촉하기 위해서도 배급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스크린 독과점 상태가 되고, 흥행 위주의 영화만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다양성과 질적 향상,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등을 적용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도 한국 영화산업의 현안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조사에서 2011년 영화 스태프 팅장급의 연평균 소득은 2378만원 정도다. 2013년 영화 산업 결산을 보면 전체 제작비의 10%만이 스태프 인건비로 지출됐다. 실제 근로 시간을 따지면 상당수 스태프가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고용불안정도 심각하다. 작품별 계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용의 특수성 때문에 영화 스태프의 정규직 비율은 전체의 79.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노조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영화 스태프는 한 해에 6~7개월 정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지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각각 29.1%, 32.6%에 불과해 일이 없는 동안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심지어 흥행성적에 따라 임금을 못 받는 일도 많다.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다. 표준근로계약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노조가 체결한 협약에 따른 것으로 스태프 개개인과 개별적으로 맺는 단기 계약이다. 아직 사용이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사용률은 낮다. 하지만, 투자 ·  배급사의 자세가 바뀌면서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좋은 작품과 영화 제작 환경이 뒷받침 된다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또한 이들의 노력만큼 좋은 영화, 다양한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의 안목과 다양성도 확대된다면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세계의 블록버스터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세계 영화의 르네상스로도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